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의 파리(April in Paris)”
빌리 홀리데이, 엘라 피츠제럴드, 루이 암스트롱. 수많은 재즈 레전드들이 이 명곡을 불렀고, 1952년에는 동명의 영화도 은막을 수놓았습니다. 그 영향일까요? 4월의 파리는 많은 이들에게 일생에 한 번은 꼭 가보고픈 로망으로 남아 있습니다.
왜 4월일까요? 파리는 일 년 내내 로맨틱하고 아름답지만, 4월이 유독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긴 겨울이 끝나고 기온은 산책하기 딱 좋을 정도로 올라갑니다. 파리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카페 테라스에서 사람들은 다시 여유를 찾고, 파리지앵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옵니다. 에펠탑 아래 만개한 벚꽃은 무채색 건물들과 대비되어 봄 햇살 아래 도시를 핑크빛으로 물들입니다.

여기에 더해 파리는 봄과 함께 축제를 엽니다. 에그 헌트를 비롯한 부활절 행사가 도시 곳곳에서 열리고, 파리 마라톤의 함성이 거리를 채우며, 120년 역사의 푸아르 드 파리(Foire de Paris)가 봄의 시작을 알립니다. 4월의 파리가 특별한 이유는 아마도 파리가 가장 파리다워지는 시간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헤밍웨이가 말했듯, 4월의 파리는 여전히 날마다 축제입니다.
재즈 선율처럼 부드럽고,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낭만적인 파리의 하루 일정을 소개합니다.
09:00 A.M. ~ 10:30 A.M.
파리 마라톤
2025년에 56,950명이 참가하며 뉴욕 마라톤의 기록을 넘어선 파리 마라톤(Marathon de Paris)은 명실상부 세계 최대 규모의 마라톤 대회입니다. 참가자의 약 30~40%가 외국인일 만큼 145개국에서 온 러너들이 함께 달리고, 코스를 따라 모인 약 25만 명의 관중까지 더해지면 파리 전체가 들썩입니다.
파리 마라톤의 역사는 1896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처음에는 소수의 마라톤 애호가들이 참여하던 소박한 대회였지만, 개선문과 루브르, 센 강 가로지르기 등 파리의 주요 랜드마크를 관통하는 코스 덕분에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이제는 세계 5대 마라톤에 필적하는 위상을 갖춘 대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올해 주목할 점은 최근 파리에서도 마라톤 열풍이 거세져, 생애 첫 마라톤에 도전하는 MZ세대 초보러너들이 참가자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늘어났다는 것입니다. 본 대회 전날 토요일에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4㎞ 미니 레이스 ‘Paris Run for All’이 열려, 가벼운 러닝을 즐기고 싶은 여행자라면 도전해 볼 만합니다.

무엇보다 코스가 매력적이죠. 개선문을 출발해 루브르 박물관, 뱅센 숲, 노트르담 대성당, 에펠탑을 거쳐 불로뉴 숲에서 마무리되기 때문에 눈이 즐겁습니다. 파리 마라톤은 오전 8시부터 시작되며, 세계적인 선수들은 오전 10시~10시 30분경 결승점(포르 도트유 인근)을 통과합니다. 루브르 박물관이나 리볼리 거리(Rue de Rivoli)에서 응원한 뒤 결승점으로 이동하면 파리 마라톤의 분위기를 가장 효율적으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단, 마라톤이 열리는 오전부터 오후 3시 전후까지는 도로 통제가 이어져 시내 버스, 택시, 우버 이용이 어렵습니다. 도보나 지하철로 동선을 짜서 이동해야 합니다.
11:30 A.M. ~ 12:30 P.M.
영화 속에서 튀어나온 프렌치 푸드

파리답게 우아한 분위기에서 점심을 즐기고 싶다면 르 그랑 카페 포숑(Le Grand Café Fauchon)을 추천합니다. 파리의 전통 미식과 라이프스타일을 한껏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지입니다. 시그니처 핑크색 어닝과 테라스는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으며, 파리 마라톤 코스 인근인 마들렌 광장에 위치해 접근성도 좋습니다. 2018년 호텔 포숑 파리(Hôtel Fauchon Paris)와 함께 문을 연 이곳은 1886년 작은 식료품점에서 출발한 포숑의 130년 유산이 집약된 공간입니다.

