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어를 따라 아이슬란드로, 빙어를 따라 홋카이도로, 참치를 따라 대서양으로 떠나는 ‘낚시 여행자’들은 생각보다 많습니다. 숙소와 항공권보다 먼저 낚시 시즌과 어종을 검색하고, 지도 위에 도시 이름보다 바다와 강, 호수부터 표시하는 사람들입니다. 물살을 가르며 날아가는 낚싯줄, 찌가 살짝 움직이는 순간의 떨림, 물고기와의 짜릿한 줄다리기. 그 손맛을 잊지 못해 사람들은 오늘도 낚싯대를 들고 바다와 강, 호수로 향합니다.
낚시에 빠진 이들이 말하는 낚시의 매력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찌 하나, 물결 하나만 바라보며 입질을 기다리는 순간. 머릿 속이 서서히 비워집니다. 하루 종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 찌가 ‘툭’하고 잠기거나 낚싯대가 ‘휙’하고 휘어지는 단 몇 초의 떨림이 찾아옵니다. 그때야 비로소 긴 기다림을 한 번에 보상받는 듯한 짜릿함이 밀려옵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얻는 성취감 때문에, 사람들은 낚시를 ‘기다림의 미학’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낚시의 방식도 생각보다 다양합니다. 방파제나 부두에서 즐기는 피어(pier) 낚시, 배를 타고 깊은 바다로 나가는 보트 낚시, 강과 호수, 얼음 위에서 즐기는 레이크&아이스 낚시까지. 사용하는 장비와 기법, 잡히는 어종, 배경이 되는 풍경까지 모두 달라서 여행지에 따라 낚시의 즐거움 역시 다른 얼굴을 보여줍니다.
낚시의 매력을 느껴볼 수 있는 세계 낚시 명소 세 곳을 소개합니다.
피어 낚시의 성지
영국 사우스엔드-온-시

런던 리버풀 스트리트 역에서 기차를 타고 한 시간쯤 달리면 사우스엔드-온-시(Southend-on-Sea)에 도착합니다. 템즈 강 하구가 바다와 만나는 이 도시는 19세기부터 런던 사람들의 대표적인 해변 휴양지였습니다.

이곳의 아이콘이자 랜드마크는 단연 사우스엔드 피어( Southend Pier)입니다. 1889년에 완공된 부두는 길이 2.16㎞에 이르는, 유럽에서 가장 긴 부두죠. 멀리서 보면 가느다란 선 하나가 바다 위로 곧게 뻗어 있는 것처럼 보이고, 실제로 입구 끝에서 끝까지 걸어가려면 30분 가까이 걸릴 정도입니다. 부두 끝을 향해 걸어가는 동안 얼굴을 스치는 바닷바람, 머리 위를 스쳐가는 갈매기 소리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집니다.

사우스엔드 피어가 특별한 이유는 또 있습니다. 입장료만 내면 누구나 피어 위에서 낚시를 즐길 수 있어서 장비만 있다면 초보자도 별도의 허가없이(상업 어업이 아닌 레저 낚시 기준) 체험할 수 있습니다. 안전 수칙도 비교적 단순해서 주말이면 가족 단위 낚시객들이 많습니다. 여기서 잡히는 어종은 대부분 영국 연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농어, 도미, 가자미입니다. 가끔 고등어떼가 지나가는 날에는 줄을 던지기만 해도 걸려들어 피어 전체에 환호성이 터지곤 합니다. 아이들이 생애 처음으로 잡은 물고기를 두 손으로 들고 환호하는 모습도 낯설지 않습니다.

사우스엔드-온-시는 런던 시내에서 기차로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당일치기 코스로, 도시 여행 중 하루쯤 바다 위 산책과 소박한 피어 낚시를 일정에 끼워 넣어 보고 싶은 이들에게 잘 어울리는 곳입니다. 낚싯대를 들지 않더라도 부두를 한 번 걸어보는 것 자체가 충분히 의미있는 경험입니다.
보트 낚시의 천국
포르투갈 카스카이스
리스본에서 기차를 타고 서쪽으로 30~40분 정도 달리면 작은 항구 도시 카스카이스(Cascais)가 나옵니다. 한때 포르투갈 왕가의 여름 별장이 자리하던 어촌이었지만 지금은 리조트 타운이자 마리나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해안을 따라 늘어선 건물들은 여전히 휴양지 특유의 느긋한 우아함을 품고 있습니다.

