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알라룸푸르에서 한 달 살기라고? 쿠알라룸푸르가 어디에 있는지, 말레이시아의 수도인지조차 모르는 사람에게는 낯설 것이다. 하지만 쿠알라룸푸르는 첫발을 딛는 순간부터 고향같이 편하게 느껴지는 도시다. 세계 곳곳을 여행하면서도 다시 돌아오고 싶게 만드는 쿠알라룸푸르의 매력은 무엇일까?
모든 인종이 함께 어우러지는 코즈모폴리턴의 도시
쿠알라룸푸르는 나와 다른 피부, 다른 문화,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에 쉽게 익숙해지는 도시다. 히잡을 쓰고 미소를 건네는 말레이 아가씨들과 인사하고 돌아서면 어느새 중국인 아주머니가 힘차게 냄비를 휘젓고 있고, 떠들썩하게 난을 굽는 인도인의 레스토랑을 나서자마자 금발 서양인이 앉아 신문을 보고 있는 카페로 들어간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이 각양각색의 모습이다 보니 나를 누구와 비교할 필요를 덜 느낀다. 여행자의 신분으로 거리를 걸으면서 그 나라 사람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누군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기 어렵다. 각자 모두 다른 존재이고, 그래서 누구나 완벽하다. 도착한 지 하루 만에 자신이 이 도시의 일원이 된 듯한 기분이 드는 곳, 시간이 지날수록 더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는 곳이 바로 쿠알라룸푸르다.
쿠알라룸푸르는 말레이시아의 수도로,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의 도시 중에서 가장 대도시다운 면모를 갖춘 곳이다. 특히 미래 도시 분위기의 최첨단 빌딩 숲을 이루고 있는 쿠알라룸푸르 시티 센터(Kuala Lumpur City Centre, 이하 KLCC) 지역을 걷다 보면 그동안 동남아시아에 대해 낙후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쌍둥이 빌딩 중 하나를 우리나라 건설사가 완성했다는 이유로 쿠알라룸푸르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가 바로 여기에 있다. 트윈 타워를 비롯한 KLCC의 빌딩들은 햇빛을 반사하는 낮과 조명을 받는 밤의 모습이 완전히 다른 분위기다. 쿠알라룸푸르에 왔다면 반짝이는 빌딩의 불빛을 내려다보며 야경을 즐기기 좋은 전망대나 루프톱 바에 꼭 한번 올라가봐야 한다. 당신이 도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쿠알라룸푸르 야경은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다.
쿠알라룸푸르는 과거의 모든 것을 갈아엎고 탄생한 도시가 아니다. 21세기를 상징하는 빌딩 숲을 조금 벗어나면 역사를 간직한 건축물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 모습을 만나기 좋은 곳이 메르데카 광장이다. ‘메르데카’는 독립이라는 뜻으로 과거 영국, 네덜란드 등 열강의 지배를 받았던 말레이시아의 독립을 상징하는 장소이다.
역설적으로 술탄 압둘 사마드 빌딩을 비롯한 광장 주변의 건물들은 전부 식민지 시대에 지배국의 건축가들이 세운 것이다. 그들은 영국, 인도, 무슬림 스타일을 섞어 말레이시아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건축 양식을 만들었다. 쿠알라룸푸르에서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모스크인 마스지드 자멕 역시 서양 건축가의 손에서 탄생했다. 아픈 역사를 가슴에 품고 자신들의 유물로서 간직하고 있는 이곳의 스카이라인이 쿠알라룸푸르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든다.
말레이시아는 무슬림인 말레이인들이 이끌어가는 이슬람 국가지만, 동시에 이들이 중국인, 인도인과 함께 어울려 사는 국가이다. 그래서 중국인과 인도인들이 모여 사는 지역에 가면 마치 새로운 나라를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 차이나타운은 19세기 중반, 주석 광산 붐을 타고 쿠알라룸푸르로 모여든 중국 이민자들이 모여 살던 지역이다. 지금은 서울의 남대문 시장처럼 여행자들을 위한 저렴한 기념품과 여행 물품을 파는 쇼핑 타운으로 하루 종일 시끄러운 흥정 소리로 가득하다. 옛날 2층짜리 숍 하우스들이 나란히 늘어서 있는 가운데 맛있는 먹을거리를 파는 가게와 노점들이 골목 사이에 숨어 있다.
반면 리틀 인디아 지역에 들어서면 알록달록한 매장 간판 아래 화려한 인도풍 옷을 파는 상점 앞에서는 흥겨운 인도 노래가 흘러나오고, 식당에서 풍기는 독특한 향신료 냄새가 거리에 배어 있다. 굳이 시간 내서 다른 나라를 찾지 않아도 하루에 3개 나라를 여행하는 기분을 낼 수 있는 곳이 쿠알라룸푸르다.
