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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서랍속여행기억] 사과향 따라 아오모리까지_ 아오모리
2025.06.24 링크주소 복사 버튼 이미지 페이스북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카카오톡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트위터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링크드인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인쇄하기 버튼 이미지
내 서랍 속 여행 기억 아오모리 사과향 따라 북쪽의 진짜 일본을 보다

일본 열도의 가장 위쪽, 혼슈 최북단에 자리한 아오모리현. 북쪽으로는 쓰가루 해협을 사이에 두고 홋카이도와 마주 보고 있으니 그저 스쳐 지나가는 곳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알고 보면 그 자체로 꽤 밀도 있는 여행지다. 독특한 문화와 역사를 간직한 곳이기에 호기심 많은 여행자에겐 더할 나위 없이 적당한, 아니 정확히는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기 어려운 여행지다.

아오모리는 의외로 접근성이 좋다. 대한항공 직항편으로 2시간 반 거리이며, 도쿄에서도 신칸센을 타면 약 3시간 반 거리다. 여기에 일본이 근대화와 지역 연결의 상징으로 영화, 문학, 다큐멘터리 등에 자주 등장해 꽤 익숙한 세이칸 터널도 있다. 세이칸 터널은 아오모리와 홋카이도를 연결하는 철도 해저 터널이다. 총 53.85㎞(해저부 23.30㎞, 육상부 30.55㎞) 길이로 1988년 개통했는데, 공사기간만 무려 17년이 걸렸다고 한다. 30년간 세계 최장 철도 해저 터널 1위였다가 2016년 스위스의 고트하르트 베이스 터널(57.09㎞)이 완공되면서 1위 자리는 내주게 됐다.

좀 낯설지만 낭만이 있는 곳

아오모리를 여행한 6월은 벚꽃은 이미 끝났고 사과는 아직 열리지 않은, 애매한 만큼 여유로운 계절이었다.

글쟁이인 내가 아오모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책과 영화, 애니메이션 등을 통해서다. 1800년 중반 메이지 시대 쓰가루에서 시작된 오모리 식당 창업주 1대와 4대의 따뜻한 사랑과 인연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자 영화 [쓰가루 백년 식당]과 아오모리의 평화로운 시골 생활을 배경으로 히로사키의 사과 과수원, 히로사키 성, 네부타 축제, 지역 음식을 상세히 묘사한 애니메이션 [플라잉 위치(Flying Witch)] 속의 아오모리는 낭만과 전통이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인간실격]의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고향이기 때문이었다. 그가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낸 아오모리를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 샤요칸은 다자이 오사무의 흔적을 찾는 문학 애호가들에게 필수 방문 코스다. 그래서 순례하듯 가장 먼저 다자이가 유년 시절을 보낸 아오모리현 카나기초(현재의 고쇼가와라시)에 위치한 생가 샤요칸(斜陽館)으로 달려갔다.

메이지 시대 건축 양식의 다자이 오사무 생가

이곳은 단순한 문학 기념관을 넘어 메이지 시대 부유층의 생활상과 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역사적 가치도 지니고 있다. 1907년 메이지 시대에 지어진 이 목조 건물은 서양과 일본의 건축 양식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어 일본 근대사와 문화사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1953년에 처음 공개되었고, 1983년에 국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샤요칸 내부

웅장한 서양식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다자이의 육성이 흘러나오고 기념관 내부에는 다자이 오사무가 사용했던 방과 생활 용품, 그의 작품 원고,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다자이가 어린 시절을 보낸 방은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그의 성장 배경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다음 날은 히로사키로 향했다. 에도 시대의 성곽도시로, 히로사키 성과 주변의 벚꽃 공원이 유명하다. 히로사키 성은 봄에는 벚꽃, 여름에는 푸른 녹음, 가을은 단풍, 겨울에는 설경으로 계절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명소다.
현재 3층 천수각은 에도 시대 후기 건축 양식으로 지어졌다. 높이 약 14.4m 성으로, 일본의 다른 거대 성들에 비해 소박한 크기지만 우아미가 있다. 무엇보다 메이지 유신 이후 많은 일본의 성들이 철거되었지만 히로사키 성은 다행히 보존되었고, 몇 개 남지 않은 에도 시대의 원형 성곽 중 하나라 소중하다. 성 내부는 박물관으로 운영되어 히로사키 번(藩)의 역사와 문화, 무사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고, 성 주변은 무사들이 살던 옛 거리가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계절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히로사키 성

