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닝과 마라톤 열풍을 이끌어온 MZ세대 사이에서 사우나가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회복과 문화적 교류의 새로운 흐름으로 떠오른 것이죠. 크루가 함께 뛰고, 함께 기록하고, 함께 문화를 만들어가듯, 사우나 역시 함께 회복하고 소통하는 새로운 오프라인 커뮤니티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특히 술 대신 건강한 라이프 스타일을 택하는 사람들에게 사우나는 매력적인 소셜 플랫폼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소셜 사우나의 원조는 로마입니다. 3세기 카라칼라 황제가 완공한 고대 로마의 대욕장 테르마이(Thermae)는 무려 1,600명을 수용할 수 있었습니다. 정원과 도서관, 상점, 토론공간까지 갖춘 오늘날의 카페와 커뮤니티 라운지를 합쳐놓은 복합 소셜 공간에 가까웠습니다. 역사는 사라지지 않고 되풀이되는가 봅니다.
소셜 사우나 열풍의 중심에 있는 세계 곳곳의 가장 뜨거운 공간들을 소개합니다.
일본
일본은 사우나 문화를 가장 감각적으로 재해석한 나라 중 하나입니다. ‘사우너’라는 표현이 자연스럽게 통용될 만큼, 사우나는 이미 대중문화 깊숙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2024년 기준 약 1,780만 명이 정기적으로 센토(공중목욕탕)와 사우나를 이용하고 있으며, 전국적으로 1만 곳이 넘는 관련 시설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중 도쿄의 코가네유(Koganeyu)는 1932년 문을 연 전통 센토를 현대적으로 리노베이션한 공간으로, 탄산탕과 적외선 사우나, 카페 바까지 갖추며 MZ세대의 취향을 정확히 겨냥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목욕과 사우나를 넘어 음악을 즐기고, 사우나 뒤 맥주 한 잔과 대화를 나누는 ‘동네형 소셜 사우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한편 아카사카의 사우나 도쿄(Sauna Tokyo)는 40인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사우나와 3개의 냉탕풀을 갖춘 복합 공간입니다. 오스트리아식 아우프구스(Aufguss), 즉 뜨거운 사우나 내부에서 향이 더해진 증기를 퍼뜨리고 수건이나 부채로 열기를 전달하는 방식을 일본식 감성으로 공연처럼 풀어냅니다. 그래서 사우나 역시 충분히 감각적이고 예술적일 수 있음을 직접 경험할수 있습니다.
영국
영국의 사우나 문화는 역사가 짧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자유롭고 실험적입니다. 공공 사우나 시설이 2023년 45개에서 2025년에 147개로 급증한 것만 봐도 사우나가 얼마나 빠르게 자리 잡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런던 킹스 크로스의 슬로모(Slomo)는 장작 난방 사우나와 냉수 입수 시설(콜드 플런지), 얼음 탱크, 모닥불 공간을 결합한 형태의 시설입니다. 사우나 소셜 클럽(Sauna Social Club)도 흥미롭습니다. 사우나와 음악, 웰니스를 하나로 엮은 이곳은 클럽처럼 시끄럽지 않으면서도 깊은 경험을 선사해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밖에 커뮤니티 사우나 배스(Community Sauna Baths)는 2022년 해크니의 폐주차장과 옛마구간을 개조해 시작한 비영리 소셜 기업인데 현재 런던에만 4곳으로 확장하며 합리적인 가격으로 누구나 찾을 수 있는 커뮤니티형 사우나 모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는 유럽을 대표하는 목욕의 도시입니다. 지하에는 로마 시대부터 이어진 온천수가 여전히 솟아오르고, 목욕 문화도 사교 공간으로 시민들의 일상에 녹아 있습니다. 김이 피어오르는 풀장에서 체스를 두고, 밤이 되면 파티를 즐기는 풍경고 헝가리에서는 낯설지 않습니다. 유럽의 러너들이 부다페스트 마라톤 완주 후에 목욕탕으로 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루다스 온천(Rudas Thermal Bath)은 16세기 오스만 시기의 건축 유산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고풍스러운 건물 위에서 목욕과 사우나를 즐기고, 다뉴브강이 내려다보이는 루프톱 온수풀까지 이용할 수 있어 특별한 경험이 됩니다.

