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전문가칼럼

크리스마스의 낭만을 더하고 싶다면_ 뱅쇼
2019.12.23 페이스북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트위터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링크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영혼의 식탁] 뱅쇼

크리스마스의 낭만을 더하고 싶다면
프랑스에서 따듯한 뱅쇼 한잔

와인과 과일을 끓여 만든 프랑스 전통 음료 뱅쇼.
와인과 과일을 끓여 만든 프랑스 전통 음료 뱅쇼. 약 대신 마실 만큼 몸에 좋고, 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부담 없이 마실 수 있어 크리스마스 시즌과 연말 파티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메뉴다.

연말연시의 설렘과 함께 방학을 맞은 12월은 여행 성수기다. ‘어디로 떠날까?’라는 물음 앞에 몹시 다양한 선택지가 있지만, 이맘때 유럽으로 이목이 집중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바로 크리스마스! 대륙 전체가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반짝이는 유럽에서도 가장 설레는 여행지로 프랑스(France)를 꼽고 싶다. 크리스마스 시즌의 밤을 더욱 따뜻하고 진하게 물들이는 뱅쇼(Vin Chaud)가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 마켓이 들어섬과 동시에 뱅쇼 냄비도 줄지어 자리를 잡고 보글보글 끓는다.
크리스마스 마켓이 들어섬과 동시에 뱅쇼 냄비도 줄지어 자리를 잡고 보글보글 끓는다. 크리스마스트리 장신구를 고르느라 코가 빨개진 손님들에게 뱅쇼는 감기 예방 약이다.

와인을 품은 겨울 음료

뱅쇼는 ‘뜨거운 와인’이라는 뜻의 프랑스 와인이다. 이를 두고 영국에서는 ‘멀드 와인(Mulled Wine)’이라 하고, 독일에서는 ‘글뤼바인(Glühwein)’이라 부른다. 추운 겨울 유럽에서 쉽게 접하고 마실 수 있는 음료에 가까운 와인으로 굳이 비교하자면 우리네 유자차나 생강차에 견줄 수 있다.

프랑스에서는 연말 파티에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데, 와인이 들어갔다고 해서 이를 ‘술’이라는 카테고리에 넣지는 않는 분위기다. 오히려 술을 잘 못 마시는 사람들도 함께 즐길 수 있을뿐더러 각종 과일이 들어가 향이 좋고 보기에도 그럴듯해 특히 여성들에게 인기다.
뱅쇼의 인기는 날로 더해져서 레스토랑이나 바에 가야 맛볼 수 있던 것이 최근에는 커피 프렌차이즈에서도 마실 수 있게 됐다. 그만큼 보편적인 음료로 자리 잡았다는 뜻이다.

크리스마스 저녁, 프랑스에서는 뱅쇼와 통나무 모양의 전통 케이크 부쉬드노엘(Buche de Noel)을 곁들여 먹는다. 전통 과자 민스 파이(Mince Pie)도 뱅쇼, 아니 멀드와인의 단짝이다.”

필자가 대학생이었던 20년 전에는 뱅쇼를 마셔본 사람이 거의 없었다. 뱅쇼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친구가 대다수였고, 뱅쇼 좀 안다고 하면 요즘 말로 ‘트렌드세터’라 우러름을 받을 정도였다. 세상이 변해 요즘은 젊은 친구들도 집에서 뚝딱 만들어 먹는다고 한다. 한술 더 떠 포장을 뜯어 재료를 넣고 끓이기만 하면 되는 뱅쇼 패키지까지 나왔다.

취향에 따라 나만의 레시피로 홀짝

이런 시대에 ‘뱅쇼 레시피’란 말이 조금 무색하긴 하지만 나만의 레시피 하나쯤 가지고 있는 것도 괜찮다. 일상을 내 취향대로 더욱 향긋하고 달콤하게, 낭만 지수를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방법으로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집집마다 식혜며 수정과 만드는 비법이 다르듯 프랑스에서도 뱅쇼 만드는 레시피가 제각각이다. 기본적으로 레드 와인과 각종 과일, 과일 주스, 시나몬 스틱, 설탕이 들어간다. 여기에 팔각을 넣는 경우도 있다. 무엇을 첨가하든 자기 마음대로다.

