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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서랍속여행기억] 세상에 둘도 없는 여행_ 삿포로
2024.12.19 링크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내 서랍 속 여행 기억 삿포로 수정본

가깝지만 어려운 사이

신달자 시인이 <엄마와 딸> 에세이에서 정의했듯 서로를 가장 사랑하면서도 가장 서먹한 관계가 엄마와 딸이다. 크게 다툰 일도 없는데, 어느 순간 서먹해지기도 한다. 어느 겨울, 영화 ‘러브레터’의 배경이었던 홋카이도(Hokkaido), 정확히는 삿포로(Sapporo)로 엄마와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삿포로는 직항으로 2시간 30분이면 닿을 수 있고, 연말부터는 축제들도 많이 열리는 도시라 큰 고민없이 선택했다.

삿포로 시내

음식이 가진 힘은 크다

삿포로에서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조잔케이 온천(Jozankei Onsen)이었다. 조잔케이 온천은 삿포로 시내에서 차로 약 1시간 거리에 있는 시코쓰토야 국립공원 안에 위치한 조용한 온천마을이다. 1866년 승려 미즈미 조잔이 발견하여 이름이 붙여졌다. 울창한 산자락 사이로 흐르는 도요히라 강(Toyohira River)을 따라 20여 개의 료칸과 호텔이 자리잡고 있는데 겨울에는 설경과 함께 즐기는 온천욕으로 유명하다. 특히 유황 성분이 풍부하고 염화나트륨, 중탄산나트륨을 비롯하여 다양한 미네랄 성분을 함유하고 있어 일본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온천이라고 한다.

조잔케이 온천
조잔케이 온천

조잔케이 온천은 자연 속 깊숙이 자리하고 있어 온천을 하면서도 주변의 겨울 풍경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따뜻한 온천 물에 몸을 담그고 눈 덮인 나무와 맑은 공기를 마주하니 딱히 대화를 이어 나가지 않아도 여독이 스르르 풀리며 그 어느 때보다 몸과 마음이 평온해졌다.

다음날 아침 오타루(Otaru)로 떠났다. 영화 ‘러브레터’ 대부분의 촬영이 이루어진 오타루는 겨울이 되면 영화에서처럼 더욱 매력적이다. 작은 운하와 주변을 둘러싼 낡은 건물들 그리고 눈 덮인 거리는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을 준다.

오타루의 운하거리
눈 쌓인 오타루 운하

항구도시 오타루는 삿포로에서 JR로 30분 거리에 위치해있으며, 과거 무역항으로 번성했던 흔적이 여전히 곳곳에 남아있다. 메이지, 다이쇼 시대의 창고 건물들을 개조한 운하거리는 눈으로 뒤덮여 있어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밤에는 운하거리를 따라 조명이 밝혀져 더욱 가슴 설레이는 장면을 그려낸다. 괜히 영화 ‘러브레터’ 촬영지가 아니었다.

도착했을 때는 오타루도 축제가 한창이었다. 거리 곳곳에는 눈과 얼음으로 만든 조각들이 놓여 있었고, 작은 상점에는 축제에 맞춘 특별한 장식들이 걸려 있었다. 축제의 한편에서는 오타루 맥주를 시음할 수 있는 작은 부스들이 열려 있었다. 우리는 맥주 한 잔을 들고 축제를 즐기며 ‘맥주 맛이 정말 좋다’고 감탄했다.

오타루 맥주 양조장
오타루맥주양조장 오타루 창고 No.1

로컬 맥주인 오타루 맥주는 1876년 설립된 맥주 양조장에서 제조되는 크래프트 수제 비어다. 홋카이도의 청정한 물이 맥주의 깊은 맛을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무엇보다 소량 생산되는 수제 맥주라 오직 오타루에서만 맛볼 수 있기에 꼭 마셔봐야 한다.

삿포로로 돌아와 신선한 가리비, 게, 성게알 등의 홋카이도 해산물 요리와 국물은 깊고 진하며, 면발은 쫄깃한 라멘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먹부림을 시작했다. 삿포로는 일본에서도 음식이 특별히 맛있기로 유명한데 그 이유는 신선한 재료에 있다. 차가운 기후 덕분에 채소와 유제품의 품질이 뛰어나고, 신선한 가리비와 성게알 같은 해산물 요리가 유명하다. 삿포로 라멘은 된장 베이스의 진한 국물과 쫄깃한 면발이 특징이다. 겨울에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다.

