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에도 봄이 왔나 봄
광활한 시베리아 땅에도 봄은 온다. 겨울이 잔인하리만치 길었던 터라 더욱 반가운 봄. 겨우내 꽁꽁 언 땅속에서도 악착같이 버티고 있던 옹골찬 생명은 대지의 눈이 녹고 따사로운 햇볕이 흙에 닿으면 기다렸다는 듯 싹을 틔우고 꽃봉오리를 만든다.
시베리아의 드넓은 땅 가운데서도 이르쿠츠크의 봄은 더욱 특별하다. 겨울바람처럼 혹독한 삶 속에서 봄을 되찾으려 했던 자들의 도시이기 때문이다.
1820년대 유럽의 자유주의 사상을 엿본 러시아의 젊은 귀족들은 조국의 농노제와 전제정치에 반대하며 혁명을 꿈꾸었다. 뜻을 모은 귀족들이 합세해 1825년 ‘12월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로 끝나고 만다. 주동자들은 교수형을 당했고 가담한 귀족들은 시베리아로 유배당했다. 혹독한 동토로 유배당한 청년들은 그 와중에도 삶의 희망을 놓지 않았다. 낙담하기는커녕, 프랑스 파리를 닮은 낭만적인 도시를 개척하기로 한다. 후대의 사람들이 이르쿠츠크를 ‘시베리아의 파리’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고풍스러운 건물들 사이, 시간이 멈춘 듯한 풍경은 느릿느릿 걸으며 둘러봐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르쿠츠크를 여행할 예정이라면 봄에 방문하는 것이 좋다.
이르쿠츠크의 봄이 특별한 또 다른 이유는 바이칼 호수에 있다. 몹시 넓어 옛사람들은 바다인 줄 알았다는 이 호수는 ‘세계의 민물 창고’라 불릴 만큼 어마어마한 양의 담수를 담고 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달리기 전까지는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않았던 깊은 오지에 있어 수질도 최상급. 청정 호수에 터 잡은 동식물만 무려 2,500여 종이고 이 중 상당수가 바이칼 호수에서만 산다. 봄을 맞은 바이칼 호수는 들꽃을 수놓은 녹색 들판과 저 너머 만년설로 뒤덮인 산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즐기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환바이칼 관광열차를 타는 것과 호숫가를 직접 걷는 것. 환바이칼 관광열차를 타면 하루 종일 바이칼 연안을 달리며 경치를 즐길 수 있다. 철길 따라 만발한 들꽃도 보고 정차 역에서는 현지인들의 공연과 음식 솜씨를 맛보기도 한다.
열차 대신 걷기를 선택한 이들에게는 보다 많은 선택지가 있다. 호수가 워낙 넓어 트레킹 코스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여러 트레킹 코스 중 손꼽히는 곳은 바이칼 호수 서남쪽, 이르쿠츠크에서 차로 1시간 반 정도 달려가면 닿는 볼시예 코티다. 특히 봄이면 현지인은 물론 유럽의 트레킹 마니아들도 배낭을 메고 이곳을 찾는다.
볼시예 코티에서 리스트비얀카까지 닿는 21km의 트레킹 코스가 특히 사랑받는데, 바이칼 호수를 한편에 두고 좁은 흙길을 따라 걷다 보면 각양각색의 들꽃과 자작나무 숲을 만날 수 있다. 봄을 맞은 자작나무 숲은 한참을 걸어온 이들에게 숲의 정기를 선물한다. 상쾌한 풀 냄새와 들꽃 향기 맡으며 한동안 걷다가 잠시 쉬고 싶을 때면 기댈 곳이 지천이다. 호숫가에 앉아도 좋다. 맑은 물에 발을 담그면 피로가 싹 풀리는 느낌. 넓고 맑은 호수가 전하는 봄의 선물이다.
대한항공 운항 정보
인천 ~ 이르쿠츠크 하계시즌 주 2회(월, 금) 운항
※ 자세한 스케줄은 대한항공 홈페이지(www.koreanair.com)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