카스카이스는 보트 낚시의 메카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대부분의 보트 투어는 해가 뜨기 전 새벽에 시작됩니다. 마리나를 출발한 배는 곧장 대서양 쪽으로 방향을 틀고, 도시의 불빛이 점점 멀어지면 바다와 하늘만 남은 풍경 속에서 첫 캐스팅을 준비하게 됩니다. 계절과 포인트에 따라 도미, 유럽 농어, 고등어 등 다양한 어종을 노릴 수 있고, 더 먼 바다로 나가면 참치 같은 대형 어종을 겨냥한 딥시(Deep Sea) 낚시도 가능합니다. 파도가 잔잔한 날에는 배 옆으로 헤엄쳐 오는 돌고래 떼를 만나는 행운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낚시 준비도 필요없습니다. 대부분의 낚시 투어에는 낚싯대와 릴, 미끼, 라이프 재킷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어 그야말로 몸만 가면 됩니다(낚시 투어나 보트 대여 업체 이용 시 면허 포함). 가이드가 포인트 선정과 채비 방법까지 꼼꼼히 도와주기 때문에, 낚시가 처음인 여행자도 어렵지 않게 도전해볼 수 있습니다.
잡은 고기가 많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카스카이스 구시가지의 작은 레스토랑에 들르면 당일에 갓 들어온 신선한 해산물 요리를 충분히 즐길 수 있습니다. 직접 잡은 물고기를 요리해주는 곳도 있어, 자신이 낚은 생선으로 차려진 식사는 오래 기억에 남는 경험이 됩니다.
카스카이스는 낚시만으로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인근의 신트라(Sintra), 카보 다 로카(Cabo da Roca) 등 리스본 근교 명소들과 함께 일정에 묶기 좋아 포르투갈 여행을 계획한다면 꼭 한 번 고려해볼 만한 곳입니다.
겨울 호수 위 아이스 낚시
일본 홋카이도

눈과 얼음의 나라, 홋카이도. 일본 최북단에 자리한 홋카이도는 사계절 내내 낚시 천국으로 불리지만, 특히 겨울 낚시가 매력적입니다. 1월부터 3월까지 아칸호(阿寒湖), 시카리베츠호(然別湖) 같은 호수들은 두꺼운 얼음으로 덮이고, 현지인들은 얼음에 구멍을 뚫어 빙어를 낚는 아이스 낚시를 즐깁니다.
일본어로는 빙상조(氷上釣り), 그중에서도 와카사기(わかさぎ, wakasagi)라 불리는 일본 빙어 낚시가 유명합니다. 몸집은 작지만 떼를 지어 다니는 빙어를 얼어붙은 호수 위에서 한 마리씩 끌어 올리는 재미는 확실히 중독성이 있습니다.

삿포로 근교의 강과 아칸호, 포로토 호수 등이 아이스 낚시 명소로 유명하고, 영어 안내가 가능한 투어나 한국어 지원 체험장도 있어 언어에 대한 부담도 비교적 적습니다. 아이스 낚시가 열리는 호수 주변에는 온천 마을이 함께 자리한 곳들도 많아서 낮에는 얼음 위에서 낚싯대를 들고, 저녁에는 눈이 소복이 쌓인 노천탕의 온천에 몸을 담그는 일정으로 묶기 좋습니다.

낚시장에는 꽁꽁 언 호수 위로 작은 텐트들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텐트 안에는 작은 난로가 놓여 있고, 바닥에는 지름 20㎝ 남짓한 구멍이 뚫려 있는데, 그 아래로 까맣게 빛나는 물이 보입니다. 얼음 위에 텐트를 치고 난로를 피운 채, 짧은 낚싯대를 손에 쥐고 빙어의 입질을 기다리는 시간은 그 자체로 운치가 있습니다.
홋카이도 아이스 낚시의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 해도 직접 잡은 빙어를 바로 튀겨 먹는 순간이 아닐까요. 얼음 위에서 갓 잡은 빙어를 바삭하게 튀겨, 소금만 살짝 뿌리면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입안 가득 퍼집니다. 쉽게 잊히지 않는 이 맛을 다시 느끼기 위해 매년 겨울 홋카이도를 찾는 사람들도 꽤 많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투어 패키지에는 장비·텐트·의자·미끼까지 포함되어 있고, 현지 가이드가 채비부터 입질을 느끼는 요령까지 차근차근 알려주기 때문에 낚시 경험이 전혀 없어도 어렵지 않게 즐길 수 있습니다.
결과가 아닌 과정
물고기를 잡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물고기가 잡히든 잡히지 않든, 그 장소와 시간 속에서 천천히 흘려보낸 하루가 여행의 기억을 단단하게 만들어 줍니다. 낚시의 진짜 의미는 기다림 속에서 발견하는 여유와 평화에 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낚시는 여행의 속도를 한 번쯤 느리게 줄여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늘 좋은 핑계가 되어 주는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