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은 아메리카 대륙이 원산지인 식물입니다. 무려 5,000년 전 고대 멕시코 왕국에서 처음 재배됐고, 자연상태로 섭취하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 훨씬 앞선 9,000년 전의 일입니다.
그런데 이토록 오랜기간 서양에서 사랑받아 온 호박은 우리가 먹는 동양계 호박과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먹는 주키니 호박은 애호박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폐포계 호박으로 품종이 다르고, 강렬한 주황색이 인상적인 미국의 호박 역사 우리의 늙은 호박과 생김새는 비슷하지만 서양계 호박 품종입니다. 서양계 호박은 동양계 호박보다 당도가 훨씬 높아서 주로 파이나 수프로 만들어 먹습니다.
달콤한 맛과 강렬한 색상, 귀여운 생김새 때문에 미국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애정을 듬뿍 담아 “Hey, Pumpkin(헤이, 펌킨)”이라고 부르곤 합니다. 생김새로 놀림 받는 우리 호박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지요.
할로윈(Halloween)과 추수감사절(Thanksgiving)
세계에서 가장 큰 축제, 할로윈의 진짜 주인공은 유령이 아니라 호박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할로윈의 모든 곳에서 호박을 볼 수 있습니다. “간식을 주지 않으면 장난칠거야!(tirck or treat)”를 외치는 아이들의 작은 손에도 호박 바구니가 달려있고, 어른들은 펌킨 라떼와 펌킨 맥주를 마시며 축제를 즐깁니다. 아일랜드는 할로윈의 본고장답게 달력이 10월로 바뀌면 모든 상점과 집들이 호박으로 장식되는, 세계에서 할로윈을 가장 빨리 즐길 수 있는 나라입니다.
호박은 할로윈 뿐만 아니라 미국과 캐나다의 최대 명절인 추수감사절에도 빼놓을 수 없는 주인공입니다. 호박은 늦가을에 수확되는 작물이라 수확의 감사와 풍요를 기념하는 추수감사절의 의미와 잘 어울립니다. 그래서 뉴욕의 세련된 레스토랑에서부터 중서부의 소박한 가정집에 이르기까지 추수감사절이 되면 어김없이 호박 파이가 등장합니다.
호박을 주재료로 하고 계피, 육두구 등의 향신료를 사용해 달콤하고 깊은 맛을 내는 호박 파이는 추운 계절의 시작과 함께 가족들이 모여 따뜻함을 나누는 추수감사절의 분위기와 참 잘 어울리는 음식입니다. 추석에 가족들과 모여 떡을 나눠먹으며 정을 나누듯, 추수감사절의 호박 파이 역시 가족 간의 마음과 대화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추수감사절에 호박 파이를 먹는 전통은 미국의 건국 역사와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영양가 높고 관리도 용이한 호박을 오랫동안 재배해왔고, 다양한 방법으로 요리를 했습니다. 17세기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에 도착한 청교도들은 현지 원주민들로부터 호박 요리법을 배웠고, 시간이 흐르며 이 전통은 자리를 잡아갔습니다. 그 후 남북전쟁으로 분열된 나라를 하나로 모으려 했던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19세기 중반에 추수감사절을 국경일로 선포하면서 호박 파이는 추수감사절에 꼭 먹는 디저트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결국 추수감사절에 먹는 호박 파이는 한 해의 수확에 대한 감사와 더불어 풍요로움과 따뜻함을 상징하는 음식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이어트부터 항암, 치매 예방까지
호박이 9,000년 이라는 오랜 시간동안 인류의 식문화와 함께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 영양소가 풍부하기 때문입니다. 호박은 비타민과 칼륨이 풍부하고, 치매 예방과 두뇌 계발에 좋은 레시틴, 그리고 항암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알파카로틴도 다량 함유되어 있습니다. 또 최근에는 호박의 낮은 칼로리와 풍부한 식이섬유소 때문에 다이어트 식품으로 각광받고 있으니 그야말로 식품계의 팔방미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라별 각양각색 호박 요리법
호박은 토양을 가리지 않고, 씨앗 하나만 뿌려도 덩굴로 자라나 넉넉하게 열매를 맺는 속성 때문에 세계 각국으로 빠르게 전파되어 다양한 요리로 활용됐습니다.
