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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서랍속여행기억] 시드니사이더가 되다_ 시드니
2025.03.18 링크주소 복사 버튼 이미지 페이스북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카카오톡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트위터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링크드인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인쇄하기 버튼 이미지
내 서랍 속의 여행 기억 시드니

누구에게나 그럴듯한 계획이 있다. 출장으로 여러 차례 방문한 시드니이기에 더 이상 특별할 것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출장 일정을 마치고 주어진 귀국 전 주말을 시드니사이더(Sydneysider, 시드니 사람)처럼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서울을 처음 방문하는 외국인들은 의례히 강남과 홍대를 가지만, 서울을 꽤 잘 아는 외국인들은 성수동과 삼각지를 가듯 말이다. 그리고 운 좋게도 시드니에 살고 있는 친구가 선뜻 동행해주기로 했다.

그렇게 그해 봄, 시드니 로컬들 사이에서 핫하다는 뉴타운, 바랑가루, 알렉산드리아를 가보게 됐다.

뻔하지 않은 시드니
보헤미안 예술가들의 천국, 뉴타운

처음 향한 곳은 시드니에서 가장 진보적이고 개성이 강한 동네라는 뉴타운(New Town)의 킹 스트리트(King Street)였다. 이 거리는 시드니에서 가장 긴 쇼핑 거리 중 하나로, 빈티지 숍, 독립 서점, 레코드 가게, 작은 갤러리들이 늘어서 있었다.

보헤미안 예술가들의 천국 뉴타운

뉴타운은 원래 가디갈(Gadigal) 원주민들의 땅이었는데, 1800년대 초반 유럽 정착민들이 이주해오며 도시화가 시작되었다가 1850년대 시드니 대학교가 설립되면서 크게 발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허브 하우스(Hub House)와 같은 빅토리아 시대 건축 양식의 테라스 하우스들이 많이 지어진 것도 이 시기다.

19세기 후반부터 1980년대까지만 해도 주로 시드니 대학교 학생들과 이민자, 노동자 계층이 많이 거주하는 서민적인 동네였는데, 저렴한 임대료를 찾아 예술가들이 하나둘 모여들면서 동네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그래피티 아트와 인디 음악, 독특하고 실험적인 예술 작업들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특히 킹 스트리트와 엔모어 로드(Enmore Road) 중심으로 레스토랑과 카페, 바, 부티크 빈티지 매장들이 들어서면서 힙하면서도 예술적인 생동감이 넘쳐나는 곳으로 변신했다.

거리에서 만난 독특한 타투가 돋보이는 바리스타들, 터프한 워커부츠를 신은 예술가들, 빈티지 원피스를 걸친 학생들이 이 동네의 자유롭고 예술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듯했다.

19세기 빅토리아 시대 건축 양식의 테라스 하우스들이 많은 뉴타운

음식 문화도 뉴타운의 큰 매력이었다. 한때 이민자들이 많이 거주하던 동네답게 태국, 베트남, 그리스, 터키 등 다양한 나라의 레스토랑들이 있었고, 대형 커피브랜드의 체인점 대신 개성 넘치는 작은 카페들을 골목마다 찾아볼 수 있었다.

19세기 산업혁명 시대의 공장을 연상시키는 녹슨 파이프와 노출된 벽돌이 눈에 띄는 캄포스 커피(Campos Coffee)에서 호주식 브런치의 정석을 맛보았다. 캄포스 커피는 시드니 바리스타들이 인정하는 로스터리로, 호주 스페셜티 커피의 맛을 제대로 보여주는 곳이다.

캄포스 커피의 뉴타운 플래그샵
캄포스 커피의 뉴타운 플래그샵

2002년 당시 시드니는 이탈리안 스타일의 다크 로스트 커피가 대세였는데, 창립자 윌 영(Will Young)이 이와 정반대의 스타일로 과감히 도전장을 내밀어 지금은 플래그십 매장인 뉴타운의 캄포스 커피 외에도 사우스 야라(South Yarra)와 개스웍스(Gasworks)에 분점도 생기고, 캄포스 커피 원두는 호주 전역에 납품될 만큼 큰 성공을 거뒀다.

과일의 산미와 초콜릿의 달콤함이 완벽한 균형을 이루는 시그니처 블렌드인 ‘수페리어(Superior)’는 호주 커피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한다.

창가에 앉아 플랫 화이트를 마셨는데, 에스프레소의 진한 맛과 부드러운 우유가 너무나 잘 어울리는 일생 최고의 커피였다. 두툼하게 썬 아보카도에 처빌, 레몬, 고수, 페타 치즈가 올라가 있는 아보카도 토스트는 한입 베어물자 고소함과 상큼함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이외에도 자체 로스팅한 커피와 크로넛(크루아상과 도넛을 결합한 디저트)으로 유명한 브루타운(Brewtown), 수제 캔 칵테일이 대표적인 컨티넨탈 델리 바 비스트로(Continental Deli Bar Bistro), 수박, 딸기, 장미향의 생크림이 어우러진 워터멜론 케이크로 세계에 이름을 알린 블랙스타 페이스트리(Black Star Pastry)도 뉴타운의 맛집들이었다. 이렇게 무언가 새롭고 신선한 것을 찾는 이들에게 뉴타운은 새로운 발견의 연속인 동네였다.

시드니의 브루클린, 알렉산드리아

브런치를 끝내고 다음으로 향한 곳은 과거 산업 지대에서 세련된 라이프스타일 공간으로 탈바꿈한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였다. 젊은 전문직 종사자들과 예술가들이 즐겨 찾는 카페와 부티크 매장이 즐비한 알렉산드리아는 뉴타운보다 조용하지만 또다른 매력이 있었다.

