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전문가칼럼

[예술 그리고 도시] 아비뇽
2019.07.24 링크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전 세계 연극인의 꿈이 된 무대이자 가톨릭의 성지
아비뇽

프랑스 남동부 보클뤼즈(Vaucluse)의 주도 아비뇽(Avignon)은 인구가 채 10만 명이 되지 않는 작은 도시다. 하지만 14세기에는 가톨릭의 성지로서 중세 유럽의 중심을 자처했고 현재는 연극인들의 성지로 변신, 매년 여름 전 세계 연극인들을 끌어모은다.

론강 위 생베네제 다리와 유서 깊은 아비뇽의 건축물들
중세 가톨릭의 성지였으나 지금은 작고 조용한 도시인 아비뇽. 그러나 해마다 7월이면 이 아담한 도시에 전 세계 연극인들이 온통 들어차 축제의 장을 연다. 론강 위 생베네제 다리와 유서 깊은 아비뇽의 건축물들

얌전한 소도시의 변신, 아비뇽 페스티벌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은 중세 유럽의 어느 수도원을 배경으로 한다. 수도원 서고에는 시와 희극에 대한 책들이 있었는데, 고지식하고 연로한 수사는 젊은 수도사들이 그런 책을 읽는 것이 몹시 못마땅했다.
만약 그가 지금까지 살아 여름의 아비뇽을 방문한다면 어떨까? 아무리 그라도 교황청에서 열리는 연극 축제에 감탄하고 황홀해하는 관객들, 각종 포럼에서 작품을 두고 치열하게 토론하는 예술가들을 본다면 생각이 바뀔지도 모른다.

매년 7월 아비뇽 교황청에서 열리는 연극 축제의 이름은 ‘아비뇽 페스티벌’. 3주간 열리는 이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수십만 명의 사람이 아비뇽에 모여든다.
아비뇽 페스티벌의 시작은 1947년 연출가이자 배우인 장 빌라르(Jean Vilar)가 아비뇽 교황청의 안뜰 ‘쿠르 도뇌르(Cour d’honneur, 명예의 뜰)’의 야외무대에 올린 연극 세 편이었다. 이 공연이 얻은 큰 호응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파리에 집중된 고급문화와 중소 지방의 일반 대중문화 사이의 간극을 좁히고 소도시 아비뇽의 시민들도 수준 높은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하려는 시대적 고민이 맞물리면서 연극 축제가 매년 이어지게 됐다.

아비뇽 '인' 페스티벌은 도시 곳곳의 역사적인 장소를 무대로 해 열린다. 특히 메인 작품이 공연되는 교황청 안뜰은 축제기간이 되면 유적지의 모습을 벗고 웅장하고 화려한 무대로 거듭난다.
아비뇽 ‘인’ 페스티벌은 도시 곳곳의 역사적인 장소를 무대로 해 열린다. 특히 메인 작품이 공연되는 교황청 안뜰은 축제기간이 되면 유적지의 모습을 벗고 웅장하고 화려한 무대로 거듭난다.

아비뇽 페스티벌은 상호 보완적인 두 개의 축제, ‘인(IN)’과 ‘오프(OFF)’가 결합돼 있다. ‘아비뇽 페스티벌 인’은 축제 감독을 비롯한 주최측이 초청한 공식 참가작이 무대에 오르고, ‘아비뇽 페스티벌 오프’는 누구나 자유롭게 참가할 수 있는 비공식 자유 참가작으로 구성된다.

2019 '인' 페스티벌의 공식 프로그램북 표지
2019 ‘인’ 페스티벌의 공식 프로그램북 표지

두 개의 페스티벌은 배우도, 무대도 다르다. 아비뇽 페스티벌 인의 무대는 문화유산으로서 가치 있는 오래된 교회나 광장 같은 곳에 임시 무대를 설치해 펼쳐진다.
공연장 좌석 수는 적게는 50석, 많게는 2,000석 정도로 각 공연의 규모는 크지 않으나 역사적 장소에서 공연이 열린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특히 아비뇽 페스티벌 인의 대표 작품은 제1회 아비뇽 예술 주간의 공연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교황청 앞마당 쿠르 도뇌르에서 열린다.

