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Los Angeles, 로스앤젤레스)는 10대 후반부터 20대 중반까지의 학창 시절을 보낸 도시다. 날씨는 늘 좋았고, 캠퍼스는 광활했다. 수업이 끝나면 캠퍼스 근처의 에스프레소 프로페타(Espresso Profeta)에서 친구들과 커피를 마시고, 영화에 대해 토론하며 때론 웨스트우드(Westwood)에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 이후 패션 매거진의 에디터가 되어 마감, 패션위크, 끊없이 이어지는 해외 출장까지. 누군가는 꿈꾸는 삶일지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 그 꿈에 갇힌 듯한 기분이 들었다. 끊임없는 스트레스와 데드라인 속에서 번아웃을 겪었고, 숨 고를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떠나기로 했다. LA로.
거의 10년 만에 다시 찾은 LA는 낯설면서도 익숙했다.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듯, 기억 속의 그 LA 였다. 황금빛 햇살과 넓은 거리, 평화로운 일상들은 여전했다. 웨스트우드(Westwood)의 오래된 아이스크림 쿠키샌드 디저트 가게에는 여전히 긴 줄이 서 있었고, 멜로즈 플레이스(Melrose Place) 중심가의 유명 커피숍에는 변함없이 젊은 에너지가 가득했다. 그리고 베니스(Venice)의 명물 브런치 카페 테라스에 앉아 바삭한 쿠인 아망을 베어 물자, 시간은 마치 10년 전으로 돌아간 듯 했다.
주말이면 자주 가던 힐링 해변들도 그대로였다. 당시 내 취향은 산타 모니카(Santa Monica)보다는 포인트 듐(Point Dume)이나 엘 마타도르 비치(El Matador Beach)였다. 파스텔빛 하늘 아래 모래사장에 누워 책을 읽고 서퍼들을 구경하곤 했던 그곳. 오랜만에 다시 찾아간 엘 마타도르 비치에 앉아 조용히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를 듣다 보니, LA가 왜 천사들의 도시라 불리는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독립영화 같은 LA 패션_ 빈티지에서 하이엔드까지
뉴욕을 패션의 수도라고 하지만, LA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다. 뉴욕 패션이 화려한 블록버스터라면 LA패션은 자유와 창의성, 그리고 약간의 반항기가 어우러진 독립영화라고나 할까. 복잡하면서도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그런 영화말이다.
LA를 기반으로 시작해 세계적으로 성장한 브랜드들도 많다. 먼저 RTA와 리포메이션(Reformation)은 꾸미지 않은 듯 자연스러우면서도 세련되고 자신감 넘치는 스타일인데, 영화에 비유하자면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엘리펀트’에서 보이는 미니멀한 미학과 절제된 이야기들을 연상시킨다. 제임스 퍼스(James Perse)는 LA의 여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미니멀리즘으로 해석한 베이직 아이템들이 돋보이는 브랜드다.
LA에서 쇼핑한다면 꼭 들러봐야 하는 장소들도 있다. 애봇 키니 거리(Abbot Kinney Boulevard)는 영화 ‘비포 선라이즈’처럼 낭만적이면서도 LA의 보헤미안 정신을 완벽하게 구현한 독립 부티크들과 현지 디자이너 숍들이 모여있다. 빈티지 숍부터 하이엔드 부티크까지 한 눈에 볼 수 있는 멜로즈 애비뉴(Melrose Avenue)나 힙스터들의 아지트인 실버레이크(Silver Lake), 그리고 컬러풀한 건물들과 팝업 스토어들이 모여 있는 컬버 시티(Culver City)의 플랫폼(Platform)도 가볼 만하다.
LA의 빈티지 숍들은 패션 보물 창고다. 로스 펠리즈(Los Feliz)의 스퀘어스빌(Squaresville), 라 브레아(La Brea)의 제트 래그(Jet Rag) 그리고 더 웨이 위 워(The Way We Wore) 같은 유명한 빈티지 숍에서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레트로 밴드 티부터 오래된 데님까지 모든 것을 찾아볼 수 있다.
천사들의 도시를 지키는 수호자, 윌셔 그랜드 센터
기억 속의 10년 전과 가장 달라진 것은 LA 스카이라인이었다. 과거 윌셔 그랜드 호텔이었던 윌셔 그랜드 센터(Wilshire Grand Center)가 새로운 모습으로 엄청난 존재감을 발휘하며 LA 다운타운의 상징이 되어 있었다. LA에서 가장 높이 우뚝 선 윌셔 그랜드 센터는 마치 천사들의 도시를 지켜보는 수호자 같았다.
특히 73층 꼭대기에 위치한 루프탑 바에서는 바다처럼 끝없이 펼쳐진 도시의 불빛과 저 멀리 보이는 산맥까지, 거대한 도시 LA를 마술처럼 한 눈에 담을 수 있었다. 태평양의 수평선과 그리피스 천문대가 동시에 보이는 이곳에서 낮에는 바쁜 도시를 내려다볼 수 있었고, 밤이 되면 그 모든 것을 잠재우듯 도시를 감싼 부드러운 불빛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꿈꾸는 자들의 도시
LA는 꿈결같은 순간들이 잔상처럼 남아 따스한 햇살처럼 피부에 스며드는 기억의 도시다. 무엇이든 증명할 필요없이 그저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게 해준다. 그렇기에 LA는 꿈꾸는 자들을 위한 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