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하면서 마주치는 잠깐의 풍경과 만남들이
과수원에서 한 입 깨무는 신선한 사과의 느낌이라면,
오르세 미술관이나 에르미타주 미술관에서 만나는 거장의 예술 작품들은
셰프가 재료를 정성껏 선별하고 공들여 만든 일품요리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마음에 오래 남는 여행의 다채로운 맛, 그것이 여행을 기다리는 이유가 되지요.
[예술로의 초대]에서는 여행이 고픈 여러분들에게
사랑받는 명작들과 그에 얽힌 이야기들을 소개하면서 여행 입맛을 돋워 드립니다.
해외 여행이 다시 활발해지면, 꼭 직접 가서 감상해보시길!
페르메이르 ‘천문학자’
편안해 보이는 푸른 옷을 입고 햇살이 부드럽게 들어오는 실내에서 천구의를 들여다보고 있는 남자를 묘사한 이 그림은 우리에게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로 친숙한 17세기 네덜란드의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작품이다.
파스텔 톤의 부드러운 색감과 당시 일상을 담고 있는 어렵지 않은 주제로 오래전부터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페르메이르는 잘 알려져 있듯 잠시 잊혔다가 19세기 중반에 미술사가 테오필 토레에 의해 재조명되며 ‘재발견’된 화가다.
그러나 재발견되었을 뿐, 이후로도 그는 꽤 오랫동안 신비롭고 수수께끼 같은 작가로 남아 있었다. 수백 점의 작품을 남겼을 뿐 아니라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연구되었던 렘브란트 같은 동시대 작가들과는 달리 페르메이르는 재조명이 시작됐을 때 고작 작품 두 점만이 알려져 있었다.
현재까지 그의 작품으로 공식 인정된 작품은 36점(2014년 페르메이르의 전작을 모아 그의 작품과 일생에 대한 저서를 낸 미술사가 이안 블랑에 따르면 37점이지만, 2017년 2월 루브르 박물관에서 열린 페르메이르의 대형 회고전을 기획하고 진행한 큐레이터 블레즈 뒤코에 따르면 1점은 여전히 전문가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하기에 아직은 36점이다)에 불과하다. 아울러 오랫동안 잊혔던 만큼 그에 대한 자료도 많지 않아 미술사가들의 의견이 분분한 채 ‘신비로운 작가’로 알려져 사람들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더욱 자극하며 사랑받기도 했다.
이렇게 훌륭한 작가가 왜 2세기 동안이나 알려지지 않았으며, 17세기 네덜란드에서는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을까 사람들은 의아해했는데, 그 궁금증은 1989년 경제학자이자 미술사가인 존 마이클 몬티아스가 페르메이르의 고향인 델프트의 문서 보관소에서 그에 관한 문서를 한 무더기 찾아내면서 풀렸다. 문서에는 페르메이르가 어떤 집에서 살았고, 친구들은 누구이고, 자식들의 이름은 무엇이며, 언제 처갓집으로 이사했고, 사후에 남긴 물건은 무엇인지 등 그의 사생활에 대한 매우 다양한 정보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페르메이르는 동시대에는 인정받지 못한 작가라고 알려진 것과 달리 매우 유명하고 인기가 많았던 당대 최고의 작가 중 한 사람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몬티아스의 연구 이후 페르메이르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매우 신비로운 작가’에서 ‘일생이 잘 알려진 작가’가 되었다.
한편, 그가 잠시 잊힌 것에 대해 블랑은 “페르메이르는 몇몇 개인 고객과 후원자에게만 의존했으며, 작품을 완성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기에 작품 수가 적어 작품을 소유한 사람이 소수인 데다가 이것이 공공 컬렉션으로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초기 미술사 연구가 대부분 왕실이나 교회의 컬렉션이었다가 시민혁명 이후 국공립 컬렉션이 되면서 박물관과 미술관에 소장된 작품 위주로 연구되었기에, 주로 개인 컬렉션에 속해 있던 페르메이르의 작품은 미술사가들의 연구 대상 작품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많지도 않은 페르메이르의 작품이 전 세계의 공립·사립 미술관에 퍼져 소장돼 있는 것을 보면 그러한 설명에 더욱 수긍이 간다.
페르메이르의 작품은 17세기 네덜란드의 일상을 정감 있지만 무언가 세련되고 특별한 색감과 구성으로 그려 매우 매혹적이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여성이 주인공으로, 남성이 주인공이 작품은 딱 두 점만 알려져 있다.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이 ‘천문학자’가 바로 그 두 점 중 하나다.
화면 속 남성은 의외로 까만 밤하늘 아래가 아닌, 햇살이 화사하게 쏟아져 들어오는 방 안에서 하늘의 지도가 그려진 ‘천구의’를 들여다보고 있다. 책상 위의 책들 또한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아볼 수 있는 천문학과 관련된 책들이다. 그의 뒤쪽 벽에 걸려 있는 그림은 피터 렐리의 ‘모세의 발견’이다. 모세는 성경에서 사람들을 인도하는 자이며, 하늘을 관찰하고 분석했던 최초의 천문학자이기도 하다.
그림 속에는 이렇게 ‘천문학’과 관련된 요소가 가득하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지금의 천문학자의 모습과는 조금 다른데, 이것이 어쩌면 이 작품이 ‘점성가’로 불리는 이유일 것이다.
‘천문학자’와 ‘점성가’는 과거에는 같은 사람이나 다름없었으며, 과학이 발달하기 시작한 이 시기까지만 해도 천문학과 점성술이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동인도회사가 활약하며 서유럽의 항해 무역을 독점한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천문학과 지리학이 발전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며, 그렇게 중요한 학문이자 직업이었던 천문학자, 혹은 점성가의 초상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회화의 소재가 되었을 것이다.
밤하늘을 잘 아는 천문학자만큼, 어쩌면 안전한 항해를 위해 하늘을 보며 미래를 점치는 점성가 역시 그 못지않게 중요한 직업일 수도 있겠다 싶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는 말이다.
글_ 임은신
그림을 찾아가는 시간 dorossy 대표,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