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전문가칼럼

최고의 역사를 자랑하는, 리딩 터미널 마켓
2019.06.02 링크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역사의 중심에서도 최고의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필라델피아 리딩 터미널 마켓

미국 역사 교과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필라델피아.
여행을 안내해준 킴벌리가 가장 먼저 데리고 간 곳은 리딩 터미널 마켓이었다. “일단 ‘올드 시티 커피’에서 커피 한 잔 마시고, 프레츨로 배도 채우자고.” 형형색색 채소와 각양각색 냄새가 흐르는 리딩 터미널 마켓을 한 바퀴 돌고 나니 킴벌리가 왜 시장으로 먼저 데려왔는지 알 것 같았다.

미국 동부에 자리한 필라델피아는 미국 독립선언서가 낭독된 역사적인 도시다. 도시 곳곳에는 미국 최초의 종합대학, 공공 도서관, 증권 거래소 등 ‘최초’라는 타이틀을 가진 곳이 셀 수 없이 많다. 12번가와 아치 스트리트 사이에 자리한 리딩 터미널 마켓(Reading Terminal Market)도 그중 하나다.

리딩 터미널 마켓 풍경
리딩 터미널 마켓 풍경

1893년 문을 연 리딩 터미널 마켓은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장이다. 필라델피아가 성장하면서 사람이 몰려들었고 자연스럽게 농산물을 사고파는 노점이 들어섰다. 길거리에서 농산물을 사고팔자 안전과 위생 문제가 생겼고, 야외가 아닌 실내 시장이 필요해져 리딩 철도 회사의 지붕 있는 차고에 리딩 터미널 마켓이 탄생했다.
저장과 물류 시스템을 갖춘 이 시장은 문을 열자마자 인기가 폭발해 전국적으로 명성을 떨쳤다. 1930년대 대공황 때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세월의 파도를 넘고 넘어 오늘날 고풍스러운 멋과 세련된 맛을 함께 지닌 훌륭한 시장으로 발전했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파머스 마켓

리딩 터미널 마켓은 도시 중심, 시 청사 근처에 자리 잡고 있었다. 고풍스러운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오감이 활짝 열렸다. 싱싱한 농산물과 생생한 해산물, 고기를 파는 가게와 함께 고소한 프레츨과 달달한 도넛 등 필라델피아 맛집이 시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먹고 싶은 것과 사고 싶은 것이 넘쳐 한동안 주춤거리며 선택장애가 일어났다.

파머스 마켓의 농산물은 인근 지역의 농장에서 농부들이 직접 가져다 공급한다.
파머스 마켓의 농산물은 인근 지역의 농장에서 농부들이 직접 가져다 공급한다.

처음 발걸음이 향한 곳은 파머스 마켓.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농부들의 공간으로, 인근 지역 농장에서 기른 농산물을 직접 가져다 공급한다. 아스파라거스, 파프리카, 양파, 감자, 토마토 등 땅기운을 품은 농산물이 저마다 반짝반짝 빛났다.
어선에서 막 배달된 해산물도 풍성했다. 연어와 황새치, 굴, 홍합 등 식탁을 맛있게 장식해줄 식재료 가게들이 촘촘하게 이어져 있었다. 눈길을 사로잡는 재료는 치즈였다. 페퍼 잭, 하바네로 체다, 라벤더 구다, 폰탈 등 생소한 이름의 치즈가 냉장고를 꽉 채우고 있었다.
치즈와 함께 군침이 돌게 만든 식품은 레이스처럼 썰어놓은 햄이었다. 산처럼 쌓인 그 모습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을 지경이었다.

