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리포트

[예술로의 초대] 자신의 의지를 지닌 여성
2021.04.20 페이스북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트위터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링크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여행을 하면서 마주치는 잠깐의 풍경과 만남들이
과수원에서 한입 깨무는 신선한 사과의 느낌이라면,
오르세 미술관이나 에르미타주 미술관에서 만나는 거장의 예술작품들은
셰프가 재료를 정성껏 선별하고 공들여 만든 일품요리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마음에 오래 남는 여행의 다채로운 맛, 그것이 여행을 기다리는 이유가 되지요.

[예술로의 초대]에서는 여행이 고픈 여러분들에게
사랑받는 명작과 그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여행 입맛을 돋워 드립니다.
해외 여행이 다시 활발해지면, 꼭 직접 감상해보시길!

마네 ‘온실에서’

19세기는 유럽, 특히 프랑스가 근대적으로 급격히 변화한 시대다. 그러한 격동 속에서 여성들도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존재로 달라지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그리고 마네는 자신의 그림에 19세기 말의 아름답고 주체적인 세련된 신여성, 파리지엔느의 기품있는 매력을 담아냈다.

에두아드 마네 '온실에서'
양산을 든 여자가 벤치에 앉아있고, 남자는 벤치 등받이에 팔을 올리고 여자를 보고 있다.
에두아르 마네, 온실에서, 1879, 캔버스에 유채, 115×150㎝, ⓒStaatliche Museen zu Berlin, Nationalgalerie_Jörg P. Anders

얼핏 들었을 때 꽤 촌스러운 ‘온실에서(Dans la Serre)’라는 제목의 그림은 인상주의의 거장이자 근대미술의 아버지로 잘 알려진 19세기 프랑스의 화가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1832~1883)가 1879년 살롱전에서 선보인 작품이다.

지금 우리에게 온실은 식물원이나 농장에나 가야 볼 수 있는, 어쩌면 조금은 시대에 뒤떨어진 곳이지만 당시 유럽에서 온실은 꽤 트렌디한 장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강철 뼈대와 유리로 지은 온실은 산업혁명과 새로운 기술의 발달로 가능했던 건축물로, 근대(모던)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 중 하나였다.

마네의 ‘온실’은 그가 동료 화가에게 빌려 썼던 파리 암스테르담 거리 70번지에 있는 작업실이다. 실제로 온실이 있었는지, 혹은 아파트 한편에 정원처럼 꾸며놓은 것인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곳은 우리로 하여금 이국적인 꽃과 나무가 가득한, 로맨틱하고 세련된 전형적인 근대 유럽 식물원을 떠올리게 한다.

이 로맨틱한 공간에 있는 남녀는 화가의 친구로, 지금도 파리의 명품 거리로 유명한 생토노레 거리에 트렌디한 숍을 가지고 있던 쥘 기유메(Jules Guillemet) 부부이다. 기유메 부인은 마네의 그림에서 종종 모델로 등장하는데, 그녀가 지닌 우아한 파리지엔느의 품격과 매력은 이 작품에서 특히 자연스럽게 잘 드러난다.
거의 창백한 것처럼 느껴지는 맑고 투명한 우윳빛 살결과 아주 살짝 발그레하도록 터치해준 연한 분홍빛 뺨과 입술은 그녀의 왼편에 자리한 같은 빛깔의 제라늄과 어우러져 부드럽게 반짝인다. 한 세기가 지난 요즘 유행하는 바로 내추럴 메이크업, 한 듯 안 한 듯 자연스러운 화장이 이미 이 시대에 유행했었나 보다.
보일 듯 말 듯, 세련되고 자연스러운 화장을 한 기유메 부인은 점잖은 회색빛 드레스에 화려한 노란 모자와 노란 양산, 노란 장갑으로 악센트를 주어 감각적인 우아함을 더했다.

그녀가 앉아있는 벤치 바로 뒤편에 서 있는 쥘 기유메 씨는 기품 있는 자신의 아내를 애타는, 아련하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에 비해 기유메 부인은 남편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으며 무심하다.
한 손으로는 무릎 위에 올려놓은 양산을 꼭 쥐고 있어 마치 가까이 오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굳건한(?) 의지까지 느껴진다. 그러나 그녀의 다른 한 손은 마치 유혹하듯 살짝 남편 쪽으로 뻗어 있다. 가볍게 꺾은 손은 바닥을 향하고 있지만 아내 쪽으로 금방이라도 다가올 듯한, 시가를 들고 있는 남편의 왼손을 쳐낼 것 같지는 않다. 부부이지만 미묘한 ‘밀당’을 하며 사랑의 긴장을 늦추지 않는, 19세기 말 파리지앵의 사랑 방식이 흥미롭다.

19세기는 유럽이, 그리고 유럽 어느 나라보다도 프랑스가 근대적으로 급격히 변화한 시대다. 근대적으로 변화했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산업혁명을 일으켜 농업 중심 사회에서 공업이 발달하고 대량생산이 가능하게 되면서 경제 규모가 커지고 도시가 발전하고, 사회적으로 왕정이 물러나고 공화정이 등장하며, 민주주의가 발전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출생과 동시에 인생이 결정되던 신분 사회에서 점차 능력 있는 자가 성공하는 사회로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 바로 19세기다. 또한 한 남자의 아내로, 그리고 그의 아이들의 어머니로 살아갔던 여성들도 점차 사회로 나와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남성과 같은 사회적 지위와 역할을 추구하며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존재로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19세기다.

마네의 그림은 바로 그런 여성의 변화한 모습을 보여준다. 투우사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빅토린이 그렇고, 언제나 당찬 모습의 동료이자 가족인 화가 베르트 모리조가 그렇다. ‘올랭피아(Olympia)’는 굳이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여기, 파리에서 가장 트렌디하면서 한편으로 사적인 공간에 남편과 함께 있으면서 그의 의지가 아닌 자신의 의지에 따라서만 행동할 것임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는 매혹적인 기유메 부인이, 19세기 말의 아름답고 주체적인 세련된 신여성, 파리지엔느의 기품 있는 매력을 한껏 뽐내고 있다.

베를린 대성당 전경
베를린 대성당
베를린 구 국립미술관 전경
에두아르 마네의 ‘온실에서’는 베를린 구 국립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글_ 임은신
그림을 찾아가는 시간 dorossy 대표·큐레이터
생생한 정보는 대한항공 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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