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하면서 마주치는 잠깐의 풍경과 만남들이
과수원에서 한입 깨무는 신선한 사과의 느낌이라면,
오르세 미술관이나 에르미타주 미술관에서 만나는 거장의 예술작품들은
셰프가 재료를 정성껏 선별하고 공들여 만든 일품요리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마음에 오래 남는 여행의 다채로운 맛, 그것이 여행을 기다리는 이유가 되지요.
[예술로의 초대]에서는 여행이 고픈 여러분들에게
사랑받는 명작과 그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여행 입맛을 돋워 드립니다.
해외 여행이 다시 활발해지면, 꼭 직접 감상해보시길!
드가 ‘열네 살의 어린 무용수’
에드가르 드가는 부드러운 파스텔 톤으로 파리 오페라의 무용수들을 그린 화가로 우리에게 친숙하다.
혹자는 인상주의 화가, 어떤 이는 후기 인상주의 화가라 칭하며
또 다른 이는 인상주의 화가들과 어울렸을 뿐 인상주의에 속하지는 않는 작가라고 평가한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에 활동한 거장 중 한 사람인 드가는 주로 ‘화가’라 불리지만
사실 그는 150점 안팎의 꽤 많은 조각 작품을 남긴 ‘조각가’이기도 하다.
조각가로서 그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이 미묘한 매력을 풍기는 ‘열네 살의 어린 무용수'(이하 ‘무용수’)다. 파리 오페라의 발레 연습생이던 마리 반 구뎀이라는, 실제 당시 열네 살 소녀를 모델로 해 제작한 이 작품은 발표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이 작품이 처음 발표된 1881년, 지금으로부터 약 140년 전인 당시 파리 사람들은 이 작품을 무척 불편해했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은 너무나도, 지나치게 ‘사실적’이었다.
밀랍으로 만든 몸체에 실제 망사로 만든 발레 드레스를 입고, 당시 유명했던 가발 제작자가 만든 가발을 썼으며, 그 머리는 새틴 리본으로 묶고 진짜 발레 슈즈를 신은 이 소녀는, 예술가가 만든 조각 작품이라기보다는 밀랍 인형에 가까워 보였다.
게다가 드가는 이 작품을 유리 장 안에 넣어 전시했다. 너무나 사실적으로 만들어 실제 살아 있는 것 같은 ‘백인 소녀’가 진열장 안에 ‘전시’돼 있는 것은, 당시 유행했던 만국박람회에서 (살아 있는) 아프리카인과 아시아인들을 ‘전시’하며 인류 연구의 대상이자 동시에 구경거리로 삼았던 유럽인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드가의 파격적인 표현과 기법에 대해 몇몇 평론가가 모더니티의 극치라며 찬사를 보내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작품에 큰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럽게 이 작품에 대한 동료 작가와 평론가들의 비난이 잇달았다. 사실 100년도 훨씬 지난 지금, 우리는 드가가 완성해낸 사실성에 감탄하지만 당시에는 이 사실성이 오히려 비난의 이유가 됐다.
불편한 이유는 또 있었다. ‘무용수’의 모델 마리는 파리 오페라에서 발레를 배우고 공연하는 무용수이기는 하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돈 많은 신사’들에게 발탁되기를 바라며 때로는 매춘까지도 망설이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군다나 이 ‘무용수’는 망사로 된 발레 스커트 ‘튀튀’를 입고 있는데, 이는 당시 일상에서는 거의 누드나 마찬가지로 취급되던 차림이었다.
드가가 무용수를 그린 작품들을 보면 연습하는 그녀들 뒤로 잘 차려입은 신사들이나 그들의 실루엣이 언뜻언뜻 드러나는데, 이 ‘신사’들은 마음에 드는 어린 무용수를 고르려고 연습실 근처를 어슬렁거렸던 것이다. 이렇다 보니 결국 ‘점잖은’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 아름다운 소녀가 ‘어린 매춘부’인 셈이어서 이 작품이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드가는 결국 이후 이 작품을 다시는 작업실 밖에 내놓지 않았다. 이 작품뿐만 아니라 이후 그는 그 어떤 조각 작품도 전시하지 않았다. 어쩌면 ‘무용수’에 쏟아진 비난이 그에게는 큰 충격이었고 다시는 그런 경험을 하고 싶지 않아서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무용수’는 드가라는 작가의 예술가로서의 기술적 재능은 물론, 새로운 것에 대한 시도와 자유로운 감성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조각에 옷을 입히다니. 19세기 말 어떤 작가가 그 이전에 그런 생각을 했던가!
그런데 ‘밀랍 인형’이라고 비난받았다더니,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는 이 작품은 브론즈 조각이다. 그렇다. 드가가 만든 원작은 밀랍으로 만든 것이고, 이 작품은 오리지널을 바탕으로 틀을 만들어 주조한 브론즈 작품이다.
드가가 세상을 떠난 후 법적 상속자인 동생과 조카들은 드가의 오랜 친구였던 조각가 알베르 바르톨로메의 제안으로 주조가 아드리안-오렐리안 에브라르에게 드가 조각 작품 중 일부의 주조를 맡겼고, 상속자들을 위해 하나, 주조소를 위해 하나, 이렇게 작품당 두 점의 틀이 제작됐다.
종종 우리는 같은 조각 작품을 여러 곳에서 발견하고 당황하곤 하는데, 이렇게 틀이 있어 여러 에디션이 있기 때문이니 놀라지 말자. 에디션 몇 번까지를 작가의 진품으로 인정할 것인지는 작가가, 그리고 작가 사후에는 상속자나 상속자로부터 권리를 양도받은 재단이 결정한다.
드가의 ‘무용수’는 1918년 상속자와 주조소가 각각 20점까지 만들기로 약속해 현재 전 세계에 29점의 브론즈 작품이 존재한다. 그래서 오르세 미술관과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필라델피아 미술관 등이 이 신비로운 매력의 ‘열네 살의 어린 무용수’를 소장, 전시하고 있는 것이다. 드가가 직접 완성한 1881년 작 오리지널 밀랍 작품은 현재 미국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가 소장하고 있다.
글_ 임은신
그림을 찾아가는 시간 dorossy 대표,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