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오랜 동반자, 마늘
5천년 문명을 관통하다
크기가 채 10㎝도 되지 않는 작은 마늘은 인류 문명이 시작된 이래로 항상 우리 곁에 있었습니다. 약 5,000년 전 중앙아시아의 거친 황무지에서 처음 재배되어 오늘날 전 세계 생산량이 연간 2,800만 톤에 달하고 있을 정도로 널리 사용되는 식재료입니다.
“나중에 레시피를 되짚어보니까 마늘을 빼먹었더라고요. 봉골레에 마늘을 빼먹는 건, 떡볶이에 고춧가루가 빠진 것이랑 같아요.” 얼마 전 큰 인기를 끌었던 요리경연 프로그램에서 미션 중 한 셰프가 봉골레 파스타 조리 중 마늘을 빠뜨린 것을 뒤늦게 깨달아 화제가 되었죠. 너무 익숙한 재료라 넣었다고 생각했을까요?
인류 최초의 슈퍼푸드라 할 수 있는 마늘은 인류의 역사와 건강에 깊은 영향을 끼쳐왔습니다. 기원전 3,000년 경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점토판에 마늘의 기록이 있어 이미 당시부터 식용과 약용으로 널리 활용되었음을 보여줍니다.
고대 이집트에서 마늘은 노동자들의 생산성을 높이는 데에도 이용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이를 증명하듯 실제로 당시 피라미드 건설 현장에서 마늘 껍질들이 발견되었고, 투탕카멘 왕의 무덤에서 완벽하게 보존된 마늘 다발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마늘은 중세 유럽에서 흑사병을 막는 구원자로 여겨졌습니다. 14세기 흑사병이 창궐했을 때, 마늘을 많이 섭취한 지역의 생존율이 더 높았다는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니까요. 한편 동아시아에는 실크로드를 통해 전파되었는데, 중국 당나라 시대의 문헌에는 마늘을 서역에서 온 귀한 향신료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번 <일상의 재발견>에서는 마늘에 대해 보다 다양하게 알아보겠습니다.
저마다 쓰임새가 다른 마늘들
사진_ 향이 약하고 부드러운 코끼리 마늘
마늘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고, 각기 다른 특성과 쓰임새가 있습니다. 먼저 춘식재배형 마늘(Hardneck Garlic)은 중앙아시아의 추운 기후에서 잘 자라는데 줄기가 단단하고 중앙에 꽃대가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풍부한 향과 매운 맛이 있으며 껍질이 얇아 벗기기 쉽고, 그릴요리나 양고기 요리에 잘 어울립니다. 연중재배형 마늘(Softneck Garlic)은 지중해 연안 온화한 기후에서 잘 자랍니다. 줄기가 부드럽고 꽃대가 없습니다. 저장 기간이 길어 상업적으로 널리 재배되며, 겉껍질이 두꺼워 보관이 용이하죠.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마늘도 이 종류에 속하며 김치나 피클 등 발효 음식에 사용됩니다.
검정 마늘(Black Garlic)의 원산지는 한국입니다. 생마늘을 고온에서 장시간 숙성시켜 마늘 특유의 매운 맛은 줄어들고 단맛과 감칠맛이 나는 것이 특징입니다. 항산화 작용이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으며 샐러드 드레싱이나 고기 요리 소스로 활용하기 좋습니다. 이름처럼 크기가 거대한 코끼리 마늘(Elephant Garlic)은 리크(Leek)에 가까운 종으로 향이 약하고 부드러워 요리의 향을 살리기 위한 용도로 자주 사용됩니다. 구이나 수프에 넣어 부드러운 맛을 더하는데 적합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세계 10대 슈퍼푸드 마늘의 영양과 효능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10대 슈퍼푸드인 마늘은 강력한 항균효과가 있습니다. 마늘을 다지거나 자를 때 생성되는 ‘알리신(Allicin)’이라는 성분 때문입니다. 알리신은 장티푸스균, 헬리코박터균, 결핵균 등 다양한 세균을 억제하는 기능이 있어서 면역력을 강화하고 감염을 예방하는 데 효과가 있습니다. 또한 혈액 순환을 개선하고,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며, 혈압을 안정시키는 효과도 있어서 고혈압과 동맥경화를 예방하고, 항산화 작용을 통해 토화를 늦추며 세포 손상을 방지하는 데도 도움이 되는 등 여러 효능을 가지고 있답니다.
그리고 마늘에는 비타민 B6, 비타민 C, 셀레늄과 같은 다양한 비타민과 미네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비타민 B6는 신경계 건강에 필수적이며, 비타민 C는 면역력 증징과 항산화 작용을 돕고 셀레늄은 강력한 항산화제로서 체내 유해한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역할을 합니다.
마늘에 포함된 유황 화합물은 소화를 촉진하고 장내 유익한 박테리아의 성장을 도와 장 건강을 개선하고 소화 불량을 완화하는 데도 좋다고 알려져 있답니다.
이렇게 면역력 강화와 각종 질병 예방에 도움이 되는 마늘이니 건강을 위해서라도 꼭 챙겨 먹어야하겠죠?
