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열도의 가장 남쪽 끝, 오키나와는 하나의 섬이 아니라 본섬을 중심으로 케라마, 미야코, 야에야마까지 크고 작은 160여 개의 섬이 흩어져 있는 군도입니다. 흔히 오키나와 여행이라고 할 때 떠올리는 나하시(Naha City)는 이 가운데 가장 큰 섬, 오키나와 섬(Okinawa Island)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오키나와는 14세기부터 17세기까지 류큐 왕국이라는 독립된 나라로 존재하며, 고유한 문화를 꽃 피우고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지켜왔습니다. 그러다 1879년, 일본의 근대화 물결 속에서 결국 일본에 편입되었죠. 그래서 오키나와는 일본이면서도, 동시에 일본 본토와는 많이 다른 곳입니다. 본토는 사계절이 분명하고 겨울에는 매서운 추위가 찾아오지만, 오키나와는 아열대 기후 덕분에 연중 비교적 따뜻합니다. 음식 문화도 전혀 다릅니다. 오키나와 요리는 투박하고 소박하지만, 돼지고기를 아낌없이 사용하는 진한 맛이 매력입니다. 언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본토 일본어와는 다른 오키나와 방언, 우치나어가 따로 있는데, 일본인들조차 쉽게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독자적인 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계절도 다른 속도로 흐릅니다. 오키나와는 일본에서 가장 먼저 봄이 찾아와 벚꽃을 틔웁니다. 보통 1월 중순부터 2월 초·중순 사이, 북부의 나고 공원과 나키진 성터, 야에다케 산자락을 천천히 물들입니다. 참고로 오키나와의 벚꽃은 연분홍빛 왕벚꽃이 아니라, 짙게 물든 분홍색 칸히자쿠라(Kanhi-zakura)입니다. 꽃이 아래로 종처럼 달려 피고 색이 유난히 선명해, 멀리서 봐도 산비탈이 짙은 분홍색으로 번져 보입니다. 겨울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가장 먼저 피어나는 품종이라 봄을 데려오는 꽃처럼 여겨집니다.
이른 봄을 만나러 오키나와로 떠나보세요.
08:00 A.M. ~ 10:30 A.M. 요미탄촌 도자기 마을
이른 아침 오키나와 본섬의 나하시에서 차를 몰아 북쪽으로 40분쯤 달리면, 바다가 잠시 끝나고 낮은 언덕과 사탕수수 밭이 번갈아 펼쳐지는 요미탄촌(読谷村/ よみたんそん)에 도착합니다. 일본에서 가장 큰 규모의 바다와 농지, 공방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시골 마을입니다.
요미탄에는 류큐 왕국 시대부터 이어져 온 도자 전통, 야치문(やちむん)이 남아 있습니다. 예전 이 일대에서는 키나야키(喜名焼/ きなやき)라 불리던 토기가 만들어졌습니다. 17세기 후반에는 왕의 명령으로 도공들이 나하의 츠보야로 옮겨가기도 했지만 1970년대, 더 좋은 흙과 바람을 찾아 다시 요미탄으로 돌아와 현재의 도자기 마을, 야치문노사토(やちむんの里)를 일구었습니다.

언덕 위의 야치문노사토에 오르면 붉은 기와를 얹은 가마와 돌담, 작은 작업실들이 하나의 마을처럼 이어집니다. 길 초입에는 상징적인 계단식 오름가마가 우뚝 서 있습니다. 1980년대에 도공들이 힘을 모아 만든 9칸짜리 큰 가마인데, 불을 한 번 지필 때마다 수천 점의 그릇이 탄생합니다.

