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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내비게이터] 나를 위한 시간_ 세계의 순례길
2026.07.28 링크주소 복사 버튼 이미지 페이스북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카카오톡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X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링크드인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인쇄하기 버튼 이미지
트렌드 내비게이터 세계의 순례길 Pilgrimage route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순례길. 목적지는 같아도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의 사연은 저마다 다릅니다. 누군가는 신앙을 따라, 누군가는 지친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 걷습니다. 또 누군가는 낯선 풍경 속에서 자신을 다시 만나기 위해 길 위에 섭니다.

순례는 어느 한 종교에만 속한 것이 아니라 인류가 오래전부터 이어온 여행의 한 형태입니다. 그 시작은 기원전 2,000년 무렵, 이집트인들이 오시리스 신을 기리기 위해 나일강변의 도시 아비도스를 찾던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후 힌두교도들은 갠지스강으로, 불교도들은 부처의 성지로, 무슬림들은 메카로 순례를 떠났습니다.

문득 걷고 싶어지는 어느 날, 위시리스트에 올릴 만한 대표적인 세계의 순례길 네 곳을 소개합니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산티아고 순례길의 공식 이름은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입니다. 하나의 길이 아니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을 향해 모여드는 여러 갈래의 길을 아우르는 이름이죠. 프랑스 길, 포르투갈 길, 북부 길, 원시 길, 영국 길 등 공식적으로 알려진 주요 루트만 해도 약 10개에 이릅니다.

산티아고 순례길

그중 가장 유명해서 많은 이들이 선택하고, 처음 도전하는 사람에게도 좋은 길이 바로 프랑스 길입니다. 길 안내 표식이 비교적 잘 정비되어 있고, 마을과 숙소가 촘촘히 이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국경 마을 생장 피드포르(Saint-Jean-Pied-de-Port)에서 출발해 피레네 산맥을 넘고, 스페인 북부를 가로질러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에 다다릅니다. 하루 평균 20~25㎞씩 걷는다면 보통 30~35일, 넉넉히는 5~6주가 걸리는 긴 여정입니다.

산티아고 순례길

길을 따라 자리한 순례자 전용 숙소 알베르게(albergue)도 특별한 경험입니다. 순례자들은 침대와 주방 등을 함께 사용하며 하루의 여정을 마치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산티아고 순례자여권

노란 화살표와 가리비 조개껍데기는 순례길을 안내하는 대표적인 표식입니다. 중세부터 순례의 증표로 쓰인 가리비 조개는 여러 갈래의 길이 하나의 목적지로 모이는 모습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자 사무소에서 완주 증서인 콤포스텔라(Compostela)를 받을 수 있습니다. 도보로 마지막 100㎞ 이상, 자전거로 200㎞ 이상을 이동하고, 순례자 여권인 크레덴시알(Credencial)에 스탬프를 모아 완주를 증명하면 발급됩니다.

포르투갈 길

포르투갈에서 산티아고를 향한 순례길은 중세부터 이어졌습니다. 12세기 포르투갈 왕국이 세워진 뒤 성 야고보 신앙이 널리 퍼지면서 왕과 귀족, 성직자와 평민이 이 포르투갈 길(Camino Portugués)을 걸었습니다. 순례자들은 오래된 로마 도로와 교역로를 따라 이동했고, 길목에는 성당과 수도원, 다리와 순례자 숙소가 들어섰습니다.

포르투갈 길

가장 클래식한 루트는 수도 리스본에서 출발해, 코임브라와 포르투를 지나 산티아고까지 약 620㎞를 걷는 코스입니다. 요즘은 일정 부담이 적은 포르투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아서 보통 2주 안팎이면 완주할 수 있습니다. 스페인 국경 도시 투이(Tui)에서 출발해 산티아고까지 약 115㎞를 걷는 더 짧은 길도 인기가 많습니다.

포르투 이후에는 크게 내륙의 중앙 길과 대서양을 따르는 해안 길로 나뉩니다. 중앙 길은 바르셀루스와 폰테드리마를 지나 발렌사에서 국경을 넘는 전통적인 루트입니다. 포도밭과 농촌 마을, 오래된 돌다리와 성당이 이어져 포르투갈 북부의 역사와 생활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습니다.

포르투갈 길 해안선 루트

반면 해안 길은 포르투에서 빌라두콘드와 비아나두카스텔루를 거쳐 대서양을 따라 북쪽으로 이어집니다. 해변과 어촌, 나무 데크 길을 걷고 미뉴강을 건너 스페인 갈리시아에 들어선 뒤, 바이오나와 비고를 지나 중앙 길과 합류합니다. 탁 트인 바다 풍경과 완만한 지형을 좋아한다면 해안 길이 좋습니다.

