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전문가칼럼

여행자들이 살린 방콕 ‘담는사두악’ 수상 시장
2019.04.29 페이스북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트위터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링크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운하 위에 보트를 탄 여행자와 알록달록한 열대 과일을 가득 실은 상인이 함께 넘실거리자 달달한 냄새와 상인들의 미소, 싱싱한 꽃이 주는 에너지가 한꺼번에 달려든다. 여기는 태국 방콕의 담는사두악 수상 시장이다.

태국 방콕의 담는사두악 수상 시장 입구
태국 방콕의 담는사두악 수상 시장 입구. ⓒShutterstock_Santi Rodriguez

태국 역사를 품은 수상 시장

태국을 이야기할 때 물을 빠트릴 수 없다. 농경 국가인 태국에서 물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더운 날씨에도 물은 필수다. 물 가까이 살고 물을 귀하게 여겼다. 태국 고유의 설날인 송끄란 때는 서로 물을 부어주며 행운을 빈다. 우리의 세배가 그들에게는 물 끼얹기다. 꽃과 소망을 띄우는 로이끄라통 축제도 물이 없으면 상상할 수 없는 축제다. 사람들은 강가에 살았고 운하가 점차 늘자 자연스럽게 물 위에 시장도 형성됐다. 직접 키운 채소와 과일, 강에서 잡아 올린 물고기를 시장에 내다 팔았다.

태국 담는사두악 수상시장은 여행자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활기를 되찾았다. 여행자를 실은 보트가 수상 시장을 지나고 있다.
태국 담는사두악 수상시장은 여행자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활기를 되찾았다. 여행자를 실은 보트가 수상 시장을 지나고 있다.

서로 필요한 것을 배에서 바꾸기도 했다. 눈을 마주치고 그동안 지냈던 이야기를 나누며 한참 이야기 마당도 펼쳤을 것이다. 아유타야 왕조 때 수상 시장은 전성기를 맞았다. 그러나 전국에 도로가 생기면서 사람들은 굳이 강을 이용할 필요가 없었다.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수상 시장이지만 오토바이와 차가 모든 것을 운반하면서 그 역할이 약해졌다. 수상 시장을 찾는 이의 발길도 줄었다. 그러나 여행자들이 찾으면서 시장은 활기를 다시 얻었다. 수상 시장은 전통이 여행자에 의지하고, 여행자가 전통에 기대는 여행지다.

여행자들은 물과 가까이 사는 태국 문화를 보기 위해 담는사두악 수상 시장(Damnoen Saduak Floating Market)으로 향한다. 랏차부리주에 있는 담는사두악 시장은 방콕에서 남서쪽으로 100km 정도 떨어져 있어 차를 타고 2시간 정도 달려야 한다. 이미 <짠내투어>를 비롯해, 백종원의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 등 여러 TV 프로그램에 등장해, 거리에서 우리말도 쉽게 들을 수 있다.

시장에 가면 현지인보다 여행자가 더 많아 눈이 똥그래진다. 현지인의 삶을 엿보기 위해 시장을 찾은 이라면 담는사두악 수상 시장에 조금 실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조금만 어슬렁거리다 보면 실망스러움은 옅어진다. 이국적인 풍광과 태국 현지 음식이 시장 가득 펼쳐져 있어 태국 문화를 피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물 위에서 꽃을 사고 과일을 파는 이색적인 풍경은 마음을 한없이 들뜨게 만든다.

꽃과 과일에서 각종 국수와 튀김 요리까지, 땅 위 시장 못지않은 다양한 상품과 먹거리가 가득하다.
꽃과 과일에서 각종 국수와 튀김 요리까지, 땅 위 시장 못지않은 다양한 상품과 먹거리가 가득하다.

통이 달린 막대로 주고받는 물건

배를 타고 미로 같은 물길을 헤치고 간다. 운하는 좁고 배는 많다. 성조 때문에 톤이 높은 태국어가 달려든다.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그사이에 여행자를 실은 배 옆으로 열대 과일을 실은 배들이 하나둘 지난다. 가라앉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과일을 가득 싣고 있다. 노를 젓는 여인은 그런 눈빛을 여러 번 봐서 당연하다는 듯이 오히려 미소를 보낸다.

