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으로 다져진 천 년의 문화유산
수학여행의 본래 뜻은 ‘학생이 실제 경험을 통해 지식을 넓히도록 하는 여행’이다. 과연 본래의 목적에 충실한 학생이 몇이나 될까? 돌이켜보니 대부분 놀 궁리만 했던 것 같다. 놀 거리, 먹거리만 잔뜩 챙겨 갔고, 수학여행지에서 보고 느낀 점을 적을 노트와 펜은 뒷전이었다.
어른이 되어 여행 코스를 짜느라 고민하노라면 수학여행에서 학생들에게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 고민했을 선생님들이 종종 떠오른다. 잘 보면 꽤 유익한 여행이 됐을 법하나 명소들을 설렁설렁 다닌 게 새삼 아쉽다. 그래서 이번 여행의 테마는 ‘수학여행’으로 잡았다. 지식을 넓히며 눈이 즐거운 여행, 알면서 보고 보면서 알아가는 여행, 그 첫 번째 장소는 휴양지로 유명한 발리(Bali)다.
크고 작은 섬으로 구성된 인도네시아의 남쪽에 있는 섬 발리는 서퍼들이 먼저 진가를 알아보고 찾기 시작해 입소문을 타고 유명 휴양지로 거듭났다. 섬을 둘러싼 아름다운 해변이 휴양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지만, 가만 들여다보면 발리는 역사와 전통이 곳곳에 살아 있는 멋진 유적지이기도 하다.
발리는 이슬람화된 인도네시아 본토와 달리 힌두 문화의 전통이 강하게 살아 있는 섬이다. 섬 전체에 4,600여 개의 힌두 사원이 건재하며 아직도 주민들의 생활에 밀접하게 영향을 미친다. 아마도 이러한 배경에는 ‘수박(Subak)’이 관련돼 있을 것이다.
발리의 비옥한 토양과 습한 열대 기후는 작물을 경작하기에 좋았으나 문제는 물이었다. 화산섬인 발리는 논과 밭에 물을 대기가 쉽지 않은 구조였다. 수박은 협동조합 형식의 물 관리 체계로, 그 자체가 종교 생활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발리 사람들에게 벼는 신의 선물이었고 물 배분을 비롯한 관리의 중심에는 사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종교색이 강한 이 수박 체계가 오늘날까지 1,000여 년을 이어와 201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수박 체계와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자띠루위(Jatiluwih) 라이스 테라스는 간단히 말하면 계단식 논으로, 바투 카루(Batu Karu) 산기슭의 고원에 정갈하게 층층이 깔아놓은 녹색 비단처럼 펼쳐진 모습이 가히 장관이다. 600㏊의 계단식 논이 완만한 경사로 이어진 이곳은 걷기에 좋고 중간중간 사진을 남겨두기에도 환상적이다.
이와 비슷한 풍경은 우붓(Ubud) 지역 북쪽의 뜨갈랄랑(Tegallalang) 라이스 테라스에서도 만날 수 있다. 발리 남쪽에 관광지가 몰려 있어 그런지 우붓과 가까운 뜨갈랄랑 라이스 테라스가 좀 더 알려진 편이다.
타만 아윤(Taman Ayun) 사원은 수박 체계의 중심으로 지금까지 남아 있는 사원 중 가히 최고로 꼽힌다. 넓고 우아한 해자에 둘러싸인 이곳은 멩귀(Mengwi) 왕국의 주요 사원이었다.
1634년에 건축됐다가 1937년 대대적으로 개조된 타만 아윤은 고요한 분위기와 연꽃으로 가득 채운 수영장이 매력적이다. 안뜰에 있는 수많은 메루(탑 모양의 신사)에서는 풍요와 행복을 기원하며 한 층 한 층 쌓았을 발리 사람들의 정성이 느껴진다.
타만 아윤이 수박 체계의 중심으로 발리인의 생계를 책임졌다면, 서쪽 바다에 있는 타나롯(Tanah Lot) 해상 사원은 수문장처럼 서서 섬의 안전을 기원했다. 바다 신을 숭배하기 위해 지은 이 사원은 해가 저물 때 더욱 극적인 모습이 된다. 바다로 사라지는 붉은 해가 마지막으로 강렬한 빛을 발할 때, 해를 등진 이 사원의 실루엣은 몹시 낭만적이다.
발리의 사원에 입장하려면 허리에 둘러 입는 옷인 사롱을 입어야 하는데, 이런 수고를 들이지 않고 바닷가에서 부서지는 파도 소리에 귀 기울이며 황혼의 타나롯을 바라보는 것도 여행지의 낭만적인 하루를 마무리하는 멋진 방법일 테다.
글_ 강미아
여행만큼 여행 책을 좋아하는 글쟁이. 여행을 다녀온 모든 곳이 좋았지만 실은 언제든, 어디로 가든 이륙하는 비행기 안이 제일 좋은 사람이기도 하다.
대한항공 운항 정보
인천 ~ 발리(덴파사르)_ 매일 직항 운항
※ 자세한 스케줄은 대한항공 홈페이지(www.koreanair.com)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