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는 어제와 오늘을 잇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 줍니다. 다리가 없었다면 베네치아나 로마 같은 역사적인 도시도, 뉴욕이나 런던 같은 현대의 메트로폴리스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며, 견우와 직녀가 칠월칠석에 만난다는 오작교 전설이나 파리 센강의 퐁데자르 다리(Pont des Arts)에 걸려있는 사랑을 맹세하는 수백 개의 자물쇠들도 볼 수 없었을지 모릅니다.
‘다뉴브 강의 진주’, ‘동유럽의 파리’라 불리는 아름다운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Budapest)는 다뉴브 강(Danube River)이 가로지르는 도시입니다. 다뉴브 강을 따라 여러 개의 다리가 도시 양 쪽, 부다와 페스트를 연결하고 있습니다.
부다페스트의 8개 다리 중 대표적인 세체니-마가렛-엘리자베스 다리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부다페스트의 탄생에는 다리가 있었다!
‘위대한 도시에는 아름다운 다리가 있다’라는 말이 있듯이 부다페스트(헝가리 사람들은 ‘부더페슈트’라고 발음합니다)에도 아름다운 8개의 다리가 있습니다. 아침과 밤의 부다페스트는 서로 다른 색을 지니고 있는데, 아마도 이 다리들 덕분이 아닐까 합니다.
부다페스트는 다뉴브 강을 사이에 두고 ‘부다(Buda)’와 ‘페스트(Pest)’라는 두 도시가 하나로 합쳐져 탄생했습니다. 부다에는 왕궁과 관청가, 귀족 등 지배층이 살았고, ‘도자기 굽는 마을’이라는 의미를 지닌 페스트에는 서민들이 주로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다 이슈트반 세체니(1791-1860)라는 정치인이 경제와 문화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두 도시를 잇는 세체니 다리를 구상하여 추진했고, 그 결과 1873년 마침내 오늘날 우리가 아는 부다페스트라는 도시가 탄생했습니다.
부다페스트의 과거, 현재, 미래
세체니 다리
부다페스트 시가지의 전체적 풍경에서 구심점을 이루는 세체니 다리(Széchenyi Chain Bridge)는 우울함과 찬란함이 공존하는 다리입니다. 두 남자가 한 여자를 두고 펼치는 특별한 사랑 이야기를 담은 영화 <글루미 선데이> 속 등장하는 바로 그 다리입니다.
1842년에 착공해 1849년 완공된 길이 375m, 너비 16m의 다리로 당시 유럽에서는 가장 긴 다리 중 하나이자 초현대식 다리 중 하나로 꼽혔으며, 한때는 세계에서 가장 경이로운 구조물 중 하나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에 폭파되었고 이후 다시 재건된 것이 지금의 세체니 다리입니다. 세체니 다리 네 귀퉁이에는 커다란 사자상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고, 주탑에 설치된 밧줄에 해당하는 구조가 자전거 체인처럼 생긴 것도 특징입니다.
세체니 다리를 건너면 고대의 헝가리를 엿볼 수 있는 마차시 성당(The Church of Our Lady of Buda Castle 또는 Matthias Church)이 있습니다.
섬세한 조각이 돋보이는 고딕 양식의 외관과 화려한 색의 지붕이 조화를 이루는 마차시 성당은 원래 13세기에 지어진 성모 마리아 성당이었는데, 15세기 마차시 왕의 시대를 맞이해 개축한 후 마차시 성당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마차시 성당 앞은 삼위일체 광장이라 불리는 번화가입니다. 각종 상점과 레스토랑 그리고 선물 가게들이 밀집해 있어 구경거리가 많습니다.
부다페스트 최고의 야경
마가렛 다리
부다와 페스트 두 도시를 연결하는 동시에, 마가렛 섬으로 연결되는 마가렛 다리(머르깃 다리)는 1876년에 완공된 부다페스트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다리입니다. 프랑스 네오 바로크 건축 양식으로 만들어졌으며 마가렛 다리 위에서 국회의사당, 세체니 다리, 왕궁을 한 번에 감상할 수 있어 전망 맛집으로 유명합니다. 특히 파리, 프라하와 함께 유럽의 3대 야경을 자랑하는 부다페스트에서도 최고의 야경을 볼 수 있는 장소입니다.
마가렛 다리의 이름은 다뉴브 강 한가운데 위치한 마가렛 아일랜드에서 따왔습니다. 이 섬은 그 자체로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헝가리의 성녀 마가렛과 관련이 있습니다.