3가지 문화가 만들어낸 무한의 맛
쿠알라룸푸르에서 먹을거리를 찾아 나서보면 이 도시가 얼마나 독특한 도시인지 금방 알 수 있다. 말레이인들은 이슬람교를 믿으며 돼지고기를 먹지 않지만 중국인들은 돼지고기 음식을 정말로 사랑한다. 대부분이 힌두교인인 인도인들은 쇠고기를 먹지 않는다. 이 세 민족이 함께 사는 땅을 여행한다는 것은 민족마다 특색 있는 요리를 한곳에서 모두 맛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아침은 중국인이 즐기는 방식으로 카야 토스트와 함께 커피를 마시고, 점심은 말레이인의 솔 푸드라고 할 수 있는 나시르막을, 저녁은 인도인이 즐기는 바나나잎 라이스를 먹는다. 적어도 쿠알라룸푸르에서는 한 달 살면서 문화적 차이 때문에 먹지 못하는 음식은 없다. 또한 이곳 사람들은 서로 다른 음식 문화를 받아들여 말레이만의 독특한 요리를 만들어냈다. 중국 전통 요리법에 말레이식 양념과 향신료를 넣은 음식을 ‘뇨냐 요리’라고 부르는데, 중국계 이주민과 결혼한 말레이 현지 여인의 후손을 가리키는 ‘바바 뇨냐’라는 말에서 나왔다.
인도 음식 역시 말레이식으로 변형한 퓨전 스타일의 요리를 맛볼 수 있다. 또한 쿠알라룸푸르는 SNS에 자랑할 수 있는 예쁜 브런치와 100년 된 전통 맛집의 요리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부킷 빈탕이나 방사 지역에 가면 SNS를 화려하게 장식할 수 있는 세련된 카페와 레스토랑들을 탐험할 수 있다. 최근 한류 바람이 불면서 쿠알라룸푸르 곳곳에서 한식당을 쉽게 찾아볼 수 있으므로 한식만 찾는 사람들도 쉽게 적응할 수 있다. 쿠알라룸푸르에서는 얼마 동안 머물든 간에 맛의 경험을 넓히는 데 지루해질 틈이 없다.
자연주의자와 쇼퍼홀릭까지 만족시키는 곳
여행을 단순히 쉬러만 가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개성 넘치는 거대한 쇼핑몰 안에 유명 브랜드가 가득한 쿠알라룸푸르는 한 달의 시간 동안 휴가와 쇼핑을 함께하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다. 날씨가 덥고 습한 쿠알라룸푸르에서 쇼핑몰은 쾌적한 환경에서 쇼핑과 식사, 휴식을 겸할 수 있는 ‘일거삼득’의 장소다. 공항, 버스터미널, KLCC, 부킷 빈탕 등 여행자가 머물거나 쉽게 이동할 수 있는 곳마다 개성 있는 초대형 쇼핑몰이 자리 잡고 있다.
꼭 가봐야 할 대표적인 쇼핑몰이라면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 아래에 있는 수리아 KLCC와 부킷 빈탕의 터줏대감인 파빌리온을 꼽을 수 있다. 현지인들이 사랑하는 저렴한 로컬 브랜드에서 한국보다 저렴한 명품까지 맘껏 쇼핑을 즐겨보자. 그렇다고 회색 빌딩과 쇼핑몰만 가득한 삭막한 도시를 상상하면 안 된다. 쿠알라룸푸르는 열대우림이 우거진 강변에 처음 세워진 도시로 대도시의 인프라를 누리면서 동시에 열대의 자연도 만끽할 수 있는 도시다.
트윈 타워 아래 KLCC 공원에 가면 울창한 열대 숲 사이로 난 산책로와 호수를 즐기며 잠시 도시의 열기를 식힐 수 있다. 일명 ‘레이크 가든’이라 불리는 페르다나 보태니컬 가든은 도시 중심부에서 허파 역할을 하고 있다. 이곳 옆에는 새 공원이 있는데 규모가 너무나 커서 마치 거대한 새장 안에 사람이 함께 들어가 구경하는 기분이 든다. 쿠알라룸푸르에서 차를 타고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면 맹그로브 늪지에 서식하는 반딧불이를 구경할 수 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보트를 타고 조용히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 만나는 화려한 반딧불이 무리는 쿠알라룸푸르 여행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다른 나라에 가면 그곳에 사는 한국인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항상 그들에게 묻는 말이 있다. “여기 살기 좋아요?” 그러면 “생각보다 그리 좋지 않아요” 아니면 “보기와는 달라요”가 대체로 듣게 되는 대답이었다. 그런데 쿠알라룸푸르에 사는 교민이나 개인적인 친구들에게서 듣는 대답은 달랐다. 그들은 밝게 웃으며 “여기 정말 살기 좋아요”라고 말한다. 그 말에 동의하듯 나도 매년 고향을 찾는 기분으로 쿠알라룸푸르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당신도 한 달의 시간을 쿠알라룸푸르에 허락한다면, 이곳에서 보내는 하루하루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쿠알라룸푸르에서 한 달 살기! 체크리스트
어떤 숙소에서 묵을까?
