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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서랍속여행기억] 여름, 또 다른 모습_ 니가타
2026.06.12 링크주소 복사 버튼 이미지 페이스북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카카오톡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X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링크드인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인쇄하기 버튼 이미지
내 서랍 속 여행 기억 그해 여름, 니가타

여름은 도시의 민낯을 보여주는 계절이다. 겨울에는 눈에 덮여 보이지 않던 것들이 여름 태양 아래 드러난다. 7월에서 8월로 넘어가는 계절의 문턱에서 일본 소도시 니가타의 여름도 마찬가지다. 훨씬 푸르고, 훨씬 넓고, 훨씬 생기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동해를 마주한 니가타는 에도시대 북전선 교역을 떠받치던 항구 도시였다. 지금은 일본을 대표하는 쌀의 고장이자 사케의 본고장으로 불리며, 항만과 철도, 해운이 교차하는 교통 거점으로 자리하고 있다. 또한 1610년 전후부터 이어져 온 금속 가공 기술은 오늘날에도 장인들의 손을 통해 살아 숨쉬며, 이 도시의 감도 높은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특히 스와다제작소, 교쿠센도 같은 공방들이 모여있는 쓰바메산조 일대는 일본 장인 정신과 제작 문화를 의미하는 모노즈쿠리의 중심지로 꼽힌다. 최근에는 카페, 전시 공간까지 어우러져 젊은 세대를 불러모으는 새로운 여행지로 주목받고 있다.

온천도 남다르다. 니가타현은 숙박 시설을 갖춘 온천지가 약 140여 곳에 달할 만큼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온천 지역이다. 그중 츠키오카 온천(月岡温泉)은 에메랄드빛 온천수로 잘 알려진 곳이다. 일본 최고 수준의 유황 함량과 약알칼리성 수질 덕분에 ‘미인의 온천’으로 불리며, 원천 온도는 51℃에 이른다. 유황·나트륨·염화물 성분이 피부에 부드럽게 스며들고, 몸의 온기를 오래 유지시켜 준다고 알려져 있다.

초록의 계절의 담아내는 호시토게의 다나다

니가타의 여름을 제대로 보고 싶다면 먼저 도카마치(十日町)로 향할 일이다. 니가타현 남부에 자리한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폭설 지대지만, 눈이 걷힌 여름에는 자연과 생활, 예술이 조화를 이루며 전혀 다른 풍경을 그려낸다. 이곳은 에치고마쓰마리(越後妻有) 예술제로 유명해졌다. 도카마치와 쓰난(津南) 일대의 광활한 사토야마를 배경으로 현대미술 작품들이 마을과 논, 숲 사이에 흩어지며 지역의 일상과 풍경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만드는 예술 축제다.

호시토게의 다나다

도카마치의 여름 한가운데, 물안개와 물거울 풍경으로 유명한 호시토게의 다나다(星峠の棚田)는 니가타 7월을 대표하는 절경이다. 산비탈을 따라 200여 개의 논이 층층이 펼쳐지는 풍경은 약 300년의 역사를 지닌 천수답 경관이다. 수면에 하늘이 비치고, 초록빛 벼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은 고요하면서도 살아있다. 관광을 위해 만들어진 곳은 아니다. 눈 많은 산간 지대에서 빗물을 받아 농사를 이어온, 자연과 사람이 함께 빚어낸 풍경이다.

봄과 늦가을에는 논에 고인 물이 거울처럼 하늘을 담아내고, 이른 아침에는 운이 좋으면 운해가 걸린다. 여름에는 물거울 대신 짙은 초록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같은 자리에서 계절마다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이곳은 니가타가 왜 쌀의 고장으로 불리는지를 알게 해준다.

니가타의 물결과 현대적 감각이 만나는 곳

도카마치에서 돌아와 니가타 시내로 들어섰다. 시내는 예상보다 훨씬 세련되어 보였다. 에도 시대 북전선의 기항지였고, 근대 개항장의 기억을 지닌 도시답게 거리 곳곳에는 오래된 건물과 새로운 건물이 묘하게 어울려 있었다.

피아 반다이 시장

피아 반다이(Pia Bandai) 시장에서는 니가타 현지 사람들의 생활을 살펴보고 지역 음식들도 맛볼 수 있다. 제철 과일과 해산물로 활기가 넘치는 시장의 끄트머리 작은 식당에 자리를 잡고, 밥 한 공기과 된장국, 구운 생선 한 토막만으로도 왜 미식의 고장인지 알 것 같았다. 2천 엔이 채 되지 않는 소박한 한 끼였지만, 잘 지은 밥과 신선한 생선, 담백한 국이 주는 든든함이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한편 니가타가 항구 도시라는 사실은 미나토피아(Minatopia)에 가면 더욱 또렷히 실감하게 된다. 미나토피아는 ‘물과 항구의 역사’를 현대적으로 조명한 구역이다. 옛 세관 건물과 현대 건축물이 어색한 듯 어우러져 있고, 밤에는 조명이 켜진 운하가 아름다워 산책하기에 좋다. 니가타라는 도시가 어떻게 항구 도시로 발전했는지 보여주는 공간이다.

