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전문가칼럼

골목의 품격_ ① 자그레브
2019.08.23 페이스북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트위터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링크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구석구석 구시가지 골목에 숨은 보물

도시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자그레브의 골목에는 걷지 않으면 미처 발견하지 못할 매력적인 재밋거리가 가득하다.
도시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자그레브의 골목에는 걷지 않으면 미처 발견하지 못할 매력적인 재밋거리가 가득하다.

세계 어느 도시든 그곳을 대표하는 역사적인 건축물이 있다. 나라님이나 영주 같은 권력자들이 공들여 지어 올린 크고 웅장한 건축물에는 그들의 권위를 증명하듯 그 시대에 유행했던 건축 양식과 내로라하는 건축가들의 장인 정신이 깃들어 있다.

권력자의 파격적인 지원에 힘입어 당대의 창조적인 인재들이 모여 만든 결과물은 언제 보아도 즐겁다. 특히 “남는 것은 사진!”이라 외치는 여행자 중 한 명으로서 도시의 랜드마크를 수집하는 일은 웬만하면 남는 장사였다.

그러다 우연히, 아니 타고난 방향치의 운명에 따라 여행지에서 길을 잃었다. 유명한 볼거리와 더 유명한 볼거리 사이 좁다란 골목에서 뜻밖의 보물을 건졌다. 소박한 시간이 켜켜이 쌓여 만든 골목의 보물은 목적 없이 걸어야 더욱 눈에 잘 띈다. 그러니 가끔씩 자발적으로 헤매는 것도 좋다. 특히 크로아티아의 심장 자그레브(Zagreb)에서라면 더더욱.

자그레브 여행의 시작점이자 가장 활기찬 곳, 반 옐라치치 광장
자그레브 여행의 시작점이자 가장 활기찬 곳, 반 옐라치치 광장

자그레브 골목 투어는 도시에서 가장 활기찬 곳, 반 옐라치치(Ban Jelačić) 광장에서 시작하는 게 좋겠다. 자그레브 시민들에게 약속 장소로 인기인 이곳은 여행자에게는 자그레브 관광의 출발점이다.

광장을 기준으로 북쪽은 중세 유적이 고스란히 보존된 어퍼 타운, 남쪽은 유적과 신식 건물들이 어우러진 로어 타운으로 나뉜다. 어퍼 타운은 산책하듯 걸으며 둘러보기에 제격이고 로어 타운은 파란색 트램을 타고 곳곳을 누비기에 좋다.
골목 투어라 했으니, 걷기를 선택한 이들은 어퍼 타운으로 향한다.

걸어 다닐 때에만 볼 수 있는 자그레브 어퍼 타운의 풍경들. 자그레브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창문 모양의 조형물(왼쪽),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짧은 푸니쿨라
걸어 다닐 때에만 볼 수 있는 자그레브 어퍼 타운의 풍경들. 자그레브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창문 모양의 조형물(왼쪽),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짧은 푸니쿨라

반 옐라치치 광장 뒤쪽으로 걸으면 돌라치(Dolac) 시장이 나온다. 자그레브에서 가장 큰 농산물 시장으로, 형형색색의 신선한 농산물과 더불어 자그레브 시민들의 활기찬 일상을 엿볼 수 있다.

시장이 열린 초기에는 근처 농장에서 생산된 농산물이 주를 이뤘는데, 점점 찾는 이가 많아지면서 크로아티아 전역에서 생산된 다양한 미식 재료가 넘치는 장소가 됐다. 식재료뿐 아니라 꽃과 아기자기한 수공예품도 있어 둘러보는 재미를 더한다.
다만 아쉬운 점은 시장 문을 일찍 닫는다는 것. 동네 한 바퀴 크게 돌고 오는 길에 들르지 뭐, 했다가는 시장 구경을 놓치기 십상이다.

반 옐라치치 광장 뒤쪽으로 펼쳐진 돌라치 시장. 신선한 과일뿐 아니라 꽃과 수공예품이 잔뜩 있어 현지인과 여행자 모두가 사랑하는 시장이다.
반 옐라치치 광장 뒤쪽으로 펼쳐진 돌라치 시장. 신선한 과일뿐 아니라 꽃과 수공예품이 잔뜩 있어 현지인과 여행자 모두가 사랑하는 시장이다.

돌라치 시장을 지나 좀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과 카페가 줄을 이은 트칼치체바(Tkalčićeva) 거리가 나온다. 차가 다니지 않는 보행자 거리라 걷기도 좋고, 걷다가 노천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 마시며 쉬기도 좋다. 밤에는 시원한 맥주를 즐기는 젊은이들이 붐벼 흥겨운 분위기를 이룬다.

노천카페가 많아 걷다가 잠시 쉬기 좋은 트칼치체바 거리와 젊은 예술가들의 상상력이 더해진 구시가지 곳곳의 양수기들
노천카페가 많아 걷다가 잠시 쉬기 좋은 트칼치체바 거리와 젊은 예술가들의 상상력이 더해진 구시가지 곳곳의 양수기들

구시가지의 거리 곳곳은 젊은 예술가들의 무대가 되기도 한다. 거리의 예술가들은 낡은 벽에 멋지게 그림을 그려놓는가 하면 ‘핌프 마이 펌프(Pimp my pump)’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여기저기에 흩어진 야수기에 새 옷을 입히고 표정을 그려준다. 어떤 그림이 그려져 있나 찾아보는 것도 걸어야 만날 수 있는 재미다.

골목에는 작은 소품 숍과 전시관도 여럿 숨어 있다. 그중 ‘실연 박물관(Museum of Broken Relationships)’은 대형 미술관 못지않은 인기 전시관 중 하나.

실연 박물관 안내 부착물과 박물관 내에 전시된 이별의 증거들
실연 박물관 안내 부착물과 박물관 내에 전시된 이별의 증거들

자그레브 출신의 두 예술가가 함께 세운 이 박물관은 역설적이게도 두 사람의 이별에서 시작됐다. 연인이었던 두 사람이 헤어지면서 공동 소유였던 물품을 누가 가질지 고민하다 차라리 전시를 하자고 마음 먹은 것. 이후 여러 나라에서 전시회를 열면서 더 많은 물건이 모였고, 고향으로 돌아와 어퍼 타운에 상설 전시장을 열었다.

시작은 헤어진 연인의 물품이었으나 이들이 돌아왔을 때는 물건과 사연의 종류가 몹시 다양해졌다. 연인, 가족, 고향, 직업 그리고 나와의 헤어짐까지. 모든 종류의 이별이 구구절절한 사연과 함께 물건에 담겨 있다. 구두, 아기 옷, 편지, 사진 등 전시 물품 자체는 주변에서 흔히 본 것들이다. 하지만 기증자의 사연을 마음에 담는 순간, 아프기도 하고 비슷한 처지에 공감하며 슬며시 웃게도 되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글_ 강미아
여행만큼 여행 책을 좋아하는 글쟁이. 여행을 다녀온 모든 곳이 좋았지만 실은 언제든, 어디로 가든 이륙하는 비행기 안이 제일 좋은 사람이기도 하다.

대한항공 운항 정보

인천 ~ 자그레브 주 3회(화·목·토) 운항

※ 자세한 스케줄은 대한항공 홈페이지(www.koreanair.com)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