뱅쇼는 시나몬 스틱으로 향을 내고 매콤한 맛이 나는 팔각도 종종 넣는다. 취향에 따라 꿀을 넣기도 하고, 들어가는 과일의 종류와 양을 조절해 맛을 달리한다.
뱅쇼는 시나몬 스틱으로 향을 내고 매콤한 맛이 나는 팔각도 종종 넣는다. 취향에 따라 꿀을 넣기도 하고, 들어가는 과일의 종류와 양을 조절해 맛을 달리한다.

필자의 취향에 맞춘 뱅쇼 레시피를 공개하자면, 우선 2만 원대의 레드 와인을 준비한다. 혹자들은 어차피 팔팔 끓일 거니까 가장 저렴한 와인을 사용하라고 하는데 끓여도 맛의 차이가 있다고 확신하는 바, 가격 경쟁력을 위해 맛을 포기한 와인은 배제한다.

적당한 레드 와인 1병에 사과, 오렌지, 레몬을 딱 두 쪽씩만 얇게 썰어 넣고 로즈메리를 살짝 띄운다. 이국적인 향이 딱 기분 좋을 정도로 스며든다. 여기에 시나몬 스틱과 오렌지주스를 약간 넣고 바글바글 끓여내면 끝! 뜨거울 때 머그컵에 담아 호호 불면서 홀짝홀짝 마시면 과장을 좀 보태, 내 몸의 면역력이 높아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렇게 한 잔을 진하게 마시고 남은 뱅쇼는 실온에서 식힌 후 냉장고에 넣는다. 역시 파티에 꺼내 놓거나 음식과 함께 마실 때는 시원한 상태여야 부담 없이 즐기기에 좋다.

뱅쇼라는 이름은 '뜨거운 와인'이라는 뜻이지만 취향에 따라 차게 식혀 마시기도 한다. 그리고 역시 취향에 따라 레드 와인 대신 화이트 와인으로 만들기도 한다.
뱅쇼라는 이름은 ‘뜨거운 와인’이라는 뜻이지만 취향에 따라 차게 식혀 마시기도 한다. 그리고 역시 취향에 따라 레드 와인 대신 화이트 와인으로 만들기도 한다. 엄격한 레시피가 없고 얼마든지 개성과 취향에 맞게 만들어 먹는다는 점도 뱅쇼의 매력이다.

뱅쇼를 언제 어디서나 쉽게 마실 수 있다 보니, 희소가치가 조금 떨어지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핑계로 뱅쇼의 본고장인 프랑스에 눈독을 들인다. 그것도 눈 내리는 겨울, 크리스마스가 있는 12월이면 더 낭만적이겠다. 고백하건대 프랑스를 아직 못 가본 필자의 사심 가득한 제안이긴 하지만, 나름의 타당한 이유도 있다.
여행사 대표이자 여행 작가인 지인에게 들은 증언에 의하면 추운 겨울 프랑스 거리에서 한 손에 뜨거운 뱅쇼 한 잔을 들고 크리스마스 마켓을 구경하는 맛이 진짜라고. 물론 우아하고 고풍스러운 바나 레스토랑에서 마시는 것도 좋지만, 모름지기 뱅쇼는 뜨겁고 주변은 추워야 제맛이란다.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마켓이 특별한 낭만을 더하니, 그래서 진짜다.

글_ 김수영
10여 년간 여성지 기자로 일하다 요리 전문 매거진에서 미래를 찾았다. 현재는 프리랜스 푸드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으며, 각종 요리 관련 브랜드 기획과 레시피북 제작 등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