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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리를 처음 만나는 여행자를 위한 안내서_ 델리(2)
2019.08.19 페이스북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트위터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링크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가슴 시린 사랑의 도시, 델리 근교 아그라

집채만 한 짐 더미와 바닥에 누워 기차를 기다리는 인파를 뚫고 간신히 플랫폼 앞에 섰다. 10여개의 플랫폼에서 기차가 정차하고 떠날 때마다 아수라장이 되는 뉴델리 역은 피난길을 방불케 했다.
무사히 기차에 올라 안도의 한숨을 쉬는 것도 잠시, 호기심 가득한 까만 눈동자들이 이방인에게 쏟아졌다. 아그라(Agra) 여행은 아그라로 가는 기차 안에서부터 시작된다.

말이 필요 없는 인도 델리 여행의 하이라이트, 타지마할
말이 필요 없는 인도 델리 여행의 하이라이트, 타지마할

아그라와 타지마할 여행의 시작, 기차

인도의 기차는 과거 식민지 시대에 인도의 자원을 약탈하기 위해 영국이 만든 것이지만, 오늘날에는 현지인과 여행자들의 교통수단으로 널리 이용된다. 노선표를 보면 전국 방방곡곡 기차가 닿지 않는 곳이 거의 없으니 넓고 넓은 대륙을 여행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교통수단은 없으리라.

인도에서 가장 큰 기차역인 뉴델리 역
타지마할을 보기 위해 아그라로 가려면 인도에서 가장 큰 기차역인 뉴델리 역으로 가야 한다.

쾌적한 침대에 빵빵한 에어컨을 자랑하는 일등석부터 몇 시간이든 딱딱한 의자에 직각으로 앉아 치열한 자리 쟁탈전을 거쳐야 하는 일반석까지, 객차의 등급에 따라 시설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와이파이도 없는 기차를 타고 몇 시간을 보내는 일이 누군가에겐 곤욕일 수 있지만 기차는 인도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묘미 중 하나다.
일상이 되어버린 연착, 달콤한 차이 한 잔의 여유와 서툰 영어로 말을 건네는 인도인들… 인도 기차는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한국의 삶에 익숙한 우리에게 느릿한 시간을 선물한다.

인도 기차 외부와 내부
SL은 인도 사람들과 대화하기에 가장 좋은 등급의 좌석인데, 등급에 따라 에어컨의 유무가 결정된다.

델리에서 출발한 지 2시간 남짓, 타지마할(Taj Mahal)의 도시 아그라에 닿았다. 아그라는 6세기부터 19세기까지 인도를 점령한 이슬람 왕조 무굴 제국의 수도였던 도시로 17세기 5대 황제 샤 자한이 델리로 수도를 옮기기까지 무굴 제국의 중심지로 번영을 누렸다. 오늘날까지 아그라가 무굴 제국 최고 전성기의 도시로 알려지게 된 것에 타지마할의 공이 크다.

‘타지마할을 보지 않고 인도를 떠난 사람은 반드시 되돌아오게 된다’는 말이 있을 만큼 타지마할은 인도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도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지독한 사랑이 빚어낸 완벽한 아름다움, 타지마할

‘인간이 만든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타지마할에는 샤 자한과 그의 부인 뭄타즈 마할의 사연이 얽혀 있다. 아내 사랑이 대단했던 샤 자한은 어딜 가든 그녀와 동행했는데, 뭄타즈 마할은 전쟁터에서 아이를 낳던 도중 사망했다. 아내를 잃은 슬픔에 머리가 하얗게 새어버린 샤 자한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으로 그녀를 위로하려 했다.
페르시아 건축가가 설계하고 터키·이탈리아·프랑스의 장인들이 동원됐으며, 중국과 러시아에서 필요한 자재를 가져오기 위해 2만여 명의 인부와 1,000여 마리의 코끼리가 투입됐다. 22년을 공들여 1653년 완공한 타지마할에 투입된 비용은 400만 루피, 우리 돈으로 무려 720억 원에 이른다.

뭄타즈 마할과 샤 자한이 함께 잠들어 있는 묘궁은 거대한 정원을 가르는 수로 끝에 있다.

타지마할은 기하학에 기초를 둔 건물이다. 거대한 정사각형 정원은 수로를 따라 넷으로 나뉘고, 각각의 공간은 길로 다시 사등분된다. 수로 끝에 놓인 묘궁은 중앙 돔을 기준으로 완벽한 좌우대칭을 이룬다.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서 있는 50m의 첨탑은 약간 밖으로 휘어지게 세워졌는데, 이는 안구의 굴곡을 고려해 첨탑을 직선으로 보이게 하면서 지진으로 첨탑이 붕괴돼도 묘궁은 파손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피에트라 두라  기법이 사용된 아라베스크 문양(타지마할 내부)
석관이 안치된 묘궁의 안과 밖은 각기 다른 색상의 주옥을 박아 넣은 피에트라 두라 기법이 사용된 화려한 아라베스크 문양으로 장식돼 있다.

화려한 아라베스크 문양과 코란 문구가 생겨진 벽면은 각기 다른 색상의 주옥을 박아 넣는 피에트라 두라(Pietra Dura) 기법이 사용됐다. 현재 타지마할에는 뭄타즈 마할과 샤 자한이 함께 잠들어 있는데, 1층 묘실에 놓인 석관은 상징적인 의미이며 실제 유해는 지하에 안지돼 있다.
타지마할은 빛과 각도에 따라 각기 다른 색으로 변한다. 이른 아침에는 순백의 꽃봉오리처럼, 해 질 무렵에는 금빛 노을처럼 빛나는 건물은 언제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신비롭고 아름답다.

