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배추가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요리와 패션, 인테리어 등 아이디어를 검색하는 어느 플랫폼 발표에 따르면 양배추 만두를 찾는 검색량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110% 증가했고, 국내에서도 양배추 마녀수프와 양배추 샐러드 등 다양한 요리법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양배추는 가격 부담이 적고 한 통만 사도 여러 끼에 활용할 수 있는 데다, 다른 잎채소보다 보관 기간도 깁니다. 조리법에 따라 전혀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는 점도 인기의 비결입니다. 생으로 먹으면 아삭하고, 센 불에 구우면 가장자리가 노릇해지면서 달고 고소한 맛이 살아납니다. 소금에 절이거나 발효할 수도 있어 샐러드와 수프부터 양배추 스테이크와 피클까지, 하나의 재료로 다채로운 요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양배추는 절벽의 잡초였다?
양배추의 기원은 브라시카 올레라케아(Brassica oleracea)라는 배추과(겨자과)의 야생식물입니다. 지중해와 유럽 대서양 연안의 석회암 절벽과 바닷가에서 자라던 야생 잡초였는데, 거센 바닷바람과 건조한 바위틈을 견디기 위해 두껍고 질긴 잎에 수분과 영양분을 저장하며 진화했습니다. 이후 사람들이 잎이 크고 부드러운 개체를 지속해서 선별해 재배하면서, 잎이 둥글고 단단하게 뭉치는 지금의 양배추가 탄생했습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사람들은 일찍부터 양배추의 가치를 알아보았습니다. 양배추를 여러 질환에 도움이 되는 식물로 소개하며 거의 만병통치약처럼 예찬했습니다. 유럽의 춥고 긴 겨울은 양배추의 가치를 더욱 높였습니다. 비교적 오래 보관할 수 있고, 소금에 절여 발효하면 겨울철 저장식으로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부·동유럽의 사우어크라우트(Sauerkraut)와 양배추 롤이 발달한 배경도 여기에 있습니다.

한반도에 양배추가 들어온 것은 훨씬 뒤의 일입니다. 개항기 전후 서양에서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본격적인 재배가 시작된 것은 20세기에 들어서면서입니다. ‘서양에서 온 배추’라는 뜻의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양배추의 ‘양(洋)’은 서양을 가리킵니다.
한 집안, 다른 생김새
케일과 브로콜리, 콜리플라워, 콜라비, 방울양배추는 생김새도 맛도 쓰임새도 제각각이지만, 놀랍게도 모두 양배추와 같은 종인 브라시카 올레라케아에 속합니다.

잎이 단단하게 겹쳐 둥근 결구를 이루도록 키운 것이 양배추이고, 넓은 잎을 발달시킨 것이 케일입니다. 꽃줄기와 꽃봉오리를 크게 키운 것이 브로콜리, 꽃차례가 촘촘히 뭉치도록 개량한 것이 콜리플라워입니다. 줄기를 둥글게 부풀린 것이 콜라비, 줄기 옆의 곁눈을 키운 것이 방울양배추입니다.
가장 익숙한 녹색 양배추, 또는 백양배추는 둥글고 단단하며 잎이 촘촘하게 겹쳐 있습니다. 생으로 먹으면 아삭하고 약간 알싸하지만, 익히면 부드러워지면서 단맛이 살아납니다. 코울슬로와 볶음, 수프, 사우어크라우트 등 거의 모든 조리법에 두루 활용할 수 있습니다. 적양배추 또는 자색양배추는 붉은색과 보라색을 내는 안토시아닌 색소가 풍부합니다. 잎이 비교적 단단해 샐러드와 피클에 잘 어울리며, 사과나 식초를 넣고 천천히 익히는 유럽식 요리에도 자주 사용됩니다.

사보이양배추(Savoy cabbage)는 잎 표면에 섬세한 주름이 잡혀 있으며 일반 녹색 양배추보다 잎이 부드럽습니다. 익혀도 형태가 잘 유지되고 쉽게 질겨지지 않아 양배추 롤과 찜, 수프에 적합합니다. 한편 뾰족양배추(Pointed cabbage)는 원뿔처럼 끝이 뾰족하고 잎이 연하며 단맛이 강한 편입니다. 영국에서는 히스피양배추(Hispi cabbage) 또는 스위스하트양배추(Sweetheart cabbage)라고도 부릅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인근 필더 평원에서 재배되는 필더크라우트(Fiderkraut) 역시 대표적인 뾰족양배추입니다.
다이어트에 좋다!
양배추가 주목받는 배경에는 식이섬유에 대한 높아진 관심도 연관이 있습니다. 식이섬유는 소화와 영양소 흡수 속도를 늦춰 포만감을 오래 유지하도록 돕고, 식후 혈당이 급격히 오르는 것을 완화하는 데도 도움을 줍니다. 생양배추는 100g당 열량이 약 20~25㎉에 불과하고, 수분 함량은 90%를 넘으면서도 식이섬유가 약 2.5g 들어 있습니다. 식이섬유 함량 자체가 아주 높은 편은 아니지만, 많이 먹어도 열량이 적다는 점이 강점입니다.

