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카고는 윈디 시티(Windy City)라고 불린다. 겨울에 미시간호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아본 사람이라면 빈말이 아니라는 걸 안다. 하지만 사람들이 시카고를 윈디 시티라고 부르는 건 바람 때문만은 아니다.
19세기 말 뉴욕과 시카고가 서로 누가 더 큰 도시인가, 누가 더 미국다운 도시인가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던 시절, 뉴욕의 신문기자들이 시카고 정치인들의 허풍과 큰소리를 비꼬며 붙인 별명이기도 하다.
시카고의 또 다른 별명은 세컨드 시티(The Second City)다. 뉴욕 다음 2등 도시, 혹은 1871년 대화재 이후 다시 태어난 도시라는 의미다.
시카고는 무너진 뒤 다시 일어선 도시다. 1871년의 대화재는 도시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 재난을 딛고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일어나게 했다. 시카고의 재건을 위해 건축가들이 몰려들어 빈자리에 철골 구조와 고층 건물, 근대 마천루의 문법을 세웠다. 그 결과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의 검은 상자 같은 건물들, 옥수수처럼 생긴 마리나 시티(Marina City)의 쌍둥이 빌딩, 강변의 유리 고층들, 윌리스 타워(Willis Tower) 등이 스카이라인을 만들어내며 건축의 도시가 되었다.

최근 몇 년 동안 시카고는 다시 새롭게 변화하고 있다. 시카고 시내 북서쪽, 강변에 길게 누워 있는 더 솔트 쉐드(The Salt Shed)는 한때 모턴 솔트(Morton Salt)의 창고였다. 소금창고라는 뜻 그대로다. 1929년부터 1930년 사이에 지어졌는데, 2015년 모턴 솔트가 공장을 옮기면서 비어 있다가 2017년 리모델링됐다. A자형 지붕과 철골 트러스, 옛 컨베이어 벨트의 일부까지 그대로 남겨두고, 그 안에 무대를 들였다. 실내 공연장은 약 3,600명, 강변 야외 공연장은 5,500명 규모다. 여름이면 야외 무대 너머로 시카고 강과 구스 아일랜드(Goose Island)가 보이고, 공연이 없는 날에도 푸드 페스티벌과 빈티지 마켓, 아케이드 바가 열린다.
또한 백년 가까이 은행과 보험회사, 법률사무소가 장악했던 금융가 라살 스트리트(LaSalle Street)도 주거 공간으로 바뀌는 중이다. 팬데믹 이후 사무실 공실률이 높아지자 비어있는 사무실 빌딩을 1,000세대가 넘는 혼합 소득 주거지로 전환하는 프로젝트를 시가 주도하고 있다.
한편 남쪽의 브론즈빌(Bronzeville)에서는 폐선이 된 고가 철길 위에 새로운 산책로를 만드는 계획이 진행 중이다. 브론즈빌 트레일(Bronzeville Trail)이라 불린다. 1단계 구간 완공은 2028년쯤으로 예상된다. 산책로 중간에는 1899년 세계 사이클링 챔피언이자 미국 최초의 흑인 스포츠 스타였던 마샬 메이저 테일러(Marshall Major Taylor)의 기념비도 세워질 예정이다. 그가 인생의 마지막을 보낸 동네가 바로 브론즈빌이었다.
시카고, 여름이 좋다
시카고는 여름에 근사해진다. 뉴욕과 시카고 중 어디가 더 좋으냐고 묻는다면 한참 답을 주저하겠지만, 여름만큼은 뉴욕보다 시카고다.

여름은 테이스트 오브 시카고(Taste of Chicago)에서 시작된다. 가장 시카고다운 여름 축제다. 올해는 7월 8일부터 12일까지 닷새간 그랜트 파크(Grant Park)에서 열린다. 한동안 NASCAR 스트리트 레이스에 그랜트 파크를 내주고 9월로 밀려나 있었는데, 레이스가 다른 도시로 옮기면서 7월로 돌아왔다.
시카고는 19세기 말 철도·도축장·자동차 공장 그리고 흘러들어 온 이민자들이 모인 일하는 사람들의 도시였다. 시카고 음식들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든든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탄수화물이 많고, 소스가 강한 편이다. 그래서 축제에서 선보이는 음식들도 딥 디쉬 피자, 핫도그, 타코, 바비큐, 폴란드 소시지, 그리스식 디저트들이다.