세체니 온천(Széchenyi Baths and Pool)도 헝가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죠. 1913년 개장한 신바로크 양식의 야외 온천입니다. 낮에는 체스판이 펼쳐지는 클래식한 공간이지만, 토요일 밤이 되면 DJ와 레이저 조명이 더해진 스파티(Sparty)로 변신하기도 합니다.
포르투갈
포르투갈은 최근 유럽에서 가장 주목받는 러닝 여행지 중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특히 카스카이스에서 리스본까지 이어지는 해안 코스를 달린 뒤 몸을 회복할 수 있는 사우나와 웰니스 공간들도 같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곳이 테르마스 드 샤베스(Termas de Chaves)입니다. 2,000년이 넘는 온천 역사를 지닌 이곳은 전통적인 로마 유산과 현대적인 웰니스 경험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에보라의 인 아쿠아 베리타스(In Acqua Veritas)는 고대 로마 목욕 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공간으로, 온도가 서로 다른 욕탕을 따라 이동하며 몸의 리듬을 조절할 수 있는 점이 특징입니다.
한편 카스카이스의 롱제비티 센시스 카스카이스(Longevity Senses Cascais)는 대서양 절벽 위에 자리한 성인 전용 부티크 웰니스 호텔입니다. 실내 온수 수치료 풀과 사우나, 하맘, 아이스 파운틴, 야외 염수 풀을 갖추고 있으며, 2박부터 14박까지 선택 가능한 웰니스 프로그램을 운영해 러닝 이후 회복까지 고려하는 여행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미국 동부
미국의 소셜 사우나는 최근 확산되고 있는 음주 습관을 조절하는 문화, 이른바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 흐름과 맞물리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뉴욕에서는 사우나 레이브와 냉탕 파티가 하나의 문화 현상이 되면서 미국식 소셜 사우나는 에너지와 커뮤니티 밀도를 지닌 장르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이 흐름을 대표하는 곳은 단연 아더십(Othership)입니다. 토론토의 한 뒷마당에서 셀프 사우나로 시작해 뉴욕까지 확장한 브랜드입니다. 100명을 수용하는 원형극장형 퍼포먼스 사우나를 중심으로 가이드 호흡법 클래스, 냉탕, 티 라운지를 결합해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합니다.
아더십이 대표되는 이유는 사우나와 냉탕을 음악과 호흡, 집단적 몰입감을 결합한 알코올 없는 소셜 웰니스 경험으로 재구성했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는 웰니스 오피니언 리더들과 뉴욕의 크리에이티브·테크 커뮤니티 사이에서 빠르게 입소문을 타며, 사우나를 술 없는 사교 문화의 중심으로 끌어올린 대표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브루클린의 배스하우스(Bathhouse) 역시 2019년 오픈 이후 빠르게 성장하며 뉴욕 소셜 사우나 씬을 이끄는 곳이 되었습니다. 온도별로 구성된 온탕과 냉탕, 핀란드식 드라이 사우나, 열대식 습식 사우나, 야외 루프톱 풀까지 갖추고 있어 높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친구가 되어 나오는 공간
사우나는 이제 집도 직장도 아닌 제3의 공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술 없이도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고, 모든 것을 내려두고 들어가기에 오히려 더 평등합니다. 휴대폰도, 직함도, 역할도, 겉치레도 없이 같은 열기와 같은 호흡을 공유하는 시간은 예상보다 깊은 연결감과 소속감을 만들어냅니다.
낯선 사람들이 친구가 되어 나오는 공간. 오늘날 소셜 사우나의 본질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는 말인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