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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서랍속여행기억] 언젠가 또 다시 우정 여행_ 방콕
2025.02.04 링크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내 서랍 속 여행 기억_ 방콕. 배경으로는 방콕 왓아룬 사원이 보인다.

친구 네 명의 우정을 기념하기 위해 태국 방콕으로 여행지를 정한 건 의외로 간단한 이유에서다. 무조건 한국의 추운 겨울을 피할 수 있는 따뜻한 날씨, 비행 시간이 7시간이 넘지 않는 거리, 저렴한 물가, 맛있는 음식, 그리고 마사지와 쇼핑을 즐길 수 있는 도시일 것. 이 까다로운 조건을 모두 충족시켜주는 여행지가 바로 방콕이었다.

방콕은 특이한 도시다. 태국어로 방콕의 공식 이름은 ‘끄룽 텝 마하나콘(Krung Thep Mahanakhon)’. 줄여서 ‘끄룽텝’이라 부르는데 ‘천사의 위대한 도시’라는 뜻이란다. 정식 명칭은 세계에서 가장 긴 도시 이름으로 기네스 북에 등재되어 있을 만큼 길지만, 태국 사람들조차 잘 모른다고 하니 그냥 넘어가도 되겠다.

방콕이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반의 라마 4세와 5세 시기로, 특히 라마 5세가 서구식 개혁과 현대화를 강력히 추진하고 서구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부터다. 흥미로운 사실은 태국이 동남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서구 열강의 식민 지배를 받지 않은 나라라는 점이다. 물론 서구의 압력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완충국 역할을 하며 독립을 유지하는데 성공했다. 그래서일까. 이 도시에는 식민지를 경험한 다른 아시아 도시들과는 다른, 독특한 자부심 같은 것이 있다. 전통과 현대를 대하는 태도가 조금 더 여유롭다고나 할까.

차오프라야 강변 주변 파노라마 전망

방콕은 마치 공간의 팔림프세스트(Palimpsest) 같다. 건축에서 오래된 역사적 흔적이 현재의 공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은유적으로 설명할 때 사용하는 말인데, 방콕을 설명할 때 딱 어울린다. 고층 빌딩 숲 사이로 불교 사원의 첨탑이 보이고, 최첨단 스카이트레인 아래로는 오토바이 택시들이 줄지어 달린다. 현대식 쇼핑몰 옆 길거리에서는 전통 음식 노점이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세계 다른 대도시 못지 않게 화려한데 동시에 태국 전통 특유의 바이브가 느껴진다. 이러한 모순적인 광경들이 어색하지 않게 어우러진다는 점이 매력이다.

방콕 여행의 기승전결, 마사지와 요가

방콕 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건 마사지였다. 방콕 여행 내내 마사지만 받고 돌아와도 후회가 없을 정도였다. 실제로 방콕에서 보낸 5일 동안 매일 태국 전통 마사지를 받았다. 한 해 동안의 피로가 누적된 근육을 풀어주니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 들었다. 태국 전통 마사지는 2,500년 전 불교와 함께 인도에서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태국 마사지의 본산으로 알려진 왓포 사원(Wat Pho)의 벽에는 마사지의 경혈점들이 빼곡히 그림으로 새겨져 있는데 아직도 이 그림들이 교과서 역할을 하한다고 한다.

아침에는 영어로 진행되는 요가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나름 요가를 꽤 오랫동안 해왔기에 뉴요커처럼 이른 아침 해외에서 요가 프로그램에 참여해보는 것이 여행 버킷 리스트 중 하나였는데 드디어 이뤘다. ‘누가 휴가지에서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 요가를 할까?’하는 생각으로 신청했는데 정원을 꽉 채워 진행됐다. 새벽 공기 속에서, 막 잠에서 깨어나는 이국의 도시에서 경험하는 요가는 정말 특별했다.

고급 호텔과 레스토랑, 바, 클럽 등이 밀집한 스쿰빗
고급 호텔과 레스토랑, 바, 클럽 등이 밀집한 스쿰빗

숙소는 방콕 시내의 수쿰빗(Sukhumvit)에 위치한 호텔이었다. 엠쿼티어(EmQuartier)와 터미널 21(Terminal 21) 같은 방콕의 유명 쇼핑몰을 비롯해 인기 레스토랑과 클럽 등이 밀집해 있고 BTS 스카이트레인과 MRT 지하철이 교차하기 때문에 교통 체증을 피할 수 있어 편했다.

3 방콕 Bts 스카이트레인
방콕 BTS 스카이트레인

밤에는 방콕의 야경 명소로 유명한 메리어트 호텔 수쿰빗(Bangkok Marriott Hotel Sukhumvit) 루프탑 바인 옥타브(Octave Rooftop Lounge & Bar)에서 방콕의 화려한 스카이라인을 내려다보며 칵테일을 즐겼다. 49층에서 방콕 에너지를 한 눈에 담을 수 있어 더없이 완벽했다.

