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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서랍속여행기억] 미래를 보여주는 도시_ 선전
2026.05.11 링크주소 복사 버튼 이미지 페이스북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카카오톡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X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링크드인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인쇄하기 버튼 이미지
내 서랍 속의 여행 기억 선전

우리는 도래하지 않은 미래를 궁금해한다. 그런 면에서 선전(深圳)은 호기심을 충분히 채워주는 도시다.

4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선전은 배와 그물 말고는 별 다를 것 없는 어촌이었다. 그러나 불과 반세기만에 1,700만 명이 살아가는 메가시티가 되었다. 이제 선전은 베이징, 상하이와 함께 중국을 대표하는 도시이자, 중국의 미래를 보여주는 도시다. 텐센트와 DJI 같은 혁신 기업들이 여기서 탄생했고, 전기차와 드론, 인공지능도 이 곳에서는 일상이다. 선전이 ‘중국의 실리콘밸리’라고 불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막상 도착해보면 첫인상은 조금 의외다. 거대한 도시임에도 놀랄 만큼 조용하다. 국가 차원의 전기차 정책을 적극적으로 실행하며, 택시와 버스 등 대중교통 거의 대부분이 전기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전은 젊다.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급속도로 형성된 신도시이기에, 중국 각지에서 기회를 찾아 모여든 젊은 이주민들이 도시의 주류를 이룬다. 또한 홍콩과의 접근성도 좋아서 고속철을 이용하면 20분 남짓, 페리로도 한 시간 정도면 닿는다.

그러나 선전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화려한 스카이라인만 봐서는 부족하다. 골목과 상가, 현지인들이 오가는 생활권 안으로 들어가야 이 도시의 성격이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래서 현지 사람들의 생활 반경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그들이 출근하고, 식사하고, 쉬고, 즐기는 장소를 따라가다 보면 선전이 어떻게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는지도 좀 더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난산과 뤄후

난산(南山)은 선전의 현재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지역이다. 텐센트와 화웨이 같은 대기업들이 마천루 숲을 이루고 있다. 젊은 직장인들은 낮에 모니터 앞에서 일하고, 밤이 되면 식당과 바, 쇼핑몰로 흩어진다.

난산의 한 횡단보도, 그 위의 조형물

난산이 흥미로운 이유는 첨단 산업의 중심지이면서도 의외로 바다와 가깝다는 점이다. 고층 빌딩 사이를 빠져나오면 해안 산책로가 이어지고, 저녁이면 조깅하는 사람들과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과거 군사 시설과 공장이 있던 자리에는 이제 테크 파크와 문화 공간이 들어섰다. 선전의 역사적 변화가 가장 압축적으로 드러나는 곳이 바로 난산이다.

반면 홍콩과 맞닿은 뤄후(罗湖)는 전혀 다른 결을 지닌다. 난산의 화려함 대신, 선전의 과거 모습이 비교적 또렷하게 남아 있는 동네다. 지금은 난산이 선전의 중심 이미지를 대표하지만, 한때 최첨단의 상징은 뤄후였다. 뤄후는 홍콩에서 넘어오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도착하던 관문이자, 선전이 도시로 성장하기 시작하던 초기에 중심지 역할을 맡았던 동네이기도 하다. 최초의 기차역과 백화점, 호텔들이 이 일대에 모여 있었다는 사실만 봐도 당시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뤄후역은 지금도 중요한 교통 거점이고, 동먼 보행가 일대는 오래된 상업지구의 활기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오래된 상점과 시장, 군것질 거리와 생활 상권이 빽빽하게 이어지는 동네다.

선전의 뤄후역 전경

뤄후의 매력은 완벽하게 정돈되지 않은 것에 있다. 오래된 간판, 좁은 골목, 시장에서 흘러나오는 냄새와 소리, 그런 것들이 여전히 도시의 일부로 남아 있다.

난산과 뤄후를 함께 돌아보면 선전이라는 도시가 조금 더 입체적으로 보인다. 한 곳은 지금의 선전을 보여주고, 다른 하나는 선전이 지나온 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서로 다른 시간대가 한 도시 안에서 공존하고 있는 셈이다.

OCT-LOFT

선전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과거의 시간을 다루는 방식이다. 오래된 것을 보존의 대상으로만 남겨두기보다, 지금의 감각으로 다시 작동하게 만든다. 그런 점에서 OCT-LOFT(화교성 창의문화원, 華僑城 創意文化園)는 선전을 이해하는 데 꽤 중요한 장소다. 한때 공장 지대였는데 이제 갤러리와 카페, 디자인 숍과 전시 공간이 들어선 공간이 되었다.

