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여행

[일상의 재발견] 밥심으로 일한다_ RICE
2025.06.16 링크주소 복사 버튼 이미지 페이스북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카카오톡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트위터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링크드인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인쇄하기 버튼 이미지
일상의 재발견 쌀 인류의 영원한 주식  RICE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주식으로 삼는 쌀은 인류 생존의 필수 존재로 함께해 왔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밥심으로 일한다”는 말이 있죠. “밥을 먹고 나서 얻는 힘으로 일을 한다”라는 의미로, 쌀밥 한 그릇에서 나오는 힘이 하루를 버티게 한다는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말입니다. 태국 사람들은 쌀밥을 어머니처럼 여기며 숟가락을 들고, 서구에서는 결혼식 때 신랑과 신부에게 쌀을 뿌리는 풍습이 있습니다. 이 풍습은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상징이며, 고대 로마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처럼 쌀은 동서양에서 모두 귀하게 여겨졌습니다.

쌀의 기원은 무려 1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학자들은 쌀 알갱이와 논을 일군 흔적이 발견된 중국 양쯔강 유역이 최초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후 인도와 동남아시아, 한반도와 일본으로 퍼져나가며 농업 혁명의 핵심 작물로 자리 잡았고, 인류 문명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고대 문헌에 따르면 쌀은 중국에서 제사와 의식에 사용되었고, 한국의 삼국사기나 일본의 고사기에서도 중요한 농작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중세를 지나며 다시 아시아를 넘어 유럽과 아프리카, 아메리카로 전파되었고, 지금은 남극을 제외한 모든 대륙에서 다양한 형태로 재배되고 있습니다.

벼가 익어가는 모습

품종은 전 세계 생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아시아 쌀(Oryza sativa)과 서아프리카의 소규모 농가에서 명맥을 잇고 있는 아프리카 쌀(Oryza glaberrima),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아시아 쌀은 다시 인디카(indica)와 자포니카(japonica)로 나뉘고, 기후와 토양을 비롯해 형태, 색깔, 가공방식 등에 따라 다시 다양한 품종으로 구분됩니다.

한국과 일본, 중국 북부에서 재배되는 자포니카는 짧고 둥근 쌀알로, 아밀로펙틴이 풍부해 끈적이고 부드러워 스티키 라이스(sticky rice)라고도 합니다. 일본 니가타현의 고시히카리는 달콤하고 찰진 맛 덕분에 최고의 프리미엄 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인디카는 길고 가느다란 쌀알이 특징입니다. 아밀로스 함량이 높아 밥알이 따로 놀고 끈적임이 적어 볶음밥이나 커리처럼 알알이 분리된 질감이 필요한 요리에 제격이며, 주로 베트남, 인도네시아, 인도와 파키스탄 등에서 재배됩니다.

막걸리부터 빠에야까지.. 나라별 대표 쌀 요리

자포니카와 인디카는 그 차이만큼이나 나라별 식문화와 요리법에 있어서도 극명한 대비를 이룹니다. 자포니카를 주로 먹는 우리나라에서는 쌀을 김밥, 떡, 막걸리, 고추장 등 다양한 요리에 활용합니다. 그 중에 막걸리는 쌀로 만드는 전통 발효주죠. 찹쌀이나 멥쌀을 물에 불린 뒤 찐 다음, 누룩(발효제)과 물을 섞어 발효시킨 후 약 7~10일간 숙성해서 만듭니다. 부드럽고 약간의 달콤한 첫맛 뒤에 은은한 신맛과 쌀의 구수한 맛이 나며 알코올 도수는 6~8도로 낮아 톡 쏘는 탄산감과 함께 가볍게 즐길 수 있습니다.

