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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재발견] 인류가 사랑하는 탄수화물의 대서사시_ 누들
2025.02.17 링크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일상의 재발견 누들

매년 전 세계에서 소비되는 누들의 양은 무려 1,060억 인분! 이는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2주에 한 번씩 누들을 먹는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매초로 환산해도 약 3,400인분이 소비되는 셈인데,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누들로 가득 채우고도 남을 양이라고 합니다. 중국에서만 매년 소비되는 양이 440억 인분, 만리장성을 세 번이나 채울 수 있는 양이라고 하니 정말 엄청나죠?

누들 이미지

인류 문명의 발전에서 불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누들입니다. 최고(最古)의 누들은 기원전 4,000년 중국 허난성에서 발견됩니다. 기록으로 남겨진 누들은 더 오래 전에 등장하지만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견된 실제 흔적은 이때가 처음이었습니다.
누들은 실크로드를 따라 동서양을 넘나들며 각 지역의 문화와 만나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진화를 거듭했습니다. 페르시아 상인들이 중국의 누들 제조 기술을 서아시아로 전파했고, 이는 다시 아랍 상인들을 통해 지중해 연안으로 퍼졌습니다. 페르시아의 건조한 기후는 파스타의 원형이 된 건조 누들 문화를 발전시켰고, 동아시아의 습한 기후는 생누들 문화를 번성시켰습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이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며 새로운 해석을 낳은 것처럼 누들 역시 각 문화권에서 재해석되며 진화를 거듭한 결과, 그 나라의 정체성을 담은 다양한 형태의 누들 요리가 만들어졌습니다.

누들, 문화의 색을 입다

한국과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에서는 국물과 함께 먹거나 비벼 먹는 형태가 일반적인 반면, 서양에서는 소스를 섞는 방식으로 누들을 즐기는 경우가 많고, 동남아시아에서는 볶음이나 수프 스타일로 즐겨 먹습니다.

다양한 누들

13세기 마르코 폴로가 중국에는 수십 종류의 누들 요리가 있다고 직접 보고 기록하기도 했을 만큼 중국은 지역마다 다양한 누들과 요리법이 발달했습니다.

장쑤성의 양춘면은 간장 국물에 누들과 돼지기름, 파를 담아 먹는 요리로 담백하면서도 감칠맛이 풍부합니다. 북서부 지역의 쿵푸면은 중국 전통 수타 방식으로 만든 누들에 여러 양념과 고명을 추가해 먹습니다. 광둥식 완탕면은 담백한 닭 육수에 새우와 돼지고기로 속을 채운 만두, 그리고 얇은 알칼리성 누들을 넣어 요리합니다.

일본 역시 누들 문화가 세계적으로 발달한 나라죠. 우동은 밀가루로 만든 굵은 면이고, 소바는 메밀가루로 만들어진 전통 면 요리입니다. 일본식 라멘은 중국 누들이 일본의 국물과 결합해 새롭게 탄생한 음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광둥식 완탕면과 비빔국수
광둥식 완탕면과 한국의 비빔냉면

한국의 국수는 가장 기본적인 밀가루를 사용한 면 요리입니다. 냉면은 쫄깃한 식감과 차가운 육수, 양념장의 조화가 돋보이며, 잔치국수는 멸치 육수가 담백한 맛을 내어 특별한 날을 기념하는 음식으로 자주 등장합니다. 냉면은 혹한의 기후를 이겨내기 위해 탄생한 겨울철 별미였는데, 6·25전쟁 이후 여름에 찾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차가운 육수와 쫄깃한 면의 조화는 더운 여름을 이겨내는 지혜를 담고 있지요.

오늘날의 베트남 쌀국수(Phở)는 프랑스 식민지 시대 아픔을 승화한 음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 요리 포토푀(pot-au-feu)와 베트남 쌀국수 문화가 만나 베트남을 대표하는 국민 음식이 되었습니다.

이탈리아는 파스타의 나라라 불릴 만큼 누들 요리가 발달했습니다. 스파게티(Spaghetti)는 긴 원형 누들이 대표적이며, 페투치네(Fettuccine)는 납작한 리본형, 라자냐(Lasagna)는 넓은 판형 누들로 요리됩니다. 이탈리아 요리 철학은 알덴테로 삶은 누들과 풍부한 해산물, 올리브유 등의 신선한 재료를 같이 사용해 최소한의 조리로 최고의 맛을 추구하는 데 있습니다.

다양한 누들
독일식 파스타 슈페츨레
독일 슈페츨레(Spätzle)

독일에서는 슈페츨레(Spätzle)라는 독특한 누들 요리가 유명합니다. ‘참새(독일어로는 Spatz)’를 슈바벤 지역 방언으로 짧게 줄인 이름입니다. 18세기 무렵부터 독일 남부와 오스트리아 지역에서 사랑받아 왔으며, 독일 가정식을 대표합니다. 밀가루, 달걀, 물을 섞어 반죽한 후 작은 덩어리로 끓는 물에 삶아 만들며 일반적으로 버터, 치즈와 함께 먹거나 스튜와 곁들여 먹는 방식입니다. 최근에는 건강에 좋은 통밀이나 딩켈밀(Dinkel; 영어로는 스펠트밀)을 사용해 건조 누들이나 생누들 형태로 판매한다고 합니다.

이처럼 누들은 각 지역의 자연환경과 문화적 특징이 반영된 역사를 담은 그릇과 같습니다. 한 그릇의 누들을 통해 깊고 넓은 역사와 문화를 만나는 셈이죠.

누들로 시작, 누들로 끝나는 축제

다양한 누들 종류만큼이나 파스타 축제부터 쌀국수 축제까지 재미있는 축제들도 많습니다.