테이스트 오브 시카고가 처음부터 이렇게 대형 축제였던 건 아니다. 1980년 7월 4일 독립기념일에 미시간 애비뉴 다리 북쪽 36개 식당 부스로 시작했다. 첫날 25만 명이 몰리자 다음 해부터 그랜트 파크로 자리를 옮겼고, 지금은 미국에서 가장 큰 무료 음식 축제가 됐다.

그랜트 파크에서는 7월 30일부터 8월 2일까지 롤라팔루자(Lollapalooza)가 이어서 열린다. 1991년 제인스 어딕션(Jane’s Addiction)의 페리 패럴(Perry Farrell)이 고별 투어로 기획한 순회 페스티벌이었다.
록, 펑크, 힙합, 전자음악을 한 무대에 올리며 90년대 얼터너티브(Alternative) 문화의 상징이 됐지만, 1997년 재정난으로 멈췄다. 2003년에 부활했다가 다시 좌초된 뒤, 2005년 시카고가 그랜트 파크를 무대로 내주면서 다시 태어났다. 처음엔 이틀이었던 행사가 2008년에 사흘, 2016년부터는 나흘로 늘어났다. 지금은 매일 약 10만 명, 4일간 50만명이 다녀가는 규모로 성장했다.
그리고 여름이 최절정에 이르는 8월 중순이 되면 시카고 에어 앤드 워터 쇼(Chicago Air & Water Show)를 보기 위해 노스 애비뉴 비치(North Avenue Beach)에 사람들이 모인다. 수건을 깔고 눕거나, 접이식 의자에 앉거나, 맥주를 들고 하늘을 본다. 1959년 작은 수상 행사였는데 지금은 매년 100만 명이 넘는 관객이 호숫가를 가득 메우는, 미국에서 가장 큰 무료 에어쇼라 불릴 만큼 커졌다.
다채로운 동네들이 모인 도시
시카고 사람들은 시카고를 ‘다채로운 동네들이 모인 도시(A City of Neighborhoods)’라고 부르기도 한다. 행정구역상 커뮤니티 로 구성된 지역만 77개. 실제 동네는 그보다 더 많다. 심지어 강 하나, 철길 하나, 큰길 하나를 건너면 분위기가 바뀐다. 그래서 시카고를 제대로 보려면 다운타운을 벗어나야 한다.
블루 라인(Blue Line)을 타고 북서쪽으로 올라가면 위커 파크(Wicker Park)와 벅타운(Bucktown)이 나온다. 빈티지 숍, 레코드 가게, 커피 하우스, 작은 갤러리. 한때 작가와 음악가들이 모였고, 지금은 그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과 그 시절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산다.

위커 파크와 벅 타운 두 동네 사이를 가로지르는 산책로가 ‘The 606’이다. 도시 위에 떠 있는 정원 느낌이다. 원래는 화물열차가 다니던 블루밍데일 라인(Bloomingdale Line)이었다. 그 철길 위에 흙을 깔고 나무를 심었다. 길이는 2.7마일. 이름인 606은 시카고 우편번호의 앞 세 자리에서 왔다.
산책로의 끝에서 내려오면 로건 스퀘어(Logan Square)가 나온다. 어딘가 묘하게 느긋한 동네다. 아마도 터줏대감들 덕분일지 모르겠다. 1999년에 문을 연 룰라 카페(Lula Cafe)가 있다. 시카고 팜 투 테이블의 시초로 꼽히는 동네의 기둥 같은 식당이다. 1915년에 문을 연 로건 극장(Logan Theatre)은 백 년이 넘게 같은 자리에서 인디 영화를 상영한다. 일요일 아침이면 로건 대로의 파머스 마켓에서 농부들이 토마토와 치즈, 빵을 판다. 로건 스퀘어가 힙한 건 화려하고 트렌드에 예민해서가 아니다. 소소한 일상들이 항상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서 힙하다.