더 이상 카오산 로드의 방콕이 아니다

방콕에서의 쇼핑은 과거와 또 다른 차원의 경험이었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태국 전통 가옥들과 작은 상점들이 있던 랑수언 로드(Langsuan Road)는 한국의 청담동, 도쿄의 긴자, 싱가포르의 오차드 로드를 떠오르게 하는 럭셔리 지역으로 탈바꿈 했다. 파크 하얏트 방콕 호텔을 비롯해 많은 명품 매장, 파인 레스토랑과 카페 핫플이 모인 곳이 되었다. 독창적이고 모던한 분위기로 방콕의 젊은 예술가와 디자이너들이 즐겨 찾는다는 통로(Thonglor)도 매력적인 지역이다. 더 커먼스(theCOMMONS), 72 커뮤니티(The 72 Courtyard) 등 트렌디한 카페와 바, 고급 레스토랑, 부티크 상점이 모여 있는 공간들이 많다.

젊은 예술가와 디자이너들이 즐겨 찾는 통로의 더 커먼스
젊은 예술가와 디자이너들이 즐겨 찾는 통로의 더 커먼스

태국 로컬 디자이너들은 독창적인 디자인 감각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센트럴 엠버시(Central Embassy)의 지하에 있는 태국 디자이너스 룸(Thai Designers’ Room), 방콕의 스트릿 패션을 재해석한 젊은 디자이너들의 작품이 있었던 사와디 숍(Sawadi Shop) 등이 기억에 남는다. 태국 전통 섬유 공예와 아방가르드하면서도 문화적 느낌이 강한 모던 디자인의 H&M 디자인 어워드 수상자 출신 위샤라위시 아카라산티숙(Wisharawish Akarasantisook), 할리우드 스타들이 즐겨 입는다는 디자이너 시와눗 툴라야(Siwanut Thulaya)의 바타니카(Vatanika)에는 국내 편집샵에 들여오고 싶을 정도로 사고 싶은 패션 아이템들이 많았다.

방콕의 음식도 도쿄나 파리 못지 않게 한층 다양해지고 발달해있었다. 미슐랭 레스토랑 보.란(Bo.lan)은 발효된 생선 소스와 허브, 현지 유기농 채소들로 전통 태국 요리를 현대적으로 풀어내고, 수쿰빗 소이 55의 사니스(Sarnies)는 퀴노아와 치아씨드를 넣은 그린 보울, 콤부차, 콜드브루 커피 등 건강식 트렌드를 잘 반영한 웰니스 메뉴가 가득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차오프라야 강변의 비앙카 반(Bianca Van)은 독창적인 퓨전 태국 음식을 선보이며 색다른 미식 경험을 제공했다. 르두(Le Du)는 젊은 셰프 탐 통타롱이 전통 태국 레시피에 일본과 프랑스 요리 기법을 더해서 만든 창의적 메뉴들이 재미있었고, 캔디드(Kandid)는 자연주의 레스토랑으로 도시 한복판에 있는 정글 속 비밀 정원 같았다.

핫한 카페들도 많았는데 토론토에서 온 바리스타가 운영하는 루스터스 앤 로스터스(Roosters & Roasters)는 방콕에 머무는 동안 단골이 되었다. 분위기는 마치 오래된 재즈 레코드처럼 편안하면서 어딘가 모던했고, 태국 북부 치앙마이 농장에서 직접 공수한 원두로 내린 커피는 깊이 있는 향과 산미가 특별했다.

홀리 아티장 베이커리의 외관(좌측)과 메뉴(우측)

수쿰빗의 홀리 아티장 베이커리(Holey Artisan Bakery)는 숨은 보석을 찾은 것 같았다. 옛 태국 가옥으로 개조한 이 곳은 사워도우로 만든 수제 도넛과 스페셜티 커피가 기억에 남는다. 현지 로스팅 원두의 깊은 풍미를 즐길 수 있었던 에까마이(Ekkamai)의 브루스터 커피(Brewster Coffee)도 커피 애호가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방콕의 심장, 차오프라야를 따라가는 하루

아침 햇살이 차오프라야 강변을 비추기 시작할 때 방콕은 새로운 하루를 맞이한다. ‘천사들의 도시’ 방콕의 심장은 단연 차오프라야 강으로, 태국의 역사와 문화가 흐르는 생명줄이다. 그래서 하루 정도는 온전히 차오프라야 강 주변에 집중하기로 했다.

차오프라야 강변을 따라 늘어선 호텔들과 마천루 사이로 오랜 역사를 간직한 사원들이 고개를 내밀고, 전통 수상가옥과 현대식 레스토랑이 공존하는 풍경이 펼쳐졌다. 강 건너편에서는 ‘새벽의 사원’이라 불리는 왓 아룬(Wat Arun)의 하얀 첨탑이 환영한다는 듯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었다. 방콕의 상징 중 하나인 왓 아룬은 아유타야 왕조 시대부터 내려왔으며 현재의 모습을 갖춘 것은 왕실 사원으로 지정된 라마 2세 시대(1809-1824)때다. 82m 높이의 중앙 탑은 중국 도자기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이 도자기들은 당시 중국 무역선의 밸러스트(선박 균형을 잡기 위한 무게추)로 사용되던 것이라고 한다.

