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긋한 낮, 화려한 밤! 휴양의 성지, 흐바르
작은 섬 흐바르는 ‘크로아티아의 이비사’라는 별명으로 알 수 있듯, 유럽 바캉스 시즌 파티 피플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나이트 라이프의 명소다. 반면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지금이 몇 시인지를 잊게 하는 느긋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은 사람들에게 더없이 좋은 쉼터가 되어주기도 한다.
섬에서 보내는 여러 날
섬에서, 특히 흐바르처럼 작은 섬에서 오롯이 긴 여정을 보내려면 큰 결심을 해야 한다. 대형 마트에 나가려면 배를 타고 육지로 이동해야 하고, 이 동네가 지겨워도 가볼 만한 이웃 동네가 많지 않다. 파리나 런던에 오래 머물 때면 의도하지 않아도 작은 골목에서 단골 맛집을 찾고 이름 모를 정원 벤치에 앉아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을 맞이하는 나였지만 흐바르라는, 잘 모르는 소담한 섬에 집을 빌려 머물러도 될지 티끌만 한 의구심은 있었다. 스플리트에서 출발한 보트가 흐바르에 도착하는 순간 소금기, 물기 없는 지중해 바람에 실려 날아갔지만 말이다.
톰 크루즈, 비욘세 등 할리우드 셀러브리티들이 해마다 대거 찾는 휴양지라 그런지 흐바르는 유럽에서 물가 착하기로 유명한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비싼 동네다. 하지만 메인 동네인 흐바르 타운 도심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렌트 가격이 시원하게 쭉쭉 떨어진다. 또 높은 수요로 경비가 조금 더 들기는 할지라도 흐바르 사람들의 인정은 크로아티아 다른 지역과 다를 바 없어 인기 휴양지에서 겪어야 하는 바가지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타운 항구 주변의 주요 해변들과는 거리가 있지만 집에서 조금만 걸으면 늘 한적한 해변이 있어 좋다는 설명에 예약을 확정한 에어비앤비에 짐을 풀었다. 젊은 호스트 부부가 항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가보는 곳에 누군가가 마중 나와 있다는 것은 감사하고 특별한 일이다. 어떤 손님일지 궁금했다며 즐거운 기억만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수줍게 건넨 호스트 부부는 방이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며 웰컴 맥주 한 캔을 주고 갔다.
한 달 살기의 최고 장점은 짧은 시간이라면 짧은 시간이지만 ‘우리 집’이라 부를 수 있는 곳이 생긴다는 점이다.
매일 외출하고 돌아오면 침대보가 낯설도록 각을 맞춰 접혀 있고 아무렇게나 던져놓고 나간 수건이 보송하게 마른 새것으로 교체돼 있는 호텔도 좋지만, 슈퍼마켓에서 과일과 물을 사서 냉장고에 채워놓을 수 있는 집을 마련하고 묵는다는 것은 정말 근사한 일이다. 냉장고를 채우는 게 너무 좋아서, 나는 한 번에 일주일 치 장을 보는 대신 매일 조금씩 과일과 음료수를 사러 슈퍼와 동네 시장에 갔다. 잘 익은, 먹음직스러운 비타민 덩어리들을 매일 장바구니에 서너 개씩 담아 와 넓고 깨끗한 주방에서 매일 신선하고 건강한 아침을 만들어 먹었다. 일조량이 많은 땅에 사는 사람은 잘 웃고 밝으며, 그 땅에서 나는 먹을 것들은 맛이 더 진하다는 것이 오래, 자주 여행하며 생긴 개인적인 지론이다.
흐바르 우리 집은 1층에는 호스트가 거주하고 2층을 혼자 쓰는 구조였다. 집으로 향하는 길은 항상 걸음을 멈추게 했다. 작은 사기 난쟁이 인형들이 나무 그늘 아래에서 쉬고 있고 늘어선 꽃나무에 알록달록한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어 작은 공원을 산책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바로 뷰다. 항구와 조금 떨어져 있었지만 창문을 활짝 열고 고개를 돌리면 항구가 보였고, 창가에 놓인 책상에 앉아 두 다리를 책상에 올려놓고 포도나 사과를 먹으며 밖을 내다보면 끝없는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안개가 자욱하게 껴 희미하게 보이는 항구의 실루엣을, 낮에는 선명한 숲과 바다를, 밤에는 손을 뻗으면 튕겨볼 수 있을 것만 같은, 조약돌 같은 별들을 볼 수 있는 발코니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다.
향기로운 라벤더섬에서의 물장구
크로아티아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인 흐바르는 연중 2,800시간 이상의 일조량을 자랑하는 황금빛 파라다이스다. 연평균 기온은 16.5℃, 1월 평균 기온이 8.4℃로, 겨울은 온화하고 여름은 따뜻하다. 눈은 오지 않는다.