반면 아비뇽 페스티벌 오프의 무대는 지하실을 개조한 곳부터 카페, 광장, 창고, 교실, 거리, 수도원, 성당, 고등학교 운동장 등 천차만별의 여러 장소다. 그야말로 배우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무대가 된다.
공간의 자유는 배우들에게도 무한한 자유를 선사한다. 원맨쇼 코미디와 서커스, 가족극과 음악, 무용 등 형식과 구성이 매우 다양한 공연이 아비뇽 시내 곳곳에서 펼쳐진다.

거리 곳곳을 비롯한 천차만별의 장소에서 치러지는 '오프' 페스티벌.
거리 곳곳을 비롯한 천차만별의 장소에서 치러지는 ‘오프’ 페스티벌. 인과 오프 페스티벌이 열리는 7월 한 달 내내 아비뇽에는 발 디딜 틈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교황과 왕의 세력 다툼의 역사가 녹아 있는 아비뇽 교황청

그런데 교황청 건물이 왜 아비뇽에 있을까? 중세 시대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랑하던 교황은 십자군 전쟁에서 패배한 이후 힘을 잃기 시작했고 반대급부로 왕들의 힘이 강해졌다.

프랑스 왕 필리프 4세가 그동안 세금을 내지 않았던 성직자들에게 세금을 내라고 하자 당시의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는 강하게 반발했다. 하지만 교황의 권력이 왕권에 못 미치던 시기라 교황은 체포됐고 얼마 후 사망한다.
뒤를 이은 교황 베네딕투스 11세도 8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자 프랑스는 새 교황으로 클레멘스 5세를 내세웠으며, 클레멘스 5세는 왕의 압력으로 로마에 있던 교황청을 프랑스 아비뇽으로 옮겼다.
바로 이 사건을 ‘아비뇽 유수’라고 한다. 이렇게 교황청이 이주하면서 아름다운 궁전 등 건축물이 들어섰고 아비뇽은 종교와 정치의 중심지가 된다. 비록 채 70년이 안 돼 교황청은 원래 자리인 로마로 돌아갔지만 도심에 세워진 성당과 광장은 아직 건재하다.

가톨릭 역사의 한 장면을 상상해볼 수 있는 아비뇽 교황청 전경과 생베네제 다리 그리고 다리 위 생니콜라스 예배당
가톨릭 역사의 한 장면을 상상해볼 수 있는 아비뇽 교황청 전경과 생베네제 다리 그리고 다리 위 생니콜라스 예배당

12세기, 신의 계시를 받은 양치기 소년의 이야기가 어려 있는 생베네제 다리(Pont Saint -Bénézet, Pont a’Avingnon이라고도 한다)와 그 위에 세워진 생니콜라스 예배당(Chapelle Saint-Nicolas d’Avignon), 교황청과 대성당, 아비뇽의 옛 성채인 로셰 데 돔(Rocher des Doms)은 교황을 모셨던 과거의 영광을 고스란히 간직하며 가톨릭 신자들의 성지로, 아름다운 건축물에 열광하는 관광객들이 꼭 들러야 할 곳으로 사랑받고 있다.

tip. 2019 아비뇽 페스티벌

인 페스티벌은 2019년 7월 4일부터 23일까지, 오프 페스티벌은 7월 5일부터 28일까지 열리며 각각의 공식 홈페이지에서 공연 정보와 장소를 확인할 수 있다.
ㅇ 인 페스티벌 www.festival-avignon.com
ㅇ 오프 페스티벌 www.avignonleoff.com

글_ 강미아
여행만큼 여행책을 좋아하는 글쟁이. 여행 다녀온 모든 곳이 좋았지만 실은 언제든 어디로 가든 이륙하는 비행기 안이 제일 좋은 사람이기도 하다.

대한항공 운항 정보

인천 ~ 파리 매일 직항 운항

※ 자세한 스케줄은 대한항공 홈페이지(www.koreanair.com)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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