특히 성 공원은 약 2,600여 그루의 벚나무가 심어져 있는 일본 최고의 벚꽃 명소 중 하나다. 매년 4월 말에서 5월 초가 되면 화려한 히로사키 벚꽃 축제가 열린다. 100년 이상 이어져 온 봄 축제 기간에는 야간 조명이 설치되어 밤에도 벚꽃을 감상할 수 있고, 다양한 문화 행사와 먹거리 부스도 운영된다. 6월에는 아쉽게도 벚꽃이 지고 없었지만, 녹색 잎들이 성벽과 어우러져 또 다른 운치가 있었다.

예술과 역사 사이
아오모리에서 흰 개를 만나다

도호쿠 지방에 속하는 아오모리현은 예로부터 쓰가루, 난부, 시모키타 세 지역으로 나뉘어 발전해왔다. 현의 중심지인 아오모리시는 1898년에 개항한 비교적 젊은 항구 도시지만 그 역사는 조몬 시대(기원전 14,000~3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아오모리는 조몬 시대의 중심지였다. 그리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는 산나이마루야마 유적지가 있다. 산나이마루야마 유적지에 가면 6천 년 전 조몬인의 삶이 남아 있는, 교과서 속 선사시대가 흙 냄새와 함께 눈앞에 펼쳐진다.

조몬시대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있는 산나이마루야 유적지(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이곳은 1992년 아오모리현 야구장 건설 중 우연히 발견되었다. 이전에는 수렵·채집 생활을 했다고 여겨졌던 조몬 시대 사람들이 실제로는 정착 생활을 하며 복잡한 사회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고고학적으로 새롭게 밝혀낸 유적지다. 여기서 약 500여 채의 주거지 흔적이 발견되었고, 직경 32m에 달하는 대형 건물의 흔적도 발견됐다. 조몬 시대의 취락 구조와 생활상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어서 복원된 주거지와 대형 건물, 전시관 등을 통해 조몬 시대의 생활상을 체험할 수 있다. 이곳 박물관에는 출토된 유물과 복원 모형, 영상 자료 등도 전시되어 있어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가볼만 한 가치가 충분하다.

유적지 안의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아오모리 현립미술관(Aomori Museum of Art)으로 향하는 표지판이 나타난다. 유적지에서 미술관까지 도보로 약 5분. 짧은 거리지만 두 곳 사이에는 6천 년이라는 시간이 놓여 있다. 고대에서 현대까지의 흙담길을 지나 콘크리트로 지어진 현대 건축물 앞에 멈춰 선다.

건축가 아오키 준은 이곳을 흙 속에서 태어나도록 설계했다. 마치 유적의 일부처럼. 미술관의 일부 공간은 지하로 파묻혀 있어서 처음엔 방향 감각이 흐려진다. 하지만 그건 의도된 혼란이다. 모든 감각을 깨워 예술을 마주하라는 신호다. 잠시 헤매다 그 유명한 흰 개를 만났다. 나라 요시토모의 작품 ‘아오모리켄’. 높이 8.5m의 이 거대한 조각품은 어릴 적부터 많은 걸 보고 들은 개처럼 뾰족한 귀, 반쯤 감은 눈, 어딘가를 바라보는 듯한 시선이다.

요시토모 나라의 작품 ‘아오모리켄’으로 유명한 아오모리 현립미술관

미술관 내부에는 샤갈의 무대배경화 ‘알레코’ 연작 세 점이 전시되어 있다. 한 작품당 가로 15m, 세로 9m에 달하는 대형 캔버스는 압도적 체험을 선사한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것은 극작가 테라야마 슈지의 아카이브였다. 아오모리 출신인 그는 늘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을 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목판화 거장 무나카타 시코, ‘울트라맨’ 디자이너인 나리타 토오루의 작품 등 지역 출신 예술가들의 작품들이 많았다.

아오모리는 예술과 역사 사이의 거리를 흙길로 잇고 있었다. 조몬인의 삶, 현대 예술, 고요한 일본 북쪽의 공기가 한데 어우러진 복합적 체험 공간. 그리고 무엇보다 ‘흰 개’는 그곳을 떠난 후에도 오래도록 기억 속에 남았다.