미국에서는 호박을 주로 파이나 빵으로 구워 먹고, 멕시코에서는 호박 씨앗인 페피타(Peipitas)를 볶아먹거나 소스로 만들어 먹습니다. 또 호박을 시럽에 절여먹는 전통 요리, 칼라바자 앙 타사(Calabaza en Tacha)는 멕시코의 가을과 겨울을 책임지는 대표 디저트입니다.
유럽으로 건너가면 이탈리아에서는 주로 주키니 호박으로 리조토나 파스타를 만들어 먹는데, 남부 지방에서는 모짜렐라 치즈와 함께 튀겨낸 호박꽃 튀김이 별미입니다. 또 프랑스에서는 달달한 단호박으로 만든 크리미한 호박 수프, 포타주(Potage)가 가을철 인기 메뉴입니다.
카레의 나라답게 인도에서는 호박을 주로 카레에 넣어 먹습니다. 북인도 지역에서는 호박을 튀겨먹거나 무슬림 전통 과자인 달콤한 할와(또는 할바)로 만들어 먹는데, 그 맛이 매우 특별하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나 중국에서는 애호박을 볶거나 끓여 만든 가정식 요리를 사시사철 즐겨 먹는 반면, 일본에서는 단호박을 설탕과 간장에 졸여낸 가보차노 니모노(단호박 조림)를 가을철 별미로 먹습니다.
세계의 펌킨 축제
‘호박’하면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축제입니다. 할로윈의 본고장인 아일랜드에서는 해마다 10월이면 캐번주(County Cavan)에서 “버지니아 펌킨 페스티벌(The Virginia Pumpkin Festival)”을 엽니다.
축제에서는 호박으로 만든 다양한 음식들을 맛보고, 유럽 전역에서 재배된 신기하고 다양한 호박들도 구경할 수 있습니다. 또 여러 공연도 즐길 수 있는데 유명한 아일랜드 싱어송라이터가 나오는 때도 있으니, 아일랜드의 흥을 경험해보시고 싶은 분들은 일정을 미리 확인하고 축제에 참여해 보세요!
미국의 펌킨 축제로는 캘리포니아의 “하프 문 베이 아트 앤 펌킨 페스티벌(Half Moon Bay Art & Pumpkin Festival)”이 가장 유명합니다. 올해로 52회를 맞는 이 축제는 1부와 2부로 나뉘어 진행됩니다. 1부는 세계호박선수권대회가 열리고, 2부에서는 호박 마라톤과 호박 파이 먹기 대회가 열립니다. 작년 세계호박선수권대회에서는 미네소타 아노카 출신 트래비스 지그너(Travis Giegner)의 호박이 무려 1,247㎏으로 우승했는데, 이는 역사상 가장 무거운 호박으로 기록됐습니다. 지그너는 올해도 호박 루디(Rudy)로 대회 우승을 차지했으나 아쉽게도 1,121㎏을 기록하여 근소한 차이로 작년 자신의 기록을 깨지는 못했습니다.
만일 하프 문 베이 펌킨 축제를 놓쳤다면, 뉴햄프셔주(New Hampshire) 라코니아(Laconia)에서 열리는 “뉴 햄프셔 펌킨 페스티벌(New Hampshire Pumpkin Festival)”에 참여하면 됩니다. 이 축제에서는 거대한 호박 타워도 구경하고, 직접 ‘잭 오 랜턴’도 만들어볼 수 있습니다. 또 저녁이면 DJ와 함께하는 레이저 쇼와 같은 이벤트도 열립니다.
이렇게 맛도 좋고 건강에도 좋은 호박과 함께 올가을 맛의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