인도의 볶음밥 일종, 비리야니

반면 인도와 중동, 남미와 미국 등에서 주로 소비되는 인디카는 볶음밥 요리나 채소, 소스를 곁들여 먹는 요리에 활용됩니다. 인디카로 만드는 인도의 비리야니(Biryani)는 볶음밥의 일종으로 고기(양고기, 닭고기)를 커리, 요거트, 사프란으로 재워 볶은 뒤, 반쯤 익힌 쌀과 섞어 층층이 쌓아올려 약한 불에서 30~40분간 뜸 들이면 완성됩니다. 쌀알이 따로 놀며 향신료의 강렬함과 고기의 육즙이 어우러지는 요리입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쌀과 향신료를 메인으로 하는 풀라오(Pulao)라는 음식을 축제, 결혼식, 가족 모임 같은 특별한 날에 먹습니다. 바스마티 쌀이나 방글라데시에서 흔히 재배되는 향기나는 품종(예: 치니구라(Chinigura))의 쌀을 각종 향신료(계피 스틱, 카다멈 포드, 정향, 월계수 잎, 사프란 등)와 볶아 단독으로 먹거나, 샤미 케밥(Shami Kabab)과 같은 음식들과 곁들여 먹습니다. 인도나 파키스탄의 비리야니와 비교되곤 하는데, 비리야니가 더 강렬하고 복잡한 맛이라면 풀라오는 부드럽고 섬세한 맛입니다.

빠에야

이 밖에 자포니카와 인디카 중간 성격의 쌀을 주로 먹는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는 끓이거나 볶는 형태의 요리들을 볼 수 있습니다. 봄바 쌀을 선호하는 스페인 발렌시아의 빠에야(Paella)는 넓은 팬에 올리브 오일을 두르고 닭고기, 토끼고기나 해산물을 넣고 볶다가 양파, 토마토, 사프란을 넣어 향을 낸 뒤 쌀을 추가해 끓여 만듭니다. 봄바 쌀알은 흡수력이 좋고 살짝 단단하면서도 촉촉하기 때문에 고기나 해산물의 풍미와 잘 어우러져 스페인의 태양 같은 따뜻함이 느껴집니다.

한편 파스타와 더불어 이탈리아 요리 양대 산맥인 리소토는 아르보리오 쌀을 주로 사용합니다. 양파를 버터에 볶고 쌀을 넣어 투명해질 때까지 볶다가 화이트 와인과 따뜻한 육수를 조금씩 부으며 20분간 저어 익히다 마지막에 파르메산 치즈와 버터로 마무리해 먹습니다.

축제의 주인공, 쌀

쌀이 인류의 식문화에 미치는 영향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래서 쌀의 수확 시즌이 되면 말 그대로 축제가 됩니다. 특히 쌀을 주식으로 하는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서는 세계적인 쌀 축제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천 쌀 축제

우리나라는 ‘임금님표 이천쌀’로 유명한 경기도 이천에서 대형 가마솥에 갓 지은 밥을 함께 나눠 먹는 ‘이천쌀문화축제’가 열립니다. 1999년부터 매년 10월에 열리고 있으며, 공연도 보고 여러 체험 프로그램과 전통 놀이도 하면서 한해 쌀 농사를 마무리합니다.

일본 최대 쌀 생산지 중 하나인 니가타현에서도 가을이면 와라 아트 페스티벌(Wara Art Festival)이 열립니다. 이 축제는 지역의 “쌀 문화”를 기념하는 동시에 독창적인 예술적 매력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쌀 수확 후 남은 볏짚(일본어로 ‘와라’)을 활용해 거대한 조형물을 만들어 전시하는데, 매년 여름 말부터 가을까지(보통 8월 말에서 10월 말까지) 우와세키가타 공원(Uwasekigata Park)에서 진행됩니다.

니가타현의 와라 아트 페스티벌에서 전시된 볏짚 조형물

2006년부터 니가타 지역 농민들과 도쿄 무사시노 미술대학(Musashino Art University) 학생들이 협력하여 쌀 수확 후 남는 볏짚으로 동물이나 신화 속 생물 등의 대형 조형물을 제작해 전시하고 있습니다. 매년 주제가 바뀌는데, 2023년에는 ‘에치고의 바다(Sea of Echigo)’를 테마로 돌고래, 문어 등의 조형물이 전시되었고, 2024년에는 지역 신화 속 생물들이 등장했습니다.

