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원이 다른 쓰촨의 매운맛 _ 마라
대한민국의 매운맛 열풍이 쉽게 사그라지지 않으면서 새롭게 등장한 것이 바로 ‘마라(麻辣)’다. 극강의 매운 음식들이 한바탕 유행을 휩쓸고 간 후 찾아온 마라는 기존의 혀끝을 자극하는 매운맛과는 차원이 다르다.
중국 쓰촨 지역의 매운맛을 뜻하는 마라는 그냥 맵기보다는 얼얼하게 매운맛이다. 즉, ‘통각의 매운맛’이라고 할 수 있다. 한 번도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어본 사람은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묘한 중독성이 있어, 현재 대한민국 매운 음식의 톱을 유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전에는 차이나타운이나 중국 유학생들 사이에서만 인기 있는 음식이었는데, 요즘에는 ‘마세권’이라는 신조어가 생기고, 각종 인스턴트식품에 마라 제품이 즐비하며, 맵다는 말 대신 ‘마라하다’는 표현을 사용하는 등 ‘마라 열풍’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다.
도대체 마라가 뭐기에 대한민국을 이렇게 뒤흔드는지 궁금해졌다. 요리 촬영을 하면서 마라 요리를 몇 번 접해보았고,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도 부쩍 마라 요리를 먹을 기회가 많아진 건 사실이다. 일상 대화에서 마라 요리 맛집에 대한 정보가 심심치 않게 오가는 것만 봐도 그 매력을 짐작케 한다.
마라를 말하다!
중국은 넓은 땅덩이만큼이나 지역별 음식 문화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크게 중국의 4대 요리로 산둥·쓰촨·장쑤·광둥 요리를 꼽는데 그 중 쓰촨 요리는 매운맛으로 유명하다. 실제로는 ‘마랄’에 가깝게 발음하고, 우리는 ‘마라’라고 말하는 이 단어는 두 가지 매운맛을 담고 있다.
‘랄’은 우리가 알고 있는 매운맛을 뜻한다. 고추의 매운맛을 측정하는 수치로 한국의 청양고추가 ‘1만’인데 비해 중국 쓰촨의 고추는 ’10만’에 달한다고 하니 기본적인 매운맛으로도 비교 불가한 경지라고 하겠다.
‘마’는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얼얼함을 뜻한다. ‘혀끝에 닿는 순간 혀가 마비되는 맛’이라고 표현하면 적절하겠다. 이 두 가지 통증이 한꺼번에 입안에 들어오면 이상한 고통이 시작됐다가 이내 개운하고 시원한 마무리로 이어진다. 그리고 중독된다.
마라의 맛을 내는 가장 중요한 향신료는 ‘화자오(花椒, 화초)’다. 이해하기 쉽게 뭉뜽그려 ‘산초’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정확히는 화자오다. 신맛과 얼얼한 맛이 강하며 쓰촨 지역에서 주로 사용하는 품종이다. 일반적인 고추만으로 매운맛을 내는 다른 나라의 매운맛과 가장 큰 차이점이자 매력 포인트가 바로 이 향신료인 셈이다.
마라로 힐링하다!
매운맛 열풍이 쉽게 가시지 않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어려운 경기, 현대인들의 스트레스 등을 꼽는다. 매운 음식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면 맛있게 먹고, 뜨겁게 매워하고, 개운하게 마무리하는 이 마라에 한 번쯤 빠져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싶다. 그렇다면 마라 요리 중 무엇부터 도전하는 게 좋을까?
개인적으로 초보자들에게는 ‘마라샹궈’나 ‘마라롱샤’를 먼저 추천한다. 고기, 채소 등을 마라 소스로 볶은 마라샹궈와 민물 가재인 롱샤를 마라 소스에 볶은 마라롱샤는 일단 국물이 아닌 볶음 요리이기 때문에 마라 국물 요리에 비해 도전하기 쉽다. 원재료가 워낙 맛있고 뒤끝에 남는 알싸함을 부담 없이 즐기기에 딱 좋다.
다음 단계로 ‘마라훠궈’와 ‘마라탕’으로 넘어가보자. 다양한 재료를 뜨거운 마라 국물에 넣어 먹으므로 얼얼한 매운맛이 극대화되기 때문에 매운맛 고수들에게는 이보다 더 극강의 매운맛은 없을 것 같다.
그 어떤 것도 부담된다면 시판되는 마라 라면이나 마라 도시락 등 인스턴트식품으로 시작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열치열은 우리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여름을 이기는 오래된 전통이다. 올여름 더위는 땀을 흘리며 마라 음식을 먹는 것으로 극복해보는 건 어떨까? 만약 여름 휴가로 중국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쓰촨 요리에 꼭 한 번 도전해보기를 추천한다.
글_ 김수영
10여 년간 여성지 기자로 일하다 요리 전문 매거진에서 미래를 찾았다. 현재는 프리랜스 푸드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으며, 각종 요리 관련 브랜드 기획과 레시피북 제작 등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