포르투갈 길은 들판을 가로지르는 중앙 길이든, 바다를 끼고 걷는 해안 길이든 일정과 체력에 맞춰 고를 수 있는 폭이 넓습니다. 그래서 순례가 처음인 사람에게도, 자연과 도시를 두루 경험하고 싶은 사람에게도 부담 없이 도전할 수 있는 순례길입니다.

일본_ 구마노고도

산티아고 순례길과 함께 세계유산에 등재된 곳이 일본에도 있습니다. 바로 천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구마노고도(熊野古道, Kumano Kodō)입니다. 두 길은 자매 순례길로 맺어져 있어, 모두 걷고 순례 여권에 스탬프를 모으면 듀얼 필그림(Dual Pilgrim) 인증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구마노고도

구마노고도는 일반 기이반도의 깊은 산과 해안을 따라 여러 성지로 이어지는 옛 순례길들을 아우르는 이름입니다. 2004년에 주변의 신사와 사찰, 자연경관과 함께 ‘기이 산지의 영지와 참배길’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예부터 이 땅은 자연숭배와 불교가 어우러져 있어 순례를 몸과 마음을 씻고 새롭게 태어나는 여정으로 여겼습니다.

구마노고도

여러 노선 가운데 가장 대중적인 길은 나카헤치(中辺路)입니다. 기이반도 서쪽의 다나베에서 산속으로 들어가 구마노 산잔으로 향하는 코스로, 왕실과 귀족도 주로 이 길을 이용했다고 합니다. 안내 표지와 숙박 시설이 비교적 잘 갖춰져 있어 초보자도 도전하기 좋습니다.

구마노고도

이끼가 내려앉은 돌계단과 짙은 삼나무 숲, 안개에 잠긴 산길을 따라 하루의 걸음을 마친 뒤, 유노미네나 가와유 같은 온천 마을에서 몸을 녹이는 시간도 구마노고도의 또 다른 즐거움입니다. 깊은 고요 속에서 천천히 자신을 돌아보고 싶은 사람에게 어울리는 순례길입니다.

이탈리아_ 비아 프란치제나

영원의 도시 로마를 향해 중세 순례자들이 걷던 길, 비아 프란치제나(Via Francigena). 그 오랜 여정의 끝에는 성 베드로 대성당이 자리한 로마가 있습니다. 이 길은 영혼을 달래는 순례길인 동시에 상인과 군인, 여행자가 오가던 활기찬 교역로이기도 했습니다. 오랫동안 북서유럽과 이탈리아를 잇는 거대한 통로가 되어주었죠.

비아 프란치제나 경로

이 길의 역사는 10세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990년, 캔터베리 대주교로 임명된 시게릭(Sigeric)은 대주교의 상징인 팔리움(Pallium)을 받기 위해 로마를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자신이 거쳐 간 79개의 구간을 꼼꼼한 기록으로 남겼지요. 그 여정의 기록은 오늘날 비아 프란치제나를 복원하는 단단한 토대가 되었고, 가치를 인정받아 1994년 유럽평의회 문화길(Cultural Route)로 지정되었습니다.

비아 프란치제나 경로

비아 프란치제나는 영국 캔터베리에서 출발해 프랑스와 스위스를 거쳐 로마까지 이어지는 약 1,800㎞의 대장정입니다. 프랑스의 끝없는 평원과 포도밭을 지나, 알프스의 웅장한 그랑 생베르나르 고개를 넘고, 이탈리아의 고즈넉한 중세 마을과 토스카나의 푸른 구릉을 지나서 마침내 성 베드로 대성당에 닿게 됩니다.

시간이 부족한 이들은 루카, 시에나, 비테르보를 거쳐 로마로 향하는 토스카나·라치오 구간만 골라 걷기도 합니다. 순례자들은 순례 여권인 크레덴치알레(Credenziale)에 차곡차곡 스탬프를 모으는데, 도보로 100㎞ 이상 또는 자전거로 200㎞ 이상을 완주하면 테스티모니움(Testimonium) 증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보다 한적하고 여유로운 구간이 많아, 유럽의 역사와 문화를 호젓하게 음미하며 시간을 되돌아보고 싶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순례길입니다.

나를 위한 시간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어도 쉽게 도전할 수 없고, 내노라 하는 끈기와 지구력을 갖고 있어도 흔쾌히 발을 옮기기 어려운 길.

11 순례길

순례길은 큰 전환점이 필요하거나 마음의 상실을 극복하고 싶을 때, 세상의 혼동 속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체력적 한계를 넘고 성취감을 얻기 위해서 등등 다양한 사연을 가지고 시작하게 됩니다. 이 외의 이유로 발을 떼더라도 순례길의 끝에 다다라서는 무언가를 얻고 가게 되죠.

순례길이 궁금해지는 순간은 멈춰서서 나를 위한 시간을 가져봐야할 때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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