아이스크림부터 치즈 스테이크, 애플 덤플링까지 ‘맛의 파라다이스’

파머스 마켓에서 농산물 구경을 마치고 나면 본격적인 음식 탐험에 나설 차례다. 필라델피아에서 사는 제프리는 “가장 미국적인 음식과 다국적인 음식을 만날 수 있는 특별한 곳”이라며 “점심시간은 피해야 해. 너무 사람이 많아 줄이 엄청나게 길거든”이라며 손사레를 쳤다. 제프리의 말대로 필라델피아의 대표 아이콘 중 하나인 치즈 스테이크부터 베이징 덕, 인도의 사모사, 프레츨, 달콤한 아이스크림까지 국적도 맛도 다른 음식이 즐비했다. ‘맛의 파라다이스’가 따로 없었다.

먼저 ‘바세츠 아이스크림(Bassetts Ice Cream)’ 가게. 한입 먹자마자 눈이 똥그래졌다. 버터 함량이 높다더니 맛이 진했다. 일반 아이스크림을 너댓 개 농축한 느낌이었다. 바체츠를 이야기할 때는 긴 역사도 빼놓으면 안된다.
바세츠가 문을 연 것은 157년 전인 1861년. 에이브러햄 링컨이 대통령이던 시절로, 우리나라에서는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만든 해다. 6대에 걸쳐 지금까지 한자리에서 아이스크림을 만들어왔으며, 미국 전역에 450여 개의 체인점을 운영한다.

리딩 터미널 마켓을 대표하는 아이콘 중 하나인 ‘밀러 트위스트’의 프레츨
리딩 터미널 마켓을 대표하는 아이콘 중 하나인 ‘밀러 트위스트’의 프레츨

‘밀러 트위스트(Miller’s Twist)’의 프레츨도 리딩 터미널 마켓을 대표하는 아이콘 중 하나다. 매장에서 직접 손으로 신선한 반죽을 만들고 버터를 발라 프레츨을 만든다. 진한 치즈와 고소한 베이컨이 어우러져 잊지 못할 맛을 선물한다.

남은 동전은 필버트에게

필라델피아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은 필리 치즈 스테이크로, 리딩 터미널 마켓 곳곳에서 풍성한 맛의 치즈 스테이크를 맛볼 수 있다. 시장 안에는 샌드위치로 유명한 곳도 있는데, 바로 ‘디닉스(DiNic’s)’다. 미국 트래블 채널에서 2013년 미국 최고의 샌드위치로 선정한 이후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얇게 썰어 구운 돼지고기를 긴 빵에 넣고, 잘게 다진 브로콜리 등 채소를 올려 만든 디닉스 샌드위치는 꼭 먹어봐야 할 음식이다.

‘더치 이팅 플레이스(Dutch Eating Place)’는 리딩 터미널 마켓에서도 독특한 곳이다. ‘아미시’가 운영하는 식당으로 미국에 얼마나 다양한 문화가 존재하는지 보여준다. 아미시는 기술 문명을 거부하고 소박한 농경 생활을 하는 종교 공동체. 더치 이팅 플레이스에서 일하는 스태프들은 18세기에 입었을 법한 소박한 옷을 입고 있다. 가장 인기 있는 음식은 휘핑크림이 잔뜩 든 따뜻한 애플 덤플링. 정성이 가득 담긴 ‘집표’ 간식 같다고나 할까.

리딩 터미널 마켓의 마스코트, 필버트
리딩 터미널 마켓의 마스코트, 필버트

신나게 시장을 돌아다니다 보니 시장 한가운데 있는 돼지 동상이 눈길을 끌었다. 이름은 ‘필버트(philbert)’. 지역 예술가인 에릭 버그가 만든 작품으로 리딩 터미널 마켓의 마스코트란다.
필버트의 뜻밖의 역할이 있었다. 기부를 받는 것. 필버트에게 기부된 돈은 건강한 식생활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고 한다. 얼마 되진 않지만 남은 동전을 필버트의 먹이로 넣어주었다. 배도 든든하고 마음도 한결 넉넉해진 기분이었다.

글ㆍ사진_ 채지형
모든 답은 길 위에 있다고 믿는 여행가. <오늘부터 여행작가> <안녕, 여행> <제주 맛집> <인생을 바꾸는 여행의 힘> <까칠한 그녀의 stylish 세계 여행> <지구별 워커홀릭> 등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