현재 요미탄에는 70개가 넘는 가마와 공방이 흩어져 있고, 그 중심인 야치문노사토에는 상설 공방과 갤러리가 모여 있습니다. 2월 말이 되면 마을 중심의 JA 요미탄 파머스 마켓의 윤타 이치바 앞 광장에서 천막이 빼곡히 들어선 요미탄 야치문이치(読谷やちむん市)가 열립니다. 이틀 동안 20~30개 공방이 한 자리에 모여 그릇과 시사(Shisa, 사자상)를 판매하는, 말 그대로 도자기 축제입니다. 어떤 부스에는 일상용 밥그릇과 머그컵이 산처럼 쌓여 있고, 다른 부스에는 굵은 브러시로 추상 패턴을 그려 넣은 대접들이 단정히 놓여 있습니다. 대부분의 테이블에는 정가에서 20~50% 할인된 가격이 붙어있어 발길이 저절로 멈춥니다.
가마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흙냄새와 바로 옆 농협에서 풍겨오는 채소와 빵 냄새가 뒤섞인 아침. 고민 끝에 오늘 하루를 함께할 찻잔 하나를 더 골라든 후, 북부로 향해야 할 시간이 된 것을 아쉬워하며 차에 오릅니다.
이제 요미탄을 떠나 북쪽으로 가는 길에는 58번 국도가 바다를 끼고 길게 이어집니다. 창문을 살짝 내리면 짭조름한 바닷바람과 햇살이 동시에 스쳐 지나갑니다. 길 오른편에는 리조트와 카페가, 왼편에는 푸른 바다가 어깨를 나란히 합니다. 오늘의 두 번째 목적지는 모토부항입니다.
11:30 A.M. ~ 13:00 P.M. 오키나와 소바 맛집
모토부는 오키나와 북부의 작은 항구 마을이자, 고래 투어와 츄라우미 수족관(Okinawa Churaumi Aquarium), 미나섬과 세소코섬으로 이어지는 관문 같은 곳입니다. 낡은 부두와 새로 지은 페리 터미널, 작은 어선과 관광 보트가 한데 섞여 있어 일본 영화에 나올 법한 어촌 풍경을 그려냅니다.
오후 1시 30분에 출항하는 혹등고래 투어를 가기 전 간단하게 점심을 먹어둡니다. 항구 주변에는 시마부타(섬 돼지) 요리집, 해산물 덮밥 가게, 오키나와 소바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시마부타야는 오키나와 토종 돼지인 아구(アグー) 돼지를 사용한 소키 소바로 유명한 곳입니다. 일반 돼지뼈가 아닌 아구에서 우러난 육수에 가다랑어포(가쓰오부시)를 더해 국물을 내기 때문에 기름진 맛보다는 부드러운 감칠맛이 길게 남습니다.

오키나와 소바는 밀가루 면을 사용하고, 돼지뼈와 가다랑어를 섞어 낸 육수에 푹 삶은 돼지 갈비, 즉 소키를 얹은 것이 기본입니다. 이 곳은 소키를 아구 돼지로 만들어 푹 삶은 뒤, 한 번 더 숯불에 구워내 겉은 은은한 불향이, 속은 부드러운 지방의 단맛이 살아있습니다. 따뜻한 소키 소바 한 그릇으로 속을 든든히 채우면 이제 바다 위로 고래를 만나러 나갈 준비가 된 것입니다.
13:30 P.M. ~ 17:00 P.M. 혹등고래 투어
드디어 오후 1시 30분, 고래 보트가 천천히 모토부 항 부두를 떠납니다. 오키나와 주변 바다에서는 보통 12월부터 4월 사이, 특히 2월에 혹등고래를 가장 자주 만날 수 있습니다. 여름에는 알래스카 같은 차가운 바다에서 먹이를 먹으며 지내다가, 겨울이 되면 따뜻한 오키나와-케라마 해역(Kerama Area)으로 내려와 짝짓기와 출산을 하는데 이 시기에 약 300~500마리의 혹등고래가 이 근처를 오간다고 알려져있습니다.

항구를 벗어나 케라마 제도 근해부터는 모두의 시선이 바다를 향해 고정됩니다. 잠시 후, 수면 위로 하얀 물기둥이 푹 하고 솟구칩니다. 그 뒤를 따라 검푸른 등이 물 위에 드러나고, 거대한 몸이 파도를 가르며 느릿하게 움직입니다. 혹등고래는 한동안 수면 가까이를 유영하다가, 마지막에는 커다란 꼬리를 높이 들어 올리고 천천히 심해로 가라앉습니다. 운이 좋다면 어미와 새끼가 나란히 헤엄치거나, 몸 전체를 수면 밖으로 들어 올렸다가 떨어뜨리는 장면(브리치)을 목격할 수도 있습니다.
바람은 생각보다 차갑지만, 눈 앞에서 숨 쉬는 혹등고래의 생생한 움직임을 보는 즐거움에 추위는 잠시 잊혀집니다.
17:00 P.M. ~ 19:00 P.M. 봄을 깨우는 나키진 성터 벚꽃 축제
항구에서 내리면 서쪽 하늘이 서서히 오렌지빛으로 물들기 시작합니다. 모토부에서 나키진 성터까지는 차로 약 30분. 도로를 따라 작은 마을과 감귤 과수원이 스쳐 지나가고, 언덕을 몇 번 오르내린 후에, 세계 유산 나키진 성터(今帰仁城跡)라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옵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계단을 오르면 고대 류큐 왕국 시대 성곽이 서서히 시야에 펼쳐지고, 성터 입구 매표소를 지나 안쪽으로는 석양 아래 성벽과 벚꽃이 나란히 서 있습니다.