쿠알라룸푸르에는 저렴한 게스트하우스에서 호스텔, 에어비앤비 그리고 5성급 호텔까지,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숙소가 있다. 장기 숙박의 경우 투숙객이 수영장과 헬스장까지 이용할 수 있는 현대식 콘도 안에 있는 숙소가 만족도가 높다. 가격이 저렴한 배낭여행자용 숙소는 주로 차이나타운 지역에 모여 있으며, 도시 중심부인 부킷 빈탕과 KLCC 지역에는 중급과 고급 호텔이 많다. 아이들의 경험과 교육을 위해 쿠알라룸푸르에 왔다면 단독주택 형태의 숙소가 많은 방사 지역과 국제학교가 모여 있고 한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몽키아라 지역을 고려해보자.
그랩(Grab)을 이용하자
쿠알라룸푸르는 경전철인 LRT와 모노레일, 시내버스 등 대중교통 수단이 잘 발달되어 있는 편이다. 하지만 좀 더 편리한 이동을 원한다면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차량 공유 서비스인 그랩을 이용해보자. 휴대폰 애플리케이션으로 차량을 호출하면 자신이 있는 곳에서 목적지까지 편하게 이동할 수 있다. 택시에 비해 비용이 저렴하면서도 처음 차량 매칭 시 요금이 결정되므로 요금에 대한 시비가 붙을 일이 없다.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에 미리 휴대폰에 애플리케이션을 깔고 회원가입을 해두면, 공항에 내려서부터 곧바로 사용할 수 있다. 공항에서 현지 유심을 구입해 데이터 사용과 전화가 가능한 상태로 만들어두면 그랩 드라이버들과 전화나 메시지로 연락할 때 편리하다.
한 달 살기에 현금카드는 필수
쿠알라룸푸르 시내에서는 한국 돈을 바로 환전할 수 있는 환전소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대형 쇼핑몰 안에 있는 환전소도 환율이 나쁘지 않은 편이라 필요할 때마다 환전해도 된다. 하지만 한 달 이상 장기간 머물 계획이라면 현금카드를 준비하는 것이 좋다. 가지고 있던 국제 현금카드를 사용해도 되지만, 우리·씨티·KEB하나·신한은행에서 ExK 마크가 붙은 체크카드를 발급받으면 현지 은행의 ATM 기기에서 국제 네트워크 수수료 없이 인출할 수 있다.
쇼퍼홀릭을 위한 최고의 시즌
당신이 쇼퍼홀릭이라면 꼭 체크해두어야 할 쇼핑 시즌이 있다. 하나는 ‘말레이시아 메가 세일 카니발’로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긴 세일 기간이다. 주로 5월 말에서 8월 말 사이에 약 45일간 계속되는데 의류, 가구 등 명품 브랜드가 대규모 세일에 들어간다. 이슬람 최대 종교 행사인 라마단이 끝나는 기간이 겹치면 추가 할인이 되기도 한다. 두 번째는 ‘말레이시아 이어 엔드 세일’로 매년 11월 말부터 이듬해 1월 초 사이, 약 한 달간 열리는 쇼핑 축제다. 업체들이 한 해 동안 판매하고 남은 재고를 털어내는 행사라 할인율이 높다.
열대 기후에 대비하자
쿠알라룸푸르는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와 마찬가지로 열대성 기후에 속해 있다. 연평균 기온이 27oC 정도, 평균 습도는 60%를 넘어서 연중 고온 다습한 편이다. 여름옷을 준비해야 하며 자외선차단제와 선글라스가 필수 품목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1년 내내 더운 여름 날씨지만 계절풍의 영향으로 건기와 우기가 생긴다. 우기는 10월에서 12월, 3월에서 5월 사이로, 이때는 천둥 번개와 함께 급작스럽게 비가 쏟아지다가 역시 갑자기 그친다. 불시에 내리는 비에 대비해 휴대하기 편한 우산을 상비하면 좋다. 지하철, 쇼핑몰, 고속버스에서는 에어컨을 강하게 틀기 때문에 외부와 온도 차이가 크게 난다. 찬 바람을 막을 수 있는 스카프와 얇은 카디건으로 건강을 지키자.
그 외 생각할 것들
말레이시아의 교통 체계는 우리나라와 정반대인 좌측통행이다. 길을 건널 때는 항상 오른쪽부터 살펴봐야 한다. 또한 말레이시아는 우리나라와 완전히 다른 3구식 전기 플러그를 사용하니 한국 가전제품을 사용하려면 멀티 어댑터가 반드시 필요하다.
글·사진_ 김준현
여행 작가 겸 사진작가. 저서로는 <프렌즈 말레이시아> <라오스 100배 즐기기> <발리 홀리데이> 등이 있다.
대한항공 운항 정보
인천 ~ 쿠알라룸푸르 주 7회 매일 운항
※ 자세한 스케줄은 대한항공 홈페이지(www.koreanair.com)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