시그니처 디저트 ‘비주-비주(Bisou-Bisou)’는 반드시 맛봐야 합니다. 이름 그대로 ‘키스’를 형상화한 이 디저트는 포숑이 130년 동안 쌓아온 파리의 로맨스, 미식, 시각적 감각을 가장 단순하고 매력적으로 압축해놓았습니다. 입술을 닮은 곡선, 매끈하게 정리된 글레이즈, 과하지 않으면서도 분명한 색감은 파리라는 도시의 로맨틱한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불러옵니다. 접시에 올라오는 순간, 설명이 없어도 이 디저트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바로 전해집니다. 맛의 구성 역시 계산되어 있습니다.
겉은 얇고 부드러운 글레이즈로 마무리되어 심플한 첫인상을 남기고, 안쪽은 가벼운 무스와 크림이 중심을 잡습니다. 지나치게 달지 않고, 과하지 않으며, 커피와 함께 즐기기에도 부담이 없습니다. 신선한 해산물 플래터도 가볍고 우아한 점심으로 제격입니다.

클래식한 선택지를 원한다면 르 를래 드 랑트르코트(Le Relais de l’Entrecôte)도 좋습니다. 1959년 생제르맹 데 프레에 오픈했는데, 스테이크와 감자튀김 단일 메뉴만 고집해온 전설의 맛집입니다. 비공개 레시피 소스가 인기의 비결이라고 하네요. 예약을 받지 않고, 먼저 온 순서대로 입장하기 때문에 줄을 서야 할 수 있습니다.
화려한 테라스에서 파리의 햇살을 즐기고 싶다면 르 그랑 카페 포숑, 파리지앵들 사이에 섞여 클래식한 한 끼를 원한다면 르 를래 드 랑트르코트. 어느 곳도 후회하지 않을 점심입니다.
13:00 P.M. ~ 15:00 P.M.
파리에서 보물찾기, 에그 헌트
에펠탑 아래 잔디 위에서 초콜릿 달걀을 찾는 경험은 4월에 할 수 있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즐거움입니다. 부활절에는 오래전부터 영원한 생명과 부활의 소망을 담아 달걀을 주고받는 전통이 이어져 왔는데, 프랑스에는 이 풍습을 더욱 따뜻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하늘을 나는 종(Les Cloches de Pâques)’입니다.
부활절 전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파리의 모든 교회에서는 종소리가 멈춥니다. 아이들에게는 이렇게 설명해 준다고 합니다. “종들이 교황님이 계신 로마로 날아가 축복을 받고, 돌아오는 길에 정원마다 초콜릿 달걀을 떨어뜨린다”고요. 그리고 일요일 아침, 종소리가 다시 울리면 아이들은 공원과 정원으로 달려가 달걀을 찾습니다. 그 순간이 바로 에그 헌트의 시작입니다.
에그 헌트 덕분에 부활절 일요일(4월 5일)을 전후한 파리는 거대한 보물찾기 장소가 됩니다. 뷔트 쇼몽 공원(Parc des Butters-Chaumont)과 뤽상부르 공원(Jardin du Luxembourg)에서는 대규모 무료·유료 에그 헌트 행사가 열리고, 로댕 미술관(Musée Rodin)의 조각 정원이나 에펠탑 1층에서도 특별한 프로그램이 진행됩니다. 센 강 유람선 중 하나인 브떼드 뒤 퐁네프(퐁네프의 유람선, Vedetted du Pont Neuf) 역시 승선 전 에그 헌트를 즐길 수 있는 이벤트를 운영합니다.

