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메이징 타일랜드, 어메이징 테이스트_ 솜땀
올해로 18년째, 매년 1회 이상 태국 여행을 간다. 여행의 목적은 단연코 ‘먹기 위함’이다. 태국을 한 번도 안 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가본 사람은 없다는 말이 있을 만큼 태국의 매력은 여행가들에게 언제나 으뜸으로 손꼽힌다.
사람들이 친절해서, 물가가 저렴해서, 볼거리가 많아서 등등 ‘어메이징’한 이유들이 있지만 그중에서 빠질 수 없는 게 ‘맛있는 음식’이다. 국내에서도 태국 음식은 유행을 넘어 정착한 상태다. 현지 셰프가 현지 재료로 만들어주는 태국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은 이미 국내에 다양한 음식점이 분포돼 있다. 고급 호텔 레스토랑부터 노포를 본뜬 캐주얼 포차까지 말이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도 태국 음식 종류를 꽤나 많이 알고 있고 먹어 봤겠지만, 친근하면서도 어려운 ‘솜땀(Som Tam)’을 소개하려고 한다. 여유로운 태국 여행을 강력 추천하면서.
한국엔 김치, 태국엔 솜땀?
보통 여행 전문가들은 솜땀을 우리의 김치와 같다고들 한다. 아마도 태국 사람들이 매끼 반찬처럼 곁들여 먹기도 하고, 무엇보다 젓갈(피시 소스)이 들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상큼한 샐러드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솜땀의 주재료는 그린 파파야다. 그린 파파야를 얇게 채 써는 것부터가 솜땀 만들기의 시작이다. 우리의 무채 써는 방법과는 조금 다르다. 껍질을 벗긴 큼직한 파파야를 한 손에 들고 다른 한 손으로 칼을 들어 칼집을 내기 시작한다. “삭삭삭~” 소리를 내며 지그재그로 칼치기를 하고 나면 마치 채 썬 듯, 아니 그보다 좀 더 얇게 썰린다.
절구에 피시 소스와 매운 고추, 방울토마토, 마늘, 설탕, 땅콩, 마른 새우 등을 넣고 빻는다. 여기에 채 썬 파파야를 넣어 한 번 더 살살 빻은 뒤 라임을 넣으면 기본적인 솜땀 완성.
우리나라도 지역에 따라 김치 맛이 천차만별이고 재료가 다르듯 솜땀 역시 지역색이 강하다. 바닷가 쪽은 생선을 넣기도 하는데, 외국인에게는 비린 맛이 강해 조금 먹기 힘들 수 있다. 처음에는 마른 새우 정도가 들어간 기본형에 도전해보고 그다음 단계로 게 등이 들어간 솜땀을 먹어보는 게 좋겠다.
솜땀 맛집은 오토바이?
태국에서도 솜땀 양념 맛은 비밀 중 비밀에 속할 만큼 솜땀 맛은 한 집안의 자부심이다. 마치 우리네 김치 맛처럼 말이다. 따라서 지역마다, 집집마다 맛이 다르지만 , 기본적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면서 솜땀을 만들어 파는 사람은 자타가 인정한 ‘솜땀의 달인’으로 통한다.
여행 중 고급 레스토랑에서 솜땀을 먹어보는 것도 좋지만 길을 걷다 오토바이 솜땀 아줌마를 만나면 무조건 주머니를 열길 바란다. 만약 장기 여행 중이라면 두 개 정도를 사서 냉장고에 두고 먹는 것을 추천한다. 솜땀은 원래 바로 만들어 신선하게 먹는 겉절이 같은 음식이지만 냉장고에 하루 정도 두었다가 먹어보면 진하고 깊은 맛이 난다. 개인적인 취향이기는 하나 숱한 경험에서 나온 추천이므로 한 번쯤 도전해보길 바란다.
단, 솜땀을 주문할 때는 태국 고추의 개수를 반드시 직접 지정해야 한다. 호기롭게 매운맛을 보겠다고 고추를 많이 넣었다가는 남은 여행을 화장실에서 보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솜땀과의 환상의 마리아주
태국 사람들은 솜땀을 먹을 때 보편적으로 ‘카오니아오’라고 부르는 찰밥과 함께 먹는다. 손으로 여러 번 치대어 손가락 한두 마디 정도씩 떼어낸 찰밥을 솜땀 국물에 찍어 먹기도 하고 밥과 반찬처럼 먹기도 한다.
그 다음으로 잘 어울리는 것이 치킨이다. 우리에게 치킨 무가 있다면, 태국에는 솜땀이 있다. 실제로 태국 여행을 한번이라도 가본 사람이라면 ‘치킨+솜땀’의 조화로 유명한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에 가봤을 것이다. 그만큼 전세계인에게 사랑받는 메뉴다.
현지에선 800원, 한국에선 1만 원이 훌쩍
솜땀은 태국 음식 중에서 팟타이 다음으로 호불호가 적은 음식일 수 있음에도 국내에 가장 늦게 정착한 데는 바로 ‘그린 파파야’의 수급 문제가 있다. 초창기 국내의 태국 음식점들에서는 당근, 무 등 그린 파파야를 대신할 만한 재료를 찾아 솜땀을 만들었던 적이 있다. 현재는 그린 파파야로 현지 맛을 최대한 재현하고 있지만, 문제는 가격이다.
지역과 가게에 따라 현지 가격도 차이가 있긴 하지만 길거리에서 25바트에도 먹을 수 있는 솜땀을 한국에서는 1만~2만 원에 먹어야 한다니, 현지에서 맛을 본 사람이라면 손이 떨리지 않을 수 없다.
똠얌꿍, 팟타이 등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태국 음식들은 사실 지역에 따라 맛의 차이가 크지 않다. 하지만 저렴한 가격과 반찬 같은 비주얼로 살짝 뒤로 밀렸던 솜땀의 매력에 꼭 한 번 빠져보길 바란다. 비성수기라 비교적 여유로운 여행이 가능한 9월에 태국을 방문하게 된다면, 가는 곳마다 솜땀 절구를 싣고 다니는 오토바이를 눈여겨보자.
동네마다, 지역마다 솜땀을 먹어보며 그 차이를 실제로 느껴보는 특별한 여행을 해보면 태국에 대한 사랑이, 태국 음식에 대한 애정이 한뼘 더 커질 것이다. 아는 만큼 맛있다! 다른 나라를 여행하는 즐거움이다.
글_ 김수영
10여 년간 여성지 기자로 일하다 요리 전문 매거진에서 미래를 찾았다. 현재는 프리랜스 푸드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으며, 각종 요리 관련 브랜드 기획과 레시피북 제작 등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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