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밴쿠버’. 정말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자주 들었지만, 어쩔 수 없다. 이보다 사실적으로 이 도시를 설명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1년 내내 여행하기 좋은 날씨, 녹색 정원, 넓게 펼쳐진 해안길과 바다가 있는 도시, 동시에 아찔한 최첨단 빌딩 숲이 화려한 스카이라인을 그리고 있어 낮과 밤 모두 아름다운 도시다.
반짝반짝 빛나는 유리의 도시(City of Glass)
가진 것이 많은 도시이다 보니 밴쿠버를 부르는 별명도 참 많다. 그 중 하나가 ‘유리의 도시’다. 밴쿠버의 건축 양식은 일명 웨스트 코스트 스타일(West Coast Style, West Coast Modernism, West Coast Vernacular)이다. 이 건축 스타일은 자연 경관을 해치지 않는 규제 내에서 지속가능한 건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래서 복잡한 기하학적 형태, 개방형 평면, 유리를 사용해 자연 채광을 최대화하는 디자인이 특징이다. 다운타운 대부분의 고층 건물들이 유리를 많이 사용하다보니 유리의 도시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최근 2~3년 사이 밴쿠버 다운타운 조지아와 호머 스트리트, 그랜빌 스트리트에 새로운 빌딩들이 많이 지어지고 있는데 신규 건축물들을 보면 유리 박스형 디자인이 대세인 듯 하다.
정원이 곧 삶, 정원의 도시(City of Garden)
밴쿠버 사람들에게 정원은 곧 삶이자 힐링 공간이다. 번잡한 다운타운을 걷다가도 5분 내에 녹색 정원을 찾을 수 있다. 자연이 도시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흡사 도시가 자연의 품 안에 안긴 듯하다.
스탠리 파크 둘레를 따라 형성된 씨월(Seawall)에서는 밴쿠버의 바다와 산을 한 눈에 담을 수 있고, 반듀슨 식물원(VanDusen Botanical Garden)은 세계 각국에서 온 다양한 식물들과 엘리자베스 미로 정원, 시노히말라야 정원, 지중해 정원 등 테마 정원을 갖추고 있다. 리틀 마운틴(Little Mountain)에 자리한 퀸 엘리자베스 공원은 예전 채석장을 개조해 만든 채석장 정원(Quarry Garden)과 실내 열대 정원인 블로델 온실(Bloedel Conservatory)이 유명하다.
이제 밴쿠버의 매력에 제대로 빠져볼 시간이다.
09:00 A.M. ~ 11:00 A.M. 스탠리 파크
스탠리 파크(Stanley Park)는 밴쿠버의 녹색 심장이자 ‘정원의 도시’로서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다. 밴쿠버의 시내 중심가와 비슷한 400㏊(120만평)에 이르며, 단일 공원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뉴욕의 센트럴 파크보다도 60㏊ 더 크다. 백 년도 훌쩍 넘은 원시림을 그대로 간직한 전나무 숲과 코요테, 비버, 스컹크, 회색 큰다람쥐 등도 만날 수 있는 도심 속 오아시스다.
1859년 미국과의 전쟁을 대비한 군사기지로 이용하다가 1888년 밴쿠버 시민들을 위해 공원을 개방하면서 당시 총독이었던 스탠리 경의 이름을 따서 스탠리 파크라고 이름 붙여졌다. 스탠리 파크 외부 씨월을 따라 자전거로 돌아봐도 좋지만 내부의 밴쿠버 아쿠아리움을 비롯해 선탠을 즐기는 현지인들로 늘 북적이는 세컨드 비치(Second beach)와 써드 비치(Third beach) 등도 가볼 만하다.
전부를 보려면 몇 시간을 걸어도 부족할 정도로 크기 때문에 밴쿠버의 공유 자전거 모비(Mobi)를 이용해 약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 돌아보는 편이 좋다. 밴쿠버 시내 어디에서든 쉽게 대여하고 반납할 수 있다. 모비 앱 또는 사이트에 들어가면 하루·한달·1년 이용권 등 기간별로 선택이 가능하다.
여름에는 스탠리파크 입구에 있는 인포메이션 센터 앞에서 셔틀버스를 탈 수 있다. 공원 내부 곳곳에 내렸다가 구경하고 다시 버스를 탈 수 있기 때문에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보통 오전 9시 오픈해서 5시에 닫는다.
vancouver.ca/parks-recreation-culture/stanley-park.aspx
11:30 A.M. ~ 13:30 P.M. 예일타운
도시 재생 프로젝트로 새롭게 재탄생한 예일타운(Yaletown)은 헤리티지 건물들과 세련된 카페, 레스토랑들이 즐비한 밴쿠버에서도 가장 힙한 지역이다. 밴쿠버 다운타운에서 살짝 비껴난 남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펄스강(False Creek)과 인접하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반짝이는 강과 유리 건축물 사이를 거닐다 보면 밴쿠버가 왜 ‘유리의 도시’라 불리는지 알게 된다.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배를 정박하고 물건을 쌓아두는 창고 건물이 들어차 있었지만 1986년 엑스포를 계기로 변신했다. 1백 년을 이어온 헤리티지 건물과 트렌디한 디자인 감각으로 탄생한 유리 고층 건물의 조화. 이것이 예일타운의 매력이다. 예일타운은 낮보다 밤이 아름답다. 낮보다 밤을 사랑하는 젊은이들이 모이기 때문.
