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리포트

[예술로의 초대] 실제인 듯 실제 아닌 실제 같은
2020.11.20 페이스북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트위터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링크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여행을 하면서 마주치는 잠깐의 풍경과 만남들이
과수원에서 한입 깨무는 신선한 사과의 느낌이라면,
오르세 미술관이나 에르미타주 미술관에서 만나는 거장의 예술작품들은
셰프가 재료를 정성껏 선별하고 공들여 만든 일품요리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마음에 오래 남는 여행의 다채로운 맛, 그것이 여행을 기다리는 이유가 되지요.

[예술로의 초대]에서는 여행이 고픈 여러분들에게
사랑받는 명작과 그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여행 입맛을 돋워 드립니다.
해외 여행이 다시 활발해지면, 꼭 직접 감상해보시길!

벨라스케스 ‘마리아 테레사 스페인 공주’

발그레한 뺨과 뽀얗고 고운 피부, 나비로 화려하게 장식한 풍성한 금발의 기품 있고 사랑스러운 이 소녀는 훗날 유럽 절대왕정을 확립시킨 프랑스 태양왕 루이 14세(1638~1715)의 왕비가 되는 스페인 공주 마리아 테레사(1638~1683)이다.

벨라스케스, 마리아 테레사(1638~1683) 스페인 공주, 1651~1654, 캔버스에 유채, 32.7×38.4㎝,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프랑스 이름인 마리-테레즈로 더 잘 알려진 마리아 테레사는 스페인 국왕 펠리페 4세의 딸로, 남동생이 태어나기 전까지 꽤 오랫동안 스페인의 제1왕위 후계자이기도 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프랑스 국왕 앙리 4세의 딸이자, 루이 13세(루이 14세의 아버지)의 여동생인 프랑스 공주 엘리자베스 드 프랑스. 따라서 마리아 테레사는 앙리 4세의 외손녀이며 훗날 남편이 되는 루이 14세와는 사촌지간인 프랑스 혈통이다. 정치·외교적인 이유로 왕실 간 혼인이 빈번했던 유럽 왕가의 족보는 얽히고 설켜 그물망처럼 되어버린다.

실제로 마리아 테레사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프랑스 왕실과 스페인 왕실은 물론, 오스트리아 왕실과 영국 왕실에까지 이르게 된다. 흔히 하는 말로 ‘한두 다리만 건너면’ 서로 사촌이고 이모, 삼촌이며 조카였다. 이러한 왕실 간, 왕실 내 혼인은 순수 혈통을 보존한다는 이유가 있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오히려 열성인자의 유전을 초래해 유전 질환을 키우는 부정적인 결과를 낳기도 했다.

그래서 유럽의 많은 왕자와 공주, 왕과 왕비는 우리가 동화책에서 본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라 실제로는 키가 작고 볼품없이 생긴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권력자의 초상화를 그릴 때에는 당연히 그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도록 미화 작업이 따르는 법. 왕과 왕비, 왕자와 공주의 초상화는 가능하면 아름답고 위엄 있는, 자연스럽게 우러러 보게 만드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지금 우리 앞에 있는 예쁘다고 말하기는 어려울지라도 아주 귀엽고 사랑스러운, 소위 ‘귀티’가 흐르고 기품 있는 소녀 마리아 테레사 공주의 초상화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마리아 테레사는 실제로 어떤 공주, 어떤 왕비였을까? 보통 그녀는 키가 작고 뚱뚱하고 못생겼으며, 그다지 똑똑하지는 못했지만 조용하고 신실했던 왕비로 이야기된다. 남편을 사랑하고 존경하며 충심으로 대했지만 이미 결혼 전부터 연인이 있었고 결혼한 후에도 여러 명의 정부를 거느렸던 왕으로부터 사랑받지 못한 비운의 왕비, 마리아 테레사.

실제로 루이 14세에게는 첫사랑인 아름다운 아가씨 마리 만시니부터 루이즈 드 라발리에르, 몽테스팡 후작 부인, 퐁탕주, 그리고 왕비가 세상을 떠난 후 결국 비밀 결혼까지 하는 멩트농 부인까지, 수많은 애인과 사생아들이 있었다. 그렇지만 왕과 왕비 간의 의무는 충실히 이행해 둘 사이에 6명의 아이가 태어났고 그중 장남 루이만 살아남았다(아마 이것도 근친혼 때문일 것이다).

루이 14세가 왕비에게 별다른 애정이 없었던 것과는 달리 마리아 테레사는 왕을 매우 사랑했다고 하는데, 40대 중반의 이른 나이에 병으로 며칠 만에 왕비가 세상을 떠나자 루이 14세가 한 말이 “이것(그녀의 죽음)이 그녀가 내게 준 첫 아픔이구나”라니, 왕이 얼마나 무심했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최근의 새로운 연구에 의하면 지금까지 알려진 마리아 테레사의 외모나 성격은 다소 희화된 것으로, 그녀는 명랑하고 활달한 꽤 사랑스러운 여인이었으며, 궁정 생활을 즐겁게 이끌어간 왕비였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그녀가 대국 스페인의 왕위를 이어받을 후계자로 키워졌다는 사실을 결코 그냥 지나쳐서는 안된다고 연구자들은 강조한다.

그러고 보니 뉴욕에서 만난 어린 마리아 테레사 공주는(미화한 그림임을 감안해도) 참으로 사랑스럽고 기품이 있다. 스페인의 궁정화가였던 거장 벨라스케스가 그린 이 공주의 초상은 현재 프랑스(루브르 박물관)와 오스트리아(빈 미술사 박물관), 미국(보스턴 미술관)에 각각 한 점씩, 석 점이 남아 있는 그녀의 전신 초상화의 모델이 된 작품으로 보인다.

세 점의 전신 초상화는 스페인 왕실의 후계자인 공주에게 구혼한 미래의 남편감들에게 보내졌는데, 세 명의 청년 중 마리아 테레사는 결국 루이 14세와 결혼해 프랑스의 왕비가 된 것이다. 스페인 공주를 왕비로 맞이하면서 프랑스는 이후 17세기 유럽의 패권을 장악하는 데 한 발짝 앞서가게 된다.

벨라스케스 ‘마리아 테레사 스페인 공주’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