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왜 달릴까요?
“나는 소설가다. 그리고 달린다. 둘 다 내가 매일 계속 하는 일이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는 글을 쓰는 일만큼이나 그의 일상으로 유명합니다. 1년에 한 번은 보스턴, 뉴욕, 아테네 등의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풀 코스를 완주하는 하루키는 에세이집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마라톤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고, 그 고통의 끝에서 성취감을 맛보는 일이 소설을 쓰는 여정과 닮았다고 고백합니다.
하루키처럼 마라톤에 빠진 사람들은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달리고 또 달립니다. 달리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도달하는 지점은 바로 ‘성장’입니다. 고통을 피할 수 없지만 이를 선택하고 극복하는 과정은 개인의 의지이기에 42.195㎞는 그저 거리가 아닌 삶의 여정을 의미합니다.
세계를 달리다: 특별한 마라톤 여행
바야흐로 마라톤의 계절, 가을을 맞아 세계의 이색 마라톤 대회들을 소개합니다. 마라톤 대호가들의 버킷리스트에 올라갈 만한 특별한 랜선 여행을 함께 떠나보세요!
만리장성 마라톤 대회 The Great Wall Marathon
네, 맞습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 만리장성입니다.
매년 5월 만리장성에서 열리는 최초의 국제 마라톤 대회인 ‘만리장성 마라톤 대회’는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마라톤 코스 중 하나로 꼽힙니다. 참가자들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만리장성의 5,164개 계단을 오르내리며 달립니다. 1999년 첫 대회 당시만 해도 불과 350명만이 참가했으나, 현재는 전 세계에서 2,500명 이상의 마라토너들이 참여하는 규모있는 대회로 성장했습니다.
참가자들은 풀 마라톤뿐만 아니라 32㎞, 하프 마라톤, 10㎞, 5㎞ 등 다양한 코스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만리장성의 고북고(Gubeikou)와 진산링(Jinshanling)을 통과하는 경로는 흔히 접하지 못하는 만리장성의 아름다운 파노라마 뷰를 따라 달리기 때문에 참가자들에게 평생 잊기 어려운 독특한 마라톤 경험을 선사해줍니다.
평평한 도로를 달리는 마라톤이 지루해졌다면, 내년 5월 10일 열리는 만리장성 마라톤 대회를 강력 추천합니다.
공식 사이트: www.great-wall-marathon.com
남극 아이스 마라톤 Antarctic Ice Marathon
남극에서 열리는 극한의 마라톤, ‘남극 아이스 마라톤 대회’는 기네스북이 인정하는 지구 최남단에서 펼쳐지는 대회입니다. 참가자들은 칠레의 푼타 아레나스(Punta Arenas)에서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 엘스워스 산맥(Ellsworth Mountains)에서 영하 20℃의 혹한을 견디며 달립니다.
남극의 광대한 미개척 지역인 마리 버리 랜드(Marie Byrd Land)에 위치한 엘스워스 산맥은 남극에서 가장 높은 산맥입니다. 여름에는 하루 종일 해가 지지 않고, 겨울에는 밤이 계속 지속되며 영하 30℃ 이하로 떨어지는 극한 추위로 유명하죠.
마라토너들은 육체적, 정신적 시험에 직면하며 끝이 보이지 않는 눈과 얼음 위로 달려야 하지만, 순백의 눈과 얼음 풍경은 비현실적으로 아름답기에 대조적입니다.
올해 대회는 12월 13일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남극 아이스 마라톤 대회가 버겁다면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진행되는 프로즌 컨티넨트 하프 마라톤(Frozen Continent Half Marathon)에 참가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참가를 위해서는 공식 사이트에서 신청서 작성 후 참가비 전액 또는 일부를 납부해야 합니다. 항공기 좌석 제한으로 선착순 접수되며, 최종 확정되면 추가 서류를 제출하는 단계가 있습니다. 보다 자세한 참가 방법은 공식 사이트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공식 사이트: www.icemarathon.com
로마 마라톤 Run Rome The Marathon
내년 3월 16일에 열리는 ‘로마 마라톤’은 수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를 배경으로 펼쳐집니다. 출발지 콜로세움(Colosseo)을 지나 콘스탄티누스 개선문(Arco di Costantino), 성 베드로 대성당(San Pietro), 스페인 광장(Piazza di Spagna), 나보나 광장(Piazza Navona), 진실의 입(Bocca della Verita) 등 역사적인 유적지들을 거쳐 다시 콜로세움으로 돌아오는 코스입니다.
로마 마라톤은 1995년에 시작된 비교적 젊은 대회지만 고대 로마의 숨결을 느끼며 달릴 수 있다는 매력 때문에 전 세계 마라토너들이 버킷리스트에 꼭 포함하는 인기 대회입니다.