삿포로 라멘

65년 역사를 자랑하는 스스키노 다루마 본점에서 먹은 징기스칸은 지금도 때때로 기억난다. 양고기 바비큐 징기스칸은 홋카이도에 가면 꼭 먹어봐야 하는 홋카이도 대표 음식이다. 신선한 양고기를 특유의 소스에 구워 먹는 방식이 특징이며 현지에서 먹으면 그 참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양고기 특유의 냄새도 거의 없어서 비위가 약해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음식이 가진 힘은 컸다. 낯선 여행지에서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먹다보니 편하게 대화가 이어졌다. 음식을 통해 오랜 시간의 틈을 메꾸었다고 할까.

별처럼 빛나는 삿포로의 밤

13 히츠지가오카 전망대의 눈사람
히츠지가오카 전망대의 눈사람

히츠지가오카 전망대(Sapporo Hitsujigaoka Observation Hill)에서는 눈 속의 얼음 조각들이 햇빛을 받아 투명하게 빛을 내는 스노우 파크 페스티벌(Snow Park Festival)이 열리고 있었다. 1959년 지어졌다는 히츠지가오카 전망대는 삿포로 시내와 이시카리 평야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데, 눈과 얼음으로 조각된 작품들이 곳곳에 전시되어 있어 마치 거대한 얼음 궁전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또한 양들이 방목되어 있는 양떼 목장도 볼 수 있었고, 전망대 카페에서 먹은 홋카이도산 원유로 만든 소프트 아이스크림도 별미였다. 히츠지가오카 전망대는 봄에는 라벤더, 가을에는 코스모스가 만발해 계절마다 다른 매력을 선사하기에 사계절 언제든 방문하기 좋은 곳이다.

12 화이트 일루미네이션 축제가 열리는 오도리공원
화이트 일루미네이션 축제가 열리는 오도리 공원

삿포로의 밤은 화이트 일루미네이션 축제(Sapporo White Illumination)로 반짝였다. 오도리 공원과 삿포로 시내 곳곳에 설치된 형형색색의 조명들이 마치 겨울밤의 동화 속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고, 밤하늘을 수놓는 일루미네이션의 불빛 덕분에 추운 공기 속에서도 따뜻함이 가득했다. 1981년 일본에서 최초로 시작한 삿포로 화이트 일루미네이션 축제는 매년 11월 중순부터 다음해 3월까지 진행되며 삿포로 도시 전체를 불빛으로 물들인다.

삿포로 중심에 위치한 오도리 공원에는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와 다양한 조명 설치물이 있어 더욱 특별했다. 오도리 공원은 봄에는 벚꽃축제, 여름에는 맥주축제가 열리는 삿포로의 심장과도 같은 곳이다. 겨울철에는 스케이트장과 함께 일루미네이션 축제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넘쳐난다고 한다. 오도리 공원의 화려한 트리 조명 아래서 소녀처럼 환하게 웃으며 사진 포즈를 취하는 엄마를 보니 새삼 삿포로에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원 한쪽에서는 삿포로 재즈 축제로 인해 거리 곳곳에서 작은 공연들이 열리고 있었고, 재즈 선율들이 지나가는 이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었다. 삿포로 시티 재즈(Sapporo City Jazz) 축제는 2007년에 시작된 일본 최대 규모의 재즈 축제라고 하는데 일반 대중들에게도 문턱이 낮아 인기가 많다고 한다. 재즈의 즉흥적인 리듬과 선율이 눈 내리는 밤과 어우러져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재즈의 자유로운 선율을 들으며 삿포로의 겨울을 눈에 담고, 호텔 주변 작은 이자카야에서의 저녁으로 삿포로 여행을 마무리했다.

그해 겨울은 따뜻했다

모이와야마 전망대 전경
모이와야마 전망대 전경

그동안 쌓였던 서먹함은 삿포로의 눈처럼 녹아내렸고, 우리는 다시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다. 때로는 멀리 떠나야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을 그해 겨울의 삿포로가 가르쳐주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삿포로의 설경과 쌓였던 피로를 녹여준 따뜻한 온천, 맛있는 음식 등 삿포로 여행의 잔상들은 아직도 여전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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