4월은 전 세계 초콜릿 애호가들이 가장 설레는 달이기도 합니다. 파리의 유명 초콜릿 브랜드들이 부활절을 맞아 부활절 시즌 한정 에디션을 선보이기 때문입니다.
‘초콜릿의 조각가’로 불리는 패트릭 로저(Patrick Roger)는 매 시즌 파격적인 조형 초콜릿을 선보입니다. 동물을 모티브로 한 입체적인 작품들이 주를 이루는데 올해는 어떤 작품을 선보일지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미슐랭 스타 셰프가 이끄는 알랭 뒤카스 초콜릿(Le Chocolat Alain Ducasse)은 2026년 에디션으로 전통적인 부활절 상징(달걀, 닭, 토끼)을 카카오 열매 형상과 결합한 디자인인 ‘La Ferme à Cabosse(카카오 농장)’을 선보였습니다. 카카오 열매와 비슷한 귀를 가진 토끼 조각이 포인트죠. 파리에 가신다면 한번 찾아보세요!
‘디저트계의 피카소’라 불리는 피에르 에르메(Pierre Hermé)는 퍼즐, 체스, 다트 게임 형식을 통한 부활절 에디션을 선보였고, 프랑스 초콜릿의 정석이라 불리는 라 메종 뒤 쇼콜라(La Maison du Chocolat)는 올해 악어를 주제로 한 작품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한편 1761년에 문을 연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초콜릿 숍 아 라 메르 드 파미유(À la Mère de Famille)는 고전적인 암탉, 달걀과 종 모양 초콜릿, 그리고 빈티지한 일러스트가 그려진 틴 케이스로 매년 꾸준히 사랑받고 있습니다.
인기 있는 부활절 한정판 초콜릿은 부활절 당일(4월 5일)이 되기 전에 품절되는 경우가 많아서,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 있다면 공식 홈페이지에서 픽업 예약을 해두는 편이 좋습니다. 구매 계획이 없더라도 생제르맹 데 프레(Saint-Germain-des-Prés) 일대를 천천히 산책하며 초콜릿 쇼윈도를 구경해 보세요. 4월의 파리에서만 만날 수 있는, 가장 달콤한 풍경이니까요.
15:00 P.M. ~ 15:30 P.M.
가장 파리지앵다운 파리의 오후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찾을 시간입니다. 파리의 카페는 도시의 현재 트렌드를 가장 빠르게 읽을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파르티잔 카페 아르티자날(Partisan Café Artisanal)은 2019년 초 문을 열며 파리의 3세대 커피 붐을 이끈 곳으로, 마레 지구 인근 투르비고 거리(36 Rue de Turbigo, 75003 Paris)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안 클래식 로스팅과 ‘뉴웨이브’라 불리는 싱글 오리진 로스팅 중에서 원두를 직접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 이곳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넓고 현대적인 산업형 인테리어와 매장 한가운데 놓인 대형 로스터기는 들어서는 순간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직접 로스팅한 원두로 내린 라떼와 크림치즈가 올라간 당근 케이크가 대표 메뉴로 꼽히며, 주말 저녁이 되면 분위기가 바뀌어 와인과 치즈를 즐길 수 있는 바(Bar)로 변신하는 것도 흥미로운 포인트입니다.

반면 봉쥬르 자코브(Bonjour Jacob)는 보다 감각적인 분위기가 돋보이는 공간입니다. 현재 파리 MZ세대와 크리에이터들이 모이는 아지트 중 하나죠. 2021년 6월, 생마르탱 운하 근처(28 Rue Yves Toudic, 75010 Paris)에 첫 매장을 열었으며, 현재는 파리 6구 생제르맹에도 지점을 두고 있습니다.
커피와 함께 잡지, 바이닐(LP)을 큐레이션하는 컨셉 스토어로, 전 세계의 희귀한 독립 잡지와 예술 서적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플랫 화이트가 맛있기로 유명하고, 파운드 케이크류는 잡지를 넘기며 가볍게 즐기기에 좋습니다.
15:30 P.M. ~ 18:00 P.M.
120년 전통의 아이디어 전시장, 푸아르 드 파리
어쩌면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이 시간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푸아르 드 파리(Foire de Paris)는 1904년에 처음 시작되어, 120년이 넘는 역사를 이어온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일반 소비재 박람회 중 하나입니다. 푸아르 드 파리는 봄이 왔다는 신호이자, 프랑스의 혁신 정신과 미식, 그리고 라이프스타일을 한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는 연례 축제입니다.