미나토피아

미나토피아에는 니가타 시립 역사박물관, 국가지정 중요문화재인 구 니가타 세관 청사, 구 제4은행 스미요시초 지점이 있다. 그래서 이곳을 방문하면 박물관 내부 전시만 보고 오는 게 아니라, 역사문화 공원 구역 전체를 천천히 돌아보는 것이 포인트다. 물의 도시 니가타가 가진 본연의 정체성을 가장 평화롭게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구 세관 청사 건물의 정원과 산책로를 걸으며 품격 있는 근대 감성을 만끽할 수 있다.

니가타는 일본을 대표하는 사케 산지이기도 하다. 현 내에만 91개의 양조장이 있을 만큼 사케 문화의 저변이 넓고, 그 중심에는 탄레이 카라쿠치(淡麗辛口)의 미학이 있다. 맑고 깔끔한 향과 절제된 단맛, 깨끗하게 떨어지는 뒷맛이 특징인 드라이한 스타일로, 부드러운 연수와 낮은 온도에서 천천히 이어지는 발효, 에치고 도지의 섬세한 기술이 만나 정갈한 질감과 군더더기 없는 맛의 결을 완성한다. 그래서 니가타의 사케는 음식 곁에서 오래도록 질리지 않는 술로 기억된다.

효코호수

니가타 시내에서 버스로 약 1시간 정도의 거리에 있는 효코(瓢湖) 호수는 철새 도래지로 유명한 곳이다. 10월~3월 사이에 이곳을 방문하게 되면 ‘백조의 호수’라는 별명처럼 아름다운 백조 무리를 볼 수 있다. 낮 시간에는 먹이활동 때문에 백조가 많지 않고, 일출 즈음에 맞춰가면 된다.

니가타 여름 축제

니가타가 여름이면 한층 더 생기를 얻는 이유는 뭐니해도 축제 덕분이다. 가시와자키(柏崎)의 엔마이치(えんま市)는 2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장터형 축제다. 약 2㎞의 거리 위에 450여 개의 노점이 늘어서는, 니가타를 대표하는 초여름 행사 가운데 하나다. 매년 고정적으로 6월 14일부터 16일까지 3일간 열린다. 니가타현에서는 무라카미 대제, 가마바라 축제와 함께 니가타 3대 다카마치 가운데 하나로 꼽히며, 해마다 2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는다.

엔마이치 축제

엔마이치의 매력은 오래된 장터의 현장감에 있다. 맛있는 먹거리 냄새와 사람들의 발걸음, 생각보다 길게 이어지는 노점 사이사이에 사람을 들뜨게 만드는 무엇인가가 있다.

나가오카 불꽃축제

니가타 여름의 절정은 나가오카 불꽃축제다. 정식명은 나가오카 마쓰리 대불꽃대회(長岡まつり大花火大会)로, 매년 8월 2일과 3일 시나노강(信濃川) 양안에서 열린다. 1945년 8월 1일 나가오카 공습 희생자들에 대한 위령과 도시의 부흥, 그리고 평화에 대한 염원을 담아 공습 다음 해인 1946년에 시작되었다. 지금은 모두의 축제가 됐다. 특히 직경 약 650m에 이르는 정삼척옥(正三尺玉), 그리고 약 2㎞ 폭으로 펼쳐지는 부흥기원 불꽃 피닉스의 대형 행사는 규모만으로 압도적이다.

후지 록 페스티벌

7월 말 니가타현 유자와(湯沢)의 나에바 스키장(Naeba Ski Resort)에서 열리는 후지 록 페스티벌(FUJI ROCK FESTIVAL)은 조금 독특하다. 1997년부터 열리기 시작해서 지금은 약 12만 명의 관객이 찾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야외 음악 페스티벌이다. 덕분에 니가타의 여름은 유난히 활기가 넘치고, 더 아름답다.

이 축제의 무대는 니가타의 산 속이다. 해발 1,000m에 가까운 고원의 숲 안에 크고 작은 무대들이 펼쳐진다. 비가 와도, 진흙탕이 되어도 음악은 멈추지 않는다. 개울 소리와 기타 소리가 섞이고, 숲 사이로 새어 나오는 무대의 빛이 안개와 뒤엉키는 그런 축제다. 올해는 7월 24일부터 26일까지 열린다.

여름, 또 다른 니가타

겨울의 도시로 알려진 니가타를 여름에 여행하면 예상 밖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여행의 기쁨은 이미 가본 장소를 전혀 다른 계절에 다시 여행하며, 그곳의 새로운 매력을 알게 되는 과정에 있기도 하다. 그래서 다른 계절에 찾은 곳은 더욱 오래 기억에 남고, 다시 그곳을 여행해야 할 이유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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