선전은 흔히 기술과 속도의 도시로 이야기되지만, OCT-LOFT에 들어서면 그 속도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바로 옆의 허샹닝 미술관(何香凝美术馆, He Xiangning Art Museum) 역시 그런 흐름을 보여준다. 정치가이자 예술가였던 허샹닝의 이름을 딴 미술관이다. 격동의 20세기였던 중국에서 항일 투쟁과 예술적 성취를 동시에 이뤄내며 오늘날까지 깊은 울림을 전하고 있다. 섬세한 수묵화 작품들이 세련되게 펼쳐지며 전통의 우아함을 보여주는 곳. 선전이 문화와 감각까지 함께 설계하는 도시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곳이다.

 OCT LOFT 올드헤븐 서점 입구

OCT-LOFT에는 이 곳을 상징하는 유명한 장소가 있다. ‘올드 헤븐(旧天堂书店, Old Heaven Books)’이라는 서점인데, 독립 서점과 레코드 숍, 카페가 결합된 곳이다. 희귀한 중고 음반과 인문학 서적들이 많아 선전의 젊은 지성들이 사랑하는 아지트이기도 하다.

공장을 예술 공간으로 바꾸는 발상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서울에도, 도쿄에도, 베를린에도 세계 다른 나라마다 비슷한 공간들이 있다. 하지만 선전에서의 변화가 더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도시 자체가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오래된 역사와 전통이 두텁게 쌓인 도시와 달리, 선전은 과거를 해석하는 방식에서도 훨씬 가볍고 과감하다. OCT-LOFT는 그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소다.

낡은 산업의 흔적은 지워지지 않은 채 남아 있고, 그 위에 새로운 취향과 문화가 덧입혀져 있다. 과거를 현재의 감각으로 다시 쓰는 방식, 그것이 선전식 재생의 특징처럼 보인다.

저녁이 있는 풍경, 서커우

난산 남서쪽 해안에 자리한 서커우(蛇口)는 선전 안에서도 유난히 공기의 밀도가 다르다. 서커우 크루즈 홈포트에서는 홍콩과 마카오, 주강삼각주 쪽으로 향하는 배가 오가고, 바다를 향해 열린 해변 산책로 주변으로는 식당과 바, 주거 공간이 자연스럽게 섞여있다.

선전의 서커우 해변에 있는 선박

서커우는 개혁개방 초기 실험이 시작된 장소 가운데 하나였다. 1979년 출범한 서커우 공업지대는 선전 경제특구보다도 앞선 개혁의 시험대였고, 지금도 해상세계(Sea World) 일대에는 그 시절의 흔적이 옅게 남아 있다.

서커우는 긴장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다는 점이 좋다. 해 질 무렵 산책하는 이들과 젊은 직장인들로 채워지기 시작하는 루프톱 바와 해변가 식당. 도시의 속도가 저녁 바닷바람 앞에서 조금 느슨해지는 장면이다. 선전이 테크 기업의 공장 같은 도시 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가장 자연스레 납득하게 해주는 곳이다.

선전 해상세계문화예술센터

서커우의 랜드마크는 해상세계 문화예술센터(海上世界文化艺术中心, Sea World Culture and Arts Center·SWCAC)다.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일본 건축가 마키 후미히코가 설계한 이 건물은 산과 바다, 도시를 동시에 조망하는 위치에 자리하며, 2017년 개관 이후 서커우의 문화적 상징으로 뿌리 내렸다. 개관 당시 ‘디자인 소사이어티(Design Society)’라는 이름으로 세계적 관심을 받았던 이곳은, 영국의 V&A 박물관의 협업과 선전의 혁신이 만나 태어난 지적인 공간이다.

흥미로운 점은 바로 옆에 서커우 개혁개방박물관이 자리한다는 사실이다. 덕분에 이곳은 바다를 배경으로 여유로운 저녁을 보내는 장소인 동시에, 중국 현대사의 거대한 물줄기가 시작된 ‘작은 출발점’을 간직한 곳이 된다. 낭만적인 해변의 정취와 치열했던 역사의 기록이 공존한다는 점이 서커우가 가진 독보적인 매력이다.