왓 아룬

지금도 활발히 운영되는 불교 사원이라 매일 아침이면 공양을 드리기 위해 찾아오는 불교 신자들과 승려들의 탁발 행렬이 이어진다. 운 좋게도 승려들의 아침 탁발 행렬을 볼 수 있었다.

왓 아룬은 특별한 불교 행사가 있으면 사원 전체가 축제 분위기로 단장하고 많은 신도들이 모여 기도를 올리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 템플 스테이처럼 명상 센터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어서 외국인들을 위한 명상 프로그램과 불교 강좌가 정기적으로 열리고, 태국 전통 의학과 마사지를 배울 수 있는 교육 과정도 운영되고 있다.

오후에는 차오프라야 리버 크루즈에 올랐다. 크루즈는 크게 세 가지 코스가 있었는데, 방콕의 주요 명소를 둘러보는 관광 크루즈로 2시간 정도 영어 가이드의 설명과 함께 강변의 역사적 건축물들을 보는 베이직 코스, 해질 녘 출발해 도시의 황금빛 스카이라인을 감상할 수 있는 선셋 크루즈, 태국 전통 공연과 뷔페 식사까지 제공되는 디너 크루즈다. 우리는 디너 크루즈를 선택했다.

방콕의 일몰을 바라보며 식사를 할 수 있는 차오프라야 리버 크루즈

사톤 선착장에서 출발하는 크루즈는 왕궁과 왓 프라깨우(에메랄드 사원, Wat Phra Kaew), 왓 아룬을 지나 방콕 노이까지 이어지며 태국 왕조의 영광을 파노라마처럼 볼 수 있었다. 해질 녘의 노을빛을 한가득 안은 방콕 스카이라인과 함께 전통 공연, 태국 요리를 즐길 수 있어 정말 즐거웠다. 아마도 한강에서 크루즈를 타고 서울의 일몰을 즐기는 외국인들이 이런 기분이지 않을까.

어두운 밤이 되니 차오프라야 강변은 또 다른 얼굴로 변신했다. 화려한 조명으로 빛나는 다리와 현대적인 건물, 그리고 은은하게 빛나는 사원들이 만들어내는 야경은 방콕의 매력을 고스란히 담아냈고, 라마 8세 다리와 라마 9세 다리가 LED 조명으로 화려한 쇼를 펼치는 광경이 또 다른 볼거리였다.

이렇게 차오프라야 강을 따라 이어지는 하루는 전통과 현대, 종교와 상업, 고요함과 활기가 한데 어우러진 방콕의 다채로운 모습을 온전히 눈에 담는 시간이었다.

방콕의 오래된 이야기를 들려주는 시장들

나이트 마켓이자 복합문화공간 아시아티크
나이트 마켓이자 복합문화공간 아시아티크

아시아티크(Asiatique)는 1900년대 초반 덴마크의 동인도 회사 무역항이었던 곳인데 지금은 방콕의 대표적인 나이트 마켓이자 복합문화공간으로 변모했다. 방콕의 국제 무역을 이끈 중심지였던 오래된 창고들과 부둣가의 흔적을 보존하면서 현대적인 쇼핑과 엔터테인먼트 공간으로 재탄생했다고 한다. 차오프라야 강의 노을을 배경으로 거대한 대관람차에서 내려다보는 야경은 하루를 마무리하기에 완벽했다.

방콕 최대의 재래시장 짜뚜짝 시장
방콕 최대의 재래시장 짜뚜짝 시장

반면 짜뚜짝 시장(Chatuchak Weekend Market)은 1942년에 시작된 방콕 최대의 재래시장이다. 방콕 시장 특유의 열기와 활기 그리고 현지인들의 모습을 가장 생생하게 보여주는 장소가 아닐까 싶다. 초기에는 작은 규모로 시작되었지만, 태국 정부의 도시 개발과 관광 활성화 계획에 따라 현재의 방대한 시장으로 성장했다고 한다.
1980년대 후반, 당시 태국 수상이었던 쁘렘 띤술라논(Prem Tinsulanonda)이 시장을 확대하고 짜뚜짝 공원 근처로 이전시키면서 ‘짜뚜짝 시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지금은 20만명이 방문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주말 시장으로 자리 잡았다. 현지인들은 ‘JJ 마켓’이라고 부르는데, 약 15,000개의 점포들이 골동품, 수공예품, 식물, 의류, 태국 전통음식 등을 팔고 있어서 웬만한 물건은 여기서 다 구할 수 있다.

방콕 야경

이렇게 우리는 방콕에서의 시간을 알차게 보냈다. 거창한 여행 계획 없이도 마사지를 받으며 피로를 풀고, 요가로 마음을 다스리며, 방콕의 맛집과 카페에서 먹고 마신 시간이 쌓여 오래오래 간직할 소중한 추억의 페이지가 되었다. 그리고 다시 우정을 위해 여행을 떠난다면, 그때도 변함없이 방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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