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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내비게이터] 도시와 예술의 관계_ 비엔날레
2026.06.29 링크주소 복사 버튼 이미지 페이스북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카카오톡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X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링크드인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인쇄하기 버튼 이미지
트렌드 내비게이터 비엔날레 biennale 예술로 세상을 비추다

‘비엔날레(Biennale)’는 이탈리아어로 ‘2년마다’라는 뜻입니다. 2년에 한 번 열리는 국제 현대미술 행사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단순한 전시회를 넘어 도시와 예술이 어떤 상호작용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실험하는 거대한 플랫폼입니다.

버려진 산업 시설이 예술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고, 잘 알려지지 않았던 도시가 세계 미술 지도 위에 새겨지는가 하면, 기후 위기와 분쟁, 이주, 정체성 같은 시대의 묵직한 화두들이 예술가의 언어로 풀려나오는 자리가 되기도 하죠.

베네치아 비엔날레

비엔날레는 1895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시작됐습니다. 이탈리아 국왕 부부의 결혼 25주년을 기념해 출범한 베네치아 비엔날레가 출발점입니다. 131년이 지난 지금은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 미주 등 지구촌 곳곳에서 200여 개가 넘는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으며, 우리나라에도 광주비엔날레, 부산비엔날레, 청주공예비엔날레 등이 있습니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도시와 예술의 관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세 개의 비엔날레를 소개합니다.

원조의 품격_ 베네치아 비엔날레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비엔날레의 원조이자 ‘미술계의 올림픽’이라 불리는 베네치아 비엔날레(La Biennale di Venezia). 전 세계 200여 개 비엔날레가 모두 베네치아를 모델로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베네치아 비엔날레가 다른 비엔날레와 가장 크게 구별되는 점은 바로 국가관입니다. 2026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에는 100개 국가 참여하며, 각국은 자국의 파빌리온을 통해 동시대 예술과 문화적 시선을 선보입니다. 베네치아를 누비며 각 나라의 예술적 관점을 비교해볼 수 있다는 점이 베네치아 비엔날레만의 압도적인 매력입니다.

베네치아 비엔날레 전시관

물의 도시 베네치아는 비엔날레가 열리는 동안 도시 전체가 미술관이 됩니다. 2024년 제60회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는 약 70만 장의 티켓이 판매됐고, 하루 평균 3,300명 이상이 전시를 찾았습니다.

올해 61회를 맞는 베네치아 비엔날레는 5월 9일부터 11월 22일까지, 무려 반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자르디니(Giardini) 공원과 아르세날레(Arsenale) 조선소, 그리고 도시 곳곳에서 펼쳐집니다.

베네치아 비엔날레 스페인관 설치 작품

올해 주제는 <In Minor Keys(단조로)>입니다. 화려하고 웅장한 장조가 아니라, 낮고 잔잔한 단조의 선율에 귀 기울이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 주제를 기획한 큐레이터 코요 쿠오(Koyo Kouoh)는 카메룬 출신의 스위스 큐레이터로, 베네치아 비엔날레 미술전 역사상 최초의 아프리카 여성 예술감독으로 선정된 인물입니다. 안타깝게도 2025년 5월, 전시 개막을 1년 앞두고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지만, 유족과 동료들의 뜻에 따라 그녀가 생전에 구상한 기획안이 그대로 실현됐습니다. 이번 전시에는 약 110명의 작가와 팀이 참여합니다. 전시는 재즈의 즉흥 연주처럼 자유롭게 펼쳐지고, 시와 목소리를 통해 잘 들리지 않았던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입니다.

다만 올해 베네치아 비엔날레는 여러 국가적 상황들에 의해 심사위원 전원 사퇴와 같은 전대미문의 사태가 일어났고, 131년 역사상 최초로 수상자 선정 방식을 100% 일반 관람객 투표로 변경하여 진행하고 있습니다. 동시대 미술계가 예술과 정치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 깊은 숙제를 남기고 있는 상황입니다. 예술은 과연 전쟁과 정치를 외면할 수 있을지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유럽을 순회하는 비엔날레_ 마니페스타

마니페스타(Manifesta)는 1996년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첫 회를 열었습니다. 1990년대 냉전 종식과 유럽 통합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변화 속에서 탄생했죠. 한 도시에 머물지 않고 유럽 도시들을 옮겨 다니는 유목형 비엔날레라는 점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올림픽처럼 유럽도시들이 유치를 신청하고 경쟁해서 다음 개최지가 결정됩니다.

올해 열리는 ‘마니페스타 16 루르(Manifesta 16 Ruhr)’에서 마니페스타 뒤의 숫자 ’16’은 제16회라는 의미로, 1996년 1회 이후 격년으로 열려 올해 16번째를 맞이했습니다. 마침 올해는 마니페스타 출범 3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기도 하죠. 그리고 독일 ‘루르’ 지방의 네 도시- 에센, 보훔, 겔젠키르헨, 뒤스부르크에서 동시에 열리는데, 모든 전시장 입장료는 무료입니다. 제16회 마니페스타는 6월 21일부터 10월 4일까지 열립니다.

