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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내비게이터] 기다림 끝의 기쁨_ 혹등고래
2026.10.27 링크주소 복사 버튼 이미지 페이스북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카카오톡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X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링크드인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인쇄하기 버튼 이미지
트렌드 내비게이터 바다의 수호천사 혹등고래

물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몸을 굽히면 등지느러미 앞쪽이 혹처럼 둥글게 솟아오른다고 해서 ‘혹등’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혹등고래는 몸길이의 3분의 1에 달하는 가슴지느러미를 활짝 펼쳐 바다 수면 위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다시 물 속으로 들어가는 브리칭(breaching)을 하죠. 수컷은 저음으로 노래하듯 긴 소리를 내기도 해서, 바다의 곡예사 또는 가수로 불립니다.

게다가 사람을 피하지 않고 배 주변을 맴돌기도 하며, 똑똑하고 때로는 다정해서 유독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혹등고래를 볼 수 있는 바다 주변 절벽이나 등대는 항상 사람들로 북적이고, 혹등고래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배 투어 또는 스노클링 투어도 인기가 많습니다.

혹등고래는 여름에는 먹이가 풍부한 차가운 바다에서 배를 채우고, 겨울이 되면 따뜻한 열대·아열대 바다의 번식지로 이동합니다. 특히 11월은 고래들이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하는 시기로, 북반구 혹등고래들은 하와이 같은 따뜻한 번식지로 돌아오고, 남반구에서는 어미와 새끼 고래들이 남극의 먹이를 찾아 긴 여정에 오릅니다.

춤추고 노래하는 혹등고래의 장관을 직접 볼 수 있는 세계 명소 다섯 곳을 소개합니다.

하와이 전역_ 11월 ~ 4월

하와이 원주민어로 혹등고래는 ‘코홀라(koholā)’입니다. 하와이의 창세가인 쿠물리포(Kumulipo)에도 코홀라의 탄생이 등장할 만큼, 오래전부터 신성한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코홀라는 바다의 신 카날로아(Kanaloa)의 화신이자 가문을 지키는 수호령 ‘아우마쿠아(aumakua)’로 받아들여졌으며, 폴리네시아 항해자들이 하와이 제도에 이르는 길을 찾도록 도왔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혹등고래

알래스카를 비롯한 북태평양 북부의 차가운 바다에서 여름을 보낸 혹등고래들은 짝짓기와 출산을 위해 11월부터 4월까지 하와이로 내려옵니다. 북태평양을 가로지르는 거리는 약 4,800㎞. 빠른 개체는 불과 한 달 남짓 만에 이 긴 항해를 마치기도 합니다. 매년 최대 1만 2,000마리, 북태평양 혹등고래의 절반 이상이 하와이를 찾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그래서 하와이에서는 11월을 ‘혹등고래가 돌아오는 달’이라 부르며 코홀라의 귀환을 기립니다.

혹등고래들은 하와이에 머무는 동안 먹이를 거의 먹지 않고, 여름에 축적한 지방으로 버팁니다. 그럼에도 이 바다를 찾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물이 따뜻해 갓 태어난 새끼가 체온을 유지하기 좋은 데다, 얕고 잔잔한 바다가 많아 새끼를 낳고 기르기에 이상적이기 때문입니다.

하와이 전역에서 혹등고래를 볼 수 있지만, 가장 큰 무리는 마우이(Maui)·몰로카이(Molokaʻi)·라나이(Lānaʻi)·카호올라웨(Kahoʻolawe) 사이의 ‘마우이 누이(Maui Nui)’ 해역에서 관찰됩니다. 특히 마우이와 라나이 사이의 아우아우 해협(ʻAuʻau Channel)은 수심이 얕고 파도가 잔잔해 어미와 새끼가 즐겨 머무는, 하와이 최고의 혹등고래 관찰지로 꼽힙니다.

하와이 오아후섬의 마카푸우 포인트 등대
마카푸우 포인트 등대(Makapu’u Point Lighthouse)

마우이에서는 맥그리거 포인트(McGregor Point)와 카아나팔리(Kāʻanapali), 키헤이(Kihei), 와일레아(Wailea) 해안에서도 고래를 볼 수 있습니다. 오아후(Oʻahu)에 머문다면 남부와 서부 해안에서 출발하는 관찰 투어가 있습니다. 배를 타지 않아도 됩니다. 마카푸우 포인트 등대 트레일(Makapu’u Point Lighthouse Trail)과 할로나 블로홀 전망대(Hālona Blowhole Lookout)처럼 시야가 트인 높은 해안에서도 종종 고래를 만날 수 있습니다.