그녀가 타고 있는 배는 ‘삼판’이라고 하는 작은 배로 폭이 좁고 길다. 좁은 운하에서도 물건을 많이 실을 수 있도록 바닥이 평평하다. 과일 파는 아낙들은 ‘모홈’이라는 농부의 전통 옷을 입고 있다. 농사를 짓다 바로 나와 장사를 하다 보니 모홈을 입고 시장에 나오곤 했다. 오래전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 ‘응옵’이라고 부르는 모자도 특징이 있다. 바람이 통하도록 모자 위에 공간이 있다. 농부들이 쓰는 태국 전통 모자로 원뿔처럼 생겼다.

수상 시장에서 눈길을 끈 풍경 중 하나는 물건과 돈을 주고받는 도구였다. 배 옆에 갈고리가 달린 긴 막대가 있어 용도가 궁금했는데, 바로 그 막대를 이용했다. 막대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망고를 주문했더니 통 안에 망고를 넣어 긴 막대로 전달해줬다. 망고를 받고, 통에 돈을 넣어 보내니 아낙은 활짝 웃음을 지어 보였다.

담는사두악 수상시장에서는 긴 막대를 이용해 물건과 돈을 주고 받는다
담는사두악 수상시장에서는 긴 막대를 이용해 물건과 돈을 주고 받는다

망고스틴부터 팟타이까지, 물 위의 푸드 코트

수상 시장에서 인기 있는 품목은 망고나 람부탄, 파파야, 바나나 같은 열대 과일이다. 태국의 기후와 토양은 일 년 내내 다양한 과일을 재배하기에 좋다. 그래서 열대 과일을 저렴하게 맛보는 것은 태국을 여행하는 큰 즐거움 중 하나다. 열대 과일은 색감이 화려해 눈까지 즐겁다. 진보라색 껍질 속에 하얀 속살을 숨기고 있는 망고스틴과 분홍색 피부에 털이 숭숭 박힌 람부탄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특유의 냄새 때문에 외지인들에게 큰 환영을 받지 못하는 두리안, 두리안과 비슷하지만 조금 큰 잭프루트, 태국 음식에 빠지지 않는 타마린드와 고수가 낯선 여행지의 흥취를 높여준다. 배에서 파는 것은 과일만이 아니다. 팟타이(볶음국수)를 비롯해 쌀국수, 샐러드, 심지어는 각종 튀김 요리까지 판다.

삼판에는 요리에 필요한 도구가 다 갖춰져 있다. 음식은 주문이 들어오면 즉석에서 바로 만든다. 기름을 가득 담은 프라이팬이 위태로워 보이지만, 수상 시장에 단련된 요리사는 여유 만만이다.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뚝딱 요리를 만들어낸다. 시장에 가려면 아침 일찍 서두르는 게 좋다. 더운 날씨 때문에 현지인들은 이른 아침부터 활동하기 때문이다. 새벽에는 현지인이 더 많다.

오전 10시가 넘으면 색색의 열대 과일만큼이나 다양한 머리색을 한 여행자들이 모여들어 여행자 반, 현지인 반으로 변한다. 아침에는 채소와 과일 등 먹거리를 파는 배가 대부분인 반면, 시간이 흐를수록 태국 기념품을 실은 배가 늘어난다. 국수를 한 그릇 든든하게 맛보고 망고스틴과 망고를 한 봉지 사고 나니 배 위에서 손짓하는 코끼리 인형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스르르 지갑을 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역시 시장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각종 진귀한 체험도 담는사두악 수상 시장 탐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재미다. 한 여행객이 커다란 뱀을 목에 둘러보고 있다.
각종 진귀한 체험도 담는사두악 수상 시장 탐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재미다.

글·사진 채지형

모든 답은 길 위에 있다고 믿는 여행가. <오늘부터 여행 작가> <안녕, 여행> <제주 맛집> <인생을 바꾸는 여행의 힘> <까칠한 그녀의 Stylish 세계 여행> <지구별 워커홀릭> 등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