아오모리 사람들 그리고 맛

아오모리 사람들은 말수가 적지만 친절하고, 음식은 담백하지만 깊다.

아오모리 사람들에게는 서울이나 도쿄에서 흔히 마주치는 과잉 친절 같은 건 없다. 그 대신 무언의 호의가 있다. 깊은 말들을 아껴두는 사람들이라고 해야 할까. 호텔 프런트 직원은 큰 웃음 없이도 손끝으로 정중했고, 식당 주인은 필요한 말을 천천히 골라서 말했다. 말수는 적지만, 천천히. 그 말에는 온기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아오모리에는 일본에서도 알아듣기 어렵다는 지역 방언, 쓰가루 벤(津軽弁)이 있다. 아오모리에서는 사람들이 ‘나다(なだ)’라고 말한다. ‘나(私, わたし)’라는 뜻인데, 도쿄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이누(いぬ)는 ‘개’이지만, 이곳에서는 ‘잇코(いっこ)’라고도 한다.

흑마늘은 이곳의 대표적인 특산물 중 하나다. 처음엔 마늘치고 너무 부드럽고 달아서 낯설다. 하지만 먹다 보면 ‘마늘이 맞나’ 싶을 만큼 중독적인 맛이다. 장인의 손에서 수십 일간 발효된 흑마늘은 이미 식재료를 넘어서 하나의 성격을 가진다. 조용하고 오래된 사람처럼.

일본 사과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아오모리

사과도 마찬가지다. 아오모리는 일본 사과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슈퍼에서, 역 매점에서, 기념품점에서 사과는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이 사과, 겉으론 별 다를 것 없어 보이는데 한입 베어 물면 아삭한 소리가 먼저 온다. 과즙이 터지고, 단맛과 신맛이 어울린다. 한때는 눈보라 속에서 꿋꿋이 자라던 사과나무의 힘을 믿지 않았다. 이제는 안다. 이 고요한 땅에서 나는 사과야말로, 아오모리 그 자체를 닮았다.

아오모리 음식 이야기도 하지 않을 수 없다. 식당에 들어가면 또 하나의 ‘아오모리’를 만난다. 이곳 음식은 자극적이지 않다. 국물은 맑지만 진하고, 양념은 적지만 풍미가 깊다. 숙소 근처 이자카야에서 처음 만난 건 ‘이치고니’였다. 처음엔 이름이 딸기와 관계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실은 성게와 전복을 넣은 흰 된장국이었다. 아오모리 지역 어부들이 새벽바다에서 몸을 녹이기 위해 끓여 먹던 국물 요리라는데, 바다의 향이 짙게 났지만 부담스럽지 않았다.

아오모리를 대표하는 로컬 푸드, 센베이 지루

또 하나의 명물 ‘센베이 지루’는 조금 생소했다. 간장 베이스의 국물에 닭고기, 버섯, 채소가 들어가고, 그 위에 지역 특산 밀과자 센베이를 넣어 함께 끓인다. 부드럽게 불어오는 센베이의 식감은 꼭 한 번 경험해볼 만하다. 특히 겨울에 인기 있는 소울푸드다.

가게츠 식당에서는 ‘마게 왓파 메시’를 먹었다. 대나무 껍질로 만든 둥근 도시락 통 ‘마게 왓파’에 밥과 각종 나물, 생선 조림 등을 담은 음식인데 외관은 소박하지만, 안에는 간장 양념으로 조린 송어, 우엉, 달걀, 고명 등 아오모리의 사계절이 모두 담겨 있었다. 이 외에도 대구(타라)를 활용한 아오모리 전통 수프 자케동이나 아오모리 명물 가리비(호타테)로 만든 호타테 요리도 기억에 남는다.

독특한 문화와 역사를 간직한 혼슈 최북단의 아오모리

아오모리에서의 일주일은 특별한 일 없이 지나갔다. 하지만 그 ‘특별하지 않음’ 속에서 이 도시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바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의 풍경이다. 특별하지 않은 일상의 평범함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다.

6월의 아오모리는 여름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마도 8월이면 네부타 축제의 열기로 가득 찰 것이고 그 후에는 가을이, 겨울이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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