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출발해 만날 수 있는 소도시에는 동화 같은 곳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네덜란드가 자랑하는 예술과 문화, 역사가 살아 있는 유서 깊은 도시들도 많다. 매일매일 산책하듯 새로운 소도시를 방문하는 것도 암스테르담을 베이스캠프 삼아 여행하는 괜찮은 방법이 될 것이다.
정치‧행정의 중심지, 헤이그
‘국회의사당과 정부 관청이 자리한 네덜란드 정치‧행정의 중심지’라는 설명을 읽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아무리 생각해도 처음인데 이상하게 익숙한 지명, 헤이그(Den Haag)다.
갑자기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헤이그 특사’. 한국인에게 헤이그가 특별한 이유는 1907년 일제 침략과 을사늑약의 불법성을 전 세계에 폭로하기 위해 고종이 보낸 비밀 특사가 파견된 도시이기 때문이다.
헤이그 중앙역에 도착하자마자 센트럴에 있는 이준열사기념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파견 당시 헤이그 특사가 머물던 숙소 건물에 만들어진 기념관은 당시의 역사적 배경, 특사들의 사진과 소지품 등을 전시하고 있다.
지금은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기차로 1시간이면 쉽게 올 수 있는 도시지만 당시에는 얼마나 멀고 고된 길이었을까. 조국의 현실을 알리고자 머나먼 낯선 땅까지 찾아온 이들의 숭고한 뜻에 가슴이 뜨거워진다.
암스테르담과 로테르담에 이은 네덜란드 제 3의 도시지만 헤이그 시내는 도보로 충분히 돌아볼 정도로 아담한 규모다. 또한 미술관과 공원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어 산책하듯 걷기 좋다.
마우리츠 하위스(Mauritshuis)는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와 ‘델프트 풍경’, 렘브란트의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 등 네덜란드 미술사의 명작을 소장하고 있으며, 헤이그 시립 박물관(Gemeente Museum Den Haag)은 피카소, 고흐, 로댕 등 유럽을 대표하는 근대 예술 작품과 세계 최대 몬드리안 컬렉션을 전시하고 있다.
초현실주의 그래픽 아티스트 에스허르(Escher)의 작품도 놓칠 수 없다. 에스허르 박물관(Escher In het Paleis)의 차원을 넘나드는 트릭아트들이 엉뚱한 상상을 자극한다.
햇살이 좋은 여름날에는 스헤베닝언(Scheveningen) 해변을 빼놓지 말자. 센트럴에서 불과 5㎞, 트램으로 20~30분 거리의 스헤베닝언은 19세기 북해 최고의 해변 휴양지로 지금도 네덜란드는 물론 독일, 벨기에 등의 인접국 여행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해변을 오가는 사람들의 가벼운 옷차림 덕분에 헤이그의 여름은 자유롭고 활기찬 기운이 가득하다.
왕가의 도시, 델프트
크루즈를 타고 구시가를 촘촘하게 연결한 운하 위를 떠간다. 피사의 사탑보다 더 많이 기울어져 있다는 구교회(Oude Kerk)와 운하를 따라 어깨를 나란히 한 커널하우스를 지나 구시가로 이어지는 성문인 동문(Oostpoort)에 이르면 페르메이르가 화폭에 담았던 델프트(Delft)의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기차로 1시간, 헤이그와 로테르담 사이에 위치한 델프트역은 플랫폼이 딱 2개뿐인 작은 역이다. 역에서 길 하나를 건너면 바로 연결되는 구시가는 자전거와 도보로 몇 시간이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다.
인구 10만이 되지 않는 소도시가 네덜란드에서 주요 대도시만큼 중요한 이유는 네덜란드 건국의 아버지 ‘오라녀 왕자 윌리엄(Willem van Oranje, 오라녀는 네덜란드어로 오렌지란 뜻)’이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운동을 펼쳤던 도시이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국가대표 ‘오렌지 군단’의 기원인 오라녀 왕자는 오늘날에도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인물로 그가 잠들어 있는 델프트 신교회(Nieuwe Kerk)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늘 이어지는 곳이다. 오라녀 왕자의 후손인 현 네덜란드 왕가의 장례식도 델프트에서 진행된다.
델프트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인물은 페르메이르. 델프트에서 나고 자란 그는 17세기 네덜란드의 황금시대를 이끈 화가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우유를 따르는 여인’ 등 사실적이고 현실감 높은 작품으로 유명하다.
페르메이르는 생애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는 신비로운 인물이다. 작품도 고작 37점밖에 되지 않으며, 화가로는 드물게 그 흔한 자화상조차 남기지 않았다. 페르메이르의 집터, 그의 작품들을 역사적인 배경에 맞물려 설명한 페르메이르 센터(Vermeer Centrum) 그리고 페르메이르의 묘가 있는 구교회 등 델프트에서 베일에 싸인 화가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델프트 여행을 추억할 수 있는 아이템을 찾는다면 흰 바탕에 푸른색 무늬를 한 로열 델프트 도자기가 적격이다. 로열 델프트는 17세기 초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수입한 중국 도자기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
1750년대 델프트에는 서른 개가 넘는 도자기 공장이 있었는데, 지금까지 남아 있는 곳은 ‘로열 델프트 팩토리(Royal Delft Factory)’ 단 하나뿐이다. 가이드 투어로 전시관과 실제 제작 과정을 둘러볼 수 있는데, 섬세한 붓 터치로 그림을 그려 넣는 장인의 솜씨가 인상적이다. 장인의 지도하에 직접 그림을 그려 넣는 워크숍도 진행하니 세상에 하나뿐인 도자기가 욕심난다면 도전해보자.
중앙역에서 기차 타고 만나는 진짜 네덜란드의 얼굴_ 암스테르담(1) 보기 <클릭!>
글·사진_ 오빛나
여행하고 글 쓰는 여자 사람. <트립풀 암스테르담> <인조이 인도> <잠시멈춤, 세계여행>의 저자.
대한항공 운항 정보
인천 ~ 암스테르담 주 6회(수요일 제외) 직항 운항
※ 자세한 스케줄은 대한항공 홈페이지(www.koreanair.com)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