초기에는 샹젤리제 거리 등 파리 시내에서 열렸지만, 박람회의 규모가 점차 커지면서 1924년부터는 지금의 파리 15구 파리 엑스포 포르트 드 베르샤유(Paris Expo Porte de Versailles)에 정착했습니다. 최신 인테리어 가구와 주방용품부터 프랑스 전통 공예품, 세계 각국의 음식까지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고, 파리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무엇에 열광하는지를 직접 체감하며 파리의 라이프스타일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이 박람회를 상징하는 존재는 단연 콩쿠르 레핀(Concours Lépine)입니다. 세계적인 발명 대회로, 볼펜과 콘택트렌즈, 스팀다리미 같은 제품들이 이곳에서 처음 세상에 소개되었습니다. 규모 역시 압도적입니다. 약 20만㎡에 달하는 부지에 1,200개 이상의 전시업체가 참여하며, 주거와 디자인, 미식, 공예 등 일상의 거의 모든 카테고리를 아우릅니다. 프랑스 특유의 감각적인 인테리어 가구와 최신 가전, 스마트 홈 솔루션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홈 & 라이프스타일(Home & Lifestyle) 구역도 흥미롭습니다.

또 다른 인기 공간은 세계의 문화(World Cultures) 섹션입니다. 프랑스 각 지역의 특산물은 물론, 아프리카·아시아·아메리카 등 세계 각국의 수공예품과 전통 음식을 한 공간에서 만날 수 있어, 마치 파리 속의 작은 지구를 걷는 듯한 활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2026년 푸아르 드 파리는 4월 30일부터 5월 11일까지 열릴 예정입니다. 메트로 12호선 포르트 드 베르사유(Porte de Versailles) 역이나 트램 T2, T3a를 이용하면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습니다. 주말에는 방문객이 몰리므로 평일 오전 방문을 추천드리며, 티켓은 공식 홈페이지에서 미리 구매하면 입장도 빠르고 대기 시간도 줄일 수 있습니다.
18:30 P.M. ~ 20:00 P.M.
마지막 만찬
여행의 마지막 저녁은 언제나 가장 고민이 됩니다. 4월의 파리라면, 그 고민은 더욱 어렵죠. 그래서 마지막 만찬은 지금 이 순간, 파리지앵 사이에서 가장 뜨거운 레스토랑 두 곳 중 하나를 선택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먼저 베소(Vaisseau)입니다. 2023년 말, 프랑스 스타 셰프 아드리안 카쇼(Adrien Cachot)가 문을 열자마자 큰 화제를 모았고, 2025년 미슐랭 1스타를 획득하며 지금은 파리에서 예약이 가장 어려운 레스토랑이 되었습니다.
베소의 저녁은 예측이 불가능합니다. 메뉴판에 요리 이름 대신 재료만 적혀 있는 블라인드 테이스팅 방식으로, 접시가 놓이는 순간에야 오늘의 요리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미각보다 먼저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특히 아드리안 카쇼의 주특기인 내장 요리(Offal)를 현대적으로 풀어낸 접시들과, 카초 에 페페(Cacio e Pepe)에서 영감을 받은 모찌 요리는 이미 파리 미식가들 사이에서 하나의 레퍼런스로 자리잡았습니다. 베소는 11구 페데르브 거리(35 Rue Faidherbe)에 위치해 있습니다.

분위기가 정반대인 포차나(Pochana)는 최근 파리에서 가장 빠르게 떠오르는 레스토랑입니다. 2025년 오픈과 동시에 파리 미식 가이드 르 푸딩(Le Fooding)이 선정한 ‘최고의 작은 식당(Meilleure dînette)’에 이름을 올리며 단숨에 핫플레이스가 되었습니다.
포차나는 태국의 길거리 음식을 세련된 감각으로 풀어냅니다. 편안하지만 가볍지 않고, 캐주얼하지만 평범하지 않습니다. 내추럴 와인 리스트가 뛰어나며, 바삭한 타로 튀김과 그릴드 리버 프라운, 그리고 태국식 돼지고기 죽(Rice Porridge)은 한 번 맛보면 다시 찾게 되는 메뉴들입니다. 저녁이 깊어질수록 더 활기를 띠는 오베르캄프 지구의 작은 골목, 파사주 뒤 쥬 드 불(1 Passage du Jeu de Boules)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실험적이고 집중도 높은 미식으로 파리의 ‘지금’을 가장 앞에서 느끼고 싶다면 베소, 사람들의 온기 속에서 파리지앵의 밤을 즐기고 싶다면 포차나. 어느 쪽을 선택하든 파리에서의 만족스러운 마지막 저녁 시간이 될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