흐바르에 머무는 동안 눈이 내린다면 숙박이 무료인 호텔도 꽤 있을 정도로 완벽하게 맑은 날들을 약속한다. 이러한 기후 조건 아래서 라벤더, 로즈메리, 타임 등 허브가 잘 자라고 꽃이 만개한다. 특히 라벤더 재배가 성행해 ‘라벤더섬’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시내 곳곳에 라벤더 가판이 늘어서 있다.
호스트가 문에 걸어놓은 라벤더 포푸리 덕분에 아침이면 늘 꽃향기를 맡으며 기분 좋게 일어나곤 했다. 그리고 이내 섬에서 한 달은 머물러야 할 수 있는 행복한 고민을 시작한다. 오늘은 무얼 하며 하루를, 아무것도 안 하며 하루를 알차게 보낼 수 있을까.
흐바르 타운과 바다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스파뇰라 요새에 올라볼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스타리 그라드 평야(흐바르섬에 있는 기원전 4세기 고대 그리스인이 점령했던 땅. 포도와 올리브 나무를 기르기 위해 땅을 24개 구역으로 구분한 고대 돌벽이 거의 완벽하게 보존돼 있다. 흐바르 타운에서 차로 20분 정도 걸린다)로 드라이빙을 가볼까, 고민하다 역시 비치 타월을 들고 해변으로 나서게 되는 날이 많았다.
느긋한 하루에 빠질 수 없는 것은 브런치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 천천히 먹는 첫 끼는 맛있고 멋있다. 포코니 돌 해변을 찾아가려면 무성한 나무 사이를 헤치고 작은 언덕을 넘으면 된다. 아무 데나 타월을 깔고 노릇노릇 앞뒤로 몸을 굽다가 견딜 수 없이 더우면 바다로 뛰어든다.
작은 바가 있어 맥주와 생선구이로 늦은 점심을 먹고 책을 몇 장 읽는 날도 있고, 음악을 들으며 긴 낮잠을 자는 날도 있고, 아주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희미하게 큰 행복으로 남은 날도 있다. 흐바르에 바랐던 모든 것을 이 작은 해변에서 매일 채웠다.
수백 년 전 모습을 상상하며 마주하는 오랜 시가지
베니스 공국의 통치를 받던 16세기에 지은 흐바르 타운 언덕 위의 스파뇰라 요새는 여러 번 파손과 보수를 거쳐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내부엔 지하 감옥과 고대와 중세 시대 유물을 전시한 박물관도 있다. 성벽은 길게 마을을 보호하듯 에워싼 모습을 하고 있어 이따금 어디서든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았다.
항구의 아름다움을 등지고 고개를 돌리면 16세기에 세운 르네상스 양식의 성 스테판 성당이 보인다. 성당 앞 광장은 흐바르 타운 만남의 광장이며 심장부라 매일 하루에도 몇 번씩 가로질렀다. 총면적 4,500m2로 흐바르가 속한 크로아티아 중남부 달마티아 지방에서 가장 큰 광장이다.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지금보다 더 넓고 정원들로 둘러싸여 있었으나 시가지가 조성되며 건물을 지을 공간이 부족해 광장 일부를 사용해 건물을 지었단다. 베니스 공국 통치 시절에 조성돼 광장 모습이 베니스의 산 마르코 광장과 닮았다.
지금은 요새도 성당도 무척 조용하다. 밀라노의 두오모나 파리 에펠탑처럼 나이가 많지만 지금도 온종일 방문객을 맞는 유럽 대도시들의 대표 랜드마크와는 사뭇 다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만큼 바람에 깎여 사라져가고 있다. 연식을 가늠할 수 있을 정도의 외관은 밀라노 두오모보다 위엄 있고, 에펠탑보다 대단해 보인다. 성당 옆 13세기 무기고를 개조해 만든 유럽 최초의 시립 극장 아스날도, 호리호리한 종탑이 멋스러운 15세기 선원들의 휴식처였던 항구 옆 프란체스코 수도원도 문을 꼭 닫은 채로 얼마나 지났는지 모른다.
매일 다른 색의 수영복을 입은 사람들이 매일 다른 보트를 타고 오고 가지만 흐바르의 오랜 건축물들은 변함없이, 믿음직스럽게 그대로다. EDM이 새벽까지 울려 퍼지는 파티 시즌에 머물러도 흐바르가 정겨울 수 있는 이유다. 트렌디하고 패셔너블한 모습 이면에 전통적이고 우직한 뼈대가 있다. 그래서 나는 흐바르 타운을 목적 없이 매일 걸었다. 아무리 헤매더라도 고개를 들면 요새가 보였고, 모든 길은 성당 광장으로 이어졌으니.
[흐바르 한 달 살기! 체크리스트]
1. 흐바르행 보트는 미리 예약!
흐바르와 가장 가까운 크로아티아의 주요 도시는 스플리트. 대한항공의 인천-자그레브 직항 또는 다른 유럽 도시로 들어와 크로아티아에 입성한 후 스플리트를 찾아 여기서 보트로 이동해야 한다.