그래서 양배추는 볼륨 이팅(Volume Eating)에 어울립니다. 볼륨 이팅은 열량이 낮고 수분과 식이섬유가 풍부한 식품으로 식사의 부피를 늘려 포만감을 높이는 방식입니다. 밥이나 면의 일부를 채 썬 양배추로 대체하거나 닭가슴살·달걀·두부 같은 단백질 식품에 곁들이면 음식의 양은 늘리면서 전체 열량은 조절할 수 있습니다. 생채와 샐러드는 물론 볶음밥, 오믈렛, 수프, 전골 등 평소 식사 메뉴에 자연스럽게 더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입니다.
다만 양배추 자체가 체지방을 분해할 수 있다거나 먹는 것만으로 체중을 줄여주는 식품은 아닙니다. 마녀수프처럼 양배추를 중심으로 소수의 식품만 섭취하는 식단은 단기간에 체중이 줄어들 수 있지만, 상당 부분은 수분 감소에서 비롯될 수 있습니다. 양배추에는 단백질과 지방이 거의 없어 이런 식단을 오래 지속하면 영양 불균형과 근육 손실, 이후의 체중 반등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양배추는 원푸드 다이어트의 주인공이 아니라, 균형 잡힌 식단의 부피와 영양을 보완하는 재료로 활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양배추에는 100g당 비타민 C가 하루 권장량(100㎎)의 36% 정도인 36.6㎎이 들어 있습니다. 특히 사우어크라우트는 오랜 항해에 나선 선원들의 비타민 공급원 가운데 하나로 활용됐으며, 제임스 쿡의 항해에서도 괴혈병 예방을 위해 제공된 식품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이 밖에도 양배추에는 플라보노이드와 폴리페놀 같은 파이토케미컬을 비롯해 칼륨과 비타민K 등이 들어 있습니다. 비타민K는 정상적인 혈액 응고와 뼈 건강에 필요합니다.
양배추 맛있게 먹는 법
양배추는 가늘게 채 썬 뒤 찬물에 잠시 담갔다가 물기를 충분히 털어내면 한층 아삭해집니다. 다만 물에 오래 담가두면 수용성 영양소가 빠져나갈 수 있으므로 짧게 헹구는 정도가 좋습니다. 드레싱은 마요네즈 대신 그릭요거트에 레몬즙과 머스터드를 섞어 만들면 열량 부담은 줄이면서 산뜻하고 고소한 맛을 낼 수 있습니다. 사과와 당근, 오이를 더하면 단맛과 아삭한 식감이 풍성해지고, 닭가슴살이나 참치, 삶은 달걀을 곁들이면 부족한 단백질도 보완할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 다이어트 음식으로 인기를 얻은 양배추 마녀수프도 만들기 어렵지 않습니다. 양배추와 양파, 토마토, 셀러리, 피망 등을 큼직하게 썰어 물이나 육수에 넣고 부드러워질 때까지 끓이면 됩니다. 양배추와 양파가 익으면서 자연스러운 단맛이 우러나기 때문에 간을 강하게 하지 않아도 담백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양배추 스테이크도 인기입니다. 높은 온도에서 짧고 강하게 굽는 방식은 양배추의 단맛과 고소한 풍미를 끌어내는 데 효과적입니다. 심지를 남긴 채 양배추를 두껍게 썰어 팬이나 오븐에서 구우면 겉면은 노릇하게 익고 안쪽은 촉촉하고 부드러워집니다. 된장이나 고추장 비네그레트, 요거트 소스, 치즈 등을 곁들이면 양배추만으로도 근사한 메인 요리를 완성할 수 있습니다.