도쿄 라멘 페스타

라멘의 본고장 일본에서 열리는 도쿄 라멘 페스타(Tokyo Ramen Festa)는 매년 10월 말에서 11월 초, 고마자와 올림픽 공원(Komazawa Olympic Park)에서 열립니다. 삿포로의 된장라멘, 하카타의 돈코츠라멘, 도쿄의 쇼유라멘 등 일본 각지의 대표 라멘들을 한 자리에서 맛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라멘 애호가들이 꿈의 축제라 부르기도 한답니다.
내년 새로운 테마와 독창적인 메뉴를 선보이고 있고 투표를 통해 가장 인기 있는 라멘을 선정하기 때문에 일본 전국에서 참여하는 라멘 가게들은 이 축제를 위해 큰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이 밖에 라멘 제작 과정을 시연하거나, 일본의 라멘 역사와 문화를 배울 수 있는 부스도 마련되어 일본의 라멘 문화를 이해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도 됩니다. 누구나 입장료 없이 참여할 수 있으며, 각 라멘은 티켓을 구매해 맛볼 수 있습니다. 한 그릇 가격은 약 1,000엔 내외입니다.

11 토론토 누들 페스티벌

캐나다 캘거리에서는 매년 11월 초 YYC 누들 페스티벌이 열립니다. 이 축제는 캘거리의 다양한 누들 요리를 경험할 수 있어 지역 주민들에게 사랑받는 축제 중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특히 지역 사회에 기부도 하고 아시아 요리와 문화를 알린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집니다.

축제 기간 동안 참여 레스토랑을 방문하면 축제를 위해 특별 준비된 누들 메뉴를 맛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위 러브 누들즈(We Love Noodles)라는 레스토랑은 중국 광시성 류저우에서 유래한 독특하고 매운 맛의 ‘로시팡(Lou Si Fan)’이라는 메뉴를 선보였고, 레스토랑 포 시티(Pho City)는 12시간 동안 훈제한 부드러운 브리스킷을 코코넛 피넛 사테이 육수와 요리한 메뉴로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온라인 평가를 통해 ‘최고의 평점 요리’, ‘가장 창의적인 요리’ 선정에 참여할 수도 있답니다.

매년 봄이 되면 대만 타오위안시(Taoyuan City)의 롱강(Longgang)에서는 롱강 쌀국수 페스티벌(Longgang Rice Noodle Festival)이 열립니다. 벌써 13회의 축제를 치른 롱강 쌀국수 페스티벌은 쌀국수를 포함한 다양한 현지 음식도 선보이고, 지역 문화와 전통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롱강은 중국 남부 지역에서 타이완으로 이주해 온 객가(客家, Hakka) 민족들의 음식 문화가 강하게 남아 있는 지역으로 특히 쌀국수가 유명합니다. 쌀가루로 만든 가늘고 부드러운 면발과 다양한 육수를 활용해 만든 요리들이 많죠. 롱강 쌀국수 페스티벌은 현지 식재료와 조리법을 활용한 지역별 독특한 쌀국수 요리를 한 자리에서 맛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전통 음악, 춤, 공예 등 대만의 다양한 문화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도 마련되어 인기가 많습니다. 그 중 물을 뿌리며 복을 비는 롱강 지구 전통 의식이 축제의 하이라이트입니다.

왜 누들을 사랑하는가

인류의 누들 사랑에는 생물학적, 문화적, 정서적, 사회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 누들은 탄수화물이 주 성분이며, 단백질과 미네랄도 포함하고 있죠. 탄수화물이 주는 포만감과 만족감은 진화론적 관점에서 인간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전통적인 수제 누들은 영양가가 높고 소화도 잘되며 채소, 육류 등 여러 재료와 조화를 이루면서 균형 잡힌 영양식으로 발전했습니다.

 생면

또한 누들의 식감은 ‘알덴테’나 ‘쫄깃함’과 같은 각 나라의 문화적 가치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히 어머니의 손맛, 고향의 맛과 같은 정서적 기억과 결합하며 위로와 위안의 음식으로 인식되기도 합니다.

최근 건강과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누들은 계속 변화하고 있습니다. 글루텐프리 누들, 채식 누들, 곤충 단백질을 활용한 누들 등 새로운 시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밀가루 대신 퀴노아, 병아리콩, 렌틸콩 등을 활용한 누들은 건강식품으로 주목받고 있죠. 또한 지속가능한 식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환경 친화적인 재료와 제조 방식을 활용한 새로운 누들도 탄생하고 있습니다.

누들의 프리미엄화와 글로벌화도 주목할 만한 트렌드입니다. 스타 셰프의 레시피를 적용한 고급 즉석 누들이나 유명 레스토랑과 협업한 한정판 누들류 제품들이 화제를 끌고 있습니다. 뉴욕의 한 레스토랑에서는 동양 전통 수타 기법으로 이탈리아의 파스타를 만들고, 도쿄의 라멘집에서는 프랑스 요리 기법을 접목한 퓨전 라멘을 맛볼 수 있는 등 국경을 넘어 전통 방식과 현대 기술이 만난 누들 요리가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릇에 담긴 면 요리

누들 한 그릇에는 탄수화물로 이루어진 음식 이상의 가치가 담겨 있습니다. 각국의 환경, 문화, 그리고 사람들의 얽히고설킨 삶의 이야기가 누들 한 가닥 한 가닥에 스며 있죠. 누들 요리를 마주하게 된다면, 그 속에 담긴 역사와 문화를 가늠해보는 건 어떨까요? 누들이 걸어온 길은 결국 우리가 살아온 길과 다르지 않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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