시드니 다운타운에서 남쪽으로 약 4㎞ 떨어진 알렉산드리아는 2010년대 초반부터 대대적인 도시 재생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한때 호주 제조업 중심지로 많은 공장들이 쇠퇴하면서 장기간 침체를 겪은 산업 지대였다.

하지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과 큐레이터들이 버려진 공장들을 아트 갤러리와 스튜디오, 사무실, 그리고 트렌디한 카페와 레스토랑으로 하나씩 되살리면서 이제는 시드니에서 가장 힙한 동네가 됐다. 그래서 호주의 젊은 세대들은 이곳을 ‘시드니의 브루클린’이라 부른다고 한다.

1920년대 파이 공장에서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한 더 그라운즈 오브 알렉산드리아

낡은 벽돌 건물들 사이로 새로 문을 연 디자인 숍들이 눈길을 끌었다. 우리가 방문한 더 그라운즈 오브 알렉산드리아(The Grounds of Alexandria)는 SNS에서 가장 많이 포스팅되는 인기 스팟이었다.

이곳은 1920년대에 파이 공장이었는데 지금은 오가닉 마켓들이 들어서고, 핸드메이드 매장, 카페, 베이커들이 모인 복합문화공간으로 변모했다. 마치 도심 속 숨겨진 정원 같았다. 정원은 시즌마다 다르게 꾸며지고, 크리스마스나 할로윈처럼 특별한 테마로 꾸며진다.

더 그라운즈 오브 알렉산드리아 내부의 허브정원
더 그라운즈 오브 알렉산드리아 내부의 허브정원

허브 정원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니 푸른 덩굴식물이 벽을 타고 올라가 있고, 오래된 공장 기계들이 예술 작품처럼 전시되어 있었다. 동시에 수제 베이커리에서는 고소한 향과 커피 로스팅 기계의 윙윙거리는 소리가 이곳에 매력을 더했다. 알렉산드리아가 왜 로컬 사이에서 사랑받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미첼 로드(Mitchell Road)는 앤틱 가구와 빈티지 상점들이 밀집한 거리다. 호주 최대의 앤틱 마켓 중 하나라는 미첼 로드 앤틱 센터에는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수많은 물건들이 있었다. 스페이스 퍼니처(Space Furniture), 코코 리퍼블릭(Coco Republic) 등 디자인과 가구 관련 쇼품도 많이 들어서고 있어서인지 세련된 느낌이 드는 동네였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함께하는
시드니의 새로운 심장, 바랑가루

시드니 하버의 서쪽 끝에 위치한 새로운 워터프론트 지구 바랑가루

마지막 발길은 시드니 하버의 서쪽 끝에 위치한 새로운 워터프론트 지구인 바랑가루(Barangaroo)로 향했다. 바랑가루는 버려진 컨테이너 부두였으나 100억 달러 규모의 시드니 다운타운(CBD) 재개발 프로젝트를 거쳐 고급 레스토랑과 쇼핑몰, 갤러리가 즐비한 새로운 비즈니스 중심지이자 시드니 최고의 핫플로 탈바꿈했다.

원주민 부족의 여성 지도자 이름을 따서 지어진 바랑가루는 크게 세 구역으로 나뉘어져 개발됐다. 바랑가루 사우스(Barangaroo South)에는 오피스 건물과 주상복합 아파트, 레스토랑, 호텔 등이 들어서 있다.

특히 시드니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된 크라운 타워스 시드니(Crown Towers Sydney)가 시드니 하버와 어우러져 화려하게 스카이라인을 그리고 있었다. 마치 물결이 흐르는 듯한 곡선을 지닌 크라운 타워스 시드니는 대담하고 테크니컬한 디자인으로 유명한 세계적 영국 건축 사무소 윌킨스에어(Wilkinson Eyre)가 설계했다. 높이 275m, 75층의 5성급 호텔이며, 객실을 비롯해 고급 주거용 아파트가 같이 위치해 있다.

13 75,000개 이상의 호주 토착 식물들이 심어져 있는 바랑가루 리저브 자연보호구역

다음으로는 다양한 공공시설물과 문화복합공간이 집중적으로 모여 있는 바랑가루 센트럴(Barangaroo Central), 시드니 항의 멋진 전망을 배경으로 75,000개 이상의 호주 토착 식물들이 심어져 있는 바랑가루 리저브(Barangaroo Reserve) 자연보호구역이 있다.

바랑가루 리저브는 약 6,000년 전 호주 원주민 카디갈 족이 낚시하던 곳과 사냥터를 기념하는 일종의 해안 공원이다. 도시 한복판에서 자연과 호주 원주민 문화를 접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제공하는 장소라 더 의미가 깊었다.

놀라 스모크하우스 앤 바

바랑가루 리저브를 둘러본 후, 놀라 스모크하우스 앤 바(NOLA Smokehouse and Bar)에서 시드니 항의 존스 베이 와프(Jones Bay Wharf) 너머로 떨어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이른 저녁을 즐겼다.

미국 뉴올리언스 전통 바베큐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요리들과 더불어 고급스러운 라운지, 프라이빗 위스키 바까지 갖추고 있어 시드니에서 인기가 많은 레스토랑이다.

시드니에서의 완벽한 주말

나는 시드니를 좋아한다. 이 도시만의 느리고 여유로운 속도감과 편안함이 좋다.

시드니사이더처럼 뉴타운, 알렉산드리아, 바랑가루를 돌아보며 보낸 주말은 시드니의 다양한 면모를 새로운 시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로컬들이 사랑하는 장소에서 시간을 보내며,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직접 체험하니 시드니가 더 좋아졌다. 그리고 아마도 계속 좋아할 것 같다.

시드니 하버의 일출 파노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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