흔히 ‘유럽의 김치’로 비유되는 사우어크라우트도 생각보다 간단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잘게 썬 양배추에 소금을 넣고 충분히 주무르면 양배추에서 수분이 빠져나와 자연스럽게 소금물이 만들어집니다. 이를 깨끗한 용기에 담고 양배추가 소금물 아래에 완전히 잠기도록 눌러두면 젖산 발효가 진행되면서 특유의 새콤한 맛이 생깁니다. 산뜻한 산미가 기름진 맛을 잡아주어 소시지나 육류 요리는 물론 생선 요리에도 곁들이기 좋습니다.
양배추 축제
양배추의 다양한 요리법만큼이나 세계에는 의외로 양배추 축제가 많습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남쪽의 라인펠덴에히터딩겐(Leinfelden-Echterdingen)에서는 매년 10월 셋째 주말 필더크라우트페스트(Filderkrautfest)가 열립니다. 필더 평원에서 재배되는 뾰족양배추 필더크라우트(Filderkraut)의 수확을 기념하는 독일 최대 규모의 양배추 축제로, 해마다 5만 명이 넘는 방문객이 찾습니다. 축제의 백미는 양배추를 누가 더 빠르고 곱게 채 써는지 겨루는 ‘양배추 대패 세계선수권’입니다. 양배추 들어올리기와 장식 경연도 열리며, 양배추 롤과 양배추를 넣은 룰라데, 전통 양배추 파이인 크라우트쿠헨 등 지역 음식도 맛볼 수 있습니다. 제48회를 맞는 올해 축제는 10월 16일부터 18일까지 열릴 예정입니다.
대서양 건너 미국 오하이오주 웨인스빌에서는 올해 10월 10일과 11일 이틀간 오하이오 사우어크라우트 페스티벌(Ohio Sauerkraut Festival)이 펼쳐집니다. 미국 28개 주에서 모인 450여 명의 공예가가 참여하며 약 35만명의 관객들이 모이는 대규모 축제입니다. 전통 사우어크라우트 요리는 물론 사우어크라우트 피자와 도넛, 쿠키, 파이 등 발효 양배추를 활용한 독특한 음식도 맛볼 수 있습니다.

일본 군마현의 쓰마고이(嬬恋)는 일본을 대표하는 양배추 산지로, 매년 7월 초 고원과 양배추밭 사이를 달리는 쓰마고이 고원 양배추 마라톤(嬬恋高原キャベツマラソン)이 열립니다. 오르내림이 심한 고원 코스에 마지막 2㎞의 가파른 오르막까지 더해져, ‘일본에서 가장 힘든 로드 레이스’라고 소개되기도 합니다. 하프마라톤과 10㎞, 5.4㎞, 2㎞ 코스가 마련되며 부부가 함께 달리는 10일본 군마현의 쓰마고이(嬬恋)는 일본을 대표하는 양배추 산지로, 매년 7월 초 고원과 양배추밭 사이를 달리는 쓰마고이 고원 양배추 마라톤(嬬恋高原キャベツマラソン)이 열립니다. 오르내림이 심한 고원 코스에 마지막 2㎞의 가파른 오르막까지 더해져, ‘일본에서 가장 힘든 로드 레이스’라고 소개되기도 합니다. 하프마라톤과 10㎞, 5.4㎞, 2㎞ 페어 부문도 있습니다. 참가자에게는 지역 특산 양배추 한 통과 기념품이 제공됩니다.

미국 뉴욕주 핑거레이크스 지역의 작은 마을 펠프스는 한때 ‘세계 사우어크라우트의 수도’를 자처할 만큼 양배추 재배와 발효 산업으로 이름을 알린 곳입니다. 매년 여름에는 그 역사를 기념하는 펠프스 사우어크라우트 위켄드(Phelps Sauerkraut Weekend)가 열립니다. 카니발과 놀이기구, 라이브 공연, 퍼레이드 뿐 아니라 양배추 볼링과 사우어크라우트 먹기 대회, 초콜릿 사우어크라우트 케이크 등 독특한 프로그램이 이어집니다. ‘크라우터(Krauter)’라는 이름의 5㎞와 20㎞ 달리기도 열리며, 이 가운데 20㎞ 코스는 핑거레이크스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레이스로 알려져 있습니다. 축제는 매년 7월 말에서 8월 초 사이 나흘간 펼쳐지며 마을 전체를 정겨운 열기로 물들입니다.
지금은 양배추 전성기
냉장고에 양배추 한 통만 있으면 든든합니다. 얇게 채 썰면 샐러드가 되고, 두툼하게 잘라 불판에 올리면 스테이크가 되고, 큼직하게 썰어 냄비에 넣으면 수프가 됩니다. 저렴하고, 오래 두고 먹을 수 있고, 몸에도 좋은 데다 무엇으로든 요리 하나쯤은 뚝딱 만들어내니까요. 그래서 지금 양배추의 전성기, 꽤 오래갈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