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리포트

[예술로의 초대] 여신, 그 이상으로 사랑받은 당대의 뮤즈
2020.12.23 링크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여행을 하면서 마주치는 잠깐의 풍경과 만남들이
과수원에서 한입 깨무는 신선한 사과의 느낌이라면,
오르세 미술관이나 에르미타주 미술관에서 만나는 거장의 예술작품들은
셰프가 재료를 정성껏 선별하고 공들여 만든 일품요리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마음에 오래 남는 여행의 다채로운 맛, 그것이 여행을 기다리는 이유가 되지요.

[예술로의 초대]에서는 여행이 고픈 여러분들에게
사랑받는 명작과 그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여행 입맛을 돋워 드립니다.
해외 여행이 다시 활발해지면, 꼭 직접 감상해보시길!

보티첼리 ‘여인의 초상’

우리가 정말로 무척이나 많이 본 르네상스의 여인, 시모네타 베스푸치. 그녀의 이름은 낯설지 몰라도 얼굴은 꽤 익숙하다.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대가 산드로 보티첼리의 뮤즈로, 그의 어지간한 대작에 모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여인이 바로 그녀이기 때문이다.

산드로 보티첼리, 여인의 초상(님프로 표현된 시모네타 베스푸치의 초상), 1475년경(혹은 1480~1485), 목판에 템페라, 81.8×54㎝, 프랑크푸르트 슈테델 미술관 소장

보티첼리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비너스의 탄생’의 비너스도, ‘프리마베라’의 여인들도, ‘마르스와 비너스’의 비너스도 그리고 ‘석류의 마돈나’의 성모 마리아까지, 이 아름다운 여인은 보티첼리에게 참으로 큰 영감을 안겨준 듯하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시모네타는 당대 피렌체 최고의 미인으로 보티첼리뿐 아니라 뭇 남성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으며, 거의 여신 같은 존재로 받들어졌다고 한다. 본래 항구 도시 제노바의 귀족 출신인 시모네타는 열여섯 살에 마르코 베스푸치와 결혼하면서 피렌체로 오게 된다. 마르코는 우리가 알고 있는, 콜럼버스와 함께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하는 탐험가, 그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사촌이다.

아름다운 시모네타는 자연스럽게 메디치가의 형제들을 만나고 그들의 마음을 앗아가는데, 무엇보다도 메디치가의 차남 줄리아노 데 메디치의 그녀에 대한 사랑 이야기가 유명하다. 수려한 외모와 다양한 재능으로 피렌체 시민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전해지는 줄리아노는 그녀에 대한 사랑을 주체하지 못해 결국 1475년, 피렌체의 산타 크로체 광장에서 열린 기마 창 시합에서 쓴 자신의 배너에 보티첼리로 하여금 시모네타를 모델로 한 ‘팔라스 아테나’를 그려 넣게 해 이를 들고 출전했으며, 그곳에서 그녀에 대한 사랑을 만인 앞에서 고백했다고 전해진다.

줄리아노와 시모네타가 실제로 연인이 되었는지, 아니면 그저 줄리아노 혼자 그녀를 흠모한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사랑하는 여인을 위한 줄리아노의 로맨틱한 이벤트들은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회자되고 있다. 그러나 피렌체가 자랑하던 이 아름다운 동갑내기 두 사람, 줄리아노와 시모네타는 각각 스물다섯, 스물 셋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하는데, 시모네타는 결핵으로 1476년에 세상을 떠났고, 줄리아노는 그로부터 2년 후 반대파인 파치가의 습격으로 살해되었다.

아름다운 여인 시모네타를 남몰래 흠모한 이가 또 있으니, 바로 우리가 사랑하는 르네상스의 화가, 보티첼리다. 평생을 독신으로 산 보티첼리가 시모네타 살아생전에 그녀에게 직접 사랑을 고백했는지, 혹은 시모네타를 정말 여성으로 사랑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예술가로서 이상적이고 완벽한 아름다운 여인상으로 흠모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정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에는 대부분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이라는 단서가 붙는다.

보티첼리가 시모네타를 모델로 했다고 여겨지는 작품들이 등장하는 것은 그녀가 세상을 떠나고 몇 년 후이다. 따라서 직접 보고 그렸다기보다는 기억에 의존해 그렸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일까? 시모네타의 초상화에는 ‘이상화된(Idealized)’이라는 말이 붙었다. 아마도 보티첼리가 자신이 기억하는 당대 최고의 미녀이자 요절한 비운의 여인 시모네타의 모습에 시대(이탈리아 콰트로첸토)가 추구하는 그리스 고전 시대의 완벽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여신상을 투영해 그만의 완벽한 여인상을 만들어냈기 때문일 것이다.

시모네타를 모델로 그린 것으로 보이는 작품 중 시기상으로 제작 연도가 가장 빠른 ‘프리마베라’에서 보다, ‘비너스의 탄생’이나 ‘마르스와 비너스’에서의 시모네타가 점점 더 우아하고 매혹적으로 변하는 것을 보면 시간의 흐름과 함께 시모네타의 본래 모습이 계속해서 더욱 여신의 모습에 가깝게 이상화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우리 눈앞에 있는 ‘(이상화된) 여인의 초상- 시모네타의 초상’은 시모네타를 님프의 모습으로 그린 것이다. ‘님프’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자연의 정령, 요정인데, 보통 미술 작품에서는 아름다운 젊은 여인으로 표현된다. 아름답지만 때로 엄격하고 무서운 힘을 지니기도 하는 여신과 달리 님프는 아름다우면서 부드럽고 순수하며, 또 연약하고, 가끔은 아이같이 발랄하고 해맑아 분위기를 밝고 맑게 만들어주는 존재다.
그러나 보티첼리는 님프로 분하나 시모네타를 아름답고 순수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슬픔이 깃든, 차분하면서도 약간 병색이 도는 듯한 모습으로 그려냈다. 어쩌면 여전히 그의 마음 속에 남아 있던 그녀를 잃은 슬픔이 그림에 드러난 것은 아닐까.

보티첼리는 꽤 여러 점의 시모네타 초상을 남겼지만, 나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프랑크푸르트 슈테델 미술관에 있는 바로 이 작품이 가장 아름답고 가장 가슴을 저리게 하는 무언가가 있는, 마음에 깊이 와 닿는 작품이다. 누가 이 아름답고 고혹적인 여인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글_ 임은신
그림을 찾아가는 시간 dorossy 대표, 큐레이터.

보티첼리 ‘여인의 초상’은 프랑크푸르트 슈테델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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