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닿는 대로 고딕 지구
바르셀로나 구시가지의 중심
대부분의 유럽 도시를 검색할 때 빠지지 않는 연관 검색어는 ‘구시가지’ 혹은 ‘구도심’이다. 구시가지는 여행자들의 기대를 사는 묘한 힘을 지닌 단어다. 바르셀로나(Barcelona) 구시가지도 면적은 넓지 않지만 바르셀로나를 여행하는 사람들의 여행 노트에서 절반 이상을 차지할 만큼 존재감 넘친다.
바르셀로나의 구시가지는 다시 라발 지구(El Raval), 고딕 지구(El Barri Gòtic), 보른 지구(El Born)로 나뉜다. 이 세 곳은 비단 행정구역으로서만 구분되는 게 아니라 각 지구를 채우는 사람들, 상점의 풍경까지도 완전히 다른데, 위치로나 기능적으로나 그 중심은 단연 고딕 지구다.
고딕 지구는 누군가 바르셀로나에 딱 하루만 머문다면(제발 그러지 않길 바라지만) 가우디의 건축물을 부지런히 둘러보고 그 다음으로 가야 하는 곳이다.
시청과 도청이 자리한 행정의 중심지이고, 대성당과 오래된 이야기를 지닌 왕의 광장(Plaça del Rei), 영화 <향수>의 촬영지로 유명한 산 펠립 네리 광장(Plaça de Sant Felip Neri)을 품은 역사의 중심지이다.
그뿐만 아니라 꼭 먹어봐야 한다는 추로스 가게와 맛집, 자라와 망고로 대표되는 스페인 브랜드 상점과 백화점, 프랑스 샹젤리제(Champs-Élysées)와 더불어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길이라는 람블라 거리(La Rambla)와 더 유명한 보케리아 시장(Mercat de la Boqueria), 그 끝에 선 콜럼버스 동상, 그리고 지중해의 기운을 가득 품은 항구, 포트 벨(Port Vell)이 닿아 있는 관광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하지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바르셀로나를 여행한 사람들이 모두 빠짐없이 다녀왔을 명소로 채워진 고딕 지구의 매력은 사실 이 유명한 장소와 장소 사이에 있다.
“시청이나 대성당으로 걸어 그 주변에 네가 찾던 모든 것이 있을 거야”
내가 처음 바르셀로나를 여행했던 2006년에는 스마트폰이 없었다. 종이 지도 없이는 여행하기 힘들었던 그 시절, 먼저 유럽 여행을 다녀온 친구가 여행을 앞둔 나에게 해준 조언은 꽤나 단호했고 그만큼 그럴듯했다.
“단 하나만 기억해. 유럽의 낯선 도시에 도착하면 무조건 시청이나 대성당이 어디냐고 물어서 그 방향으로 걸어. 그 주변에 네가 찾던 모든 것이 있을 거야.” 돌아보면 절반만 맞는 얘기지만 나는 바르셀로나를 여행하는 첫날 대성당과 시청을 찾아 구시가지 골목골목을 헤맸다.
변화가 더딘 바르셀로나에서 그때 내가 봤던 고딕 지구와 지금 내가 걷는 고딕 지구는 달라진 게 거의 없는데 그때 느꼈던 그 골목의 생생함과 분위기, 냄새는 다시 찾기 어렵다. 그건 내가 이 도시에 익숙해진 탓도 있겠지만 언젠가부터 우리에게 주어진 정보가 너무 많고, 자세하며, 게다가 친절하기까지 해서 유명한 곳만 추려놓은 정보에 빠져버리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가이드라는 직업 덕에 수천 명의 여행자를 만났는데 그들 대부분이 똑같은 곳을 가장 ‘효율적인’ 혹은 ‘베스트’라는 의미 아래에서 똑같이 여행한다. 하지만 그건 여행자들의 잘못은 아니다. 일부러 먼 길을 돌아갈 필요도 없고, 가장 맛있다는 식당을 두고 아무 식당에나 갈 필요는 없었으니까(나 역시 자유 여행자에게 가장 효율적인 동선을 안내할 수 밖에 없고…).
그러니까 자유 여행이지만 자유 여행이 아닌 시대가 되어버려 모두가 백 점짜리 여행을 하는 요즘이다. 그래도 조금 다른, 하지만 나쁘지 않은 고딕 지구 여행을 하려면 1등이 아닌 2등을 찾아가는 방법은 어떨까?
1등보다는 매력적인 2등, 자발적 비효율 여행이 어울리는 곳
우선 바르셀로나 대성당(Catedral de Barcelona) 대신 산타 마리아 델 피 성당(La Basílica de Santa Maria del Pi)으로 향한다. 대성당에서 도보로 불과 5분 남짓 떨어져 있는 곳이지만 대성당 주변으로는 알 만한 세계적인 브랜드 상점들이 모여 있다면, 산타 마리아 델 피 성당은 역사적인 의미나 규모는 대성당에 비해 아쉬울지 몰라도 충분히 근사하다. 더욱이 성당에서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기타 공연은 나의 바르셀로나 ‘최애’ 공연 중 하나다.
보케리아 시장을 대신할 수 있는 건 산타 카테리나 시장(Mercat de Santa Caterina)이다. 카테리나 시장은 엄밀히 따지면 고딕 지구에 있는 시장은 아니지만(그건 보케리아 시장도 마찬가지다) 대성당에서 1분 거리에 있다.
신식 건물에 규모는 조금 작지만 인파에 묻혀 출근길 지하철 갈아타듯 내 의지와 무관하게 밀려다니며 남기는 사진보다는 장 보러 나온 현지인 할아버지, 할머니 사이에서 눈치껏 번호표를 뽑고 온몸을 써가며 하몽을 주문하는 경험이 더 오래 남을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왕의 광장을 대신할 수 있는 곳은 산 아이유 광장(Plaça de Sant Iu)이다. 대성당 바로 뒤에 있어 여행자들은 대부분 쉽게 지나치곤 하지만, 맘 먹고 광장 벤치에 앉아 부지런히 걷는 사람들의 옆모습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신선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광장 안에 있는 프레데릭 마레스 박물관(Museu Frederic Marès)의 중정은 숨어 있는 선물 같은 공간이다. 박물관에 입장하지 않아도 중정에는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다.
글_ 정주환
바르셀로나 가이드. 여행을 하는 것보다 여행을 부추기는 걸 좋아한다.
대한항공 운항 정보
인천 ~ 바르셀로나 _ 주 4회 직항 운항
※ 자세한 스케줄은 대한항공 홈페이지(www.koreanair.com)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