“주인공은 나야” 세계의 마늘 축제
프랑스 중부 루아르 계곡(Loire Valley)에 위치한 아를뢰(Arleux)는 마늘 재배와 훈제 마늘이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프랑스 아를뢰에서는 매년 8월 말 지역 주민들이 직접 재배한 훈제 마늘을 전시하는 아를뢰 훈제 마늘 축제(Arleux Smoked Garlic Festival)가 열립니다. 아를뢰에서 재배되는 훈제 마늘은 특별한 풍미와 뛰어난 보존력으로 미식가들 사이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답니다.
아를뢰 훈제 마늘의 비밀은 전통적인 제작 방식에 있습니다. 수확한 마늘은 자연 건조 과정을 거친 뒤 훈연하는데, 이 과정을 통해 특유의 깊고 스모키한 풍미를 가지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훈제 과정을 통해 마늘의 외피를 보호하면서 자연적으로 방부 효과를 더해 신선한 마늘보다 훨씬 오랜 기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훈제 마늘은 다른 강렬하나 스모키 향과 부드러운 맛이 어우러져 고기 요리, 스튜, 소스에 넣으면 맛을 한층 풍성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셰프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훈제 마늘 페이스트, 마늘 수프, 훈제 마늘을 곁들인 브루스케타 등에서 그 진가를 발휘합니다.
북쪽으로는 마드리드와 카스티야이레온(Castilla y León), 동쪽으로는 발렌시아(Valencia), 남쪽으로는 안달루시아(Andalusia)와 접하고 있는 스페인 카스티야-라만차(Castilla-La Mancha)는 돈키호테의 배경으로 유명한 자치구입니다. 국내에서도 꽤 알려진 톨레도(Toledo)와 쿠엥카(Cuenca)가 카스티야-라만차에 속한 도시들이죠. 라만차 와인과 프리미엄급 올리브유 그리고 보라색 마늘(Ajo Morado) 생산지로도 이름이 알려져 있습니다.
쿠엥카의 작은 마을 라스 페드로녜라스(Las Pedroñeras)라는 보라색 마늘 원산지로 유명한데, 워낙 풍미가 좋아 유럽 전역에서 사랑받고 있습니다. 유럽연합에서 인증하는 원산지 보호(PGI) 라벨도 받았습니다. 보라색 마늘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1970년 대 후반부터 매년 마늘 수확철인 7월 말에서 8월 초 사이 3~4일 동안 라스 페드로녜라스 마늘 축제(Feria Internacional del Ajo en Las Pedroñeras/ International Garlic Fair in Las Pedroñeras)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축제 기간 동안 스페인 전역 및 해외에서 약 1만 명 이상이 참여하며 전시와 판매를 비롯해 마늘 요리 시연, 마늘 엮기 대회, 스페인 전통 음악과 춤 공연 등이 열린답니다.
미국 뉴욕주 허드슨 밸리(Hudson Valley)에서는 매년 9월 말에 허드슨 밸리 마늘 축제(Hudson Valley Garlic Festival)가 열립니다. 1989년에 시작된 이 축제에서는 지역 마늘 농부들과 예술가들이 함께 참여해 마늘을 주제로 다양한 행사를 진행합니다. 마늘을 활용한 다양한 요리 뿐만 아니라, 마늘을 주제로 한 예술 작품과 지역 특산물을 만날 수 있어 마늘 애호가들에게는 인기가 많은 축제입니다.
맛이 없을 수 없는 세계의 마늘 요리
마늘은 간단히 볶아 먹거나 소스에 추가하는 것만으로도 요리에 깊은 맛을 더해줄 수 있습니다. 구운 마늘은 매운 맛이 줄어들고 말랑말랑 부드러워져 누구나 부담없이 즐길 수 있게 되지요. 한국의 경우 김치, 고기 양념, 찌개 등 다양한 요리에 마늘이 필수적으로 들어가고, 중국에서는 마늘 기름이나 볶음 요리에 마늘을 듬뿍 넣어 맛을 냅니다.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 지역의 전통 음식인 바냐 카우다(Bagna Cauda)는 올리브 오일, 앤초비, 마늘을 섞어 만든 소스에 생채소나 빵을 찍어 먹는 요리입니다. 마늘이 풍미를 크게 좌우하며, 소스를 따뜻하게 유지하면서 먹는 것이 특징인데 건강한 재료들과 마늘의 깊은 맛이 잘 어우러집니다.
에스카르고 아 라 부르기뇽(Escargot à la Bourguignonne)은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의 대표적인 요리입니다. 달팽이를 사용한 프랑스 요리 중 가장 유명합니다. 달팽이의 고소한 맛과 풍미 깊은 허브 버터, 그리고 마늘이 조화롭게 균형을 이룬 프랑스 요리의 정수라 할 수 있습니다.
미국 가정에서 즐겨 먹는 마늘 치킨 소테(Chicken with 40 Cloves of Garlic)는 영어 이름 그대로 40개 이상의 마늘을 통째로 넣어 요리합니다. 마늘이 구워지면서 달콤한 맛이 나고, 함께 구운 닭고기는 풍부한 맛을 내기 때문에 맛이 없을 수가 없는 메뉴랍니다.
크기는 작지만 많은 효능을 가지고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마늘. 이제는 더 친근하게 즐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