태국에서는 5월이 되면 방콕 왕궁 앞에서 국왕이 참여해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왕실경작의식(Royal Ploughing Ceremony)이 열립니다. 왕실 소가 논을 갈며 풍작을 기원하는 전통은 수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죠. 의식이 끝나면 전국 곳곳에서 쌀을 주제로 한 다양한 축제가 열리는데, 농업 박람회와 요리 경연을 통해 세계 최대 쌀 수출국으로서의 자부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밖에 남인도 타밀나두에서는 1월 중순, 쌀 수확에 감사하는 퐁갈 축제(Pongal Festival)가 시작됩니다. 행사는 4일간 이어지며, 이 기간에는 태양신 수리야와 농부들에게 마음을 전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축제의 핵심은 ‘퐁갈’이라는 요리인데, 갓 거둔 쌀을 흙냄비에서 우유, 황설탕, 카다멈과 함께 보글보글 끓여 만드는 달콤한 죽입니다.

필리핀 루손 섬의 루크반에서는 5월이 되면, 파히야스 축제(Pahiyas Festival)가 거리를 화려하게 물들입니다. 쌀 수확에 감사하며 집을 쌀과 농작물로 아름답게 장식하는 이 행사는 농부의 수호성인 산 이시드로에게 바쳐집니다. 쌀 반죽을 얇게 펴서 잎 모양으로 말린 장식인 ‘키핑’이 방문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축제의 마지막 날에는 이 장식을 튀겨서 바삭한 간식으로 즐기며 필리핀만의 독창적인 방식으로 쌀 수확을 기념한답니다.

쌀밥은 다이어트의 적?

그런데 쌀이 사람들에게 환영만 받는 존재는 아닌 것 같습니다. 밥을 멀리하는 저탄수화물 식단이 인기를 끌면서 식탁 위에서 눈치밥을 먹고 있습니다. 과연 영양학적 관점에서 쌀밥의 탄수화물이 다이어트의 적일까요? 쌀밥을 먹지 않는 식단은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쌀

쌀은 약 80%의 탄수화물은 물론, 단백질(7-8%), 지방, 비타민 B군(티아민, 니아신)도 함유하고 있어서 우리 몸의 주요 에너지원이 됩니다. ‘밥심’이라는 말이 과학적으로도 틀린 말이 아닌 셈이죠.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하루 칼로리의 50~60%는 탄수화물로 섭취하기를 권장하고 있으며, 2020년 미국 영양학회지(American Journal of Clinical Nutrition)에서 발표된 연구에서도 저탄수화물 식단이 심혈관 질환 위험을 높일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물론 일시적으로 탄수화물 섭취가 줄면 저장된 글리코겐과 지방이 타고, 수분이 배출되며 빠르게 체중이 줄어드는 효과는 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탄수화물을 완전히 배제하는 식단이 단기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건강을 해칠 수 있습니다. 탄수화물이 부족하면 뇌와 근육이 필요한 연료를 제때 공급받지 못하기 때문에 만성 피로, 집중력 저하, 두통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밥심’이 사라진 상태에서 생산성 저하는 피할 수 없게 되는 거죠.

2 인류의 식탁을 지탱해온 쌀

무엇보다 쌀밥을 끊고 단백질과 지방 위주의 식단(예: 키토제닉 다이어트)을 따를 경우, 혈당이 급격히 떨어지거나 불안정해질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저탄수화물 식단에서 에너지가 부족해지면 몸은 지방뿐 아니라 근육 단백질을 분해해 연료로 쓰기 때문에 신진대사가 떨어져 장기적으로 체중 감량을 더 어렵게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쌀은 비타민 B군의 주요 공급원 중 하나이기 때문에 무작정 끊으면 티아민 결핍 위험이 커지고, 이는 신경계 문제나 소화 장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쌀밥을 멀리하는 것은 다이어트라는 단기 목표를 위해 ‘밥심’이라는 오랜 조상들의 지혜를 잊는 셈입니다. 쌀의 탄수화물이 살을 찌우는 주범이 아니라, 과식과 운동 부족이 문제라는 점을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요.

뉴스룸 출처 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