웨스트 루프(West Loop)는 한때 정육 공장, 도매시장이 있던 곳이다. 고기 냄새, 트럭 소리, 새벽 일을 찾아 몰려든 노동자들이 있었다. 지금은 랜돌프 스트리트(Randolph Street)와 풀턴 마켓(Fulton Market)을 중심으로 스미스(Smyth), 오리올(Oriole), 아벡(Avec) 같은 유명 레스토랑들이 줄지어 있다. 누군가 고기를 자르던 자리에서, 이제 누군가는 완벽하게 익은 스테이크를 자른다. 도시의 역사는 대개 이런 아이러니 위에 세워진다.

웨스트 루프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필슨(Pilsen)이 있다. 처음에는 체코 이민자들이 주로 사는 동네였다. 이름도 체코의 도시 플젠(Plzeň)에서 왔다. 이후 20세기 중반부터 멕시코계 이민자들이 중심지가 됐다. 18번가를 따라 걷다 보면 건물 외벽마다 그래피티와 벽화가 빼곡하다. 정치적인 것도 있고, 종교적인 것도 있고, 설명하기 어렵지만 아름다운 것들도 있다.
필슨의 건물 벽들은 말을 한다. 누가 이곳에 살았고, 누가 떠났고, 누가 아직 남아 있는지. 벽화는 도시의 비공식 기록이다. 건물이 사라지면 같이 사라지고, 그림을 그린 사람도 떠난다. 그래서 이곳의 벽화는 늘 현재형이다.
이 동네에 있는 국립 멕시코 미술관(National Museum of Mexican Art)도 볼만 하다. 미국에서 가장 큰 멕시코 미술 박물관이고, 입장료는 무료다. 관람 후 박물관 길 건너 맞은 편의 작은 가게에서 파는 타코를 먹어보자. 두 손가락으로 들 만한 작은 토르티야 위에 카르니타스(carnitas)나 알 파스토르(al pastor)가 올라간다.
새로운 랜드마크, 오바마 프레지덴셜 센터
남쪽으로 더 내려가면 우드론(Woodlawn)과 하이드 파크(Hyde Park) 사이에 잭슨 파크(Jackson Park)가 있다. 한때 인구가 빠져나가고 가게들이 문을 닫던 동네였는데, 최근 2~3년 사이 카페와 레스토랑이 빠르게 들어서고 있다.
오바마 프레지덴셜 센터(Obama Presidential Center) 덕분이다. 미국 최초 흑인 대통령의 도서관이자 박물관이 그가 정치적 삶을 시작한 시카고 남쪽에 세워진다. 잭슨 파크는 1893년에 시카고 만국박람회가 열린 곳이다. 130여 년이 지난 지금, 오바마 센터가 들어서기에도 상징적인 장소다.

작년 방문했을 때는 크레인이 열심히 움직이고, 외벽 일부가 가려져 있는 미완성의 건물이었다. 그리고 올해 6월 19일, 노예 해방 기념일(Juneteenth)에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듣기로 개관 첫 한 달 기간의 입장권은 발매 몇 시간 만에 매진됐다고 한다. 오픈하기도 전에 시카고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떠오른 것이다.
설계는 토드 윌리엄스 빌리 치엔 건축사무소(Tod Williams Billie Tsien Architects)가 맡았다. 시카고라는 도시의 건축적 맥락을 가장 차분하게 이해하고 있는 건축 사무소로, 시카고 대학 안에 있는 로건 미술 센터(Logan Center for the Arts)도 설계했다.
오바마 센터는 약 225피트(ft) 높이의 박물관 타워, 포럼 건물, 도서관 그리고 그 사이를 연결하는 야외 광장으로 구성됐다. 3채의 건물이 광장을 둘러싸는 형태다. 박물관 타워의 한쪽 면에는 안에서부터 빛이 새어 나오게 되어 있다. 센터 전체가 잭슨 파크의 풍경 안으로 녹아들도록 설계되었으며, 건물 지붕 위로 잔디가 비스듬히 오르고, 사람들은 그 위를 걸어다닐 수 있다.
시카고는 시카고다

시카고는 다른 곳과 비교될 필요가 없는 도시다. 뉴욕과도, LA와도 다르다.
시카고 사람들은 무뚝뚝한 편이다. 대신 잘 버틴다. 대화재 후 다시 일어섰고, 버려진 철길 위에 나무를 심었고, 소금 창고에 음악을 채웠고, 정육 공장의 골목에 식탁을 차렸다. 그리고 계속해서 새로운 미래를 올리고 있다. 그래서 더 멋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