2천 년이 넘는 시간동안 제국, 종교, 예술의 중심이었던 로마에서 낡은 샌들을 신은 검투사들이 밟고 지나간 자갈길을 따라 달리는 경험은 다른 곳에서 할 수 없으니까요!
공식 사이트: www.runromethemarathon.com
메독 마라톤 Marathon du Médoc
생수 대신 “레드? 화이트?” 라고 묻는 마라톤 대회가 있습니다.
프랑스 보르도(Bordeaux) 지역 지롱드의 메독 포도밭에서 매년 9월 열리는 메독 마라톤은 약 59 여개의 와이너리를 지나 달리는 대회입니다. 1984년 현지 달리기 애호가들이 재미로 이벤트처럼 시작한 대회가 현재 50여 개국에서 약 8,500명이 참가하는 인기 마라톤 대회로 발전했습니다.
코스 중간중간 와인을 시음할 수 있고, 대회 전후 다양한 음식·음악 행사도 진행되기에 축제에 가깝습니다. 참가자들은 매년 선정되는 드레스코드 주제에 맞춰 코스튬을 입고 달립니다. 코스 곳곳에 50개의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음악 휴식 시간, 23개의 와인 시음장 등 다양한 액티비티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인지 ‘세계에서 가장 긴 마라톤’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공식 사이트: www.marathondumedoc.com
니가타 시티 마라톤 Niigata City Marathon
지역 주민들이 직접 만든 주먹밥(오니기리)과 달콤한 모치를 나눠주는 ‘니가타 시티 마라톤’에 참여하면 일본 시골의 따뜻한 정을 제대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니가타 시티 마라톤 대회는 1958년에 시작해 6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며 해마다 수천 명의 마라토너들이 참가하고 있습니다. 대회가 열리는 니가타는 아름다운 논 풍경을 자랑하는 일본 대표 농업도시입니다. 품질 높은 프리미엄 쌀과 사케로 유명하죠. 북서쪽으로는 동해와 맞닿은 항구도시이기도 합니다.
매년 10월 열리는 이 대회는 일본에서 가장 긴 강 중 하나인 시나노 강(Shinano River)을 따라 니가타시 역사 박물관과 일본해 해안선, 시내의 아름다운 명소를 지나가는 코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공식 사이트: www.runfes-niigata.com
백야드 울트라 Backyard Ultra
미국 테네시의 작은 마을 벨 버클(Bell Buckle)에서 매년 10월 열리는 ‘백야드 울트라’는 인간의 정신력과 지구력을 극한으로 시험하는 독특한 마라톤 대회입니다. 백야드 울트라는 단순히 거리를 많이 달리는 것이 아니라, 극한 상황에서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점이 매력입니다.
이 대회는 신체적인 지구력뿐만 아니라 전략도 매우 중요합니다. 참가자들은 매시간 정각에 다시 출발해야 하기 때문에 짧은 휴식 시간 동안 체력을 회복하고, 음식을 섭취하며 집중력을 유지해야 합니다. 참가자들은 매시간 정각에 출발해 6.7㎞의 루프 코스를 반복해서 완주해야 하는데, 제시간에 돌아오지 못하면 바로 탈락입니다. 오징어게임처럼 대회는 끝까지 살아남는 단 1명의 생존자가 나올 때까지 계속됩니다. 그래서 무려 85시간 동안 진행된 기록도 있습니다.
2001년 처음 시작된 백야드 울트라의 정식 명칭은 ‘빅 도그 백야드 울트라(Big Dog’s Backyard Ultra)’입니다. 대회를 개최하는 라자루스 레이크의 개 이름에서 유래되었으며, 세계적으로 꽤 알려진 마라톤 대회입니다. 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지역 또는 국가별 실버 티켓 이벤트에서 우승하거나 좋은 성적을 거둬야 합니다.
공식 사이트: https://backyardultra.com
마라톤은 단순한 운동 그 이상입니다. 낯선 땅에서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이유로 출발선을 넘는 순간 우리는 모두 각기 다른 여정을 시작합니다. 길고 험난한 코스를 달리다 보면 지치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찾아오지만 그 속에서 깨닫는 것은 결국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성장입니다. 그리고 그 끝에 비로소 나만의 이야기를 완성하는 여정입니다.
"인생에서 꼭 골인점을 통과해야 할 필요는 없다. 완주할 필요는 없다. 다만 주어진 제한시간을 정해놓고 열심히 달렸다면 충분하다."
하루키의 말처럼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되, 그 과정 자체를 즐기는 것. 이것이 바로 마라톤을 통해 얻는 삶의 진리가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