원래 이 섬은 ‘토끼섬’으로 불렸습니다. 그러다 13세기 헝가리의 벨라 4세 왕이 몽골의 침략에서 나라를 지켜내겠다고 맹세하며 딸 마가렛 공주를 수도원에 보냈고, 마가렛 공주는 어린 시절부터 평생을 마가렛 아일랜드의 도미니코 수도원에서 봉헌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그 이후 마가렛 공주의 이름을 따서 오늘날까지 마가렛 아일랜드로 불리게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마가렛 다리는 헝가리의 역사적 순간을 목격한 다리이기도 합니다. 1944년 11월 4일,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다리의 중앙 부분이 폭발했는데 당시 많은 헝가리인들이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고 다리도 파괴되어 잔해가 다뉴브 강 속으로 가라앉았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1948년에 다리를 재건하면서 파괴되기 전의 아름다운 다리 모습을 그대로 복원했다고 합니다.
다뉴브 강 중간에 위치하고 있는 마가렛 아일랜드(Margaret Island, 머르기트 섬)는 마가렛 다리의 보행자 통로를 걷다 보면 연결됩니다.
본래 성직자들이 거주하던 곳이었으나 1908년부터 일반인에게 공개되었습니다.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팔라티누스 온천 수영장(Palatinus strand Baths), 장미 정원, 도미니코 수도원 유적지, 1911년 지어진 아르누보 양식의 마가렛 아일랜드 워터 타워(Margaret Island Water Tower) 등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많아 부다페스트를 여행한다면 꼭 들러봐야 하는 섬입니다.
순수한 영혼의 화이트 다리
엘리자베스 다리
헝가리를 사랑한 오스트리아 엘리자베스 황후의 이름을 딴 흰색 다리입니다. 흰색 케이블과 기둥이 특징이며 부다페스트의 8개 다리 중 가장 세련되고 현대적 디자인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엘리자베스 다리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엘리자베스 여왕, 즉 ‘시시’로 알려진 인물을 기리기 위해 붙여진 이름입니다. 1903년 처음 엘리자베스 다리가 완공되었을 때, 우아한 아치와 화려한 장식에 감탄을 금치 못할 만큼 아름다운 다리였다고 합니다. 시시는 헝가리의 문화와 사람들을 사랑했고, 헝가리 독립을 위해서도 노력했기에 헝가리 사람들에게 유달리 사랑받는 여왕으로 기억되지만 사실 그녀의 삶을 비극으로 끝났습니다. 1898년 그녀는 제네바에서 무정부주의자에 의해 암살당했고 당시 그녀의 죽음은 유럽 전역에 충격을 주었다고 합니다.
엘리자베스 다리는 부다페스트의 강력한 상징이 되었지만 엘리자베스 여왕의 삶과 닮은 듯 그 운명이 평탄치 않았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독일군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고, 전쟁이 끝난 후 다리를 재건하려 했지만 이전의 화려함을 되찾기는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러나 1961년부터 1964년 사이에 재건되면서 다리 장식은 없어지고 이전보다 단순하면서도 모던한 디자인과 더 기능적인 다리로 재탄생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엘리자베스 다리를 건너며 그녀를 기억할 수 있도록 다리 끝에는 그녀를 기리는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 다리를 건널 때면 변하지 않는 역사와 전쟁의 고통과 재건의 과정을 기억하게 됩니다.
한편 엘리자베스 다리는 부다 지역의 명소인 겔레르트 언덕(Gellért Hill)과 페스트 지역의 바치 거리(Váci Street)와 가까워 항상 많은 차량들이 오가는 다리입니다.
겔레르트 언덕은 12세기 가톨릭 전파를 위해 방문한 주교 겔레르트가 순교한 곳으로, 그를 기리기 위해 이름 붙여졌습니다. 이 곳에서는 독립을 상징하는 자유의 여신상과 치타델라 요새(Citadella)도 같이 둘러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겔레르트 언덕은 해발 235m에 위치하고 있어 부다페스트 시내를 한 눈에 담을 수 있습니다. 그 때문에 일몰 시간이 되면 부다페스트의 환상적인 일몰을 감상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엘리자베스 다리를 건너면 바로 보이는 바치 거리는 한국의 명동과 같은 보행자 전용 도로입니다. 19-20세기에 지어진 오랜 건물에 백화점, 은행, 상점들이 들어서 있고 곳곳에서 헝가리 전통 문양의 의류와 기념품도 구매할 수 있습니다. 바치 거리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부다페스트의 명소인 중앙 시장도 나오기 때문에 꼭 들릴 수 밖에 없는 거리입니다.
이처럼 헝가리의 매혹적인 수도 부다페스트의 다리들은 도시의 역사, 특히 전쟁의 비극과 깊이 얽혀 있습니다. 그렇기에 부다페스트의 다리들을 지날 때면 과거의 무게와 현재의 평화를 동시에 느낄 수 있습니다.
부다페스트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이 다리들은 그저 건너가는 다리가 아니라 이 도시가 거쳐온 19-20세기 역사의 산 증인이자, 전쟁의 고통에서 다시 일어나 부흥하고 있는 현재를 잇는 중요한 랜드마크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단순히 철과 돌로 이루어진 구조물이 아니라 시간과 함께 성장하고 변화하며, 결국엔 부다페스트의 풍경 속에 자리 잡은 하나의 생명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