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전문가칼럼

[영혼의 식탁] 정어리 통조림
2019.11.20 링크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예뻐서 샀다가 입이 더 즐거워지는
포르투갈 정어리 통조림

포르투갈(Portugal) 여행이 국내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한 건 불과 얼마 되지 않았다. 역시 방송의 힘이 그 배경이라 하겠다. 얼마 전 방영된 프로그램 <비긴어게인>에서는 포르투갈 도시에서 진행된 버스킹을 보여주면서 국내 여행객들의 관심을 받았다.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일품인 정어리 통조림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일품인 정어리 통조림. 포르투갈의 국민 식재료이지만 배추속대에 따뜻한 밥 한 숟가락, 정어리 한 조각, 쌈장, 마늘 한 조각을 올려 한식처럼 먹어도 환상적인 궁합을 보여준다.

흔한 말로 ‘포르투갈에 한 번도 못 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가본 사람은 없다’라고 할 정도로 작지만 매력이 넘치는 나라로 정평이 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주요 유럽 여행지인 스페인 옆에 붙어 있는 나라 정도로 치부돼 스페인에 갔다가 시간이 되면 들르는 정도였던 게 사실이다.
그런 포르투갈이 최근 방송과 여행 작가들 사이에서 이슈 메이커가 된 것은 아름다운 자연경관, 저렴한 물가, 여유로운 환경, 음악 그리고 음식 때문이다. 그중 필자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은 바로 포르투갈의 ‘통조림’이었다.

패키지에 매료되고 맛보면 팬이 되고 마는

‘통조림’이라 하면 일단 기대치가 낮다. 통조림으로 만든 음식에 어떤 건강학적 영양이나 신선한 맛을 기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저 간편하게 한 번 먹을 수 있는 제품으로 여겨왔던 건 필자도 마찬가지. 그러다 정어리 통조림을 처음 만난 것은 얼마 전 한 모임에서였다.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식재료답게 다양한 브랜드에서 생산되는 정어리 통조림은 각 브랜드마다 또 제품 라인별로 특색 있는 패키지를 선보여 관광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식재료답게 다양한 브랜드에서 생산되는 정어리 통조림은 각 브랜드마다 또 제품 라인별로 특색 있는 패키지를 선보여 관광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패키지가 마치 명품 화장품 브랜드의 ‘리미티드 에디션 아이템’을 한데 모아 놓은 것 같이 화려했다. 세상에 할 짓(?)이 없어 한 번 먹고 버리는 그저 그런(?) 통조림에 이만큼의 노력을 왜 했을까 싶었다. 그럼에도 손안에 넣고 싶다는 욕구는 버릴 수 없었다. 그리고 그날 정어리 통조림을 처음 맛봤다.

너무 예뻐 그대로 간직하고 싶은 통조림의 뚜껑을 여는 순간, 꽁치인가? 싶은 비주얼의 생선 살코기가 나란히 누워 있었다. 살코기는 노란 기름에 오랫동안 충분히 적셔진 상태였다. 자고로 생선이라면 어느 정도 비린 맛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안심 아닌 안심을 하고, 와인 한 모금을 마신 뒤 경건하게 한 젓가락을 입에 넣었다.
‘엇? 뭐지?’ 마음의 준비를 했던 비린 맛은 커녕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하고 담백한 이 맛은 뭐지? 궁금한 나머지 모임 주최자에게 물었다. 파티 주최자는 국내 최초로 포르투갈 통조림을 수입해 판매하는 회사의 대표님이었다.

깨끗하게 손질한 정어리를 오로지 올리브유에만 담가 만들기 때문에 정어리 통조림의 품질은 정어리와 올리브유의 등급에 따라 결정된다.
깨끗하게 손질한 정어리를 오로지 올리브유에만 담가 만들기 때문에 정어리 통조림의 품질은 정어리와 올리브유의 등급에 따라 결정된다. 와인이나 파스타, 핑거 푸드와 함께 즐겨도 잘 어울리지만 질 좋은 통조림이라면 캔을 따고 아무것도 가미하지 않은 채 바로 먹을 때 그 진가를 느낄 수 있다.

바다를 끼고 있는 포르투갈에는 해산물이 풍부하기 때문에 통조림으로 만들어 먹는 게 일반적이라고 했다. 대표적인 것이 정어리이며 대구나 문어 등 다양한 해산물 통조림이 있다는 것, 깨끗하게 손질한 정어리를 오로지 올리브유에만 담가 통조림으로 만든다는, 허무할 정도로 심플한 탄생 과정도 들었다.