나키진 성터는 류큐 왕국 북부를 다스리던 호쿠잔(北山, Hokuzan)의 성으로, 지금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곳입니다. 축제 기간에는 작은 무대에서 류큐 무용과 민요 공연이 이어지고, 길가 노점에서는 따뜻한 오뎅과 야키소바, 오키나와식 도넛이라 할 수 있는 사타안다기 같은 간식을 판매합니다.
오키나와에는 여러 벚꽃 명소가 있지만, 나키진 성터 벚꽃 축제를 특별하게 꼽는 이유가 있습니다. 성터가 자리한 언덕에서는 동중국해의 에메랄드빛 바다, 산의 초록, 성벽의 회색, 벚꽃의 진분홍색을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평소에는 밤에 들어가기 어려운 유적지이지만, 축제 기간에는 화려한 조명과 함께 밤 9시까지 야간 개장되기 때문에 이때만 볼 수 있는 한정판 감상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나고 벚꽃 축제, 모토부 야에다케 벚꽃 축제와 함께 오키나와 3대 벚꽃 축제로 꼽힙니다.

성벽 아래 벤치에 앉으면 짙은 분홍빛 칸히자쿠라가 줄지어 피어있고, 해가 지기 시작하면서 조명과 등불이 하나둘씩 켜지는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돌계단 옆으로는 촛불을 꽂은 등롱이 길게 이어지고, 위쪽에서는 붉은빛·초록빛·보라빛 조명이 벚꽃과 수목을 비추며 성터 전체에 몽환적인 색을 입힙니다. 그렇게 나키진의 밤에 봄을 깨우는 마법같은 순간이 시작됩니다.
19:00 P.M. ~ 21:00 P.M. 오키나와 전통 고택에서 즐기는 저녁
성터를 내려와 다시 차에 올라 나고(Nago) 시내로 달립니다. 해가 완전히 진 뒤의 나고는 소도시 특유의 조용한 기운이 감돕니다. 네온사인도, 늦게까지 여는 가게도 많지 않지만, 상점가 뒤편에 숨듯 자리 잡은 작은 이자카야들은 있습니다. 목적지는 그 중에 얀바루 다이닝 마쓰노 코민카(やんばるダイニング 松の古民家)입니다. 식사와 반주를 동시에 즐기기 좋은 곳이죠.

100년 된 오키나와 전통 고택, 코민카(古民家)를 개조한 이자카야 겸 다이닝 바입니다. 나고의 야간 명소로도 꼽히죠. 낮게 내려앉은 지붕, 세월이 묻어나는 목재 기둥과 마루, 은은한 조명이 어우러져 집에 초대받은 것 같은 편안한 분위기를 만듭니다. 가게 이름 속 얀바루(やんばる)는 오키나와 북부 지역을 가리키는 말로, 북부의 풍부한 식재료를 활용한 요리를 선보인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메뉴는 창작 오키나와 요리에 가깝습니다. 신선한 오키나와 특산물 우미부도(海ぶどう, 해포도)와 아구 돼지(アグー豚) 등을 이용한 메뉴들이 유명합니다. 우미부도는 잘게 맺힌 알갱이가 포도송이처럼 보여 붙은 이름으로,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식감과 은근한 짠맛이 인상적인 해산물입니다. 우미부도를 입에 넣는 순간, 오키나와의 바다가 그대로 혀끝에 다시 펼쳐지는 것 같습니다.
이곳이 유명한 이유 중 하나는 아와모리(泡盛)를 활용한 칵테일 덕분입니다. 바텐더가 전통주인 아와모리에 오키나와산 시콰사(シークヮーサー, 감귤류) 주스를 더해, 이 곳만의 시그니처 칵테일을 만들어 줍니다. 깊은 향 뒤에 느껴지는 상큼한 과실 향이 포인트죠.
하루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달력보다 조금 이른 봄 여행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릴 것입니다. 벚꽃과 고래, 흙과 바다, 그리고 한 잔의 아와모리로 오키나와의 짧지만 여운이 느껴지는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