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이면 뉴요커들은 빠르게 발걸음을 옮기며 한 손엔 커피, 다른 손에는 베이글을 들고 있습니다. 이 같은 모습은 이제 더 이상 뉴욕만의 풍경이 아닙니다.
베이글은 최근 몇 년 사이 캐나다 몬트리올, 영국 런던, 호주,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점점 더 많은 인기를 누리며 사랑 받고 있습니다. 뉴욕에서는 두껍고 쫄깃한 베이글이, 몬트리올에서는 나무 화덕에 구운 얇고 달콤한 베이글이 특징입니다. 런던에서는 소금에 절인 쇠고기를 채운 베이글이, 호주에서는 건강한 브런치 메뉴로 자리 잡고 있지요.
그저 동그란 빵일 뿐인 베이글, 도대체 무엇이 사람들을 이렇게 열광하게 만드는 걸까요?
대세로 떠오른 베이글을 새롭게 조명해보려 합니다. 베이글의 기원부터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게 된 이유까지 함께 살펴보세요.
베이글의 시작
그리고 뉴욕에서 다시 태어난 베이글
1960년대까지는 뉴욕에서조차 베이글이 흔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미국 언론은 베이글을 잘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설탕이 들어가지 않은 딱딱한 도넛”이라고 소개할 정도였죠.
베이글의 정확한 기원은 명확하지 않지만 몇 가지 설이 전해집니다. 1683년 폴란드 왕인 얀 3세 소비에스키가 오스트리아 황제의 요청을 받아 튀르크 군을 물리치고 오스트리아를 구했을 때, 한 제빵사가 기병대에 경의를 표하며 말 안장 모양을 본떠 만든 빵이 바로 베이글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또한 13세기 경 유대인이 음식을 만들어 팔 수 있게 된 것에서 유래됐다는 설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음식에 독을 넣어 팔까봐 두려워했고, 반드시 반죽을 삶아서 빵을 만들게 했다고 합니다.
여러가지 이야기를 뒤로 하고, 19세기 말 많은 유대인들이 폴란드를 떠나 뉴욕에 정착하며 베이글은 뉴욕의 골목에서 다시 태어납니다. 뉴욕의 베이글은 유대인들의 고단한 이민 생활과 함께 뿌리를 내리며 끓는 물에 데쳐지고, 다시 오븐에서 구워지며 오늘날 베이글 특유의 쫄깃함과 깊은 맛이 완성되었습니다.
다양해지는 베이글 재료들
베이글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지만, 맛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밀가루와 물, 소금, 이스트 그리고 약간의 설탕을 섞어 작은 덩어리들로 만들어 발효시킨 후, 반죽을 삶아 베이글만의 특별한 식감을 완성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로 오븐에 넣어 황금빛이 도는 완벽한 베이글로 만들어냅니다. 다른 빵들과는 달리 구워지기 전에 삶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겉은 딱딱하지만 속은 특유의 쫄깃함과 깊은 맛을 가질 수 있습니다.
베이글이 사랑받으면서 먹는 법도 변화와 진화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는 정제 밀가루로 만들어졌지만 오늘날에는 통밀이나 멀티그레인 베이글이 인기를 끌며, 건강을 생각한 다양한 재료를 추가할 수 있습니다. 크림치즈, 아보카도, 훈제 연어 등의 재료는 베이글을 더 건강하고 영양가 있는 식사로 만들어 줍니다.
먼저 아보카도는 그 부드러움과 베이글의 쫄깃함이 잘 어우러집니다. 아침에는 터키 햄과 치즈, 계란을 곁들여 짭짤하면서도 고소한 맛을 즐길 수 있고, 땅콩버터와 바나나 혹은 꿀과 크림치즈를 더해 달콤한 맛을 추가하면 기대 이상의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베이글 맛집과 축제들
베이글이 사랑 받는 도시에는 그만큼 유명한 베이글 맛집도 많습니다. 그들만의 방식으로 베이글을 재해석했다고 할까요.
연어가 들어간 시그니처 페이보릿과 블루베리 크림치즈를 더한 두툼하고 큼직한 베이글로 뉴요커들의 아침을 책임지는 에싸 베이글(Ess-a-Bagel)과 105년 역사의 뉴욕 원조 베이글 러스앤도터스(Russ & Daughters)가 있습니다. 러스앤도터스는 폴란드 이민자가 1910년에 문을 처음 열었고, 4대에 걸쳐 딸 세 명이 가게를 이어받아 온 맛집입니다. 연어 베이글이 유명한 곳입니다.
이 밖에 매일 수제로 신선한 베이글 빵을 굽고, 10가지가 넘는 다양한 토핑을 고를 수 있는 머레이 베이글(Murray’s Bagel), 몬트리올 베이킹 기술을 활용한 독특한 스타일의 블랙 씨드 베이글(Black Seed Bagel), 배우 티모시 샬라메 단골집으로 유명한 톰킨스 스퀘어 베이글(Tompkins Square Bagels)도 뉴욕의 베이글 맛집으로 꼽힙니다.
학문의 도시답게 보스턴의 베이글사우러스(Bagelsaurus)는 창의적인 토핑과 신선한 베이글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베이글 가게입니다. 몬트리올에는 나무 화덕에서 빵을 구워내는 생비에르 베이글(St-Viateur Bagel)이 유명하며, 소금에 절인 쇠고기 베이글로 늦은 밤까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영국 런던의 베이글 베이크(Baigel Bake)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베이글 맛집입니다. 호주 시드니의 록스 스탁 & 베이글(Lox Stock & Bagel)은 신선하고 건강한 토핑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는 베이글을 주제로 한 축제들도 열립니다. 매년 여름 열리는 뉴욕 베이글페스트(New York Bagelfest)에서는 다양한 베이커리의 베이글을 맛볼 수 있고, 유명 베이글 장인의 강연도 들을 수 있습니다. 매년 7월 일리노이주 매툰에서 열리는 매툰 베이글페스트(Mattoon Bagelfest)에서는 퍼레이드를 비롯해 라이브 음악 공연, 베이글 요리 대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진행되며, 포틀랜드 베이글 오프(Portland Bagel-Off)에서는 지역베이글 가게들이 최고의 베이글 타이틀을 놓고 경쟁합니다.
ㅇ 뉴욕 베이글페스트: https://www.nybagelfest.com
ㅇ 매툰 베이글페스트: www.mattoonbagelfest.com
ㅇ 포틀랜드 베이글 오프: www.portlandbageloff.com
폴란드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 베이글은 이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음식으로 자리 잡았고, 간단한 재료지만 그 맛의 깊이는 결코 단순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베이글을 먹을 때면 깊은 맛을 더 음미하며 즐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