주말과 휴일에는 아침부터 분주하다. 밴쿠버의 트렌드를 선도하는 동네라 카페와 레스토랑, 인테리어 숍, 부티크, 헤어 숍 등을 구경하다 보면 로컬들의 스타일을 쉽게 경험할 수 있다. 해가 반짝반짝 빛나는 야외 테라스에서 브런치를 먹으며 예일타운을 거니는 사람들, 특히 밴쿠버 MZ들의 패션을 구경하는 재미도 좋다.
www.yaletowninfo.com
14:00 P.M. ~ 15:00 P.M. 밴쿠버 공공 도서관
지금은 싱가포르를 건축의 도시로 만든 건축가로 추앙받는 모쉐 사프디(Moshe Safdie).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 인도의 펀자브 시크교 국립박물관과 미국 워싱턴DC의 미국평화본부, 카우프만 공연예술 센터 등 여러 걸작 건축물이 그의 손을 거쳤다.
그의 이름이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67년 몬트리올 월드 엑스포에서 선보인 새로운 형태의 공동주택 ‘해비타트(Habitat) 67’이었다.
이스라엘 출신인 사프디는 어린 시절 캐나다로 이주했다. 사프디의 건축 철학은 모름지기 자연과 공존하는 건축이다. 밴쿠버 공공 도서관도 이 같은 그의 철학이 잘 반영된 작품이며, 밴쿠버 유리 건축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손꼽힌다.
사프디는 밴쿠버 공공 도서관을 통해 도시의 개방성을 강조하고 빛이 가득한 공공 공간을 창조하고자 했다. 그래서 거대한 유리로 설계된 도서관 내부로 들어서면 마치 투명한 책 속에 들어간 기분이 든다. 빛이 유리 벽을 통과해 도서관 곳곳에 스며들어 책과 책 사이로 은은한 그림자가 드리운다. 도서관의 유리 지붕 아래 누구나 한 권의 책을 집어 들고 시간을 보낼 수 있다.
www.vpl.ca/
15:30 P.M. ~ 17:30 P.M. 퀸 엘리자베스 공원
1939년 엘리자베스 여왕의 방문을 기념하여 이름 지어진 공원이다. 원래는 돌로 이루어진 채석장이었다. 밴쿠버에서 가장 높은 해발 152m에 위치해 전망이 가장 좋은 공원이기도 하다. 스탠리 파크 다음으로 큰 52㏊(약 15,000평)의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퀸 엘리자베스 공원(Queen Elizabeth Park) 안에는 열대우림을 옮겨온 듯한 블로델 온실이 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하며 온실 안에는 국내에서 보기 힘든 약 500여 종의 식물과 앵무새, 잉꼬, 카나리아 등 100여 종 이상의 조류들이 있다. 밴쿠버 퀸 엘리자베스 공원은 오전 6시부터 밤 10시까지 운영한다.
vancouver.ca/parks-recreation-culture/queen-elizabeth-park.aspx
18:00 P.M. ~ 23:00 P.M. 개스타운
개스타운(Gastown)은 밴쿠버의 역사다. 밴쿠버에서 가장 오래된 거리이며, 빅토리아 시대 건축 양식의 헤리티지 건물들 뒤로 현대적인 유리 파사드가 돋보이는 고층 빌딩들이 공존하는 곳이다. 밴쿠버 대표 관광지일 뿐 아니라 인테리어 부티크, 카페, 레스토랑, 갤러리, 영화 학교 등이 몰려 있는 밴쿠버 중심지다.
19세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밴쿠버의 발상지이고, 1867년 최초 정착민인 존 데이튼(John Deighton)의 별명이 수다쟁이 잭(Gassy Jack)이었던 것에서 유래해 개스타운이라 이름이 붙여졌다. 증기선 선원이었던 영국 요크셔 출신 데이튼이 이 지역에서 처음 술집을 열었고 이것이 밴쿠버의 시작이 되었다.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9년 국립 역사 지구로 선정되었으며, 그를 기념한 동상은 라이브 공연이 자주 열리는 메이플 트리 광장에 설치되어 있다.
개스타운의 명물은 15분 마다 증기를 뿜어내는 증기 시계다. 증기 시계는 낮보다 밤의 분위기가 더 특별하다. 어둑어둑한 저녁시간에 밝혀지는 조명이 이 곳의 진가를 제대로 보여준다.
1986년 엑스포를 위해 세워져 현재는 고급 호텔, 쇼핑몰, 영화관, 카페, 레스토랑 등이 모여있는 캐나다 플레이스(Canada Place)와 밴쿠버 다운타운에서 가장 번화가라 할 수 있는 워터프론트역(Waterfront Station)도 바로 인근에 있어 저녁 식사 전후 둘러봐도 좋다. 캐나다 수제 맥주를 맛볼 수 있는 유명한 스팀웍스 브루펍(Steamworks Brewpub)도 워터프론트역 옆에 있다. 아기자기한 기념품 가게들도 많아서 밴쿠버 여행 기념품도 구매할 수 있다.
한편 개스타운에서는 매년 밴쿠버 국제 재즈 페스티벌(Vancouver International Jazz Festival)과 개스타운 그랑프리(Gastown Grand Prix) 국제 자전거 경주도 열린다.
www.gastown.org
도시와 자연 그리고 인간의 손길이 만들어낸 밴쿠버는 깨끗한 자연과 뜻밖의 즐거움이 곳곳에 숨어 있어 매력적인 도시이다. 항구 도시인 만큼 여한없이 해산물도 먹을 수 있고, 바다를 보며 산책하기에도 그만이다. 떠날 곳을 고민하고 있다면 밴쿠버는 후회하지 않을 선택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