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여행지] 전설을 여행하다_ ② 하와이
작년 5월, 하와이 제도 하와이섬(빅아일랜드)의 화산 킬라우에아(Kilauea)가 용암을 뿜었다. 높이 솟구친 용암이 주변을 태우며 도로까지 흘러내리자 인근의 원주민들은 검은 돌을 가져와 뜨거운 용암 앞에 두고 기도를 올렸다. 화산의 여신 펠레(Pele)에게 분노를 멈춰달라는 뜻으로 가져다 놓은 것이다.
전설에 의하면 하와이섬들은 펠레가 만들었다. 창조주라 하면 피조물을 아끼고 인자하게 보듬는 모습을 상상하기 마련이지만, 전설 속의 펠레는 성질이 불같고 질투가 많다. 원주민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언니, 눈의 여신 폴리아후(Poliahu)를 질투해 걸핏하면 다투었는데, 언니에게 질 때마다 분노(화산)를 터뜨렸다고 한다. 한마디로 다혈질, 그가 뿜어내는 용암과 꼭 닮았다.
여신의 궁전조차 연신 하얀 김이 피어오르는 화산 분화구 할레마우마우(Halemaumau)다. 킬라우에아의 여러 분화구 중 하나로 ‘불의 집’이라는 뜻을 지녔다. 낮에는 연기를 피워 올리고 밤만 되면 새빨간 불꽃을 피워 올려 하와이만의 색다른 야경으로 손꼽혔는데 지난해 킬라우에아가 크게 요동친 후로 어쩐지 얌전해졌다고 한다. 그래도 신비로운 연기를 뿜어내는 낮의 풍경은 여전히 하와이 화산국립공원(Hawaii Volcanoes National Park)의 탐방 구역에서 만날 수 있다.
하와이 화산국립공원은 섬 중앙의 마우나로아(Mauna Loa) 화산에서 킬라우에아와 남쪽 해안까지 포함한 지역으로 1987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됐다. 마우나로아와 킬라우에아 둘 다 비교적 젊은 축에 속하는 활화산인데 탐방 구역은 주로 킬라우에아에 몰려 있다.
하와이 화산국립공원을 둘러보면 용암이 굳어서 생긴 검은 땅 위에 외롭게 핀 빨간 꽃나무가 종종 눈에 띈다. 이 꽃나무에도 펠레의 전설이 녹아 있다.
자신의 영토를 거닐던 펠레는 오히아(Ohia)라는 멋진 남자를 마주치고는 첫눈에 반해 사랑을 고백했다. 하지만 오히아는 절대 권력을 지닌 여신의 당당한 고백에 꿈쩍도 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부인 레후아(Lehua)가 있었기 때문이다.
분노한 여신은 오히아를 나무로 만들어버렸고 졸지에 사랑하는 이를 잃은 레후아는 나무 옆을 지키며 슬피 울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다른 신들이 레후아를 오히아에게서 떨어지지 않는 빨간 꽃으로 만들어주었다. 빨간 꽃을 꺾으면 헤어진 이들의 슬픔을 담아 하늘에서 비가 내린다고 한다.
펠레가 북태평양에 크고 작은 섬들을 만들어놓기는 했지만, 인간의 삶에는 크게 관여하지 않았나보다. 각각의 섬에 터를 잡은 여러 부족은 오래도록 반목하며 서로 창과 칼을 겨누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의미심장한 예언이 등장한다. ‘날개 달린 새와 같은 하늘의 별이 위대한 족장의 탄생을 알릴 것’이라고.
예언대로 핼리 혜성(Halley’s Comet)이 지구 곁을 새처럼 날아간 1758년, 하와이섬 북쪽의 작은 마을 카파아우(Kapaau)에서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그가 훗날 사분오열된 하와이를 하나로 통일한 카메하메하(Kamehameha)다.
왕이 될 운명을 타고난 아이는 다른 부족의 위협을 피해 와이피오(Waipio) 계곡에 숨겨졌다. 와이피오 계곡에 ‘왕의 골짜기’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타고난 기질과 그를 지키려 했던 부족의 노력 덕분에 훌륭한 전사로 성장한 청년은 왕이 될 자를 알아본다는 전설의 바위, 나하스톤(Naha Stone)을 들어 올리며 통치자로서의 자질을 증명했다. 그는 수년간의 갈등을 뒤로하고 1810년에 하와이 제도를 하나의 왕국으로 통일한다.
카메하메하는 뛰어난 전사이자 훌륭한 정치가이기도 했다. 서양의 선진기술을 받아들이고 왕국의 법과 제도를 만들었다. 섬과 섬 간의 분열을 노렸던 유럽 열강에게서 하와이를 지켜낸 인물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후손들은 위대한 왕을 기억하기 위해 그의 조각을 만들어 세웠는데, 오아후(Oahu)섬 이올라니(Iolani) 궁전 앞에 있는 동상은 금빛 케이프를 걸친 근엄한 대왕의 모습을 하고 있다. 비슷한 모습의 또 다른 동상이 하와이섬 힐로(Hilo)에 있으며, 그의 고향인 카파아우에는 다른 동상들보다 소박한 모습으로 서 있다. 조금씩 다른 동상의 외형은 후손들이 떠올리는 그의 여러 가지 모습을 반영한 듯하다.
하와이 제도를 통일한 강한 전사이자 노인과 여성, 어린이와 같은 약자를 보호하는 법을 마련한 인자한 군주였던 그. 새빨간 용암을 꿈틀거리며 화낼 기회만 엿보는 펠레와는 또 다른 하와이의 전설이다.
글_ 강미아
여행만큼 여행 책을 좋아하는 글쟁이. 여행을 다녀온 모든 곳이 좋았지만 실은 언제든, 어디로 가든 이륙하는 비행기 안이 제일 좋은 사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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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세한 스케줄은 대한항공 홈페이지(www.koreanair.com)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