
달콤함과 매운맛이 결합된 스위시(Swicy)와 핫 허니(Hot Honey). 우리나라에는 아직 조금 낯설지만 이 두 가지가 세계적으로 뜨거운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스위시(Swicy)는 달콤하다는 뜻의 스위트(Sweet)와 매콤하다는 뜻의 스파이시(Spicy)를 합친 신조어입니다. 단맛과 매운맛이 동시에 느껴지는 맛의 경험을 가리키는 말로, 최근 몇 년 사이 미국과 유럽의 식품 업계에서 주목받는 트렌드 키워드로 자리 잡았습니다.
달기만 하지도 않고, 매운 맛만 느껴지는 것도 아닌 묘한 경계의 맛이 사람들의 미각을 자극하며 중독성 있는 풍미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것입니다. 치킨, 피자, 스낵, 소스류 등 다양한 식품 카테고리에서 스위시를 표방한 신제품들이 쏟아지고 있으며, 그 맛을 구현하는 핵심 재료로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이 바로 꿀입니다.

핫 허니(Hot Honey)는 이름 그대로 꿀에 고추나 칠리 페퍼를 섞어 만든 매콤달콤한 꿀을 말합니다. 꿀 특유의 깊고 풍부한 단맛 뒤에 알싸한 매운 맛이 은은하게 따라오는 것이 특징이죠. 피자 위에 뿌리거나 프라이드치킨, 치즈 보드, 그릴 요리 등에 곁들이는 방식으로 널리 활용됩니다. 핫 허니의 인기는 미국 뉴욕의 한 작은 피자 가게에서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피자에 꿀과 칠리를 함께 곁들이는 메뉴가 입소문을 타면서 전 세계 요식업계로 빠르게 퍼져 나갔습니다. 지금은 대형마트에서도 완제품 핫 허니를 쉽게 찾아볼 수 있을 만큼 보편적인 식재료가 되었고, 각종 요리 유튜브와 소셜 미디어에서도 핫 허니 활용 레시피가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전문가들은 자극적인 맛에 익숙해진 우리의 미각이 단조로운 단맛이나 매운맛에서 벗어나, 보다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풍미를 찾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해석합니다. 여기에 건강에 대한 관심이 더해지면서 정제당 대신 자연 감미료인 꿀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전 세계 꿀 판매량도 급증하고 있습니다. 꿀은 최근 5년간 급성장하면서 2024년에 무려 11억 달러의 판매 수익을 기록하며 다시 한번 주목받는 식재료로 떠올랐습니다.
지금부터 달콤한 꿀의 세계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꿀의 역사와 허니문의 유래
꿀은 선사시대 암벽화에도 채집 장면이 생생하게 남아 있을 만큼, 인간이 오래전부터 애용해 온 천연 식품입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미라를 방부 처리하는 데 사용했을 정도로 신성하게 여겨졌고, 고대 지중해 시대에서는 신과 인간을 잇는 매개체로 숭배받기도 했습니다. 또한 고대 그리스 여신을 모시는 사제들이 ‘꿀벌’이라 불렸을 정도로 꿀은 문화와 신앙의 영역에까지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습니다.

허니문(Honeymoon) 역시 꿀에서 유래된 단어입니다. 고대 북유럽에서는 결혼 후 한 달간 꿀을 발효시켜 만든 술을 마시는 풍습이 있었는데, ‘꿀(Honey)’와 ‘한 달(Moon)’이 합쳐져 지금의 허니문이 되었습니다. 이 유래만 보더라도 꿀이 인간의 감정과 일상에 얼마나 깊이 스며들어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세계 곳곳에는 꿀에서 이름을 따온 지명이 흥미롭게 남아 있습니다. 브라질 파라나(Paraná)주의 이랴 두 멜(Ilha do Mel)은 포르투갈어로 ‘꿀의 섬’을 뜻하며, 이름 그대로 꿀처럼 달콤하고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섬입니다. 미국 루이지애나에 위치한 허니 아일랜드 습지대(Honey Island Swamp)는 근처 섬에 꿀벌이 유독 많아 붙여진 이름입니다. 오늘날에는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습지로 더 잘 알려져 있죠. 캐나다 온타리오의 허니 하버(Honey Harbour), 허니우드(Honeywood) 역시 꿀과 깊은 인연이 있는 지명들입니다. 한편 그리스의 이카리아(Ikaria) 섬은 세계적으로 희귀한 ‘이카리아 꿀’의 본고장으로, 지금도 양봉 산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이름 하나하나에 인류와 꿀이 함께해온 오랜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꿀 한 병의 가치
전 세계 식량의 90%를 차지하는 100대 농작물 중 무려 71%가 벌의 수분 활동 덕분에 열매를 맺습니다. 꿀벌이 사라지면 우리가 매일 먹는 과일과 채소의 대부분도 함께 사라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꿀의 맛과 색, 영양은 어떤 꽃에서 비롯되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개성을 지닙니다.

