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시키는 것도 아닌데
매번 여행 갈 곳을 샅샅이 뒤져서
치밀한 사전조사에 돌입한다.
열심히 짜놓은 동선에는 맛집을 표기하고
그곳을 메뉴와 가격, 별점도 체크해둔다.
만들어놓은 일정표를 하도 많이 들여다봐서
가기도 전에 그 곳을 다녀온 듯한 착각이 든다.
철저하게 계획을 짜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힘들게 간 여행을 망치고 싶지 않아서’
습관적인 계획표에 매달려있는 동안
나는 정작 여행지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그냥 지나치고, 놓치고 있었을까?
일의 쉼표라고 생각했던 여행을
어느새 일처럼 대하고 있었다.
괜스레 여행에게 미안해지는 순간이다.
여행에도 밸런스가 필요하다.
꼼꼼한 계획 덕분에 효율적인 여행을 할 수 있고,
일정표를 복기할수록 심적 안정을 받긴 하지만,
작은 스마트폰 속 사진 대신에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을 감상하고,
인터넷으로 본 이미지 속에는 담기지 않은
샛길과 골목의 정취를 느낄 여유가 있을 때.
그 단순함에서 오는 감동이
여행의 전부가 되기도 한다.
글, 그림_ 빛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