또 다른 방법은 이탈리아 안코나에서 보트로 이동하는 것. 이 방법으로 이탈리아와 크로아티아에서 여름 여행을 하는 사람이 꽤 많다. 스플리트에서 흐바르섬까지는 1~2시간이 소요된다. 렌터카를 이용하는 경우 보트 비용에 추가 요금을 지불하고 차를 실을 수 있으나 차로 찾기 쉬운지, 주차 시설은 잘돼 있는지 미리 숙소에 알아보고 차를 가져갈지 결정하면 된다. 크로아티아 전체를 여행하려면 차가 있는 편이 훨씬 편리하지만 흐바르섬에만 있을 예정이라면 크게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배편을 끊을 때는 차를 실을 수 있는 보트인지 아닌지도 꼭 확인해야 한다.
흐바르에는 두 개의 페리 항구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스타리 그라드와 수추라이를 이용한다. 스플리트에서 출발하는 배는 모두 스타리 그라드에 도착한다. 여름에는 운항하는 배가 더 많지만 당일 티켓은 예매가 불가하니 성수기에는 더 일찍 예매해야 한다. 숙소를 잡아놓고 배편이 없어 일정이 엉망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 주의하라고 현지 사람들이 당부한다.
흐바르행 보트는 야드롤리냐(https://www.jadrolinija.hr/)에서 예약
2. 흐바르섬의 교통
작은 섬인 흐바르 안의 마을들은 모두 도보로 돌아볼 수 있다. 각 마을을 연결하는 버스와 택시가 있어 마을과 마을을 잇는다. 흐바르 타운 관광 사무소 홈페이지(https://visithvar.hr/en/)에서 섬 내의 버스와 페리 스케줄을 확인할 수 있다.
흐바르 타운에서는 시내 중심인 성 스테판 성당 광장 옆 버스터미널의 주차장이 택시 정류장이다. 택시가 없는 경우 전화로 부를 수 있다. 단,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택시비가 비싼 곳이 바로 흐바르라는 점에 유의할 것 .
3. 숙소는 흐바르 타운
흐바르섬은 흐바르 타운, 스타리 그라드, 옐사, 브르보스카, 수추라이로 나뉘어 있다. 그중 흐바르를 대표하는 관광지이자 섬에서 가장 큰 마을이 흐바르 타운이다. 교통편도 모두 타운에서 출발하고 도착하며 식당과 숙박 시설도 몰려 있어 여행객은 대부분 이곳에 머문다. 흐바르 타운에서 차로 20분 정도 달려가면 세계문화유산인 스타리 그라드 평야를 만날 수 있다.
4. 여름엔 맥주, 크로아티아 맥주!
크로아티아 맥주는 정말 맛있다. 크로아티아에서 파는 맥주의 90% 이상이 자국 브랜드라 쉽게 크로아티아 맥주를 맛볼 수 있다. 1697년 최초의 크로아티아 맥주를 양조한 오쥬스코를 비롯한 메이저 브랜드들이 있고, 최근의 크래프트 맥주 붐에 편승한 로컬 브루어리도 여럿 생겨나고 있다. 흐바르섬에도 캐러멜·초콜릿·과일 향이 나는 부네토보(Vunetovo) 맥주가 있으니 마셔보자.
5. 파티의 섬을 신나게 즐겨라
흐바르에서 딱 한 곳의 클럽만 갈 수 있다면 단연코 이곳.
어제는 그저 꿈이고, 내일은 신기루일 뿐. 오늘을 최대한 즐기자는 철학으로 만들어진 흐바르 최고의 바&클럽, ‘카르페 디엠’이다. 영국의 해리 왕자가 신나게 파티를 하다가 파파라치 사진이 찍혀 유명세를 치른 곳이다. 여름에 흐바르에서 가장 신나는 파티를 여는 곳으로, 낮에는 여유롭게 칵테일을 마시는 라운지 바였다가 밤이 되면 DJ와 함께 신나는 클럽으로 돌변한다.
자매 클럽인 ‘카르페 디엠 비치’는 흐바르섬 옆에 있는 파클레니 제도의 마린코바츠섬에 있다. 그 외에도 카르페 디엠보다 좀 더 하드한 클러빙을 즐기는 사람들을 위한 ‘키바’와 라운지 분위기의 느낌 있는 음악과 석양의 뷰가 예쁜 ‘훌라 훌라’, 수도원이던 곳을 개조한 클럽 ‘베네란다’도 추천한다. 베네란다는 일출이 장관인 것으로 유명하다. 밤새 춤을 추고 크로아티아 맥주를 셀 수 없이 여러 잔 마신 사람들의 말이라 얼마나 신빙성이 있을까 의심하지 말 것. 맨정신으로 베네란다에서 아침을 맞이해도 숨이 막히게 아름답다.
글_맹지나
여행 작가이자 작사가. 저서로는 <인조이 크로아티아> <알프스, 행복해지기 위해> <크리스마스 인 유럽> <그 여름의 포지타노> 등이 있다.
대한항공 운항 정보
※ 자세한 스케줄은 대한항공 홈페이지(www.koreanair.com) 참고
인천 ~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주 3회 직항 운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