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그리고 도시] 베네치아 카니발
베네치아가 이맘때 흥겨운 이유
‘가면 축제’라고 하면 이탈리아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축제이자 세계 10대 축제로 꼽히는 베네치아 카니발(Carnevale di Venezia)이 떠오른다. 고풍스러운 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멋진 가면이나 언뜻 보면 섬뜩한 가면을 쓰고 아름다운 베네치아 거리를 누비는 그 축제 말이다.
12세기에 시작돼 900여 년을 이어온 이 축제는 화려한 가면이 전부는 아니다. 베네치아의 오랜 역사, 축제를 전승하려는 시민들의 노력 등 더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
카니발은 본래 유럽의 가톨릭 문화권에서 시작된 종교 축제다. 늦은 겨울에서 이른 봄까지, 가톨릭 문화권에서는 크리스마스 못지않은 종교 축일과 행사가 줄을 잇는다. 중심에는 부활절이 있고 그에 앞서 40일(예수가 광야에서 수행한 기간) 동안 육식을 끊고 참회하는 사순절이 있다.
‘사람 사는 것 다 똑같다’는 관점으로 사순절을 앞둔 사람들의 심정을 떠올려보자. 내일부터 다이어트를 시작하겠다는 사람이 오늘 마지막으로 잔뜩 포식하듯이 그들도 그랬을 것이다. 이렇게 사순절을 앞둔 사람들의 이심전심으로 며칠간 잔뜩 먹고 즐기는 문화가 생겼고, 이것이 축제의 형태로 정착된 것이 바로 카니발이다. 명칭부터가 라틴어로 ‘육식 금지’라는 뜻의 ‘카르넴 레바레(Carnem Levare)’에서 비롯됐다.
베네치아 카니발은 이 같은 종교적 의미에 역사적 의미가 더해졌다. 12세기에 이탈리아 북부의 도시 아퀼레이아(Aquileia)가 베네치아를 공격했다. 베네치아가 다른 도시와 전쟁을 치르는 사이 기습한 것이다. 하지만 베네치아 군대는 갑작스러운 공격을 받고도 도시를 지켜내고 아퀼레이아로부터 매년 공물을 받기로 하는 거래까지 따낸다. 바로 이때 승전 기념으로 축제를 열었는데 그 후 매년 아퀼레이아가 바친 공물, 황소를 잡으며 축제를 즐기는 전통이 시작됐다.
13세기에 베네치아는 이 승전 기념 축제의 날짜를 사순절 전날로 옮겼다. 황소의 목을 자르며 승리를 기념했고 ‘천사 강림(Volo dell’angelo)’이라는 퍼포먼스를 하며 함께 지켜낸 평화를 기렸다. 막바지에는 가면을 쓰고 나온 사람들의 가장행렬과 함께 춤판이 벌어졌다. 황소의 목을 자르는 행사는 오늘날 잔인하다는 이유로 중단됐으나 천사 강림 퍼포먼스와 가면 퍼레이드는 지금까지도 이어진다. 가면은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화려해졌으며 천사 강림 행사는 이듬해의 천사를 뽑는 대회와 연계돼 더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2020년의 천사는 2019년 베네치아 카니발의 마리 축제(Festa delle Marie)에서 선발된 이가 맡는다. 마리 축제는 베네치아 총독이 정혼자가 있음에도 돈이 없어 결혼식을 올리지 못하는 12명의 가난한 예비 신부들에게 보석을 나누어주던 전통에서 유래했다. 이 전통은 인구 밀도가 낮은 지역에서 결혼과 출산을 장려하기 위한 하나의 정책이었다는 설도 있다.
전통 혹은 정책이 꾸준히 이어지던 가운데, 어느 날 보석을 받은 신부들이 결혼식 도중 해적에게 납치된다. 베네치아 군대는 당장 이들을 쫓아가 신부들과 보석을 되찾아 왔다. 사람들은 해적을 물리친 이들과 용기 있게 처신한 신부들에게 격려와 찬사를 보냈고, 이로써 전통에 ‘기념할 만한 일’이 더해졌다.
12명의 마리(신부)는 카니발이 열리기에 앞서 사전 공모와 심사를 거쳐 선발된다. 본격적으로 카니발이 시작되면 마리들은 전통 의상을 입은 가마꾼, 호위병과 함께 베네치아 거리를 행진한다. 카니발 막바지에 12명 중 한 명이 이듬해 천사 강림 행사를 위한 ‘천사’로 선발된다.
베네치아 카니발이 열리는 동안에는 거의 매일 최고의 가면 대회(Il Concorso della Maschera più bella)가 열린다. 한동안 가면을 쓴 자들의 일탈을 막는다는 이유로 가면 놀이와 축제가 금지되기도 했는데, 일탈을 자정하는 노력과 더불어 가면을 예술로 승화시킨 시민들의 노력으로 명맥이 이어져왔다. 덕분에 우리는 베네치아 카니발에서 온갖 기상천외한 가면을 만날 수 있다.
여행과 축제를 동시에 즐기고 싶다면 밀라노 & 베로나
베네치아 카니발은 매년 약 300만 명의 방문객을 끌어모은다. 다시 말하면 축제 기간 도시 전체가 어마어마하게 붐빈다는 얘기다. 하루만 보기에는 아까운 이 축제를 좀 더 효율적으로 즐기며 이탈리아 여행도 하고 싶다면 인근 도시에 숙소를 잡고 기차나 차로 이동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밀라노 중앙역’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밀라노 첸트랄레 역(Stazione di Milano Centrale)에서 베네치아 산타 루치아역(Stazione di Venezia Santa Lucia)까지 기차로 2시간 30분 정도 걸리는데 기차는 중간에 베로나(Verona)라는 도시를 거친다.
베로나는 셰익스피어의 대표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이 되는 곳으로 절절한 사랑 이야기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도시다. 어디에 시선을 두어도 황홀한 이 도시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역시 줄리엣의 집이다. 허구의 인물이기 때문에 진짜 그녀의 생가는 아니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이 사랑을 속삭이던 테라스 등을 그럴듯하게 재현해 명소로 자리 잡았다.
집 안에 세운 줄리엣의 동상을 만지면 사랑이 이뤄진다는 속설이 있다. 근거는 없으나 왠지 솔깃해 줄리엣 동상에 손을 얹어본다. 이후의 결과가 어떠하든 아무렴 어떤가. 아름다운 이야기의 한 장면, 흥겨운 축제의 한때와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멋진 여행이다.
Tip
베네치아 카니발은 2020년 2월 8일부터 2월 25일까지 베네치아 전역에서 열린다. 매일 반복되는 행사도 있지만 초반, 중반, 후반에 나뉘어 열리는 특별 행사도 있으니 일정을 보고 투어 계획을 세우는 게 좋다. 행사 일정과 장소는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ㅇ 베네치아 카니발 홈페이지_ www.carnevale.venezia.it
글_ 강미아
여행만큼 여행 책을 좋아하는 글쟁이. 여행을 다녀온 모든 곳이 좋았지만 실은 언제든, 어디로 가든 이륙하는 비행기 안이 제일 좋은 사람이기도 하다.
대한항공 운항 정보
인천 ~ 밀라노_ 주 3회 직항 운항
자세한 스케줄은 대한항공 홈페이지(www.koreanair.com)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