푸톈과 옌텐

푸톈(福田)은 선전의 행정과 금융, 비즈니스가 밀집한 중심축이다. 정부와 자본, 그리고 대규모 오피스가 촘촘한 행정과 인프라를 바탕으로 한 자리에서 맞물려 작동하고 있는 지역이다. 선전이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도시처럼 보일 때가 있지만, 푸톈에 서면 그 하루아침 뒤에 얼마나 치밀한 설계가 있었는지를 새삼 실감하게 된다.

시민센터와 선전박물관 일대는 그런 푸톈의 성격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소다. 선전박물관에서는 개혁개방 이후 도시가 얼마나 급격하게 몸집을 키웠는지 한눈에 볼 수 있고, 박물관 밖으로 나서면 그 역사가 눈 앞의 스카이라인으로 이어진다.

현지인들의 시선에서 보면 푸톈은 선전의 얼굴인 동시에 선전의 일상이기도 하다. 저녁이나 주말이 되면 롄화산공원(Lianhuashan Park)에서 연을 날리고 산책을 하며, 때로는 대형 야외 음악 축제를 함께 즐기는 생활 공간이다. 무료로 열리는 롄화산 음악 축제가 수년째 이어져오고 많은 시민이 찾는다는 사실은 푸톈이 문화적으로도 풍성한 지역이라는 점을 나타낸다.

푸텐 전자상가 화창베이

푸톈이 유명한 이유는 사실 화창베이(华强北, Huaqiangbei)루 양쪽에 있는 전자상가 단지 덕분이다. 세계적인 전자상가와 부품 시장이 밀집해 있고, 화창베이 박물관은 그 40년의 변화를 따로 기록하고 있다. 현지인들에게도 이곳은 관광지라기보다 필요할 때 바로 가서 부품을 구하고, 전자기기를 고치고, 최신 기기의 흐름을 확인하는 실용적인 동네에 가깝다.

다시 동쪽으로 길을 잡으면 옌톈(盐田)이 있다. 여기에는 다메이사, 샤오메이사 같은 해변이 있다. 옌톈의 바다는 또 다른 느낌이다. 고층 빌딩과 대형 오피스가 없는 대신 바다와 모래, 햇빛이 먼저 보인다. 다메이사 해변은 산이 바다를 감싸는 지형 덕분에 휴양지같다. 반면 샤오메이사는 조금 더 느슨하고 한적하다. 옌톈의 해안 산책로는 샤터우자오와 옌톈항, 다메이사, 샤오메이사를 잇는 약 19.5㎞의 해안 녹지축이라, 바다 풍경을 즐기며 걷기 좋다.

알록달록한 컨테이너가 줄지어 쌓여있는 옌텐항

옌텐에는 바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옌톈을 떠받치는 한 축은 옌톈항이다. 옌텐항은 1985년에 설립된 옌텐항그룹과 1990년대 본격화된 항만 개발을 바탕으로 성장했고, 오늘날 선전이 세계와 연결되는 중요한 출구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그래서 옌텐은 한쪽은 해변 휴양지처럼 보이지만, 다른 방향에는 세계 물류가 오가는 항만이 있다. 푸톈이 행정과 금융으로 선전을 움직인다면, 옌텐은 바다와 항만으로 선전을 바깥 세계와 연결한다고 할 수 있다.

숨은 이야기를 더하자면, 옌텐의 서쪽 끝 샤터우자오(沙頭角) 일대도 그냥 지나치기 아깝다. 중잉제(中英街, Chung Ying Street)는 홍콩과 맞닿은 경계의 역사 때문에 유독 독특한 분위기를 지닌 곳이고, 인근의 샤터우자오 시장은 오래전부터 어항과 시장의 투박한 정취가 짙게 남아 있는 지역이다. 최근 옌텐이 해변 관광지로 더 많이 알려지고 있지만, 현지인들에게는 이곳이 현지 특유의 낭만과 추억이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남아 있다.

선전의 속내

선전은 미래의 도시로 불린다. 그러나 며칠 지내다 보면, 그 말이 절반만 맞다는 걸 알게 된다. 높은 빌딩과 테크 기업들, 전기차와 드론이 선전의 전부가 아니다. 핵심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 속 소소함에 있다.

선전의 전경

선전은 세계에서 미래를 향해 빠르게 달려가는 도시로 손 꼽히면서도 과거를 지우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지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선전을 차갑기만 한 첨단 도시가 아니라 온기가 느껴지는 곳으로 만들어 준다. 미래는 언제나 사람 위에 세워진다는 것을 선전이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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