아카시아꿀은 매우 순한 맛 덕분에 꿀 입문용으로 제격이며 차나 요거트와 잘 어울립니다. 반면 밤꿀은 쌉싸름하고 스모키한 향이 특징으로 미네랄과 항산화 성분이 풍부해 치즈나 고기 요리와 훌륭한 궁합을 자랑합니다. 메밀꿀은 몰트처럼 크리미한 약초 맛으로 호불호가 갈리기도 하지만 영양만큼은 최고 수준이고, 타임꿀은 허브와 스파이시한 강한 향이 요거트나 로스트 채소와 잘 어울립니다.
꿀은 맛만큼이나 건강 면에서도 가치가 높습니다. 오랜 역사 속에서 식탁과 의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그 가치를 인정받아 왔습니다. 꿀의 대부분은 탄수화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올리고당이 소량 포함되어 있는데, 견과류와 함께 먹으면 시너지 효과가 뛰어납니다. 운동 전에는 빠른 에너지 공급을 도와주고, 운동 후에는 글리코겐 회복과 인슐린 반응 유도를 돕는 역할을 합니다. 또한 과산화수소 등의 성분이 유해 미생물의 증식을 억제해, 의료 현장에서 상처 치료에 활용되기도 합니다.
“벌이 사라지면 인류의 식탁도 위태롭다”
꿀벌 없이는 우리의 식탁도 없다는 경각심을 알리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행사와 축제들이 열리고 있습니다. 그 중 가장 상징적인 날이 5월 20일, 세계 벌의 날(World Bee Day) 입니다. 18세기에 벌의 생태를 연구한 현대 양봉의 선구자 안톤 얀샤(Anton Janša)를 기리기 위해 슬로베니아 정부가 UN에 제안하여 2017년에 공식 제정된 날입니다. 슬로베니아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양봉 전통을 가진 나라 중 하나로, 국민 100명당 꿀벌 군집 수가 세계 최고 수준일 만큼 꿀벌 사랑이 각별한 나라입니다.

안톤 얀샤가 태어난 5월 20일을 기념일로 정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슬로베니아에서는 꿀벌을 단순한 곤충이 아니라 자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존재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매년 이 날을 기점으로 전 세계에서 벌과 생태계의 중요성을 알리는 다양한 캠페인이 펼쳐지며, UN 산하 기관과 각국 정부, 환경 단체들이 함께 꿀벌 보호 메시지를 전 세계에 전파합니다.

매년 10월경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국립 허니 쇼(National Honey Show)는 1923년에 처음 시작된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행사입니다. 영국 왕실의 양봉 전통을 잇는 권위있는 자리로, 엘리자베스 2세 여왕도 생전에 깊은 관심을 보였던 행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세계 각국의 양봉가들이 자신이 직접 채취한 꿀을 출품해 색깔, 향, 점도, 맛 등을 놓고 최고의 꿀을 가리는 경연 대회가 핵심입니다. 또한 양봉 기술 세미나와 꿀 관련 제품 전시까지 함께 열리며 전문 양봉가부터 꿀 애호가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유럽 최대 규모의 꿀 박람회인 국제 허니 페어(International Honey Fair)는 매년 9월경 슬로베니아의 작은 도시 라돌리차(Radovljica)에서 열립니다. 라돌리차는 유럽 양봉 문화의 성지로 불리는 곳으로, 세계에서 유일하게 양봉 전문 박물관이 자리한 도시이기도 합니다.
행사 기간 동안 아카시아·리뷰에 등 세계 각지에서 공수된 다양한 종류의 꿀을 직접 시음할 수 있으며, 슬로베니아 전통 방식으로 제작된 채색 벌통 장식판 전시도 인기를 끕니다. 슬로베니아의 전통 벌통 장식판은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되어 있으며, 꿀을 매개로 한 예술과 문화까지 함께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자리입니다.
한편 매년 5월 30일 미국 조지아주 유니온포인트(Union Point)에서 열리는 허니비 페스티벌(Honeybee Festival)은 지역 커뮤니티에서 자발적으로 시작해 이제는 1,000명 이상의 벤더가 참여하는 미국 남부 최대의 꿀 축제로 성장했습니다. 조지아주는 미국에서 손꼽히는 양봉 산지로, 따뜻한 기후 덕분에 다양한 꽃에서 채취된 개성 있는 꿀들이 생산됩니다. 축제에서는 꿀 시식은 물론 BBQ 대회, 공예품 전시, 라이브 음악 공연까지 함께 펼쳐져 온 가족이 즐길 수 있습니다. 특히 어린이들에게 꿀벌의 소중함을 다음 세대에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양봉 체험 프로그램이 큰 인기입니다.
꿀 한 숟가락의 비밀
꿀 한 숟가락에는 벌 한 마리가 평생을 날아다니며 모은 정수가 담겨 있습니다. 벌 한 마리가 평생동안 만들어내는 꿀의 양은 티스푼의 1/12에 불과합니다. 꿀 한 병(약 500g)을 채우기 위해서는 꿀벌 약 1만 마리가 총 900만 번 이상 꽃을 오가야 하죠. 벌집 하나에 사는 수만 마리의 벌이 하나의 팀처럼 협력해야만 비로소 완성되는 자연의 합작품, 그것이 바로 꿀입니다.

핫 허니 트렌드이든, 건강한 식단을 위한 선택이든 수천 년의 역사 속에서 자연과 공생해온 인류의 유산이자 소중한 존재인 꿀. 오늘 꿀 한 숟가락, 어떠신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