물론 최근에는 매운맛을 가미한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정어리 통조림은 올리브유에만 절여 만든다. 그래서 제품의 품질을 결정하는 것도 간단하다. 정어리의 등급과 올리브유의 등급, 이 두 가지로 결정된다. 높은 등급의 정어리가 높은 등급의 올리브유와 만나면 그 맛은 혀가 놀랄 정도다. 먹는 방법도 심플하다. 뚜껑을 열고 그냥 먹으면 된다. 물론 파스타, 샐러드 등 다양한 요리법이 있지만 술 한잔과 함께 아무런 조리도 하지 않은 정어리 통조림을 그대로 먹을 때 맛의 진가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고소한 배추속대에 따뜻한 밥 한 숟가락, 정어리 한 조각, 쌈장, 마늘 한 조각을 올려 먹는 법도 제안해주었는데, 이렇게 잘 어울리는 조화가 있나 싶을 정도로 마음에 쏙 드는 한 끼 식사 겸 술안주였다는 기억이 짙게 남아 있다.

포르투갈 국민 식품이자 오감 만족 선물 아이템

포르투갈 여행과 포르투갈 정어리 통조림에 푹 빠져 있을 무렵, 이번에는 북토크 자리에서 이녀석들을 다시 만났다. <그리하여 세상의 끝 포르투갈>의 저자인 길정현 작가의 북토크였다. 아무도 이 나라에 관심이 없던 시절 우연히 포르투갈 여행을 했고, 그 여행에 관해 쓴 글이 최근 큰 인기를 얻으면서 책으로 엮어 출간하게 됐다고 한다. 이 책에 역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정어리 통조림이다.

리스본에 있는 정어리 통조림 전문점. 정어리 통조림의 패키지만큼이나 알록달록한 외관에 한 번, 상상을 뛰어넘는 통조림의 종류에 두 번 놀라게 된다.
리스본에 있는 정어리 통조림 전문점. 정어리 통조림의 패키지만큼이나 알록달록한 외관에 한 번, 상상을 뛰어넘는 통조림의 종류에 두 번 놀라게 된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포르투갈 어느 도시든 시내를 걷다 보면 정어리 통조림 가게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고 슈퍼마켓이나 마트에서도 우리의 참치 캔을 연상시킬 정도로 많은 종류의 정어리 통조림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패키지 디자인의 화려함은 여행객을 매료하기에 충분하다고도 덧붙였다.
특별한 시즌이 되면 한정판 디자인이 나오기도 하고 브랜드별로 자신들만의 다양하고 개성 있는 디자인의 패키지가 꾸준히 출시된다는 것. 포르투갈 정어리 통조림은 예쁜 패키지에 매료되어 샀다가, 맛을 보고는 팬이 되고야 만다고 할 정도로 겉과 속이 꽉 찬 포르투갈 국민 식품이며 여행객들의 오감 만족 아이템이라고.

포르티망에는 옛 정어리 통조림 공장을 개조해 만든 포르티망 박물관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과거 정어리 통조림을 만들던 과정에 대한 전시를 볼 수 있으며, 나라 곳곳의 여행자를 위한 기념품 숍에는 정어리 모양의 다양한 제품이 가득하다.
포르투갈은 ‘정어리의 나라’라 불러도 한 치의 부족함이 없다. 포르티망에는 옛 정어리 통조림 공장을 개조해 만든 포르티망 박물관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과거 정어리 통조림을 만들던 과정에 대한 전시를 볼 수 있으며, 나라 곳곳의 여행자를 위한 기념품 숍에는 정어리 모양의 다양한 제품이 가득하다.

이렇게 열심히 포르투갈 정어리 통조림을 이야기하고 있는 필자는 정작, 포르투갈에 가본 적이 없다. 오는 11월 말에 그 첫 여행을 준비하고 있는 예비 여행자다. 매년 6월에 정어리 축제가 있어 길거리를 걸어 다니며 직접 구운 정어리와 함께 술을 마실 수 있는 아름다운 기회가 있지만, 그때까지 도저히 기다릴 수 없어 급한 대로 먼저 가서 정어리 통조림을 ‘실물 영접’할 계획이다.

두 가지 계획이 있다. 우선 패키지 위주의 통조림 쇼핑을 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품질을 꼼꼼히 따져보면서 가장 맛있고, 가장 질 좋은 나만의 포르투갈 정어리 통조림을 꼭 찾아보겠다는 것이다. 그 후기를 다시 한번 공유할 기회가 생기길 바라면서 오늘도 와인 한잔에 가장 좋아하는 초록색 패키지의 정어리 통조림을 오픈해야겠다.

글_ 김수영
10여 년간 여성지 기자로 일하다 요리 전문 매거진에서 미래를 찾았다. 현재는 프리랜스 푸드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으며, 각종 요리 관련 브랜드 기획과 레시피북 제작 등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