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에 쌓인 1,600년의 시간
터키 트라브존, 수멜라 수도원
한국과 ‘형제의 나라’라고 불릴 만큼 친숙한 나라 터키. 터키 흑해 연안의 도시이자 동북부에서 가장 큰 도시 트라브존(Trabzon)에 있는 수멜라산에는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운 진귀한 건축물이 살아 숨 쉰다.
수멜라산 1,200m 높이의 가파른 절벽 위, 약 1,600년의 역사를 지닌 수멜라 수도원(Sumela Monastery)이 그 주인공이다.
풍광만큼이나 아득한 번영과 쇠락의 역사
그리스와 터키의 건축과 디자인에서 두루 영향을 받은 수도원의 시작은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가 다스리던 서기 38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수도원은 두 명의 아테네인 수도승, 바르나바와 소프로니우스가 지었는데, 천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황폐해지고 복원되기를 반복하다 13세기에 이르러 지금과 가장 유사한 모습을 갖추게 됐다.
이후 알렉시우스 콤네누스 3세 때부터 수도원은 금전적인 지원을 비롯한 제국과 황제, 술탄의 보호 아래 황금기를 맞이한다.
하지만 영원할 것만 같던 수도원에도 위기가 찾아온다. 1923년, 오스만 제국의 붕괴로 국민 자유 전쟁이 발발하고 아타튀르크(케말 파샤)가 터키 독립 공화국을 세운다. 이때 로잔 조약에 따라 그리스와 터키가 인구를 교환하고, 이곳에서 그리스인 수도사들이 철수하게 되면서 수멜라 수도원은 결국 완전히 버려지고 만다.
이후 화재와 약탈 등 수차례의 참사와 공격을 받으면서 옛 모습을 잃어갔다. 하지만 이대로 방치하기에는 수도원의 건축물과 주변의 장엄한 경관이 너무도 아름다웠고, 터키 정부는 수도원을 복구하기 위해 끊임없이 애를 썼다.
그 결과, 오늘날 전 세계 방문객에게 개방된 박물관이자 유명한 관광지로서 터키인에게 새로운 자긍심을 심어주고 있다.
신께 더 가까이, 인간을 향해 더 활짝
수멜라산의 산길을 따라 여러 건물로 이어지는 수도원 단지에 다다르려면, 길고 좁은 계단을 지나야 한다. 마치 하늘로 향하는 듯한 기나긴 계단은 수도원 입구 옆 가드 룸을 지나 안뜰까지 이어진다. 왼쪽 동굴 앞에는 여러 채의 수도원 건물이 있고 이 동굴이 수도원의 중심을 이룬다.
바위 교회는 수멜라 수도원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다. 건축적으로도 높은 가치를 지니지만, 바위 교회의 내벽과 외벽, 예배당에 있는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의 이야기를 전하는 성서 속 장면을 그린 아름다운 프레스코화는 이 수도원이 문화적으로도 뛰어난 유산임을 증명한다.
한동안 복원 공사로 문을 닫았던 수멜라 수도원이 몇 해 전, 방문객에게 다시 문을 활짝 열었다. 복원 공사 중 기독교인의 예배당으로 추정되는 공간으로 이어지는 비밀 터널과 천국과 지옥을 묘사한 프레스코화가 새로이 발견되기도 했다.
수도원에는 아직 우리가 밝히지 못한 비밀이 남아있는 것일까? 1,600년이라는 세월 동안 이곳은 어떤 이야기를 담아왔을까?
수도원이 오랜 시간 절벽 끝에서 튼튼하게 버틴 것만으로도 감동적이지만, 그곳을 거쳐 간 수많은 수도승과 순례자, 그들의 간절한 기도, 수도원이 흥하며 찬란한 부귀영화를 누렸던 순간, 버려진 동안 수도원을 가득 채운 고독, 공격을 받아 파괴된 공간의 아픔 등 모든 희로애락이 수멜라 수도원을 완성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트라브존을 대표하는 수멜라산의 아름다운 광경도 수도원에서 바라보는 바깥 경치도 압권이다. 희뿌연 안개가 휘몰아치는 골짜기, 탁 트인 하늘, 푸르른 나무로 가득 찬 숲은 신기롭고 기이한 느낌마저 준다.
글_ 백아영
한국과 영국에서 한국화와 현대미술사를 공부한 프리랜스 작가. 현재 매거진을 비롯한 다양한 매체에 문화와 예술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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