캘리포니아 몬터레이 베이_ 3월~11월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의 따뜻한 번식지에서 겨울을 보낸 혹등고래들은 봄이 되면 수천 킬로미터를 북상해 캘리포니아의 몬터레이 베이(Monterey Bay)로 돌아옵니다. 번식지에서 먹지 않고 지낸 고래들이 이곳에서 멸치와 크릴로 배를 채웁니다.

캘리포니아 몬터레이 마을 전경

멸치 떼를 수면 가까이로 몰아넣은 뒤, 입을 크게 벌리고 돌진해 바닷물과 먹이를 한꺼번에 받아들이는 ‘런지 피딩(lunge feeding)’은 혹등고래의 대표적인 사냥법입니다. 여러 마리가 동시에 수면을 가르며 솟구치고, 그 주변으로 캘리포니아 바다사자와 펠리컨, 갈매기까지 같은 먹이 떼를 향해 달려듭니다. 이런 장면을 해안 가까운 거리에서, 그것도 여름내내 자주 만날 수 있는 곳은 흔치 않습니다. 육지 바로 앞까지 깊은 바다가 파고든 몬터레이 해저 협곡 덕분입니다.

몬터레이만에서 수면 위로 오르는 혹등고래

협곡과 가까운 모스 랜딩 앞바다가 혹등고래가 자주 목격되는 장소입니다. 관찰 투어 배는 모스 랜딩 항구와 몬터레이 올드 피셔맨스 워프(Old Fisherman’s Wharf)에서 출발합니다. 육지에서는 포인트 로보스 주립 자연보호구역(Point Lobos State Natural Reserve)과 가라파타 주립공원(Garrapata State Park)이 대표적인 관찰지로 꼽히며, 몬터레이 베이 아쿠아리움의 바다 전망 데크에서도 운이 좋으면 볼 수 있습니다.

오키나와_ 1월~3월

아시아의 대표적인 혹등고래 서식지는 일본 오키나와입니다. 러시아와 알래스카 주변의 차가운 바다에서 여름을 보낸 고래들은 가을부터 남쪽으로 이동해 아가사와라 제도와 오키나와, 게라마 제도(Kerama Islands) 주변으로 모여듭니다. 여름이 축적한 지방에 기대어 약 9,000㎞를 헤엄쳐 온 끝에, 오키나와의 따뜻한 바다에서 새끼를 낳습니다.

오키나와 바다에서 혹등고래 어미와 새끼

매년 같은 고래가 돌아오는지 확인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꼬리지느러미의 검고 흰 무늬와 흉터는 개체마다 달라 사람의 지문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연구자와 관찰선은 꼬리가 수면 위로 올라오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촬영해 기록으로 남깁니다. 1991년 처음 확인된 암컷 ‘R-26’은 30년이 넘도록 오키나와 바다에서 거듭 관찰됐고, 그 중 여러 차례는 새끼와 함께 돌아왔습니다.

혹등 고래 투어 오키나와

나하(Naha)와 요미탄(Yomitan), 온나(Onna) 등 오키나와 본섬을 비롯해 자마미섬과 도카시키섬에서도 관찰 투어가 있습니다. 오키나와에는 지역에 자체적으로 만든 보호 규칙이 있습니다. 배가 고래를 쫓아 가거나 진로를 가로막지 않고, 일정 거리 밖에서 속도를 늦춘 뒤 고래가 스스로 다가오면 엔진을 멈추고 기다립니다. 한 무리에 동시에 접근할 수 있는 배의 수와 머무는 시간에도 제한을 둡니다.

배를 타지 않더라도 자마미섬의 이나자키 전망대와 다카쓰키야마 전망대(Takatsukiyama Observatory), 도카시키섬의 데루야마 전망대에서 쌍안경으로 바다를 훑어보다 보면 고래의 숨기둥이나 브리칭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월부터 3월이 메인 시즌이지만, 해에 따라 12월 말부터 4월 초까지 고래가 머물기도 합니다. 어미와 새끼가 나란히 수면으로 떠오르는 모습뿐 아니라, 1월 하순부터 2월 하순 사이에는 여러 수컷이 암컷 한 마리를 따라 빠르게 헤엄치며 경쟁하는 무리도 볼 수 있습니다. 브리칭과 꼬리치기, 가슴지느러미로 수면을 두드리는 행동이 이어지고, 수중 마이크를 갖춘 관찰선에서는 수컷들의 노래를 들을 수도 있습니다.