무굴 제국의 철옹성, 아그라성

야무나(Yamuna)강을 사이에 두고 타지마할과 마주한 아그라성(Agra Fort)은 붉은 사암으로 축조된 난공불락의 요새다. 16세기 무굴의 황제 악바르 대제가 세운 뒤, 후대 왕들이 꾸준히 증축하다가 샤 자한에 이르러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길이 2.5㎞, 높이 20m의 이중 성벽과 해자로 둘러싸인 철옹성의 내부에는 무굴 제국의 황제들과 그 가족들이 생활했던 궁전과 모스크, 접견실, 정원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 화려하면서도 아기자기한 내부의 아름다움은 견고한 외부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아들에 의해 폐위된 샤 자한이 갇혀 지냈던 무삼만 버즈
아들에 의해 폐위된 샤 자한이 갇혀 지냈던 무삼만 버즈. 이곳에서는 야무나강 건너 멀리 사랑하는 아내의 무덤, 타지마할이 보인다.

성 안을 거닐다 보면 안쪽 별궁의 작은 대리석 팔각 타워가 발길을 붙잡는다. 샤 자한이 유폐되었던 무삼만 버즈(Musamman Burj, 포로의 탑)다. 타지마할 축조로 국고를 탕진한 샤 자한은 아들 아우랑제브에 의해 폐위돼 이곳에 갇혀 여생을 보냈다.
손바닥만 한 목욕탕이 딸린 침실은 샤 자한에게 창살 없는 감옥이었다. 사랑하는 아내가 있는 타지마할이 손을 뻗으면 닿을 듯 지척인데 가까이 다가갈 수도 만져볼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강 건너 타지마할이 아련해 보인다.

타지마할 완공 후 샤 자한은 맞은편 강변에 자신이 묻힐 똑같은 모양의 검은 타지마할을 세워 구름다리로 연결하려 했다. 하지만 타지마할 축조로 국가 재정이 바닥나면서 백성들의 원성이 높아지고 아들 아우랑제브의 반란으로 이어지면서 그의 계획은 무산됐다.

타지마할 뷰 포인트로 유명한 무굴식 정원, 메탑 박
타지마할 뷰 포인트로 유명한 무굴식 정원, 메탑 박은 현지인들의 휴식 공간이자 여행자들의 인생샷 포인트다. 해 질 무렵엔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는 이들로 북적북적하다.

검은 타지마할 자리에 들어선 메탑 박(Mehtab Bagh)은 무굴식 정원으로 현지인들의 휴식 공간이자 여행자들의 인생샷 포인트로 인기가 높다. 해 질 무렵, 잔잔한 강물 위로 노을에 붉게 물든 타지마할이 반짝인다.
세상 어디에도 없을 완벽한 아름다움을 탄생시킨 샤 자한의 지독한 사랑과 이를 위해 희생되었을 수많은 사람의 애환이 서려서일까. 보름달처럼 새하얀 타지마할을 바라보는 눈이 시리다.

tip. 타지마할과 함께 인생샷 찍기

01. 다이애나 의자
1992년 영국의 고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앉아 사진을 찍은 것으로 유명해진 곳. 타지마할 내부에서 정확한 대칭을이루는 타지마할의 정원과 분수를 배경으로 사진을 남길 수 있는 가장 좋은 자리다.

02. 야무나강과 메탑 박
야무나강을 건너는 배 위에서는 잔잔한 강물 위로 반영된 타지마할의 자신을 남길 수 있다. 전 세계 사진가들 사이에 이미 유명한 장소라 뱃사공과 흥정이 쉽지 않은 것이 한 가지 단점. 차선책은 강 건너 메탑 박. 울타리가 시야를 방해하긴 하지만 이곳에서 바라보는 타지마할은 물 위에 떠 있는 신기루 같다.

03. 아그라성
아들에 의해 폐위된 샤 자한이 8년 동안 갇혀 지낸 무삼만 버즈에서 타지마할은 손에 잡힐 듯 가까우면서도 먼 곳이다. 이른 아침에는 타지마할 뒤에서 떠오르는 해를 볼 수 있다.

04. 타즈간즈의 루프톱 식당
타지마할 남문 주변으로 좁은 골목이 미로처럼 얽힌 지역 타즈간즈(Taj Ganj)는 저렴한 숙소와 식당이 몰려 있는 여행자 거리다. 이 지역에서 높이를 앞세워 호객하는 식당들은 맛보다는 손에 잡힐 듯 가까이에서 타지마할을 마주할 수 있는 전망을 더 중시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타지마할 남문 주변의 여행자 거리, 타즈간즈
타지마할 남문 주변의 여행자 거리, 타즈간즈에 있는 루프톱 식당에서는 타지마할을 바라보며 식사할 수 있다.

델리를 처음 만나는 여행자를 위한 안내서_ 델리(1)편 보기 <클릭!>

글·사진_ 오빛나
여행하고 글 쓰는 여자 사람. <트립풀 암스테르담> <인조이 인도> <잠시멈춤, 세계여행>의 저자.

대한항공 운항 정보

인천 ~ 델리 주 5회(화·목·금·토·일) 운항 (9월 1일부 매일 운항)

※ 자세한 스케줄은 대한항공 홈페이지(www.koreanair.com)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