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 항공 운항의 최대 불청객은 눈이다. 눈이 내려 쌓이면 활주로와 유도로 제설 작업이 필요하며, 가끔 항공기 지연도 발생하게 된다.
제설 차량을 이용해 활주로와 유도로의 쌓인 눈을 치우는 모습은 고속도로 등 일반 도로에서 이뤄지는 장면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공항에서만 이뤄지는 특별한 무엇이 하나 더 있으니 이는 항공기 표면에 쌓인 눈이나 얼음·서리 등을 떼어내고 다시 달라붙게 하지 않도록 하는 제빙 및 방빙 작업이다.
모처럼 계획한 해외여행 당일 아침 눈이 펑펑 내리고 있으면 비행기가 이륙하지 못하는 것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눈이 온다고 해서 항공기 운항이 중단되지는 않는다. 안전 운항을 위한 공항 제설 작업과 함께 항공기 제·방빙 작업이 있기 때문이다.
◇ 항공기 표면에 쌓인 눈은 치워야 안전
항공기에 쌓인 눈은 안전 운항을 방해하는 요소다. 우선 공기의 정상적인 흐름을 방해한다. 눈이 항공기 날개 위에 쌓이면 공기 흐름이 매끄럽지 못하게 되면서 항공기를 들어 올리는 힘인 양력을 저해할 수 있다. 또한 동체에 붙어 있는 눈, 얼음은 이륙 무게를 증가시킬 뿐 아니라 각종 계기 작동에 지장을 주기도 한다.
이 때문에 눈이 항공기 표면에 쌓이는 기상 상태가 되면 국제 규정과 절차에 따라 항공기 이륙 전 지상에서 제·방빙 작업을 수행하게 된다. 항공기 안전과 비행 성능을 위해 항공기 표면을 깨끗한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항공기 제·방빙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 제빙 → 방빙 순… ‘홀드오버 타임’ 주의해야
항공기에 눈이 쌓여 있는 경우에는 제·방빙 작업을 마친 후 이륙을 위해 활주로로 이동한다.
작업은 항공기 표면에 붙은 결빙 물질을 뜨거운 물과 특수 용액을 이용해 제거하는 제빙(De-icing), 계속 눈이 내리는 상황에서 제빙 작업이 완료된 항공기 표면에 일정 시간 동안 결빙 물질이 생기지 않도록 특수 용액을 바르는 방빙(Anti-icing) 순서로 진행된다.
공항 상황에 따라 제·방빙을 동시에 하는 ‘원 스텝(One step)’ 방식, 또는 제빙 작업 후 3분 이내에 방빙을 별도로 하는 ‘투 스텝(Two step)’ 방식을 선택하게 된다.
눈이 계속 내리는 날씨에는 ‘홀드오버 타임(Holdover Time)’이 중요하다. 방빙 용액이 처리된 항공기 표면에 결빙 물질이 달라붙지 않는 유효 시간을 말한다. 이는 방빙 작업을 시작한 시점부터 시간이 계산된다. 활주로 제설 작업 등으로 이륙이 늦어지거나, 앞서 이륙 대기 중인 항공기가 많아 ‘홀드오버 타임’을 넘기면 다시 제·방빙 작업을 해야 한다.
따라서 항공사 승무원, 운항통제 종사자들은 국제적으로 공인된 ‘홀드오버 타임’내에 항공기가 이륙할 수 있도록 관제 당국과 협조 체제를 유지하게 된다. 미국 연방항공청(FAA)은 온도, 기상상태, 사용 제·방빙 용액, 항공기 동체 재질 등에 따른 ‘홀드오버 타임’을 아래와 같이 제시하고 있다.
◇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뿌리나
항공기 제·방빙은 용액에 의한 환경 오염이 없도록 하기 위해 공항 내 마련된 전용 장소인 ‘디아이싱 패드(Pad)’에서 실시된다. 인천공항에는 터미널 1/2, 화물터미널 주변에 24개의 ‘디아이싱 패드’가 있다.
항공기가 디아이싱 패드로 이동하면 공기 분사 기능을 갖춘 특수 트럭이 뜨거운 물 및 제·방빙 용액을 뿌리면서 작업을 진행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항공기 한 대에 트럭 2대가 투입된다. 대한항공은 현재 인천공항의 경우 10대의 디아이싱 트럭을 운영하고 있다. 제빙액은 비행 성능에 큰 영향을 미치는 날개 등 주요 작동 부위 뿐만 아니라 동체 표면에 꼼꼼하게 뿌려 결빙 물질을 깨끗하게 제거한다.
제빙 용액은 주로 물보다 매우 낮은 온도(약 -59℃)에서 어는 프로필렌글리콜과 점성 증진 첨가제를 섞어 만든 것으로 제빙 작업 시 뜨거운 물과 혼합해 사용한다. 눈과 얼음을 제거한 항공기는 이륙을 위해 활주로로 이동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과 홀드오버 타임을 고려해 방빙 용액을 항공기 동체 및 날개에 뿌려 더 이상의 결빙이 없도록 한다.
제·방빙에 사용되는 용액은 특징에 따라 4가지 타입으로 나뉜다. TypeⅠ은 물에 희석해 제빙 용도로 사용되며, TypeⅡⅢⅣ 용액은 원액 또는 일정 농도로 물에 희석해 주로 방빙으로 쓰인다. 이 용액은 이륙 전 방빙 효과를 지속시키기 위해 항공기 표면에 충분한 시간 동안 남아있게 되며, 이륙 시 바람에 의해 표면에서 흘러 떨어져 나가는 물리적 특성이 있다.
제·방빙에 걸리는 시간은 항공기 기종, 적설량, 온도 등에 따라 달라지는데, 대형기는 25~30분, 소형기는 10~15분 정도 소요된다. 용액 사용량도 적설량과 작업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희석액을 포함 A380은 약 1200리터, B747 약 1000리터, B787과 A330은 약 700리터, B737, A220은 약 600리터 정도가 쓰인다.
디아이싱 패드 주변의 배수구를 통해 저장 탱크에 모인 제·방빙 용액은 환경 오염이 없도록 전문 폐기업체가 모두 수거해 소각 처리한다.
◇ 항공기 이륙 직전에 이뤄지는 제·방빙
겨울철 눈이 쌓이는 기상에서 항공기 제·방빙은 안전을 위한 필수 요소다.
제·방빙은 항공기 이륙 직전에 한다. 여객기의 경우 승객이 탑승한 채로 작업이 진행되며, 승객들은 이륙이 늦어지는 것에 대한 불편함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탑승 이전에 항공기 제·방빙 작업을 마치더라도 탑승으로 시간이 지체되어 자칫 ‘홀드오버 타임’이 초과할 경우 항공기는 다시 제·방빙을 해야 한다.
이륙 후 지상보다 기온이 낮은 고공에서 항공기가 얼지 않을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항공기가 운항하는 고도는 공기 밀도가 희박하고 매우 건조해서 결빙 우려가 적고, 항공기 자체에 마련된 방빙 시스템은 운항 중 발생할 수 있는 결빙 상황에 대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