마니페스타

올해의 주제는 <This is not a Church(이것은 교회가 아닙니다)>입니다. 바르셀로나 출신의 건축가이자 도시계획가인 조셉 보이가스(Josep Bohigas)가 시민들과의 리서치와 대화를 바탕으로 제안한 도시 비전입니다. 전후 재건 시기에 지어졌다가 지금은 비어 있는 교회 12곳을 무대로 삼아, 30개국에서 온 106명의 참여자들이 작품과 프로젝트를 선보입니다.

루르 지방은 한때 독일 산업의 심장이었습니다. 석탄과 철강으로 유럽 경제를 떠받치던 곳이었죠. 하지만 산업 구조가 바뀌면서 광산도 공장도 문을 닫고, 동네의 중심이던 교회마저 신자가 줄어 비어버렸습니다. 마니페스타 16 루르는 바로 이 버려진 공간들에 주목합니다. 12개의 옛 교회를 지역 주민들이 다시 모이고 대화하는 ‘마을의 거실’로 되살리는 것이 목표입니다. <This is not a Church>는 전시 공간을 전시 후에도 지속 가능한 공간으로 남기는 레거시(legacy), 즉 유산을 중요하게 여기는 마니페스타의 철학이 잘 드러나는 올해 주제입니다.

산업도시가 예술도시로_ 리옹 현대미술 비엔날레

프랑스 제2의 도시이자 미식의 수도인 리옹은 본래 비단(silk) 산업과 중공업으로 번성했던 유서 깊은 공업 도시입니다. 1991년 시작된 ‘리옹 현대미술 비엔날레(Biennale de Lyon)’는 이러한 도시의 역사적 자원을 가장 매력적으로 활용해왔습니다. 거대한 설탕 정제 공장이나 폐공장 같은 거친 산업 유산의 현장을 현대 미술의 웅장한 무대로 탈바꿈시키며, 리옹만의 독특하고 독보적인 예술의 길을 개척해 나가고 있습니다.

리옹 비엔날레의 가장 큰 트레이드마크는 앞서 언급한 대로 매 회차마다 도시의 산업 유산 부지를 전시 공간으로 새롭게 바꾼다는 점입니다. 예전에 공장, 창고, 기차역이었던 잠들어 있는 장소들이 예술가들의 손길을 거쳐 거대한 미술관으로 다시 태어나는 거죠. 일반적인 전시 하나를 여는 게 아니라, 도시에서 잊혀져가던 공간들을 차근차근 부활시키며 산업도시 리옹을 ‘예술도시 리옹’으로 다시 그려내고 있는 것입니다.

리옹 현대미술 비엔날레

올해로 18회를 맞는 리옹 비엔날레는 9월 19일부터 12월 13일까지 약 3개월간 열립니다. 큐레이터는 베를린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호주 출신의 미술사학자이자 작가, 큐레이터인 캐서린 니콜스(Catherine Nichols)가 맡았습니다. 공식 주제는 <Passer d’un rêve à l’autre / To pass from one dream to another>, ‘하나의 꿈에서 또 다른 꿈으로’입니다.

이번 축제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시적 경제(Poetic Economy)’입니다. 경제를 차가운 자본과 돈의 흐름으로만 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 대신 관계와 이야기, 보이는 노동과 그렇지 않은 노동, 그리고 돌봄과 상상력, 물질적·비물질적 가치가 함께 흐르는 ‘감각의 기반’으로 바라보자는 시도입니다. 리옹 비엔날레는 이 주제를 통해 도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예술의 언어로 탐색해 나갑니다.

전시 공간도 인상적입니다. macLYON 현대미술관은 물론, 이번 회차의 무대가 되는 레 그랑드 로코스(Les Grandes Locos)는 옛 프랑스 국철(SNCF) 기차 정비창을 개조한 거대한 산업 공간입니다. 한때 기관차가 들고 나던 곳이 이제는 동시대 예술이 호흡하는 무대가 되었습니다.

다른 듯 같은, 세계의 비엔날레

베네치아 비엔날레 본부

비엔날레라는 이름으로 열리는 행사들이지만, 저마다의 색깔과 철학은 참 다릅니다. 하지만 비엔날레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같습니다. “예술이 도시에게, 그리고 도시 안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엇이 될 수 있는가.” 침몰의 위기에 놓인 도시, 산업의 시대를 보낸 도시, 그리고 신앙의 시대를 지나온 도시. 그 모든 도시가 예술을 매개로 다시 한번 일어서고 있습니다.

올해 유럽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일정에 비엔날레 한 곳쯤 넣어보는 건 어떨까요. 미술관과는 다른, 커다란 예술 작품이 된 도시 곳곳을 누비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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