시드니_ 5월~11월

호주 동부 해안의 상업 포경이 끝난 1962년 무렵, 이 해안에는 불과 100여 마리의 혹등고래만 살아남아 있었습니다. 이후 보호 정책으로 인해 개체 수가 빠르게 회복되어, 이제는 해마다 약 4만 마리가 시드니가 속한 뉴사우스웨일스 해안을 지납니다.

시드니 해안 근처를 헤엄치는 혹등고래

5월부터 7월에는 북상하는 고래를, 9월부터 11월에는 남하하는 고래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동하는 고래의 수가 가장 많은 시기는 대체로 6월과 7월로, 여러 마리가 빠른 속도로 북쪽을 향하며 브리칭과 꼬리치기를 하는 장관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반면 10월과 11월에는 따뜻한 바다에서 태어난 새끼와 어미가 비교적 천천히 해안 가까이 이동합니다. 어미 곁에서 호흡과 잠수를 익히거나 작은 몸으로 수면 위로 뛰어오르는 새끼 혹등고래를 보고 싶다면 이때가 좋습니다.

시드니의 혹등고래 투어는 서큘러 키(Circular Quay)나 달링 하버(Darling Harbour), 맨리(Manly)에서 출발해 오페라 하우스와 하버 브리지, 시드니 헤즈(Sydney Heads)를 차례로 지나 바다로 나갑니다.

시드니 본다이에서 브론테 해안 산책로

육지에서 기다리는 방법도 있습니다. 시드니 남쪽 카마이 보타니 베이 국립공원(Kamay Botany Bay National Park)의 케이프 솔랜더(Cape Solander)에는 혹등고래 전용 관찰대가 있고, 6월과 7월에는 고래가 해안에서 약 200m 떨어진 곳까지 접근하기도 합니다. 북쪽 팜비치(Palm Beach)의 배런조이 헤더(Barrenjoey Head)에서는 등대와 바다를 배경으로 고래를 기다릴 수 있습니다. 사우스 헤드(South Head)와 본다이-쿠지 해안 산책로(Bondi to Coogee Coastal Walk) 역시 좋은 관찰지입니다.

밴쿠버_ 4월~10월

침엽수림과 해안산맥이 바다를 에워싸고 있는 밴쿠버의 살리쉬 해(Salish Sea)는 혹등고래뿐 아니라 범고래와 회색고래, 밍크고래가 오가는 고래 천국입니다. 4~5월에는 알래스카로 북상하는 회색고래가 지나가고, 5~6월부터는 하와이와 멕시코 등 따뜻한 번식지에서 돌아온 혹등고래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9~10월에는 겨울 이동을 앞둔 혹등 고래들이 먹이 활동에 집중합니다.

밴쿠버섬 앞바다의 혹등고래

이곳 역시 한때 지나친 포경으로 혹등고래가 거의 사라졌다가 다시 회복된 바다입니다. 그 귀환에 상징적인 역할을 한 고래가 ‘빅 마마(Big Mama)’입니다. 1990년대 후반 처음 확인된 뒤 살리쉬 해를 꾸준히 찾기 시작했고, 200년대 초부터는 새끼를 데리고 돌아왔습니다. 지금까지 확인된 새끼가 여러 마리에 이르며, 그들이 다시 이 바다로 돌아오면서 개체군 회복의 상징이 됐습니다.

밴쿠버 바다 속의 혹등고래

그랜빌 아일랜드(Granville Island)와 리치먼드의 옛 어촌 스티브스톤(Steveston)에서 출발하는 투어는 조지아 해협(Strait of Georgia)과 걸프 제도(Gulf Islands) 주변을 돌며 그날의 먹이와 고래의 움직임을 따라갑니다.

육지에서 기다린다면 걸프 제도 새터나섬(Saturna Island)의 이스트 포인트 리저널 파크(East Point Regional Park)가 손꼽히는 장소입니다. 좁은 해협을 향해 툭 튀어나온 곶이라 고래가 해안 가까이로 지나갑니다. 웨스트 밴쿠버의 라이트하우스 파크(Lighthouse Park)에서도 하우 사운드 입구를 오가는 고래를 볼 수 있습니다.

기다림의 끝

혹등고래

혹등고래를 만나는 일에는 기다림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바다가 거칠면 배가 뜨지 않고, 몇 시간 동안 수평선을 바라봐도 꼬리지느러미 한 번 보지 못한 채 돌아올 수도 있습니다. 계획한다고, 간절히 바란다고 반드시 만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에 혹등고래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의 기쁨은 더욱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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